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어머니와 나의 관계가 애증의 관계라면, 외할머니와 나의 관계는 내리사랑 일방적으로 넘치게 사랑을 받기만 한 관계이다. 어릴 때 외가에서 살기도 했던 나는 첫 외손녀라는 특혜를 누리며 외할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외할머니는 14년 전 구정을 앞두고 집 화장실에서 넘어지면서 의식불명이 되셨다. 구정 때 외할머니를 뵈러 중환자실에 갔더니 외할머니는 말간 얼굴에 눈을 감으신 채 가뿐 숨을 쉬고 계셨다. 목에 가래가 있어서 숨소리가 거칠다고 했다. 입에는 굵은 플라스틱 관이, 코에는 그보다 가는 관이 연결되어 있었다. 오른 팔뚝에는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고 그 주위로 시퍼런 피멍이 여러 개 있었다.
"할머니, 혜숙이 왔어요." 말씀드리고 퉁퉁 부어오른 할머니 손을 쓰다듬었다.
"아이고, 우리 혜숙이 왔나." 하시며 눈을 번쩍 뜨실 것만 같은데 외할머니는 아무 말씀도 반응도 없으셨다. 그것이 내가 본 외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며칠 뒤 외할머니는 중환자실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외할머니는 1925년 여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셨다. 16살에 거창 상림리 부잣집으로 시집을 오셨는데.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고 결혼 11년 만에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27살에 과부가 되셨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그 때부터 남편도 없이 부잣집 맏며느리라는 시집살이를 부치게 하며 사셨다.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10년 가까이 수발하셨고 이후 시아버지를 20년 동안 모셨다. 외할머니는 손이 야무지고 통이 크시며 사리가 밝고 기억력이 좋으셨다. 부잣집 며느리로 위엄 넘치던 외할머니는 세상이 변해 집안의 재산을 관공서에 가서 글자로 신고하는 세상이 되면서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되셨다. 외할머니는 한글을 읽지 못하셨다. 교회에서는 존경받는 권사님이셨는데 성경을 읽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1993년 대학을 졸업하고 마침 백수로 시간 여유가 생긴 나는 외할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쳐 드리고픈 마음이 생겼다. 그 당시에는 읍 단위 시골에 ‘노인대학’과 같은 프로그램이 없을 때였고 외할머니는 평생 학생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러나 7살, 8살 아이도 읽는 한글을 영특한 우리 외할머니가 못 깨칠 이유가 없다며 가벼운 마음으로 외할머니에게 속성 한글과외를 제안했다. 외할머니는 쑥스러워하시며 해보자고 동의하셨다. 우리의 공동 목표는 외할머니 스스로 성경을 읽는 것이었다.
첫째 날 ㄱ, ㄴ, ㄷ, ㅏ. ㅑ, ㅓ. ㅕ부터 시작했다.
“할머니 기역 하고 어 하고 합치면 ‘거’가 돼요. ‘거창’ 할 때 ‘거’ 글자예요.”
“어~~ 거! 거창 할 때, 거!”
"맞아요. 거는 배웠고 창도 곧 배우실거예요."
가갸거겨 나냐너녀 읽기 공부를 하고 공책에 쓰기 숙제를 내드렸다. 그런데 두 번째 수업에 외할머니가 숙제를 전혀 안 하신 것이다. 나는 ‘할머니, 공부 열심히 하셔야죠.’ 훈계를 하고 새로운 글자 공부를 시작했다.
“할머니, 비읍에 애를 붙이면 뭐가 되게요? ‘배’예요, 할머니 성 배.”
“그 글자는 알아. 교회에서 내 이름 찾을 때 그 글자 보고 찾아.”
외할머니는 한글을 체계적으로 배우신 적은 없지만, 삶의 지혜로 필요한 몇 글자는 익히 알고 계셨다.
“와, 할머니 글자 잘 읽으시네요. 이 속도면 식구들 이름 금방 다 읽을 수 있고 성경 읽는 것도 금방이겠어요. ‘마태복음’에 마 알고, ‘미영’이 할 때 미도 알고!”
이렇게 읽기 공부를 하고 쓰기를 하는데 외할머니는 손에 힘이 없어 글자가 삐뚤빼뚤했다. 글자 쓰기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그날 배운 글자 쓰기 숙제를 내드리고 둘째 날 공부를 마쳤다.
세 번째 수업 날. 쓰기 숙제 검사와 읽기 복습을 하는데 외할머니는 쓰기 숙제는 또 안 하셨고, 이미 배운 글자들을 가리키는데 영 모르는 눈치였다. 내가 속으로 한숨을 쉬는 순간, 외할머니는 굳은 표정으로 한글 공부를 그만두겠다는 선언을 하셨다. '왜 그러시느냐, 이렇게 포기하면 안 된다.' 말씀드렸지만, 외할머니의 결심은 단호했고 외할머니의 표정은 참 복잡 미묘했다. 간절히 원하던 것을 포기하던 외할머니의 그 표정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이후 17년 여생 외할머니는 글자를 읽는 대신 상황을 인식하는 감각으로 사셨다. 나는 외할머니께 성경 낭독 테이프를 선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쳐본 경험 없이, 필요성만 강조하며 덤빈 나의 패기가 만든 참사였다. 쓰기는 접고 그림 있는 낱말 카드를 보며 읽기 중심으로 접근 했더라면, 일흔을 바라보는 외할머니 연세를 생각하고 좀 더 천천히 차분히 알려드렸다면. 같이 사는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앞에서 한글 공부하는 공책을 꺼내지 못한 외할머니의 입장을 헤아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새록새록 남는다.
첫댓글 오, 선생님!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