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옛날부터 우리나라 혹은 중국에서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聖旨(성지)를 보면 “하늘의 뜻을 받들어 황제(皇帝)가 이러노니 운운(云云)”합니다.
또 황제가 등극(登極)할 때에도, “하늘의 뜻을 받들고, 백성과 문무백관(文武百官)의 간청을 받아들여 皇帝의 제위에 오르나니 天空께서는 굽어 살피시어 太平聖代를 이루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기울였음에도 실패하면 “하늘이 뜻인가 보다.”라고 합니다. 이는 인간이 모든 힘을 다하여도 안 되거나 할 수 없는 것은 결국은 天公, 곧 하느님의 뜻으로 돌리며 고생한 백성들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인간은 하늘에 제사(祭祀)를 지내고 하늘을 섬겨왔습니다.
사람들은 貳阡年 前, 예수(Jesus Christ)님이 行한 많은 기적(奇跡)과 불가사이(不可思議)한 것들을 보았고, 십자가(十字架)상에서 죽으시고, 삼 일이나 지났는데도 다시 살아나신,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그 부활(復活)을 보았고, 또 그분의 행적에 따른 기록(記錄), 즉 복음(福音)이 전(傳)해 내려옴으로써 世界人들은 좀 더 도덕적(道德的)이 되고 좀더 善하게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오늘 小生이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인간 사회에서는 善 과 惡, 仁義道德을 무시하고는 살 수가 없으므로 法과 規律을 만들어 인간을 制度하여, 인간 모두가 평안과 행복을 갖게 하는 것이므로, 이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고,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살해하고, 단순히 자기 힘 자랑 하려고 사람을 때려죽이는 道德不在의 엉망진창인 세상임에도, 우리들의 학교는 道德교육을 없애버렸고, 자라나는 학생을 가르치는 일부 인사들이 적국(敵國)을 위해 교과서를 왜곡하고, 이념을 正道에서 옆길로 유도하고, TV방송 등 다수 매체들이 시청자를 조금이라도 더 끌어 모으려고, 불륜과 폭행 등 부도덕 한 것들을 재미와 흥미 본위로 거리낌 없이 쏟아내고 있습니다.
참으로 개탄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의 우리는 그러한 不義의 처사를 보고도 “아마도 누군가는 이를 해결 해 주겠지!” 라고 불구경 하듯이 그것을 도외(度外)시 한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고생하고, 또 불행 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말로서 글로서 행동으로서, 많이 떠들고 한편으로는 좋은 표양(表樣)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오늘 이 글을 올립니다.
우리는 좀 더 진지하게 경천애인(敬天愛人)에 대해서 고민을 해 봐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仁愛 즉 ‘어진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는 것’을 실천(實踐)하는 것이 最優先일 것입니다.
이 實踐은, 남에게 미루지 말고 내가 먼저 나서서 고함치며 행동 할 때, 비로소 효과(效果)를 낼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媒體(매체)를 통하여 글이라도 써서 뿌리고, 단 한 사람이라도 만나면 仁愛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무엇이라도 하면, 처음에는 확산이 느려도 차츰차츰 여론이 일다가 확산의 속도가 빨라져 곧 사회 전반에 여론이 일고, 또 확산됨으로써 국민 전체가 움직이면, 이 아름다운 仁愛의 道德(도덕)회복은 성공을 갖게 될 것입니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 학교에서도 우리 개인들도 모두 정성껏 지속적으로 훈육(訓育)해야 할 것입니다.
實踐(실천)이 없는 것은 하지 않는 것 보다 못하고, 아주 무가치(無價値)한 것이 되어 버리니까 말입니다. 차제에 우리는 다 같이 함께 이를 강조하고 행동하여, 實踐하는 붐(boom)을 일으키는 先導者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요즈음 시간 날 때 성경을 한글의 것과 中國語, 영어의 것, 세 가지 언어로 좀 보고 있는데 재미는 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중국어가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저처럼 技術界 출신이 중국어를 알려고 하면, 저 혼자 공부해서는 거의 불가능한 것 같고, 이를 학교에서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저에게는 특히 어조사(語助辭)가 어렵습니다.
아래에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是 자(字) 하나의 뜻이 이렇게 많습니다.
是: ① 옳을 시 ② 옳을 하.
I. 1 맞다. 옳다. 2. 옳음. 옳은 것. 3. 옳다고 여기다. 긍정하다.
II. 1 이. 이것. 2. 전부. 전체. 어떠한[여하한] (…라도). 3. 문언문(文言文)에서 주로 ‘唯[惟]…是…’의 형태를 취하여 동사·목적어를 도치시켜 강조의 뜻을 나타냄.
III. 1 …이다. (1) 두 종류의 사물을 연계시켜 양자가 같거나, 후자가 전자의 종류·속성 등을 설명하는 것을 나타냄. (2) ‘是…的’의 형식을 취하여 분류(分類)를 나타냄. (例: 我是来看他的 나는 그를 보러 왔다.) (3) 두 사물을 연결하여 진술한 대상이 ‘是’ 뒤의 설명하는 상황에 속함을 나타냄. (4) 존재를 표시함. 주어로는 일반적으로 장소를 나타내는 말이 쓰이고 ‘是’ 뒤에는 존재하는 사물이 제시됨. (5) ‘是’의 앞뒤에 같은 명사나 동사를 사용하고, 같은 구문 둘을 연용(連用)하여 양자(兩者)가 서로 무관함을 표시함. (例: 敌是敌, 友是友 적은 적이고 벗은 벗이다.) (6) 양보절(讓步節)에서 ‘是’의 앞뒤에 같은 명사나 동사·형용사를 사용하여 ‘虽然’의 뜻을 나타냄. (7) 문두(文頭)에 쓰여 어기(語氣)를 강하게 함. (8) ‘是…是…’나 ‘是…还是…’의 형태로 선택 식 의문문을 구성한다. (9) 명사의 앞에 쓰여 조건이나 요구에 적합하다는 뜻을 나타냄. (10) ‘不是…吗?’의 형태로 반문(反問)의 문장에 쓰임. (11) 원인이나 목적을 나타냄.
2. 확실히. 정말로. 진짜로.
[형용사‧동사 술어 앞에 사용하고 강하게 발음하여 강한 긍정을 표시함]
3. 경성화(輕聲化)되어, 접속사·부사의 어미로 쓰임.
IV. 1 (1) 오방언 ‘了‧le’와 같은 용법으로 사용됨. (2) ‘着‧zhe’와 같은 용법으로 사용됨.
2. ‘试’의 가차자(假借字).
V. (Shì) 성(姓). : 관련표현; 복합어; 是不 그렇지요? / 等等 //
그런데 사실 모르는 漢字는 사전(옥편)을 찾아보아야 하는데, 이것저것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글자가 아른거리고 겹쳐 보이기도 하여, 이제는 더더욱 책을 펴 보기가 어렵더군요.
아무튼 여기 아래에 성경 몇 句節을 中國語와 병기(竝記)해 보겠습니다.
<발췌시작>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因爲你們若寬免別人的過犯, 你們的天父也必寬免你們的.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但你們若不寬免別人的, 你們的父也必不寬免你們的過犯. If you forgive others their transgressions, your heavenly Father will forgive you. But if you do not forgive others, neither will your Father forgive your transgressions. <Transgression: 위반, 죄. >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沒有人能事奉兩個主人; 他或是要恨這一個愛那一個,
或是依附這一個而輕忽那一個. 你們不能事奉天主而又事奉錢財.)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 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壽命)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 입지 못하였다.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所以, 你們不要憂慮說; 我們吃什麽, 喝什麽, 穿什麽?)
<吃 : 어눌할 흘 - 동사로 ‘먹다’ ‘마시다’ 等의 뜻./ 喝 : 꾸짖을 갈 - ‘마시다’ ‘크게 외치다’ 等의 뜻./ 穿 : 뚫을 천 - ‘구멍을 뚫다’ ‘(옷을) 입다’의 뜻. >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所以你們不要爲明天憂慮, 因爲明天有明天的憂慮! 一天的若足夠一天受的了.)
<夠 : 많을 구 - 足夠는 ‘족하다’ ‘충분하다’의 뜻.>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不是從人外面進入他內的, 能汚穢人, 而是從人裡面出來的, 纔汚穢人.
<穢: 더러울 예 - ‘더럽힘’ ‘잡초’等의 뜻/ 纔: 겨우 재, 밤색 삼 - ‘겨우’ ‘잠깐’ ‘밤색’>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惡)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凡從人裡面出來的, 那纔使人汚穢, 因爲從裡面, 從人心裡出來的是些惡念,
邪淫, 盜竊, 兇殺, 姦淫, 貪吝, 毒辣, 詭詐, 放蕩, 嫉妒, 毁謗, 驕倣, 愚妄;
這一切惡事, 都是從內裡出來的, 並且使人汚穢.
<那: 이름 또는 姓 나. - 이것. 그것. 저것. 그르면 等./ 些: (글을)적을 사. 古文에서 文末助辭. - ‘조금’ ‘몇(非 확정)’의 뜻. ‘好+些’는 수량이 많음의 뜻./ 竊: 훔칠 절./ 吝: 아낄 린. - ‘인색하다’ ‘쩨쩨하다’의 뜻./ 辣: 매울 랄. - ‘매운 맛’ ‘어리다’ ‘잔인하다’ 등의 뜻./ 詭: 속일 궤./ 妒: 시새울 투. - ‘질투하다’ ‘샘하다’의 뜻./
且: 도마 조. 또 차. - 助辭임.>
그분께서는 악인(惡人)에게나 선인(善人)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人爲他使太陽上昇, 光照惡人, 他光照善人;),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不義)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降雨給義人, 他給不義的人.)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所以你們應當是成全的,)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如同你們的天父是成全的一樣.)
여러분이 참으로 성경에 따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지고(至高)한 법(法)을 履行하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차별(差別)하면 죄를 짓는 것으로 (但若你們按外貌待人, 那就是犯罪),
여러분은 율법에 따라 범법자로 선고를 받습니다. (就皮法律指證爲犯法者.)
여러분도 보다시피, 사람은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實踐으로 의롭게 됩니다. 영(靈)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政如身體沒有靈魂是死的,) 實踐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 (同樣信德沒有行爲也是死的.)
<이상 발췌 끝>
우리는 의로운 것, 즉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는 지고(至高)한 법(法)”을 이행(履行)하는 것, 이것을 실천(實踐)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만 진정 의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아무리 천재라도 그가 발명한 것을 實行(execution)하고 實現시키지 않으면 죽은 것입니다. 전기를 발명하고도 전구를 만들지 못했다면, 또 열(熱))에너지도 蒸氣기관차를 만들지 못했다면 이는 죽은 학문일 것입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도 實踐이 없으면 죽은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 역시 부끄럽게도 실천을 제대로 못합니다만 그래도 의롭게 되고 싶은 욕심은 있어서 거저 실천하는 척, 말로만 떠벌리고 있는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말 없이 묵묵히 경천애인(敬天愛人)을 實踐하고 實行(execution)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이 눈부시게 아름답기도 하고 또 시샘이 날 정도로 부럽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을 공개적으로 자랑하고 싶지만 그분들은 한결같이 한사코 만류 할 뿐만 아니라 공개하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그분들처럼 남모르게 道德과 愛人을 實踐(실천)하는 그 분들은 참 멋진 분들입니다. 참으로 건사하신 분들입니다.
그 의로우신 분들이여!
박수를 보냅니다. 끝.
邵庵 尊候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