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50편, 찬양의 대 합창
요절 : 2절,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 지어다.
마지막 편에 이르렀습니다. 1편이 시편 전체의 서론이듯이, 150편은 시편 전체의 결론이요, 영광스러움으로 가득 찬 시편을 마치면서 올려드리는 송영입니다. 여섯 절 안에 “찬양하라”는 말이 11번이나 등장합니다.
내용은 ㉮ 어디서(1), ㉯ 왜(2), ㉰ 무엇으로(3-5), 누가(6) 찬양해야할 것인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도표에 표시된 대로 중심점은 찬양할 이유를 말씀하는 2절입니다.
첫째 단원(1-2)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심
둘째 단원(3-6) 모든 것을 다하여 찬양하라
첫째 단원(1-2)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심
①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 지어다”(1) 합니다.
㉠ 이는 분명 장소를 가리키는 말인데, 모든 악기를 총동원하여 찬양하라는 150편의 의미문맥으로 볼 때에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장소적인 제약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그러므로 “성소와, 궁창”을 함께 거론하는 의도는, “땅과, 하늘”, 즉 온 천하(天下) 만물들아 다 찬양하라는 뜻으로 여겨집니다.
② 하나님께서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들고 있는데,
㉠ 첫째는 “그의 능하신 행동(行動)을 인하여 찬양하며” 합니다. 능하신 행동이라면 크게 “창조사역과, 구속사역”을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능하신”이라는 원어(게부라)적인 의미는 강력한 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놀라운 일”이라 번역을 하고, 공동번역에서는 “엄청난 일”이라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형제는 창조사역과 구속사역 중 어느 것이 더욱 “엄청난 일”이라고 여겨지십니까? 그것은 구속사역입니다. 왜냐하면 첫 창조는 말씀만으로 가능하였으나 재창조는 하나님이시라도 말씀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자기 아들의 죽으시고 다시 사신 대속을 통해서 이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 71:16절에서는,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行蹟)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의 곧 주의 의만 진술하겠나이다” 말씀하고,
㉯ 106:2절에서는, “뉘 능히 여호와의 능하신 사적(事蹟)을 전파하며 그 영예를 다 광포할꼬” 말씀하고,
㉰ 145편에서도, “대대로 주의 행사(行事)를 크게 칭송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宣布)하리로다(4), 주의 능(能)하신 일과 주의 나라의 위엄의 영광을 인생에게 알게 하리이다”(12) 말씀하고 있는데, 모두가 엄청난 일을 의미하는 동일한 “게부라”입니다. 그리고 이는 모두가 구속사역을 증거하고 있는 말씀들인 것입니다.
㉡ 둘째로,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 지어다”(2하)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런 뜻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그의 능하신 행동”(2상)을 베풀어주신 분이 누군지 아느냐?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심”입니다.
둘째 단원(3-6) 모든 것을 다하여 찬양하라
③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 지어다”(3) 합니다. 이는 무엇으로 찬양을 할 것인가를 말씀함인데,
㉠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 지어다”(4),
㉡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 지어다”(5) 합니다. 이것 외에는 안 된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이를 히브리서 기자의 말을 들어 설명을 한다면 이 외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히 11:32)가 될 것입니다.
역대상 23:5절에 의하면, “4000은 다윗의 찬송하기 위하여 지은 악기(樂器)로 여호와를 찬송하는 자요” 하는 말씀을 대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4천명의 찬양대 손에는 각기 악기가 들려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이럴 경우 우리는 “4천 명”이라는 숫자에 관심이 끌리기 마련인데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혁명적인 발상(發想)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마 11:17) 하신 의미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세례 요한을 “애곡하는” 초상집으로, 주님을 “피리를 부는” 잔치 집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약시대의 이미지는 초상집입니다. 의문에는 “정죄, 죽임을 당하는 형벌의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석으로 짐승이 피를 흘리며 죽임을 당하여 상번제로 드려지고 있는 의문에 속한 성소에서 4천의 악기 소리를 발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발상은 가히 혁명적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의문에 속한 제사장, 장로들 중에는 불경스럽다고 거부감을 나타냈음직도 합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어떻게 이처럼 파격적으로 찬양을 할 수가 있었단 말인가?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40:6) 한, 복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150편에서 이처럼 모든 악기를 총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인 것입니다.
④ 누구들에게 찬양하라 하는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 지어다”(6) 합니다.
㉠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는 점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종말적인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신약성경에서 “할렐루야”가 최초로 울려 퍼지는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계시록 19장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두 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계 19:1-7) 합니다.
4번 울려 퍼지는 “할렐루야”가 어떤 문맥에서 발하여지는지 주목해보셨습니까? “어린양의 신부가 예비 되었고,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문맥에서입니다.
시편은 서론격인 1편에서부터, “죄인과 악인,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두 길, 두 부류, 두 진영만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두 부류 사이에는 끊임없는 갈등과 적대감으로 의인의 진영이 고통을 당하면서 부르짖고 호소하는 연속이었습니다.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주실 것이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나타나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제 시편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150편에 와서는 더 이상 두 길, 두 부류가 아니라 오직 한 길, 즉 “성도의 회”(149:1, 5, 9)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이제 악인들은 없습니다. 그토록 빈번히 등장하던 “원수”들도 없습니다. 찾아도 만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 눈물이 없습니다. 탄식이 없습니다. 저주가 없습니다. 심지어 기도와 부르짖음도 없습니다.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를 선포하는 전도도 없습니다. 오직 찬양만이 있을 뿐입니다. 찬양만은 메시아왕국에서도 영원토록, 영원토록 돌리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계 19:1, 5).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 지어다 할렐루야”(6) 아멘.
적용 : 시편 연구를 시작하면서 저 자신이 먼저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 4:7) 하신, 경건에 이르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고, 집필하는 내내 경건에 이르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이제 시편 묵상을 끝마치면서 나 자신이 얼마나 경건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생각합니다.
같은 심정으로 이제 형제가 “시편 파노라마”를 통해서 얼마나 경건에 이르게 되었는지가 궁금합니다. 형제여, 호흡이 있을 동안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를 전파하며, 인자와 성실을 찬양하십시다.
묵상
㉠ 시편을 통해서 깨닫게 된바가 무엇입니까?
㉡ 시편을 통해서 얻은 유익이 무엇입니까?
㉢ 시편 파노라마를 마치면서 결단하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