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부부의 눈빛이 지금도 생생하다.
서명희
버스를 탔다. 여러 정류장을 거치면서 차는 멈추었다. 버스 입구 쪽을 향하니 노부부가 힘들게 올라오고 있었다. 중심은 채 안 잡혔지만 비틀 거리며 간신히 버스카드를 리더기에 찍었다. 안심이 되었는지 어르신은 서시어 저 멀리 눈빛을 골고루 보내고 있었다. 내 앞에 좌석이 양쪽으로 있었다. 출렁거리는 차안에서 넘어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빨리 앉기를 바랬다. 어르신의 눈빛은 내가 앉은 자리까지 이르자 남편을 향해 “여기에 앉아요, 나는 저쪽에 앉을게.” 발걸음을 옮기어 좌석에 풀썩 앉았다. 안심이 되었는지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어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에 남자어르신은 부인을 향해 사랑과 따스함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눈을 껌뻑이기를 여러 번 했다. 내가 느끼기에는 ‘당신만 있으면 나는 아무 걱정 없어.’라는 든든함으로 믿음을 보내며 비스듬히 앉았던 몸을 돌리어 반듯하게 앉았다. 지켜보던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창밖을 내다보기를 멈춘 여자 어르신은 자세를 바꾸어 남편을 향했다. 앉은 모습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는 움직임의 눈빛은 ‘언제 저렇게 변했나.’ 세월의 덧없음을 느끼듯 몸을 슬며시 앞으로 돌리어 손잡이를 잡았다.
집으로 돌아와 부부란 삶을 생각해 보았다. 젊은 남녀가 인연이 되어 백년해로가 되기까지 많은 ‘희노애락’ 속에서 얼룩진 그림을 그리며 살아간다는 여정은 훌륭한 일이며 ‘인간애’의 가치를 실현하는 업적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혼인 하던 날, 주례가 ‘성혼선언문’을 낭독한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잘살 때나 못살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서로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게 하소서」
그 당시는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철썩 같이 대답했었다.
요즈음 ‘성혼선언문’내용
「서로 부족한 것은 함께 채우고
넘치는 것은 나누고 이해하며 서로를 사랑으로 섬길 것을 약속했습니다.」
전자의 내용은 절대적으로 책임감이 따르고, 후자의 내용은 현실적인 내용으로 함께 노력하자는 권고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부부들이 인연을 맺고 자녀를 낳아 기르며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강의에서 들은 말에 빌리면 아무리 진홍빛 사랑이라도 6개월이면 벗겨진다고 한다. 잠시 사랑이라는 이름을 빌려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기까지 일생의 과정은 녹녹치 않은 시간들과 변화무쌍한 시간 속에서 ‘성혼선언문’ 내용처럼 참고 견디며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내는 것이다. 장미가 아름답지만 가시를 품고 있듯이 인간인 우리들도 크고 작은 가시를 품고 아름다운 삶을 피우는 꽃이라 생각하면, 신은 인간에게 사랑과 축복을 듬뿍 주어야 함이 마땅하다고 여겼다. 부부란 함께 살다보면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오래 입어서 편안해진 옷처럼 불편함이 없다. 젊은 부부는 어설프지만 얄밉도록 예쁘다. 중년의 부부는 자신감으로 넘치어 때로는 그들 앞에서 주눅이 들기도 한다. 건강한 노년의 부부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외로워 보이지 않아 좋다.
부부의 노년은 나이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산다고 한다. 노년의 삶에 몸을 실은 나는 변해가는 인생의 여정에서 ‘인생은 여행’이라는 말로 바꾸고 싶다. 여행은 되돌아보았을 때 멋진 추억으로 매력적이지 않을까?
버스에서 보았던 ‘노부부의 눈빛’이 눈앞에서 아롱거린다.
첫댓글 작가의 시선이 곱네요. 그래서 글도 탄생하지요.
우리들의 이야기라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나이를 먹어보니 부부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부쩍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