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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집결장소 : 2017년 4월 23일(일) / 서울대정문 옆 (10시30분)
▣ 참석자 : 10명 < 종화, 윤환, 경식, 윤상, 동준, 해황, 문형, 양기, 천옥 및 정한(뒤풀이때 참석) >
▣ 산행코스 : 서울대정문옆-삼성산우리둘레길-전망대-쉼터-쌍생수약수터-호암산-제1야영장-전망대-불영암-석구상-한우물-호암산성터-쉼터-시흥동-뒤풀이장소
▣ 동반시 : "벚꽃" / 정연복
▣ 뒤풀이 : 간재미·병어무침 등에 막걸리 및 포도주 / "강태공" (시흥동, 02-891-2270)
삼성산(호암산)을 산행하는 날이다. 아침일찍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를 한 후 차분히 산행준비를 하였다. 어제는 초딩친구들 모임이 경주에서 있었기에 참석할까 싶어서 오후 6시30분경에 SRT승차권 예매와 발매 관계로 수서역에서 잠시 씨루다가 경주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시산회 308회 산행'에 참석을 하였다.
SRT는 민간기업 (주)SR이 운영하는 열차로 "Super Rapid Train"의 약자이다. SRT는 수서에서 출발, 동탄, 지제역을 거쳐 부산까지 운행하는 경부선과 목포까지 운행하는 호남선으로 나뉜다. 수서, 동탄, 지제 3개역은 SRT전용역이고, 천안·아산 부터는 KTX와 같은 노선이므로 역을 공용으로 쓰고 있다.
SRT 수서고속철도 개통을 계기로 우리나라 117년 철도역사 최초로 간선철도에 경재체제가 도입이 되었는데, SRT 고속철도 개통으로 인하여 서울 강남, 강동, 경기의 남동부 지역까지 고속철도 시대를 맞게 되면서 기존 KTX 대비 평균 10~14% 정도의 저렴한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그 외에 새벽시간과 늦은 저녁시간 대에만 적용되던 할인요금을 더욱 다양한 시간대에 적용이 가능하며, 마일리지 제공 등 다양한 혜택이 있다고 한다.
KTX는 자리가 매우 비좁고 불편하기 짝이없는 의자로 인해 많은 민원이 있었다. 그 후 KTX 산천이라는 더욱 편리하고 100% 정방향으로 노선을 신설했지만, 모든 열차의 적용이 아니라 불편한 점이 제법 많기도 하였다. SRT는 위와 같은 불편한 점을 많이 개선을 하였다고 한다. 초딩 친구들의 봄철모임이 경주에서 있었고, 불참하면 잔소리가 많았기에 그런 소리도 역시 듣기가 싫었지만, 건강을 위해 산행을 좋아하는 마음은 누가 뭐라해도 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복정역에서 같은 동네에 살고있는 윤환 산우와 만나 집결장소인 서울대정문 옆에 도착하니 오랜만에 지각이 아닌 집결시간(10시 반)이 아직 3분이나 남았다. 참석을 하겠다던 두 산우가 급한 일 때문인지 참석을 못하고, 삼성산 루트를 잘 알고 있다는 경식 산우가 참석을 하였다. 한 총장은 참석한 산우들에겐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에서 사온 모짜르트 초코렛을 하나씩 나눠주며 오늘의 산행기자를 나에게 지명한다. 집에서 집결지까지 걸어서 온 양기 산우와 삼성산을 잘 안다는 경식 산우도 왔는데, 산행기 작성 때문인가(?) 싶어 그냥 걷기가 편안하고 쉬운 길로 가기로 하고 출발이다.
양기 산우는 삼성산 등산은 그동안 이경식 루트를 애용했지만, 이번에는 서울대 옆 개울가의 평편한 길을 1시간 걸으면서 신록에 심취해 보고, 편한 흙길의 산등성이를 1시간 더 걸어서 뒤풀이 장소로 가자고 하며, 관절에 무리가 없을 것이라 예측하였고, 작년 요맘때에 북한산 산행 후 은하식당에서 정한 산우가 추천을 해 먹었던 갑오징어 맛이 생각난다며 한 총장에게 카톡으로 미리 예약을 부탁하였던 일이 생각난다고 하였다.
날씨가 청명하고 따뜻한 봄날이라 모다 좀더 걷고 싶었던 마음이 앞서는가 보다. 물레방아가 있는 곳에서 잠시 머물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가야만 할 길을 선택하였다. 서울둘레길 5코스(삼성산코스) 방향으로 가자고 한다. 곧장 직진해 가면 작은 만남의 쉼터가 있고 곁에는 고은 시인이 지은 '행복 동행길'이란 시가 있다. "관악에 오면/ 나는 관악의 신록이 된다/ 관악에 오면/ 나는 관악의 단풍이 된다/ 관악에 왔다가면/ 나의 삶은 천년 관악의 삶이 된다." 관악산의 각 지구를 함께 걷는 아름다운 산책길이다. 삼성산은 관악산의 지산이다.
삼성산은 산에 성지가 있어서 그런지 조용히 사색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삼성산 성지'와 멀리 떨어져 있지않은 곳에 삼성산 숲이라는 소나무 군락지도 있어 이곳도 사색하거나 시집을 꺼내 읽기에는 참 좋은 곳이다. 물레방아가 있는 길 옆엔 마틴루터 킹의 글이 있다. '맨처음 한 걸음을 옮기십시오. 계단 전체를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맨처음 한 단부터 오르십시오.' 침례교 목사이자 미국내 흑인 인권운동을 주도했으며 196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마틴루터 킹'은 걷기 운동에서 가장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라는 글이다.
삼성산은 원효, 의상, 윤필 세 성인이 움막을 짓고 수도에 정진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성산에 있는 삼막사(三幕寺)의 유래도 거기에서 나왔다. 그런 삼성산에도 '삼성산 성지'라는 천주교의 성지가 있다. '삼성산 성지'는 기해박해(1839년) 때에 효수(梟首)된 세 명의 프랑스 신부들의 무덤이 있던 자리를 성역화 한 것이다. 기해박해로 인해 앵베르도 주교(한국명 범세형)와 모방, 샤스탕 신부 등이 새남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주검은 노고산(마포구 노고산동)을 거쳐 삼성산에 묻혔다.
이후 천주교에서는 삼성산을 성역화를 하였고, 지금의 '삼성산 성지'가 조성 되었다고 한다. 서울둘레길을 따라 가다보면 관악산, 삼성산과 서울대가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이 있다. 모다바쁜 마음인지 그냥 지나갔지만 난, 전망대로 가서 멀리 관악산과 삼성산을 둘러보고 일행을 따라갔다. 삼성산 성지로 가는 길 옆의 쉼터(정자)에서 잠시 휴식이다. 문형 산우는 어제 체육행사때 준비한 홍어회무침을 가지고 와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경식 산우는 초코파이를 나눠 준다. 산행때에는 항상 즐겁게 살아가는 우리들 인생사나 아름다운 추억을 반추하면 좋을텐데 대부분이 언론을 시끄럽게 하는 제19대대통령선거에 따른 후보들의 토론회 등의 이야기이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가야할 길을 찾아서 걸었다. 아름다운 신록과 금천구쪽이 환하게 내려다 보이는 포토존에서 인증사진을 촬영하고 다시 출발이다. ‘도란도란 걷는 길’은 서울둘레길중 삼성산을 오르는 테마산책길이다. 숲속에 가득 만개한 철쭉을 따라 걷는 길, 꽃길을 걷다보면 분홍빛 파도에, 꽃향기에, 웃음꽃이 저절로 핀다. 차분한 분위기에 경사도 완만해서 우리들이 걷기에는 제격이다.
날씨가 덮고 걷기 운동에 목이 한참 마른데 쌍생수약수터가 있다. 게시판 수질검사표 결과엔적합으로 판정되어 있어 산우들이 시원한 물(약수)을 한 잔씩 마시고 잠시 휴식이다. 시간이 벌써 12시30분이 넘어 배낭속에 가지고 온 음식을 먹자고 한다. 하지만, 호암산쪽의 전망대도 가깝고 장군봉이 바로 옆이니 그쪽으로 옮기자고 한다. 능선을 오르니 호암산이 가까운 넓은 공간의 제1야영장이 있다. 등산객이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야식을 먹고 있다. 우린 자리를 잡고서 해황표 과메기에 막걸리, 홍주를 한 잔씩 마시면서 내가 추천한 동반시 정연복 시인의 '벚꽃'을 낭송하였다.
"벚꽃" / 정연복
목련은 피어서는
참 우아하고 아름다운데
커다란 잎이
뚝뚝 떨어져 질 때는
검게 퇴색하는 모습이
별로 예쁘지 않다
나는 벚꽃같이
이 땅에서 예쁘게 살다가
꽃비 내리는 것처럼
예쁘게 죽어서
맑고 깨끗한 영혼으로
천국에 가고 싶다
정연복 시인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감리교신학대학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고 현재는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으로 일하면서 글쓰기를 통한 목회를 하고 있다. 최근의 저서로는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신 예수'(다산글방), '세계의 기독교 명시'(한울), '한국 기독교 명시-이해인 수녀가 추천하는 기도시집'(한울), 그리고 번역서로는 '신비주의 신학-영성과 신학의 어우름'(다산글방) 등이 있다.
제1야영장에서 호암산 전망대를 지나 불영암으로 갔다. 불영암은 한우물의 바로 옆에 있었다. 한우물 직전의 능선상엔 한 석구상(石狗像)이 있었는데, 돌로 만든 울타리안에 조성된 축대석 위에 잘 보존되어 있었으며, 얼핏 보아선 마치 해태상의 형상이다. 이 석구상은 해태상으로 전하여 왔으나, 이곳으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50m 지점의 한우물조사 발굴 때 조선시대 쌓은 석축에서 석구지(石狗池)라 음각된 장대석이 나왔고 또 시흥읍지 형승조(形勝條)에 이곳 호암산 남쪽에 석견(石犬) 사두(四頭)를 묻어 개와 가깝게 하고자 하였으며, '현남7리에 사견우(四犬偶)가 있다'라는 내용의 기록으로 봐 석구상으로 판단되었다.
이것은 조선왕조 도읍설화와 관련된 해태상으로 알려져 있다. 경복궁의 해태와 마주보게 하여 관악산의 화기를 누름으로써 서울 장안의 화재를 막기 위하여 세운 해태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석상의 형상은 해태로 보기 보다는 개의 형상에 가깝고, 경기읍지(1956년) 기록에 의하면 석구상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한다. 북쪽을 바라보고 앉은 석구상 주위에는 자연암 네 개가 있고, 석구상은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발과 꼬리도 잘 묘사되어 있었다.
한우물은 금천구 시흥동 호암산의 정상(315m)에 위치해 있으며, 국가지정사적제343호로 지정되어있다. 한우물은 천정, 용복 또는 용초로 불리워 졌으며, 통일신라시대(6∼7세기경)에 축조 되었고 그후 조선시대에 서쪽으로 약간 이동하여 다시 축조하였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동서 17.8m, 남북 13.6m, 깊이 2.5m 였으며, 조선시대에 축조된 우물은 동서 22m, 남북 12m, 깊이가 1.2m였다고 한다.
이 우물은 가물때엔 기우제를 지냈고, 전시에는 군용으로 사용되었다. 임진왜란 때에 선거이(宣居怡) 장군이 진을 치고 행주산성의 권율장군과 함께 왜군과 대응하여 전투를 하면서 이 우물을 군용수로 사용하였으며, '동국여지승람'에 "虎岩山 有固城 城內有一池 天早祈雨"라는 기록이 있어 가물 때에는 기우제로 지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조선조 건국설화와 관련하여 방화용설도 있었다.
불영암에서 시흥동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국가사적 재343호로 지정된 '서울호암산성'의 일부인 '제2한우물'과 옛 건물터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제2한우물'터는 '한우물'에서 동남쪽으로 300m 떨어진 곳에 있으며, 남북 18.5m, 동서 10m, 깊이 2m로 1990년에 발굴 결과가 밝혀졌으나 아직 복원되지 못하고 있단다. 한우물 물의 양이 변함없고, 맑은 상태로 고여 있어서 호암산 정상의 가까운 곳에 우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비스러웠다.
호암산성터의 평면형태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길쭉한 마름모꼴인데, 표고 325m 능선을 따라 축조한 전형적인 퇴뫼식 산성이며, 자연지형을 잘 이용하여 축성한 것으로 성벽의 총 길이는 1,250m 가량 된다고 한다. 호암산성은 오랜기간 동안 방치되어 있어 지금은 약 300m 가량의 석성(石城)만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을 뿐이라고 한다.
호암산성 축성 목적과 시기를 알려주는 직접적인 문헌자료는 없지만, 산성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 유적과 산성이 위치한 입지조건, 지형을 근거로 하여 관련문헌 자료와 비교한 결과, 축성시기는 통일신라시대 문무왕 12년경으로 신라가 나당전쟁시 한강을 넘어 수원으로 넘어가는 육로와 남양만으로 침입하는 해로를 효과적으로 방어, 공격하기 위해 세워진 요새로 추정하고 있다.
석수역쪽으로 더 내려가니 때죽나무의 가지가 결합된 연리지를 볼 수가 있었다. 금천구청에서 때죽나무 연리지 곁에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표지판을 부착하여 놓았다. 아마 이곳을 지나는 모든 길손에게 연리지가 상징하는 의미처럼 사랑으로 가득한 행복한 삶을 바라는 뜻이 아닐까? 나무 전체를 보면 마치 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테이트를 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때죽나무는 산 중턱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며 흑갈색 줄기는 밑에서 갈라져 덤불을 이루고 높이 약 10m쯤 자란다. 오뉴월에 하얀 꽃이 밑을 향해 2~5송이씩 뭉쳐 이삭으로 피는데, 향기가 짙고 노란 꽃밥이 눈길을 끈다. 푸른 열매를 찧어서 냇물에 흘려 물고기를 잡는 용도로 쓴다.
잠시 쉼터에서 휴식을 취한 후 양기 산우에게 뒤풀이장소인 '강태공식당'을 물었더니 장택상별장쪽으로 내려가면 된다고 하며, 운동기구와 베트민턴장코트가 있는 곳으로 내려간다. 해방후 수도경찰청장, 초대외무부장관과 1952년에는 국무총리를 역임한 장택상별장이 있는 곳은 유명하다. 장택상별장이라 하면 금천주민은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할만큼 역사도 오래되었고, 별장 뒷쪽으로 나 있는 산길은 아침 산책 코스로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시흥동 방향으로 하산하여 뒤풀이장소인 시흥동4거리 옆 '강태공'식당으로 갔다. 코다리정식, 생삼겹살, 민물매운탕, 갈치조림이 주요 식단이지만, 전라도 음식점이라 간재미와 병어무침에 동동주를 한 잔씩 마시고 홍어애국으로 배를 채웠다. 늦잠 자느라고 뒷풀이 때에 참석한 한이 친구가 스페인산 레드와인(Destin)을 제공, 분위기를 띄우자 한 총장은 동반시('벚꽃'/정연복 시인)를 다시 낭송하라고 하였다.
'벚꽃'은 이미 낙화가 되었기에 낭송은 별 의미가 없고 '다른 시를 낭송하겠다'고 하여 준비된 정연복 시인의 '인생(1)'을 내가 낭송하고, '인생(2)' 부터 '인생(4)' 까지는 산우들께 낭송할 것을 권하여 돌아가며 시를 낭송, 뒤풀이를 즐겁게 마무리 하였다. 산행뿐만아니라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하시기를 희망하고, 다음 산행에도 즐거운 산행이 되시길 염원하면서 산행 후기를 맺습니다. 餘不備禮...
"인생"(1) / 정연복
어차피 살아야 할
인생이라면
눈물 같은 소주를 마시며
잠시 슬픔과 벗할지언정
긴 한숨은
토하지 않기로 하자
아롱아롱 꽃잎 지고서도
참 의연한 모습의
저 나무들의 잎새들처럼
푸른빛 마음으로 살기로 하자
세월은
훠이훠이 잘도 흘러
저 잎새들도
머잖아 낙엽인 것을
"인생"(2) / 정연복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잎새들 뒤척이며
잠시 흔들리다가도
바람이 자면
저리도 잠잠히
고요의 기둥으로
서 있는 나무들
그래 한세상
나무처럼 살다가 가자
잔잔한 일상이나
삶의 풍파 몰아치는 날에도
그저 마음의 중심 하나
꼬옥 움켜잡고
'나'라는 존재
이 광활한 우주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살다가 가자
"인생"(3) / 정연복
되는 일 하나 없는 양
가슴 시린 날에도
지난 세월
가만히 뒤돌아보면
아니다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쉰 몇 해의
꿈같이 흐른 세월 속에
다정히 내 이름 불러준
벗들은 그 얼마이며
까닭 모를 슬픔에
세상을 외면했던 내 눈에도
눈부시게 피어난
꽃들은 또 그 얼마였던가
"인생"(4) / 정연복
세월 참 빠르기도 하지
나의 머리에 벌써 흰눈 내리네
이제 얼마쯤 남았을까
나의 목숨 나의 사랑
쓸쓸히 낙엽 진 나무
가만히 안으며
그 가엾은 몸에
살며시 기대어 보았더니
참 신기하기도 하지
겨울 찬바람에도 춥지 않네
온몸 가득 추위뿐이면서도
나를 덥히네
그리고 나는 들었네
소스라치게
어쩌면 정신의 기둥뿐인
야윈 나무 몸의 말없는 말
인생은 그런 것
꽃 피고 낙엽 지는 거지
그래서 봄이 오면
또 푸른 잎 되살아오는 거지
2017년 04월 25일 김종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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