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 안에서 안주(安住)와 관계설정의 모험 요17 : 21 -23
남자는 자기가 해낸 일을 통해 업적을 쌓아 자기 정체성과 건재함을 인정받으려 하고 여성은 사람들과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일에서 자신의 청체성과 기쁨을 찾는 경향을 나타냅니다.
불행하게도 남성이 주도한 인간의 역사는 생존을 위한 끊임없는 권력투쟁으로 얼룩져있습니다. 식물도 생존을 위해서 뿌리를 뻗기 위한 무한 경쟁을 합니다. 이처럼 모든 동식물은 생존을 위한 필사의 노력을 하게 되고 그 노력이 권력 체제를 만들어 내는 원천이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동물과 다름은 동물은 현재에 배가 부르면 더 이상을 요구하지 않지만, 인간은 그런 본능적 수준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이상을 원하게 됩니다. 만약 사자나 호랑이가 인간의 특질을 닮아 일 년 치 양식을 저축하는 성향을 지녔다면 지구상에 동물들의 씨가 말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생존의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특정한 체제와 질서를 만들어 냅니다. 크게는 국가 단위의 체제를 작게는 가정을 지탱하기 위한 위계질서를 만들어 충성을 요구합니다.
그런 체제에서 인간의 가치는 자기가 속한 집단의 체제와 질서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가에 따라서 권력의 상층부가 되어 호가호위할 수 있고 자기 가치를 자랑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권력의 요체는 남을 자기의 의도대로 움직일 힘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권력의 상층부가 되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 인간사회의 역사입니다. 작게는 부부관계에서 아주 작은 소집단에서도…. 여러 가지 핑계를 대지만 결국은 주도권의 쟁탈전입니다. 크게는 국가 간에 더욱더 큰 권력을 가지기 위한 참혹한 전쟁이 그치지 않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이성에 기초한 사회체제와 질서에서는 반복되는 참혹한 투쟁의 역사를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인간사회에서….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프란시스 쉐퍼 박사의 질문은 아주 당연합니다.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
성경에는 권력이나 권위라는 용어 대신에 권세라는 말을 합니다.
(요1:9-13)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권세가 주어졌다는 것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페밀리에 입적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순서적으로 말하면 권세가 먼저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관계가 먼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되었을 때 권세가 따르는 것이지 자녀로 입적이 되지않았으면 권세는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체제에 순응하고 충성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고 하나님과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가 요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 형태로 시작되었고 어떤 관계로 발전할 것인가에 대하여 약속하신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렘 31장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 36 :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지금 이 말씀은 구약시대 출애굽에서부터 가나안땅에 정착하기까지 내가 너의 남편이 되어 네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네 손을 잡아 구하여 주었지만 너는 위기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돌아서서 딴짓하였다고 질책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옛 언약은 남편으로서 너의 옆에서 나와 너로 독립적인 존재 양식으로 존재했지만 새 언약은…. 때가 되면 내가 새 영을 너의 마음에 두어 너와 하나가 되는 관계를 맺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 설정에 대하여 예수님의 때가 되어 더욱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요17 :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기초는 하나 되어가기 위하여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에서 출발합니다. 단순히 어떤 객관적인 사실을 믿어서 어떤 체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각오나 결단으로 이루어진 정지된 명사가 아니고 깊어지며 발전되고 만들어지는 동사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체제와 질서를 중시하는 세상의 가치관을 그대로 답습하는 데서부터 세속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은 고립으로부터 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사회라는 체제 안에서 안전을 누리고 충성함으로 명예와 권력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을 가집니다. 교회가 이러한 인간의 사회성에 편승하여 중세의 암흑시대 부터 오늘날 까지 일단 교회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체제를 강화하고 교회가 만들어 놓은 촘촘한 그물망 안에서 얼마나 충성하느냐에 따라서 그들만의 자부심과 명예와 권력을 누리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시종일관 체제 강화가 아니고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맺어지며 확장되어 갈 것인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산 위에서 호령하시는 무서운 하나님으로 임재하시지만, 다음은 왕과 백성으로 그리고 그 왕이 성막을 지어 한마을에 사시는 이웃의 관계에서 다시 부자(父子) 관계로 마침내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관계로 맺어져 간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출19:11=12) 하나님은 시내산의 정상에 강림하시고 그 산 위에서 말씀하시고 백성들은 그 산밑에서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출6:7)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대상 17:5) 성막을 지어라 (내가 너희 동네 같이 사는) 너의 이웃이 되리라
(마4:18-22) 제자로 부르시고 ...(롬8:15) 양자로 삼아주시고
(히1:5 5:5 행13:33) 내가 너를 낳았다고 (아들이 되었다고) 선포하시고
(요17:21,22,23) 마침내 내가 너 안에 네가 내 안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고 하십니다
요약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산 위의 무서운 하나님이신 그분으로 계시다가 나와 너의 관계인 양자인 아들의 관계에서 이제는 한 몸으로 연합되어 하나가 되는 관계로 점점 친밀하여지고 깊어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과 어느 수준의 관계를 맺어가기를 바라십니까? 백성이십니까? 제자이십니까? 아들이십니까…? 어느 수준으로 관계를 맺으시면 부담이 없으시겠습니까…
성경이 권면하는 예수님의 뜻은 우리와 하나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요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그런데 문제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좁고 협착한 문이 있어서 자신을 보호하는 모든 무장을 해제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자기를 부인하는…. 진리로 살아가는 모험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객관적인 진리에 대한 지식은 구호로 끝나지만 자기가 살아낸 진리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참 진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스도안에 있든지 아니면 그리스도 밖에 있든지 어디에 있든지 체제와 질서에 순응하고 충성하는 것이 인생이 아니고 하나님과 관계를 정상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그 과정 자체가 우리가 살아내야 할 인생의 본질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주님의 은혜가 있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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