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경사를 바라는 ‘囍(쌍희 희)’
혼례 날 장원급제한 왕안석의 휘호에서 비롯

북송(北宋)시대 왕안석이 과거를 보러 가던 도중에
마원외의 집 앞에 주마등과 함께 시구가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走馬燈 燈走馬 燈息馬停步(주마등 등주마 등식마정보)
- 주마등, 등불이 말을 달리게 하더니 등불이 꺼지니 말도 멈추네.
그리고 이 시구에 어울리는 대구(對句)를 짓는 사람을
사위로 맞이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보았다.
왕안석은 다음 날이 과거시험이라 일단 과거장으로 향했다.
과거장에 들어가 일필휘지로 시험지에 답안을 작성하고 면접을 보는데
시험관이 시험장 앞에 있는 ‘飛虎旗(비호기)’를 세워 놓고
다음 시구에 대구를 해 보라고 했다.
그 시구는 이러했다.
飛虎旗 旗飛虎 旗卷虎藏身(비호기 기비호 기권호장신)
- 비호기,
깃발이 호랑이를 날게 하더니 깃발이 접히니 호랑이도 몸을 숨기네.
왕안석은 그 순간 마원외의 집 앞에 써 있던 ‘주마등’의 시구가 생각났다.
그래서 천천히 ‘주마등’의 시를 읊조리자 시험관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시험을 마친 왕안석이 마원외의 집에 들러 이번에는 비호기로 대구를 했다.
그러자 집 주인은 완벽한 대구라며 딸과의 결혼을 허락했다.
며칠 뒤 결혼식을 거행하는 도중에
“왕안석, 장원급제요!”라는 낭보가 날아왔다.
그야말로 기쁜 날에 기쁨이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왕안석은 너무 기쁜 나머지 붉은 종이 위에 크게 喜(희)자를
두개 겹친 囍(쌍희 희)자를 써서 대문 위에 붙였다.
여기서 ‘겹경사가 문에 이르렀다’는
雙喜臨門(쌍희임문)의 고사가 유래하였으며
한자 囍(쌍희 희)자도 만들어졌다.
중국에서 결혼식장이나 청첩장에 囍자를 써서 축하해 주는 풍습은
바로 이 일화에서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축하와 기쁨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하며
전통 공예품·가구·그릇·옷감 등의 도안으로
특히 결혼용품에 광범위하게 囍자가 등장한다.
겹경사를 바라는 마음은 시공을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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