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밭 무같이 쭉빠진 의장병들이 지휘관의 우렁찬 구령에 따라 '받드러 총'을 하면 스물 한발의 예포소리가 펑펑하고 흰 연기를 뿜는 포구에서 울려 퍼진다. 국가적인 큰 행사가 있거나 나라의 국빈이 방문할 때 스물 한 발의 예포를 발사하는 장관은 언제 보아도 장엄하고 숙연하다. 젊은 시절 나는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예포를 발사하는 것을 볼 때마다 나도 어쩌면 국가원수가 되어 어느 나라를 방문할 때 저런 예포환영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나'라는 사람의 인품은 타고날 때부터 큰 인물이 될 그릇도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피나는 노력도 해보지 못하던 중 액화가 중첩이 되어서 많은 고난을 당하고 보니 예포로 환영받을 만한 인물이 되기는커녕 나의 가족을 부양하는 일도 쩔쩔 맬 수밖에 없는 졸장부가 되고 말았다. 그런 형편으로 나이가 많아지고 보니 세상사가 허무하고 쓸쓸해서 비감에 젖을 때도 있다. 그러나 신은 나의 간절한 '예포의 예우'를 향한 소망을 저버리지는 않았던지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예포로써 축복을 받는 행운을 선물로 주는 게 아닌가. 그것도 일생 중 한두 번이 아니고 일년에 꼭 한 번씩 내가 그 선물을 받게 되니 어쩌면 의식적(儀式的)으로만 남의 나라의 예포 환영을 받는 국가의 원수보다 내가 더 행운아인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예포 이야기를 하려면 쑥스럽지만 나의 사생활 이야기를 털어 놓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 부부가 혼인한 뒤 아내는 딸만 내리 셋을 낳았는데 그 때부터는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아이 낳는 고통이 어떻다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혼인 전 아내가 나에게 약속한 것은 지켜야한다고 아내에게 윽박지르면서 아이 다섯을 낳으라고 했다. 우리 부부가 혼담이 있을 즈음 나는 아내로부터 다짐 한가지를 받은 게 있었는데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를 다섯은 낳아야 한다는 약속이었다. 그것은 가벼운 농담이 아니라 굳고 엄숙한 결혼 조건이기도 했다. 깊은 산골에서 육 남매의 막내이자 외아들로 태어난 나는 위로 누나 다섯과 어머니까지 합쳐서 여섯 여인들 속에서 황태자처럼 군림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내가 철들기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어머니 혼자 딸 다섯과 아들 하나인 우리 육 남매를 키웠다. 다행히 토지가 비교적 많아서 머슴을 두고 농사를 지을 수는 있었지만 어머니의 고생은 너무도 컸었다. 딸만 다섯을 낳다가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나의 출생은 경이로운 일이었고 금지옥엽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나에게 행운만을 주지는 않았다. 위로 누나 넷이 혼전에 또는 출가해서 병사해버렸고 어머니조차도 내가 열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나는 외톨이 신세가 되고 만 것이었다. 정답게 살았던 혈친들과 사별하거나 생이별을 한 후 혼자 외롭게 남은 소년의 고독감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지난 시절 일곱 식구가 오순도순 행복하게 지내던 때를 회상한다는 건 심장을 예리한 칼로 도려내는 아픔이었다. 오밀조밀 다정스럽게 사는 이웃 가정을 볼 때면 이 세상에서 그것보다 더 부러운 것도 없었다. 그 때 나는 작심을 한가지 했다. 이미 혈친들은 내 곁을 떠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결혼을 한다면 아내에게 아이 다섯을 꼭 낳게 해서 지난날 일곱 식구가 살던 시절을 다시 만들어야겠다는 계획이었다. 그것은 우리 부부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지극히 간절한 소망이기도 했다. 나를 좋아했던 아내는 그 조건을 쉽게 수용했다. 그러나 아이를 생산하는 산고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딸 셋을 낳고는 제발 그 조건을 해제하자는 거였다. 그러나 나의 갈망이 너무도 집요했기에 다섯 아이를 꼭 출산하라고 아내를 졸랐다. 아들을 낳고 싶기도 했던 아내는 나의 간청을 거절 못해서 다시 아이를 낳았는데 넷째와 다섯째는 아들이었다. 아내까지 합쳐서 드디어 일곱 식구를 만든 나는 옛날 잃어버린 소년 시절을 다시 찾은 것 때문에 늘 즐거운 날을 보냈다. 내가 어릴 때 했던 것처럼 틈만 있으면 가족들과 술래잡기 따위의 놀이를 재연하기도 했다. 얼마나 그 시절이 그리웠으면 대구에 살면서도 휴일에는 가끔 고향에 가족들을 데리고 가서 이젠 남의 집이 된 고향집 마당을 빌려서 술래잡기까지 했겠는가. 그러나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내게도 우환이나 사업 실패 같은 재앙이 있고 생활이 쪼들릴 때가 있어서 일곱 식구의 삶은 어렵게되고 아이들의 교육문제는 내게 큰짐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좌절하고 있던 어느 날 저녁에 아내는 나를 위해서 조촐한 저녁상을 마련했는데 상위에는 아담한 생일 케이크도 놓여 있었다. 그 날이 나의 생일날이라는 것이었다. 생활고에 쪼들리다 보니 나는 나의 생일날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케이크에는 우리 일곱 가족수대로 일곱 개의 양초가 꽂혀 있었고 일곱 살 된 막내아들 녀석이 나를 위해서 일곱 발의 예포를 발사하겠다는 게 아닌가. 작은 방에서 어떻게 예포를 쏠까 나는 궁금해했는데 이 녀석은 그의 호주머니에서 작은 성냥 통을 끄집어내더니 불을 켜는 것이었다. 성냥의 화약이 한 개 한 개 폭발음을 내면서 불이 켜질 때 푸르르 루르르 하고 예포의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그놈은 우리 일곱 식구의 양초 하나하나 마다에 점화를 했다. 나와 아내는 물론이고 가족 누구에게도 예포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소망했던 일곱 발의 예포를 나를 위해서 쏘다니.... 이건 신이 나의 소원을 가족들의 힘을 빌려서 성취시켜 준거라고 생각했다. 참 신기로운 것은 성냥 예포가 한 발 한 발 쏘아질 때마다 나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내가 재기해야겠다는 정열이 용솟음 치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그 후 나는 생활의 의욕이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것을 느꼈고 이제는 다섯 아이 모두 명문대학교를 졸업시켜서 남혼여취도 시켰으니 부모 노릇은 한 셈이며 우리 부부가 만년에 평화와 안식을 누릴 만큼 생활의 안정을 잡아가고 있다. 해마다 나의 생일날은 일곱 발의 예포가 울리는데 아내는 큰 욕심 버리고 우리 일곱 식구의 착한 대통령이 된 게 참으로 행복하지 않느냐고 나를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