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 음악 선물로 시작해 지금은 소외층 예술 교육도 사회가 좀 더 근사해졌으면"
1990년 인천 이건창호 합판공장에 플루트·클라리넷·오보에·바순·호른 선율이 퍼졌다. '음악 듣자고 공장 문을 한 시간 반이나 닫느냐' '가수나 불러오지 5중주는 또 뭐냐'며 술렁이던 공장 안이 체코 '프라하 아카데미아 목관 5중주단'의 연주에 잠잠해졌다. 대부분이 눈앞에서 클래식을 접한 적 없는 직원들이었다. 반복되는 기계음에 시든 청감이 '소리의 풍년'을 만나 되살아났다. 마지막 곡이 끝나자 뜨거운 박수가 터졌다.
함께 공연을 감상한 이건산업 박영주(69) 회장은 음악회를 계속 열기로 마음먹었고, 이후 20년째 '이건음악회'를 열고 있다. 직원이 아니라도 누구나 무료로 세계 수준의 클래식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올해는 체코 '베네비츠 콰르텟'(현악 4중주단)을 초청해 21~30일 부산·광주·인천·서울에서 음악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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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자생존의 환경에서 45년간 기업을 이끌면서도 문화적 감수성을 강조하는 이건 박영주 회장의 철학은 특이하다.“ 기업들이 문화예술을 지원해 사회 분위기가 좀 더 근사해졌으면 합니다. 그런 분위기라면 좀 더 공정한 게임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기업의 본질은 돈을 버는 것이지만, 성장하려면 거기에 뭔가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20년 전에 기업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무료 음악회를 연 것은 사실 새로운 발상이었죠. 서울이 아니면 수준 높은 공연을 접하기 힘든 때였습니다. IMF 금융위기 때는 우리 회사도 손해 많이 봤어요. 당연히 음악회를 그만두자는 얘기가 나왔죠. 하지만 겨우 전통을 세워가는 마당에 포기하기가 너무 아까워 그럴 수 없었어요."
박 회장은 5년 전부터 문화예술 지원단체인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 200여 회원사가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중소기업 매칭펀드'를 시작해 50여 중소기업이 작은 예술단체들과 결연을 맺어 지원하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로 근래 2년은 지원액이 줄었어요. 하지만 기업들이 후원하는 장르는 국악·현대무용·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어요. 예전에는 무조건 클래식 음악이었는데 말이죠. 영세한 예술단체에 경영기법도 전수하고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예술교육도 시켜줍니다."
그는 기업들의 문화예술 지원에 대한 정부의 세제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 작년 11월엔 국회의원 31명의 서명을 받아 '메세나에 관한 법률'도 올려놓았다.
"어떤 사람은 '먹고사는 게 우선 아니냐'고 합니다. 20년 전이라면 맞는 말이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요. 어려운 환경에서 크는 아이들이 문화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경쟁이 심한 우리 사회에 문화적 감성을 심어 숨통을 틔워 놓아야 하고요. 이건 모두의 미래를 위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