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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공양등에 걸린 이름표
“글씨 누가 썼는지 명필이다.”
큰스님이 선원에 들어오시자마자 새로 단 등의 이름표들을 보고 감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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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염화실에는 3월 24일에 벌써 금요일 법화경 사경법회를 마친 보살님들이 연등을 만드시는 사진이 올랐다. ‘좋은 계절, 부처님오신 날이 돌아왔나보다’하는 반가움으로 몇 날에 걸쳐 낡은 등을 뜯고 물에 씻고 새 등을 붙이는 사진을 보았다.
특별하게 올해는 ‘법공양 등을 밝힙니다’라고 커다란 주련 같은 글씨가 등에 붙었다.
3월 24일자 금요일 사경법회 법문에 그 사연이 밝혀졌다.
올해부터 큰스님은 문수선원에서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안하시고 범어사 큰절에서 행사에 참여하신다고 했다. 그래서 ‘부처님 오신 날 행사가 없느니 문수선원에 올해 새 등을 달지 말까?’ 하는 생각을 하신 모양이다. 당연히 섭섭해 하는 분들의 반대로, 기왕이면 문수선원에서 늘 하는 법공양을 타이틀로 내걸어서 ‘초파일 기념 연등보다 더 고급스럽고 우수한 법공양 등을 올리자’ 고 결정하셨다고 했다.
“그동안 문수법공양회에 돈을 입금해서 법공양에 동참하시는 분들 이름도 등에 달아줘야 하고’ 지나가는 말씀처럼 하셨지만 이것이 올해도 문수선원에 등을 다는 가장 큰 이유였을 거라고 짐작했다.
특별히 법회 중에 “명필 방편주 보살님은 큰 글씨로 ‘법공양등을 밝힙니다’라고 하는 붓글씨를 써주세요.”라고 주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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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박또박 마음이 다 드러나는 글씨로 나란히 적힌 가족의 이름은 작정하고 찍은 한 장의 가족사진 같다. 단정한 매무새를 하고 아무리 세련된 표정을 지어도 약간은 어리둥절한 그 착해진 얼굴들이 글씨에 오롯하다. 어쩐지 눈물 나고 어쩐지 가슴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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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은 학무거사님을 찾으셔서 도반스님의 병환소식을 물으셨다.
소식을 다 들으시고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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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과 함께 오신 보살님들이 스님들과 같이 절을 올리셨는데 큰스님께서
“신도님들은 스님들 한 다음에 절하는 거야. 한 번 배워 놓으면 평생 써먹으니까 괜찮아.”
하셨다. 오늘은 두 분이나 같은 이야기를 들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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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5일에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공연을 하시는 정률스님이 반주자와 도반스님들과 함께 오셨다. 그날 공연장에 오시는 분들에게 법공양할 책을 청하셨는데, 큰스님께서 흔쾌히 허락하시고 책을 얼른 확보해 놓으라고 하셔서 당장 만발다 보살님이 택배를 붙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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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맘때면 늘 종이 연꽃을 만들어오시는 비구니스님들이 올해도 색색의 아름다운 종이연꽃을 가져오셨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37권이 나왔다. 서문을 한번 읽는 것으로 점안 의식을 대신하겠다. 서문을 펼쳐주시기 바란다.
서문
불자들이여, 보살은 이와 같은 삼매와 지혜의 힘을 얻고는 큰 방편으로 모든 일을 나타내 보입니다.
예컨대 보살은 비록 생사를 따라 죽기도 하고 태어나기도 함을 나타내 보이지마는 항상 열반의 경지에 머물러 있습니다.
보살은 또 비록 처자 권속들 속에 둘러싸여 있지마는 그들과는 항상 멀리 떠나 있기를 좋아합니다.
보살은 또 비록 원력으로써 다른 중생들과 함께 삼계에 태어나지마는 세상 법에 물들지 아니합니다.
보살은 또 비록 항상 참나, 참사람, 참마음의 적멸한 해탈 열반의 경지를 누리고 있으나 중생들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방편의 힘으로 열렬하게 보살행을 불타듯이 펼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열렬함에 빠져 불에 타 버리지는 않습니다.
보살은 또 비록 그 깨달은 지혜가 부처님이 깨달으신 지혜를 수순하지마는 소승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보살은 또 비록 부처님의 경계를 얻었으나 마군들을 교화하느라고 마군의 경계에 머물기도 합니다.
보살은 또 비록 마군의 도를 초월했지마는 마군의 법을 버젓이 행하기도 합니다.
보살은 또 비록 외도들의 행과 같이 하지마는 부처님의 법을 버리지 아니합니다.
보살은 또 비록 일부러 중생을 위해 모든 세간을 따르지마는 일체 출세간법을 항상 행합니다.
보살은 또 비록 일체 장엄하는 일이 천신이나 제석천이나 범천왕과 사천왕이 가진 것보다 훨씬 뛰어나지마는 법을 좋아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보살이 세간과 출세간에 걸리지 아니하면서 세간사와 출세간사를 마음껏 펼쳐 보이는 지혜 방편입니다.
2016년 2월 1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그동안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37권이 나올 때까지 서문들을 매번 함께 독송하였다.
오늘 이 서문 안의 내용은 ‘과연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불법다운 삶인가’ 하는 내용들이다.
흔히 불교에서 ‘중도적 삶’이고 표현하는 것이 이 서문 안에 잘 표현되었다.
좋은 내용이고 훌륭한 내용이다.
진정한 불자는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다 수용한다. 수용하고 치우치지 않는다고 해서 한쪽으로 빠져 버리거나 다시 보살의 길로 되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
항상 보살의 사상과 정신을 견지하면서도 세상사를 할 때는 세상사를 하고, 외도 노릇을 할 때는 외도 노릇을 한다. 보살의 정법행은 항상 굳게 지킨다. 그런 삶을 아주 잘 표현하였다.
우리는 오온과 육근이라고 하는 이 몸뚱이를 가지고 살면서 오온과 육근의 삶속에 끄달리며 산다. 그렇다고 우리의 불성, 불성진여의 위대한 삶을 망각해서는 불교라고 할 수가 없다. 그 양면성을 잘 표현한 이 서문은 십지품 안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발췌한 것이다.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六
十廻向品 第二十五之四
四,十廻向
8, 第六隨順堅固一切善根廻向
(22) 象寶布施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布施象寶호대 其性調順하고 七支具足하며 年齒盛壯하고 六牙淸淨하며 口色紅赤이 猶如蓮華하고 形體鮮白이 譬如雪山하며 金幢爲飾하고 寶網羅覆하며 種種妙寶로 莊嚴其鼻하니 見者欣翫하야 無有厭足하고 超步萬里에 曾不疲倦하며 或復施與調良馬寶호대 諸相具足이 猶如天馬하야 妙寶月輪으로 以爲光飾하고 眞金鈴網으로 羅覆其上이어든 行步平正하야 乘者安隱하며 隨意所往에 迅疾如風하며 遊歷四洲에 自在無碍하니 菩薩이 以此象寶馬寶로 或奉養父母와 及善知識하며 或給施貧乏苦惱衆生호대 其心曠然하야 不生悔悋하고 但倍增欣慶하며 益加悲愍하야 修菩薩德하며 淨菩薩心하야 以此善根으로 如是廻向하나니 所謂願一切衆生이 住調順乘하야 增長一切菩薩功德하며 願一切衆生이 得善巧乘하야 能隨出生一切佛法하며 願一切衆生이 得信解乘하야 普照如來無碍智力하며 願一切衆生이 得發趣乘하야 能普發興一切大願하며 願一切衆生이 具足平等波羅蜜乘하야 成滿一切平等善根하며 願一切衆生이 成就寶乘하야 生諸佛法無上智寶하며 願一切衆生이 成就菩薩行莊嚴乘하야 開敷菩薩諸三昧華하며 願一切衆生이 得無邊速疾乘하야 於無數劫에 淨菩薩心하야 精勤思惟하야 了達諸法하며 願一切衆生이 成就最勝調順大乘하야 以善方便으로 具菩薩地하며 願一切衆生이 乘最高廣堅固大乘하고 普能運載一切衆生하야 皆得至於一切智位니라 是爲菩薩摩訶薩이 施象馬時에 善根廻向이니 爲令衆生으로 皆得乘於無碍智乘하고 圓滿究竟하야 至佛乘故니라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코끼리[象寶]를 보시하나니, 성품이 유순하고 일곱 가닥이 구족하고 나이가 한창이며, 여섯 이빨이 깨끗하고 입술이 붉은 것이 연꽃과 같고,몸빛이 희어 마치 설산(雪山)과 같으며, 황금 깃대로 꾸미고 보배 그물을 덮었으며, 갖가지 묘한 보배로 코를 장식하여 보는 이가 즐거워 싫은 줄을 모르며, 만리(萬里)를 뛰어다녀도 고달프지 아니하느니라.
혹은 길 잘든 말[馬寶]을 보시하나니, 여러 모습이 구족하여 마치 하늘의 말과 같으며, 아름다운 보배로 만든 둥근 바퀴로 빛나게 장식하고, 순금방울과 그물을 위에 덮었으며, 행보가 평정하여 탄 이가 편안하고, 마음대로 가는데 바람같이 빠르며, 사주(四洲)로 다니되 자재하여 장애되지 아니하였느니라.
보살이 이와 같은 코끼리와 말(馬)로써 부모와 선지식에게 봉양도 하고, 가난하고 고생하는 중생에게 보시도 하는데, 마음이 너그러워 아끼는 생각이 없고, 더욱 기뻐하고 더욱 어여삐 여기면서 보살의 덕을 닦고 보살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느니라. 이런 선근으로 이렇게 회향하느니라.
이른바 ‘원컨대 일체중생이 유순하고 뜻에 맞는 법에 머물러 모든 보살의 공덕을 증장하여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공교한 것을 얻고 일체 불법을 따라서 내어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믿고 이해하는 법을 얻고 여래의 걸림없는 지혜와 힘을 널리 비추어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더 나아가는 법을 얻고 일체 큰 소원을 널리 내어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평등한 바라밀다법을 구족하고 모두 평등한 선근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보배수레를 성취하고 부처님 법의 위없는 지혜를 내어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보살행으로 장엄한 법을 성취하여 보살들의 삼매(三昧)의 꽃을 피워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그지없이 빠른 법을 얻고 무수한 겁에 보살의 마음을 깨끗이 하여 부지런히 생각하여 모든 법을 분명히 통달하여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가장 수승하고 조순한 대승(大乘)을 성취하여 선한 방편으로 보살의 지위를 갖추어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가장 높고 크고 견고하고 큰 수레를 타고 일체중생을 두루 실어 운반하여 일체 지혜의 자리에 이르게 하여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코끼리나 말을 보시할 적에 선근으로 회향하는 것이니라.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걸림없는 지혜의 법에 올라 끝까지 원만하여 부처님의 법에 이르게 하려는 연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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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보보시(象寶布施): 코끼리와 말(馬)을 보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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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본교재 209페이지(화엄경 제2권 민족사 刊) 상단, 십회향품 중에 22번 상보보시를 공부할 차례다. 지금까지 60여종의 보시를 하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보시’ 한마디만 하면 될 것을 이렇게 화엄경 81권 중에서 열권 반이나 차지하면서 까지 선근회향을 권고하고 있다.
금강경에도 보시 이야기를 하고, 육바라밀에도 사섭법에도 보시이야기를 한다. 불교와 아주 조금만이라도 관계가 있으면 다 보시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보시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하기 어려운 것이 보시다. 남을 배려하고 남을 먼저 생각하고 마음을 나누기가 어렵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또한 보살행이다.
십회향품에서 ‘선근회향’이라고 넉 글자로 끝낼 수 있는 내용이 이렇게 반복해서 나온다. 그것은 우리의 안이비설신의 속에 끊임없이 이것을 뿌리내리게 하고 훈습되게 하려는 훈련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보시는 불교의 수많은 수행법 가운데 제일 덕목이다. 보시가 좋은 줄은 누구나 다 아는데 왜 자꾸 이 보시 이야기를 하는가? 반복 훈련이고 훈습이다.
높은 데에 새가 알을 낳으면 부화한 아기새는 끊임없이 나는 연습을 한다. 어지간히 연습이 됐다 싶으면 그 높은 벼랑을 혼자 날아 내려온다. 반복하고 훈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익힐 습(習)자가 새깃 우(羽)로 되어 있다. 새 깃을 쳐서 끊임없이 나는 연습을 해서 어린 새가 한 번에 그 허공을 날 수가 있다.
유교에서도 ‘신야자(神也者)는 불과습자지문(不過習者之門)’이라고 하였다.
‘신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도 반복 연습하는 사람의 문 앞을 지나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가 어째서 그렇게 보통 사람은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얼음판에서 묘기를 펼칠 수가 있었는가?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끊임없이 넘어지면서 반복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십회향품을 공부하고 있다. 한참을 공부했는데도 아직 멀었다.
우리는 오온 육근을 가지고 수억 겁을 살아왔다. 오로지 이 육신만을 생각하고 아(我)에 집착하고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삶에 그토록 오랫동안 찌들어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화엄경을 공부하며 끊임없이 남을 먼저 생각하고 이타자리(利他自利) 보살행 보시 남을 배려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도 절대로 나를 먼저 내세우는 그 습관이 쉽게 바뀌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근래에는 뜸했지만 내가 한때 자주 언급한 분이 있다.
이 시대의 살아있는 관세음보살님인 대만의 증엄스님이다.
‘무비스님은 왜 증엄스님 이야기를 자꾸 하느냐’고 하면서 자제공덕회에서 여기까지 사람이 와서 인사를 하고 간 일도 있다.
증엄스님은 이 시대의 살아있는 관세음보살님이다. 관세음보살에 대해서는 능엄경에서도 소상히 밝혔고 법화경 보문품에서 아주 소상히 밝혔다. 우리는 관세음보살에 대해서 익히 아는 바다. 경전에는 경을 결집할 때 상상할 수 있었던 능력만큼만 관세음보살에 대해 설명했다.
그런데 증엄스님이 하신 자비행 활동은 경전에서 표현하는 관세음보살 활동 이상이다.
지금 증엄스님은 보문품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보살행의 몇 배를 더 하고 있다.
이분이 하신 유명한 말 가운데 ‘보천삼무(普天三無)’라는 말이 있다.
‘천하에 세 가지가 없다’라는 말이다.
어떤 세 가지가 없는가?
‘내가 이 세상에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내가 이 천하에 믿지 못할 사람은 없다.’
‘천하에 내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는 말씀이다. 관세음보살이 아니라면 하실 수 없는 말씀이다. 증엄스님이 오랜 세월동안 그 많은 일을 하고, 숱한 건축들을 하고 별별 사람을 만나면서 좋은 사람만 만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다 믿는다고 하였다. 나에게 어떤 해를 끼치고 어떤 손해를 끼치더라도 그를 끝까지 믿는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끝까지 사랑하고 믿어주고 용서해준다면 언젠가 그 사람이 마음을 돌이켜서 귀의할 때가 있을 것이다.
10회향품이 끊임없이 ‘왜 회향을 하는가’ 하고 반복하고 있는데 그런 내용과도 연관이 되는 증엄스님 이야기도 있다. 증엄스님이 설립한 자제공덕회가 1966년 시작해서 벌써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봉사활동을 하고 보살행을 하고 있는데 초창기인 1960년대에 ‘죽통세월’이라고 부르는 때가 있었다.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증엄스님은 신도 30명을 앉혀놓고 죽통을 하나씩 나눠주면서 하루에 10원씩 넣으라고 하였다. 그 때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해 보면 140원인가가 되는 돈이지만 편의상 100원이라고 한다면, 증엄스님은 사람들에게 매일 100원씩만 죽통에 넣어서 한달되거든 가져오라고 한 것이다.
사람들이 백원씩 넣은 돈을 한달 모아서 가져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죽통을 깨서 하루 밤도 재우지 않고 마을로 내려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 의료혜택을 못받고 의식주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어떤 신도가 “아이 스님 성가시게 하루 100원씩 모을 것 뭐 있습니까? 한달에 3천원 씩 내면 될텐데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증엄스님은
“3천원도 5천원도 만원도 보시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중생을 위하는 자비의 마음을 한달에 한 번만 일으키는 것입니다. 매일 100원씩 죽통에 넣으면 매일 한 번씩 불행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의식주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비의 마음을 일으키게 됩니다. 자비심의 반복이고 훈련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얼마나 근사한 말인가.
한달에 3천원을 낼 수 있다. 만원도 낼 수가 있다. 그렇지만 하루에 매일 100원씩 잊지 않고 자비심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지금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시를 한다’고 하는 마음을 내면서 매일 백원씩 저금통에 돈을 넣어 한달에 30번 마음을 일으키는 것과 한달에 한 번 그 만큼의 돈을 내면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액수는 같아도 절대 같은 일이 아니다. 그 내용이 천지차이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제일 큰 봉사단체를 이끌고 천만 명을 넘는 봉사단체를 이끌고 제일 많은 구호활동을 하는 분인 증엄스님은 지금 연세가 80을 넘는다. 근래에 BTN에 보면 설화를 통한 부처님 말씀을 법문하기도 한다.
내가 전에 BTN이나 BBS에 ARS운동을 일으킬 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두 방송국에 5천원씩 ARS를 눌러서 보시를 했다. 그래봐야 하루에 돈 만원을 보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독한 마음을 먹고 한다고 하더라도 한달에 15번 하기가 어려웠다.
열 다섯 번 하는 것도 잘하는 것이고 점점 열 번으로 일곱 번으로 횟수가 줄어서 지금은 한달에 한 번도 못할 때가 있다. 계속한다고 하는게 그렇게 어렵다. 계속하는 것은 그만치 훈습이 되는 것이다. 몸에 익혀지고 내 삶이 되고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증엄스님이 그렇게 한달에 한 번씩이 아닌 하루에 한번씩 자비심을 일으키는 훈련을 쌓자고 해서, 처음 30명에게 가르쳤다. 그것이 오늘 날 자제공덕회 라고 하는 저렇게 큰 봉사단체가 만들어진 원동력이다. 이 시대에 지구촌 사람들에게 자비행을 하는 사람으로서 증엄스님이 제일이지 싶다. 다른 방법으로 훌륭한 스님들은 물론 많지만 자비행을 실천해서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사람으로서는 내가 알기로는 증엄스님이 제일이다.
여기 우리가 요즘 공부하고 있는 선근회향도 결국 반복이다.
선근회향 하는 훈련을 우리 잠재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해서 반복을 한다. 똑같은 내용들을 자꾸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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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보시상보(布施象寶)호대 :코끼리를 보시하되
기성조순(其性調順)하고 : 아주 사나운 코끼리가 많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주 성질이 온순하고 훈련이 잘된 코끼리를 보시한다는 말이다.
칠지구족(七支具足)하며 : 칠지가 구족하며, 코끼리는 다리가 네 개, 귀가 두 개, 코가 하나라서 그 가지가 일곱 개, 칠지라고 한다. 칠지가 구족하며
연치성장(年齒盛壯)하고: 나이가 젊어서 힘도 좋고 일도 잘하고 씩씩하고
육아청정(六牙淸淨)하며: 보통 상아가 두 개인 줄 아는데 여기는 여섯 개의 이가 아주 훌륭하다고 하였다.
구색홍적(口色紅赤)이 : 입 속은 아주 붉고 붉은 것이
유여연화(猶如蓮華)하고 : 마치 붉은 연꽃과 같다. 코끼리에 대해서 표현을 잘 했다.
형체선백(形體鮮白)이 : 형체는 선백이라. 흰 코끼리니까 몸은 깨끗하게 흰 색깔인 것이
비여설산(譬如雪山)하며 : 마치 설산과 같으며
금당위식(金幢爲飾)하고 : 금으로 된 깃대로 꾸미며 장식을 하고
보망나부(寶網羅覆)하며: 보배 그물로써 펼쳐서 덮었다. 현재 스리랑카 캔디사원인가에서 부처님 치아사리 행사를 할 때는 코끼리를 장식할 수 있는 데까지 장식을 하는 것도 이런 데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종종묘보(種種妙寶)로 : 가지가지 묘한 보배로
장엄기비(莊嚴其鼻)하니 : 그 코를 장엄한다. 그래서
견자흔완(見者欣翫)하야 : 보는 사람이 다 아주 기뻐하고 볼만한 거리로 여겨서
무유염족(無有厭足)하고 : 싫어함이 없고
초보만리(超步萬里)에 : 만리를 걸어감에
증불피권(曾不疲倦)하며: 일찍이 피곤해 하거나 싫증냄이 없다. 여기까지 코끼리의 이야기다. 다음으로 말도 코끼리와 같은 부류로 넣어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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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부시여조량마보(或復施與調良馬寶)호대: 혹 다시 아주 잘 길들여진 말을 보시하되
제상구족(諸相具足)이 : 여러가지 상이 구족해서
유여천마(猶如天馬)하야 : 마치 천마와 같으며, 역사에 유명한 말로는 적토마(赤兎馬)가 있다. 천마와 같으며
묘보월륜(妙寶月輪)으로 : 아름다운 보배 월륜으로써
이위광식(以爲光飾)하고 : 아주 빛나게 장식하고
진금영망(眞金鈴網)으로: 진금으로 방울을 짜서, 그물처럼 짜서 달리면 방울소리가 나고
나부기상(羅覆其上)이어든 : 그 위에 덮고
행보평정(行步平正)하야 : 걸어가는 것이 평정하고
승자안은(乘者安隱)하며 : 말 탄 사람이 편안하도록 한 말이
수의소왕(隨意所往)에: 가고 싶은 대로 가는데
신질여풍(迅疾如風)하며: 빠르기가 마치 바람과 같으며
유력사주(遊歷四洲)에 : 사주로 돌아다님에
자재무애(自在無碍)하니 : 자재무애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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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이 : 보살이
이차상보마보(以此象寶馬寶)로 : 이 코끼리와 말로써
혹봉양부모(或奉養父母)와 : 혹 부모에게도 봉양하고
급선지식(及善知識)하며 : 그리고 선지식에게도 봉양하며
혹급시빈핍고뇌중생(或給施貧乏苦惱衆生)호대 : 혹은 아주 가난하고 고통 받는 중생에게도 보시를 하되
기심광연(其心曠然)하야 : 그 마음이 확 트여서 광연해서
불생회린(不生悔悋)하고 : 조금도 후회하거나 뉘우침이 없고
단배증흔경(但倍增欣慶)하며 : 다만 더욱 더 기쁘고 경사스럽게 생각한다. 보시하는 것을 아주 기쁘게 생각하고 경사스럽게 생각하며
익가비민(益加悲愍)하야 : 더욱더 가난한 사람, 고뇌 받는 사람 그런 이들을 어여삐 여기고 불쌍히 여겨서
수보살덕(修菩薩德)하며 :보살덕을 닦으며
정보살심(淨菩薩心)하야 : 보살심을 청정하게 해서
이차선근(以此善根)으로 : 이 선근으로
여시회향(如是廻向)하나니 : 이와 같이 선근회향한다. 보시는 그렇게 할 수가 있는데, 그 보시한 것이 어떻게 회향되어야 하느냐? 하고 마음을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것이 선용기심(善用其心)이다. 보시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어도 보시 뒤에 그 보시에 대한 마음을 어떻게 써야하는가는 잘 모른다. 그것이 여기 십회향에는 일일이 붙어 있다. 한 가지를 보시하면서 열 가지 이상씩 그 마음을 잘 쓰는 방법이 나온다. 선용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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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원일체중생(所謂願一切衆生)이 : 소위 일체중생이
주조순승(住調順乘)하야 : 조순 아주 조화롭고 순한 법에 머물러서
증장일체보살공덕(增長一切菩薩功德)하며 : 일체 보살 공덕을 증장하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들이 제발 좀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하고 일체 보살의 공덕을 증장하기를 발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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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득선교승(得善巧乘)하야 : 아주 훌륭한 방편의 법을 얻어서
능수출생일체불법(能隨出生一切佛法)하며: 능히 따라서 일체 불법 출생하기를 원하며, ‘중생이 전부 그렇게 했으면’하고 보시를 하면서 그런 마음까지 갖는 것이다.
우리 불교계에서도 급식 활동이나 우물 파주기도 많이 한다. 동남아나 네팔 지진난 곳 같은 데에 가서 학교도 많이 지어준다. 며칠 전 신문에도 학교를 여섯 개를 지어줬다고 나왔다. 불교계에서도 하고 불자들도 동참하였다고 하는데 대개 그런 일들이 일회적이고 회향이 없다. 우물을 파주면 딱 우물을 파주는 것으로만 끝이 난다.
그래서 내가 급식활동 같은 것을 하면서 조그마한 명함에다가 부처님 말씀을 간단히 적어서 줘라. ‘콩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난다. 선한 행을 하면 선한 과보를 거두고 악한 행을 하면 악한 과보를 받는다’라는 말 한마디라도 써서 하나씩 나눠주어 돌려보내라는 말을 많이 했었다.
어제 현대불교신문 기자가 조그마한 비닐봉지를 가져왔다. 비닐 봉지마다 부처님 말씀을 새긴 명함 한 장과 믹스커피 한 개와 초콜렛 한 개씩을 넣어서 돌렸다고 했다.
내가 ‘밥만 먹여 돌려보낼 게 아니다. 부처님 말씀 한마디 전하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 금방 문리(文理)가 나서 그렇게 만들어 온 것이다. 받는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나서 그 봉투를 들고가서 커피는 타먹고 초콜렛도 하나 먹으면서 명함 속의 부처님 말씀을 읽어보는 광경이 그림으로 그려졌다. 근사하다. 여러분도 참고 하시기 바란다. 좋은 일이다.
내가 여기서 이런 이야기들을 자꾸 이야기 하는 것이 헛된 소리가 아니고 어느 작은 구석에서 그 말들이 실행으로 옮겨지고 있다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밥만 먹여서 돌려보내는 것은 다른 단체에서도 많이 한다. 부처님에게는 방편의 말이 얼마나 많은가? 불교에서 하는 일들은 전부 부처님 말씀, 진리를 전하기 위한 방편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물론 우물을 파주는 일은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일이고 좋은 일이다. 보살행이다. 그 일만 찬탄해도 한없이 찬탄할 거리다. 그러나 여기 십회향품에 보면 보시 뒤에는 늘 선교회향이 따른다. 불법으로써 회향하도록 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밥을 한그릇 주더도, 우물을 파주더라도, 학교를 지어 주더라도 늘 부처님 법과 연관되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 아주 좋다.
현대 불교 기자가 그 작은 비닐 봉지를 들고 와서 ‘스님 내가 이렇게 했습니다’하고 준 것이 참 잘한 일이다. 밥을 공양 올린 것보다 정작 복은 그 명함 한 장에 부처님 말씀을 전해 준 것에 몇백 배, 몇 천 배 더 따라올 것이다.
부처님은 누구에게 밥 한 그릇 대접한 바가 없는데 왜 그렇게 부자냐? 불국사 통도사 그 좋은 사찰이 전부 부처님 앞으로 등기되어 있는데 어째서냐?
밥 한 그릇 누구에게 보시한 적이 없는 부처님은 다만 진리의 말씀을 보시했다.
내가 늘 이야기를 하는 바다. 흘려버릴 것이 아니라 꼭 기억해야 할 일이다.
금강경에서는 사구게(四句偈) 하나 전해주는 공덕에 대해 입이 벌어질 정도로 이야기를 해 놓았다. 사구게가 뭐라고 어째서 그 한마디 전하는 공덕이 그렇게 큰 것이냐? 그 말에 우리가 깜짝 놀라야 된다. 몇날 며칠 밥도 안먹고 잠도 못자면서 그 이유를 씨름해야 된다. 경전에서 거짓말을 했을 리가 없잖은가?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 그 한마디를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전하면 그 공덕이 큰 것인가? 도대체 왜 그렇게 사구게 전하는 공덕이 큰가?
회향의 원리 때문이다.
여기 나오듯이 일체중생이 선교방편(善巧方便)의 가르침을 얻어서 어떻게 어떻게 하기를 원한다고 하는 이 원(願)자가 아주 중요하다.
내가 천수경을 강의하면서 천수경에 원자가 들어간 것을 보니까 ‘발사홍서원(發四弘誓願), 벌원이귀명례삼보(發願已歸命禮三寶)’ 중간에 또 무슨 원 무슨 원해서 그 원이 짧은 천수경의 삼분의 일이나 되었다. 원이 그렇게 중요하다.
내가 가끔 불공 이야기를 하는데 옛날에 우리 어릴 때는 전부 독(獨)불공이었다.
지금은 독불공이 하나도 없이 전부 합동으로 축원하고 마는데 옛날에는 합동 불공이라는 것이 없었다. 백 명이 오든 이백명이 오든 전부 독불공을 해줘야 하는 그 옛날에 정초에는 하루에 100명씩이 오고 어느 때는 100명 이상이 오기도 하는데 무슨 수로 다 독불공을 해주는가? 그런데 방법이 있다. 천수경은 길어서 못하고 유치(由致) 청사(請詞) 그 좋은 법문도 한마디도 해줄 수가 없지만, 그저 축원문만 근사하게 해주는 것이다. 축원을 근사하게 하고 특히 그 집 가족 이름을 부를 때 불공제자 귀에 쏙 들어가도록 큰소리로 재고축 삼고축까지 해주면 다 해도 5분이 채 안걸린다. 100명 아니라 200명이라도 한 법당에서 불공을 다 해마친다. 그리고 불공 제자를 아주 만족하게 한다.
천수경 안외워주고 반야심경 안외워주고 유치 청사 하나도 안해줘도 축원을 잘 해주면 불공드리는 사람들이 만족한다.
왜냐하면 큰소리로 부처님한테 축원을 해서 가족들 이름 분명하게 들리게 해주는 것으로써 그들이 바라는 바, 그 원과 꿈과 희망에 불을 지펴주었기 때문이다.
이름이 분명하게 들리지 않게 해주면 나중에 ‘우리 축원 안나갔다’고 다시 해 달라고 한다. 그런 일들을 여러분도 여러 번 당해 봤을 것이다. 아무리 불공 잘 들여줘도 ‘축원 안나갔으니까 다시 해달라’고 반드시 따지게 된다. 그럴 때는 꼭 새로 해줘야 된다. 사람의 심리가 다 그런 것이다. 그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원이다. 원이 다른 것이 아니다.
불공드리는 사람들에게는 자녀들 이름을 불러서 ‘부처님 가피력으로 금년 내내 만사형통 하게 하길 바랍니다’라고 축원하는 그 말이 원(願)이다. 그 원이 귀에 쏙 들어오도록 하면, 그 소리 들으려고 탁 기대하고 있다가 대만족을 하는 것이다.
‘색불이공 공불이색(色不異空空不異色)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은 누가 알아듣는가? 색즉시공 공즉시색 아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내가 천수경 강의할 때 늘 그 이야기를 했었다. 요즘은 천수경 강의를 안하지만 내 천수강의 책속에 이런 내용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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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 중생이
득신해승(得信解乘)하야 : 믿고 이해하는 가르침. 이해하는 법을 얻어서
보조여래무애지력(普照如來無碍智力)하며 : 여래의 걸림없는 지혜의 힘 환하게 비추기를 원하며. 믿고 이해하는 것. 신해행증(信解行證)이다. 일체 중생이 신해행증을 해서 여래의 걸림없는 지혜의 힘을 알게 되기를 마음속에 원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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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또 일체중생이
득발취승(得發趣乘)하야 : 더 나아가고 앞으로 앞으로 더 나아가는 그런 법을 얻어서
능보발흥일체대원(能普發興一切大願)하며 : 일체 그 외 모든 원들을 크게 일으키기를 또 원한다. 대원을 원한다. 오직 원이다.
천지는 지금 한창 봄이 되어서 새싹이 파릇파릇 돋고 꽃이 피고 야단이다. 그런 것이 전부 원이 발현되는 일이다. 식물은 부디 봄이 와서 기후가 맞고 습도가 맞으면 몸부림 치고 꿈틀거려서 ‘내가 가지고 있던 꿈과 희망을 꽃피우리라’ 오직 그 생각만 하고 있다. ‘때만 맞으면 내가 언젠가 내 꿈을 꽃피우리라’ 모든 생명은 전부 그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온천지가 꽃피우느라 야단 법석이다. 사람 뿐만 아니라 생명 있는 것은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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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구족평등바라밀승(具足平等波羅蜜乘)하야: 평등바라밀승을 구족해서
성만일체평등선근(成滿一切平等善根)하며 : 일체 평등선근을 성만하기를 원만히 이루기를 원하며
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성취보승(成就寶乘)하야 : 보배의 가르침을 성취해서
생제불법무상지보(生諸佛法無上智寶)하며: 모든 부처님의 법, 그리고 가장 높은 지혜의 보배 성취하기를 내기를 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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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성취보살행장엄승(成就菩薩行莊嚴乘)하야 : 보살행 장엄승을 성취해서, 보살행 같이 장엄스러운 것이 없다. 그런데 뭘로 꾸민단 말인가? 화엄이라고 해서 사람이 꽃일 때는 아름다운 말과 마음다운 행동과 아름다운 마음가짐이 바로 꽃이다. 그런 사람이 신구의 삼업으로 보살행을 표현할 때가 장엄이다.
화엄이라고 꽃으로 장엄한다는 것이 무슨 매화꽃 벚꽃 목련꽃 잔뜩 심어놓고 꾸미는 소리가 결코 아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화엄경을 설했을 리가 없다.
보살행이라고 하는 꽃으로써 세상을 장엄한다.
개부보살제삼매화(開敷菩薩諸三昧華)하며 : 개부보살제삼매화 하며 보살의 모든 삼매의 꽃을 피우기를 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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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득무변속질승(得無邊速疾乘)하야 : 가없는 빠른 가르침을 얻어서
어무수겁(於無數劫)에 : 무수겁에
정보살심(淨菩薩心)하야 : 보살심을 깨끗이 해서
정근사유(精勤思惟)하야: 부지런히 사유해서
요달제법(了達諸法)하며: 모든 법 요달하기를 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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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성취최승조순대승(成就最勝調順大乘)하야 : 가장 수승하고 조화롭고 순한 대승법을 성취해서
이선방편(以善方便)으로 : 훌륭한 방편으로써
구보살지(具菩薩地)하며: 보살의 지위를 갖추기를 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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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승최고광견고대승(乘最高廣堅固大乘)하고: 가장 높고 넓고 견고한 대승에 올라서
보능운재일체중생(普能運載一切衆生)하야: 일체 중생을 널리 실어 날라서
개득지어일체지위(皆得至於一切智位)니라: 모두 일체 지혜의 지위에 이르기를 원할지니라. 일체 지혜의 지위는 부처의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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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보살마하살(是爲菩薩摩訶薩)이 :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시상마시(施象馬時)에 : 코끼리와 말을 보시할 때의
선근회향(善根廻向)이니 : 선근회향 하는 것이니
위령중생(爲令衆生)으로 : 위령중생으로 그 까닭을 말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느냐? 중생으로 하여금
개득승어무애지승(皆得乘於無碍智乘)하고 : 걸림없는 지혜의승에 올라서
원만구경(圓滿究竟)하야 : 원만구경해서
지불승고(至佛乘故)니라: 부처의 경지, 불승에 이르게하기 위한 까닭이니라.
모든 중생들을 부처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려는 이유로 이렇게 보시하는 것이다.
무슨 보시를 하든지 간에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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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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