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계절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양치류(fern)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인 고사리는 하나의 종(species)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약 10여 가지의 종이 속하는 속(genus)을 가리키는 말인데 어린 순은 역사적으로 많은 문화에서 식용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 고사리 (naver.com)
제주의 3~5월은 고사리 철, 고사리의 어원을 찾아보니 김지형의 '국어마당'에서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KBS 2TV의 <생방송 세상의 아침> 작가가 고사리의 어원에 대해 물어왔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서 답을 보냈는데 그것을 풀어서 옮깁니다.
'고사리'는 중세어에서도 역시 '고사리'(훈몽자회, 두시언해 등)였습니다. 한자로는 '薇(고비 미, 고사리 미)'나 '蕨(고사리 궐, 고비 궐)'이 고사리를 가리키는 글자인데 한자 단어로는 蕨菜(궐채)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중세어나 현대어나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방언에서는 '개사리, 게비, 게아리, 게사리, 고비, 고삐, 고사리, 고새리, 고세리, 고시리, 고싸리, 괴비, 괴사리, 귀사라, 기사리, 깨사리, 꼬사래, 꼬사리, 꾀사리, 끼사리' 등으로서 '고사리'와 '고비'가 발음상의 변이만 겪은 것으로 보입니다.
'고사리'에 대한 어원 해석은 <東言攷略>이라는 책에서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곡사리'라고 표기하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蕨을 '고사리'라 함(ㅏ는 아래아)은 曲絲里ㅣ니, 拳曲하고(ㅏ : 아래아) 柔細하니라(ㅏ : 아래아)."
이것을 해석하면, "'궐'을 '고사리'라고 하는 것은 '곡사리'이니, 모양이 구부러지고 연하고 가늘기 때문이다."입니다.
이 해석은 '구부러진 실'처럼 생긴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한 것인데, 고사리의 모양에 따라 음이 비슷한 한자의 뜻으로 해석한 것이므로, 즉 한자 '곡사리'가 변하여 '고사리'가 된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어서 믿기 어려운 민간 어원이라고 하겠습니다.
서정범 교수는 <국어어원사전>에서 '고비사리'가 줄어서 '고사리'가 된 듯하다고 하였는데, '고'는 '고비'의 '고'이고, '사리'는 <풀>의 뜻을 가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여기에서 '사리'는 음운변화를 거쳐 '새'가 되기도 하는데, '새'는 어원적으로 <풀>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삳>*살>*살-이>사리>사이>새의 변화를 거쳤다고 보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사리'는 '새'로 변하기 전의 이전 형태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참고로, <풀>의 뜻을 가진 '새' 계통의 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삿갓(草笠) : 가는 대나무나 갈대를 엮어서 만든 갓.
- 삿자리(草席) : 갈대를 엮어 만든 돗자리.
- 새(草) : 중세어에서 ‘풀’을 뜻하는 말로 쓰임.
- 새끼(繩) : 볏짚으로 만든 줄. 삿(ㅏ:아래아) > 삿기(ㅣ:아래아)>새끼
이와 같은 해석으로 본다면, 서정범 교수는 '고사리'를 '고비'와 '사리'의 합성어로 보고 있는 듯하며, 그 어원적 해석은 <고비풀>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고사리'의 어원에 대하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1) 중세어나 방언을 통해서는 어원을 추정하기 어렵다.
2) 동식물의 이름은 그 형태(모양), 서식지, 생태적 특성 등에 따라 붙여지기 때문에 이를 통해 어원 해석을 해 볼 수 있다.
3) '고사리'와 '고비'는 모양이나 쓰임이 비슷하기 때문에 예전부터 혼용되어 사용되었던 단어들이다. 따라서 '고사리'의 어원은 '고비'와 함께 풀어봐야 한다.
이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어원 추정을 합니다.
1) '고비'의 어원 추정
'고비'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고부라진 모양'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형태에 근거하여 '곱(형용사 '곱다/굽다', 曲)+이(명사파생접미사)'로 분석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의미는 <구부러진 것>이 됩니다.
2) '고사리'의 어원 추정
'고사리'의 '고'는 '고비'의 '고'와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곱다(曲)'의 의미가 됩니다.
문제는 '사리'가 무엇이냐 하는 것인데, 앞서 서정범 교수는 이것을 <풀>의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나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른 해석이란 '사리'를 달리 해석하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국수나 실 등을 둥글게 말아놓은 것'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사리'라는 말이 있다. '고사리'는 순이 둥글게 말려 있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사리'의 '사리'를 이 말과 관련지어 그 어원적 의미를 이해할 수도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고사리'는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1) ' * 곱사리', 즉 <구부러진 둥근 뭉치 모양의 풀>이라는 뜻
2) '굽다'의 의미가 반영된 풀 이름 '고비'와 '사리(둥근 뭉치)'가 합성되어 이루어진 말.
저는 2)의 해석보다는 1)의 해석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곱사리'가 '고사리'로 변했다고 보고, 그 어원적 의미를 <구부러진 둥근 뭉치 모양의 풀>로 해석합니다.
* 표시는 문헌상에서 확인할 수 없는 단어라는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후대의 형태로 그 이전 형태를 추정할 때 붙이는 기호입니다.
- 우리말 이야기 - [어원] 고사리 (kugmun.com)
그리고 고사리와 관련한 속담과 관용구는 다음과 같이 검색할 수 있었다.
* 고사리는 아홉 형제이다.
- 봄에 돋아나는 고사리의 줄기가 한 번 꺾이면 계속해서 아홉 번까지 다시 돋아난다는 뜻을 담은 속담. 한 뿌리에서 아홉 번이나 줄기가 돋아나는 것을 끈질기고 인내심이 강한 사람에 비유하였다. 고사리 줄기는 강하게 눌러도 오뚝이처럼 다시 튀어오르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집안마다 자손이 강하게 자라고 번성하기를 바랄 때 고사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 고사리도 꺾을 때 꺾는다.
- 무슨 일이든 다 하여야 할 시기가 있는 것이니 그때를 놓치지 말고 하여야 한다는 말.
- 무슨 일을 시작하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해치우라는 말.
* 고사리는 귀신도 좋아한다.
- 예로부터 고사리는 제상을 받으러 온 귀신도 다 좋아해서 제상에 빼놓지 않고 올려놓았다는 데서,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몹시 즐겨 먹는 음식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고사리 좋은 해 메역(미역) 풍년 든다.
- 물질도 하고 농사도 짓는 제주 해녀들은 땅 위 고사리가 잘 자라는 해에는 바다 속 해초류도 풍년이 든다는 말에 빗대는 말
* 고사리 같은 손
- 어린아이의 여리고 포동포동한 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그리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고사리를 소재로 한 우리의 고전문학에는 다음 작품들이 있다고 소개(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3630)하고 있다.
* 성삼문(成三問)과 주의식(朱義植)의 시조
- 백이·숙제의 고사와 관련된 시조로, 성삼문의 작품은 백이·숙제가 고사리를 꺾어 먹은 것을 탓하는 내용으로 자신의 높은 절의를 과시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고, 주의식의 작품은 성삼문과는 달리 백이·숙제가 고사리를 캔 것을 두둔하고 있다.
* 민요
- 경북 상주 : 「고사리노래」는 고사리를 캐어와 보니 멀리 가셨던 낭군이 돌아왔으므로 너무도 반가워 그 고사리로 나물을 장만하여 밤새워 정답게 낭군과 함께 먹었다는 내용의 노래이다.
* 경남 거창 : 「고사리꺾는 노래」는 처녀·총각이 고사리꺾으러 가서 정답게 노는 내용의 노래이다.
* 전북 남원 : 「고사리꺾기 노래」는 산에서 고사리를 캐면서 부르는 노래로 노동의 어려움을 말하는 내용의 노래이다.
* 충남 청양 : 「고사리타령」은 오지 않는 님에 대한 불만과 시집살이의 고생스러움을 달래기 위하여 애꿎은 고사리만 비틀어 꺾는다는 내용의 부요(婦謠)이다.
* 진도나 완도지방, 즉 「강강술래」가 전승되고 있는 전라도의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불리는 「고사리 꺾자」라는 제목의 민요 : 강강술래놀이의 일부로 불리는 것으로, 선후창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세간에서는 어린이들의 작으며 부드럽고 앙징스러운 손을 말할 때 ‘고사리손’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한편, 제주에는 민요 '오돌또기'에서 "산엔 가며는 목동이 놀고요 / 바당에 가며는 해녀가 논단다 // 제주의 한라산 고사리 밧도 좋구요 / 산지포 저 돛대의 뱃고동 소리가 좋고 좋다 //와 "제주야 한라산에 고사리맛도 좋고 좋고 / 산지야 바당에 뱃고동 소리도 좋고 좋다 //라는 대목이 나오고, 전래 동요로는 '꼼짝 꼼짝 고사리 꼼짝'이 있다.
꼼짝 꼼짝 고사리 꼼짝 / 제주도 한라산 고사리 꼼짝 // 꼼짝 꼼짝 고사리 꼼짝 / 제주도 한라산 고사리 꼼짝 // 멍석 말라 비왑쩌 (곡식을 넣어놓는 멍석을 둘둘 말아라 비가 온다) / 멍석 펴라 볕남쩌 (멍석을 펴라 해가 난다) // 꼼짝 꼼짝 고사리 꼼짝 / 제주도 한라산 고사리 꼼짝 // 꼼짝 꼼짝 고사리 꼼짝 / 제주도 한라산 곰사리 꼼짝 //
제주에서는 대개 '벳고사리'와 '자왈고사리'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는 고사리의 품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서식지에 따른 것들이다. 즉 벳(햇빛)고사리는 햇빛이 잘 비치는 들판에서 자라기 때문에 가늘고 짧은 데 비해 자왈고사리(가시덤불에서 자라는 고사리)는 적당한 습기가 있어 고사리의 성장에 알맞아 굵고 윤택하다.
제주 사람들은 4~5월에 잦아지는 비를 '고사리 장마'라고 부른다. 이 시기엔 중산간 지역과 오름 등성이 할 것 없이 고사리를 꺾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4월에 꺾은 고사리는 '초물고사리(初-)'라고 하는데 이 시기에 꺾은 것이 연하고 맛있는 편이다. 5월로 접어들면 아무래도 줄기가 단단해지면서 고사리의 특유한 맛도 서서히 사그러들기 시작한다.
* 믿거나 말거나 : 도대체 고사리가 뭐길래?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일까. 고사리는 '산에서 나는 소고기'로 불릴 만큼 맛이 좋은 데다 영상 성분도 훌륭하다. 고사리는 단백질과 비타민(B1·B2·C), 식이섬유 등이 풍부해 변비 예방에 탁월하다. 또한 칼슘과 칼륨 등 무기질이 다른 채소보다 많아 치아와 뼈르 튼튼하게 한다. 고사리를 건조하면 무기질이 증가한다.
- 고사리 효능 외 : "제철 맞은 고사리, 이렇게 준비하세요" < 종합 < 진행연재 < WEEK&팡 < 기사본문 - 제민일보 (jemin.com)
고사리 명소(포인트)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물론 자식(딸과 며느리)들에게도 알려 주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겠지만 '나만의 명소'가 있음은 부인 못할 현실일 것이다. 고사리 꺾기의 매력? 고사리를 꺾어본 사람마다 그 느낌은 천양지차이겠지만 확실한 것 하나, 평생 고사리를 꺾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있겠지만 딱 한번만 꺾어본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그게 고사리의 매력(魅力)이요, 어쩌면 마력(魔力)이기도 하다.
(2021. 0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