정말 난감한 날씨. 오리무중이라는 말을 제대로 실감하게 만드는 산안개가 끼었습니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걱정을 했네요. 31명을 이끌고 갈 수 있을지?? 태백산의 맹추위만큼이나 산안개의 엄습이 무척이나 두려움을 주는 시작이군요. 준비체조를 하는데 인원파악조차 힘들 만큼 사람도 많고 사람도 안 보이고. 상고대가 우릴 반기는 가운데 상고대로 이루어진 나무터널을 걸어올라갑니다. 내려오는 사람들의 머리카락에는 입김이 얼어붙은 머리카락이 백발처럼 보이는 사람들 태반입니다. 아이젠이 없으면 올라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 빙판도 많았습니다. 산안개 탓에 먼 경치는 보이지 않았어도 우리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설경이 펼쳐있어서 저마다 사진찍기에 바빠서 진도가 빠지지 않습니다. 나무데크와 나무 말뚝에는 눈이 얼어붙어있고 까만 바위들도 하얀 옷을 입은 듯 땡땡 얼어있어요. 미소천사님은 산사랑 회원들의 사진을 찍어주시느라 장갑을 꼈다뺐다만 수십 번 반복하시네요. 감사합니다.
향적봉에는 여느 때처럼 정상석에서 인증사진을 찍겠다는 행렬이 20~30미터나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일찌감치 포기하고 출발해야겠더라고요. 추락주의 푯말에도 얼음이 잔뜩 붙어서 글씨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누군가 눈이 내렸을 때 만들어놓은 오리들은 얼음오리로 변해있네요. 상고대랑 눈꽃은 여러 번 봤지만 오늘처럼 얼음꽃이 핀 나무들은 생전 처음 봅니다. 태백산에서 만났던 천년 주목들은 오늘도 등산객들의 주의를 끌지 못한 채 pass 또 pass 하지만 눈꽃이 매달린 키작은 나무들은 마치 새하얀 산호줄기처럼 보이고, 널적한 풀잎들도 새하얀 미역줄기처럼 정지상태였죠. 그냥 하나하나 작품들입니다. 언제 또 이런 장관을 마주할 수 있겠습니까? 이 순간을 즐겨야지요! 가는 길마다 얼음바닥이어서 스틱이 내리꽃을 때도 아이젠으로 밟을 때마다 얼음깨지는 소리가 그치질 않습니다. 바람소리조차 공포영화 속에서나 나올만한 사운드로 귓가를 울립니다. 가끔씩 봉우리와 봉우리 사잇길을 갈 때면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무풍지대도 지나게 됩니다. 무겁게 올라앉은 얼음덩어리들이 산죽 이파리들을 누르고 있습니다. 날씨는 추워도 우리들의 입은 얼지 않아서 걸어가는 내내 산사랑 회원들의 목소리는 쉬지않고 들려왔습니다.
어느덧 동엽령으로 내려가는 송계삼거리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왼쪽으로 가면 큰일나기 때문에 31명 모두가 도착할 때까지 멈춰섰습니다.
동엽령에 도착하니 1시가 다됐고 가져온 비닐셀터 안에 10명씩 들어가 있었습니다. 후미에서 따라왔기 때문에 모두들 식사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3군데로 나뉘어서 식사를 했는데 안성탐방지원센터쪽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직 맨 위쪽 비닐셀터 팀이 아직이네요. 후미는 매송님께서 챙겨 내려오신다고하여 안심하고 내려갔습니다.
오늘 하루 평생 볼 수 있는 상고대와 눈꽃 얼음꽃 구경을 했는데도 아직도 사진찍을 풍경들이 널렸습니다. 계곡물들은 꽝꽝 얼어서 빙판이 되어있더라고요. 하산을 완료할 때까지 아이젠을 벗지 못했습니다.
5층 높이의 나무 꼭대기에는 초록색 겨우살이들이 여기저기 붙어있네요. 하산하는 길은 이렇게 평화로운데 ~ 날씨란 도통 알 수가 없는 신의 영역입니다.
안성분소에 거의 도착하니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파랗게 변했고 하얀 구름도 멋지게 지나갑니다. 칠연폭포는 안쪽으로 갔다가 되돌아 나와야하니까 pass~ 우리들은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안성분소에 도착해서 후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점심시간 때 인원파악을 하지 않고 식사를 했던게 잘못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식사하는 장소가 왼쪽에 푹 꺼진 자리에 비닐셀터까지 쓰고있어서 못 보고 지나쳐 삿갓재 쪽으로 가버린 것이었습니다. 전화통화는 됐지만 이미 동엽령 지나서 삿갓재쪽으로 가고 있다네요. 어쩔수 없이 몇 년 전 하산했던 황점마을쪽으로 내려오라고 했으나 그쪽은 경상도고 우리가 내려온 곳은 전라도 쪽이니 1시간은 가야 그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녁식사는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급하게 먹고 아무 탈 없길 바라면서 황점마을로 향했습니다.
2015년 8월, 덕유산 산행을 왔을 때가 생각나네요. 그때는 한분이 기력이 약해져 못 걸었죠. 그래서 5명의 남자회원들이 번갈아가며 업어서 600미터를 내려왔었는데. 그래도 그때 모두가 함께였지만 오늘은 상황이 다릅니다. 날씨가 매우 추울뿐더러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은 상태에서 몇km를 더 걸었으니까요. 다행히 버스가 황점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두분께서는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오셨고 얼었던 몸을 차 안에서 녹일 수 있었습니다.
운영진의 실수로 인해 발생한 사고이기에 너무나도 송구스럽네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겠습니다.
첫댓글 그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얼음꽃과 상고대가 잊혀지지 않는 감동이었습니다.
저는 덕유산 산행기 쓴 줄 알았는데 동영상만 편집해놓고 한 달이 휙 지나버린 거더다구요. ㅎㅎ
덕유산 산행기도 반갑습니다~~
사고는 아니고 지나보면 모든 것이 추억이 될겁니다.. 얼음꽃이 핀 나무를 처음 보았으니...
싹수님이 마음고생 했나 봅니다!! 회원들이 더 잘하겠습니다..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