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런사람.
국어사전이 말 해주듯 ‘영재’ 라는 말은 뛰어난 사람을 뜻한다.
지금 키보드 앞에 있는 나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내 나름대로는 ‘영재’라는 단어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중학교 시절, 나는 반에서 반정도하는 그러니까 내 아버지가 자주 쓰는 말로 ‘어중잡이’였다.
거의 모든 중학생들이 그러하듯 나도 중학교 3학년이 되어 고등학교를 정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실업계고등학교와 인문계고등학교 사이에서 고민하던 나에게 담임선생님께서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를 추천해 주셨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딱히 정해둔 목표도 없었지만, 하루빨리 스스로 돈을 벌어 부모님의 구속을 피해 내 돈을 쓰고싶다는 철없는 생각에 공고에 진학을 하게 된것 같다.
당시 입학생 커트라인이 50%였는데 내성적이 정확히 50%였기 때문에 되면 좋고 아니면 아니라는 생각으로 학교에 지원했다.
그러나 막상 합격 소식을 듣고나니 공고에 진학하여 취업을 하기로 한 내 결정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학교에 입학하여 실습교과에 임하게 되고 선배들을 통하여 고졸사원들이 받는 대우가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듣게 되면서
내 진로는 취업보다는 진학쪽으로 기울어 졌다.
그런나에게 어느날 뜻 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학교에서 4년제 대학진학을 목표로 ‘기술영재반’이라는 입시반을 만든다는 소식이었다.
전교에서 20명을 뽑아 기숙학원 형식으로 방학없이 3년동안 학교에서 수능공부를 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반에서 10등안에 겨우 들어가는 성적이 었지만 나는 왠지 모를 확신이 있었다.
“여기에 들어가면 내 인생이 바뀔 수 도 있겠다.” 라는
당시 주변 친구들의 비웃슴과 의하해 하는 선생님들의 반응을 등지고 선발시험에 응시했다.
시험장에 50명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전부 반에서 공부 꽤나 하는 ‘범생이’들이었다. (물론, 나를 제외한)
나는 그 장소에서 나보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을 단 한명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왜냐 하면 하필 수험번호가 성적순으로 나왔는데, 내가 수험번호 50번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가슴에 단 ‘50’이라는 숫자를 보자 녀석들이 킥킥대기 시작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고 시험에 응했다.
그런데 이 영재반 선발시험이라는게 생각보다 별것 없었다.
수능시험을 대비한 반을 만든다고 해서 수능모의고사 위주로 시험을 준비 했었는데, 내 예상과는 전혀다른 문제가 나왔다.
인터넷에 널리 알려진 아인슈타인문제, 성냥개비를 옮기는 문제등 평소 인터넷어서 관심있게 보던 문제들이 속속들이 나왔다.
그리고 일주일 후 전화로 합격소식이 날아왔다.
그렇다. 결과적으로 나는 당시에 운이 무척좋았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 인기드라마 였던 ‘공부의 신’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당시 상황도 무척 비슷했던 것 같다.)
그러나 픽션과 현실은 다르기 때문일까? 내 드라마의 주인공은 이 ‘특별한 반’에 들어가서도 성적이 변변치 않았다.
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반 등수는 5등이 한계였고 당시 친구들사이에서 별 중요성 없던 모의고사 마져도 반에서 2등이었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별로 높은 등수가 아니다.)
나는 졸지에 반에서 동창회기부금만 갉아먹는 ‘도둑놈’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반친구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니까짓게 무슨 영재반라고.”
“내가 너처럼 공부하면 전교 1등도 하겠다.”
내가 군대를 그리 힘들지 않은 곳을 나와서 인지 모르지만, 이 순간이 내 인생 통틀어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반에서는 ‘도둑놈’, 영재반에서는 ‘조만간 떨어질 애’ 이 꼬리표가 나를 무척 힘들게 했다.
물론 나도 나름대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열심히 공부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학교 일과시간에는 용접을 하고 방과 후에는 수능공부를 하면서 내신과 수능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일은 나에게 무리 였을까?
내가 3학년이 되던 해 나는 결국 영재반에서 떨어졌다.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시던 몇몇 선생님들마저 더이상 참기 힘드셨던 모양이었다.
내가 영재반에서 떨어지자 주변에 있던 녀석들도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패배감이 든다거나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애초부터 내 자리가 없는 공연장에 와서 우연치 않게 내 자리가 생겼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2년동안
2년치의 감동을 내 가슴속에 챙겨 왔기 때문에 나는 절대 그곳에 있었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다. 나는 한때 영재였다.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060803.22001221645#
첫댓글 사진에서 구광일 본사람 손
맨앞에 사람 포스가 대박인데 ?ㅋ
내 시력이 안좋나 광일이가 어딨노 ㅋㅋ
천장에 달린 tv 밑에 사람 말하는건가 ㅋㅋㅋㅋㅋㅋㅋ
사진으로 분량 채우지 말라하시잔여!! ㅋㅋ
광일아 쨰려보지마!!
ㅋㅋㅋ난 왜 저런걸 몰랐을까....
반에서 동창회기부금만 갉아먹는 ‘도둑놈’ // 그렇다 나는 한때 영재였다. ㅋ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