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산전우회 귀하
오 멀고도 머나 먼 오지 가리산이여!
그시절이 생각 나 소감을 피력해 보다.
가리산의 겨울은 춥기도 추웠지.
난방 기름통이 어는 추위도 있었고.
전우님들이여 내말이 틀린말은 아닐것이요?
김만일전우 안영한전우 김근태전우 김종덕전우 고광철중대장님 2019. 11월 모일의 통화,
옛 추억을 느끼게 해주어 고맙수.
김만일전우는 나와 같은날 철도공사를 퇴직했구먼.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의 구전처럼 오지의 가리산 7971부대!
7971부대의 내가 찾고자 했던 사람들 장비과 구레이다운전원 박경원, 급수대 김천섭, 곽진희
어디에서가 황혼의 시절을 보내고 있을줄 알고 열락을 취해 보았으나 이미 저승길로 가버렸다는 소식들으니 인생무상이 아니런가!
2019년도 달랑 달력 한 장 남겨놓고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는 때에 새로운 삶의 역사를 이룩합니다.
가리산 전우님들 소식이라도 오고 간다면 자유인 나그네는 즐거운 마음 간직하며 행복할것이요.
감사합니다.
2019.11.30.
자유인 인생 나그네 조동화
1972-1975 진다리와 가리산을 기억하다.
5016-7971부대125야전공대대-1
자유인 인생 나그네 군시절 진다리와 가리산을 기억하다.
“당백” 의무대 조병장입니다.(부대인사구호)
7971부대 125야전공병대대 의무과 위생병으로 군인으로서 사명을 다하고 1975년 6월 만기 제대하였지.
아! 가리산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고 내려오는 구전처럼 오지중의 오지, 인제 현리 진다리 가리산까지 고개고개 넘어 첩첩산중 봄날의 5월까지도 눈으로 쌓여있는 그시절 인제 가리산의 추억의 넉두리를 해봅니다.
7971부대 125야전공병대대는 현리 진다리에 있다가 가리산으로 부대가 이동 하였지.
1972년 당시 3군단장은 김재규장군이었으며, 내가 3군단사령부 1972년10월 3군단사령부 대기병으로 갈 때 김재규장군의 전역식이 연병장에서 있었다.
1032부대 3군단사령관 김재규장군(별3개)은 군을 전역한후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받아 건설부장관과 중앙정보부장을 엮임했으며 , 10.26 박정희대통령(영구집권 일명 총통)을 암살 독재를 무너뜨렸으나, 전주환의 역 쿠테타로 사형선고를 받아 비운의 일생을 마치었지요. 뒤를 이어 정승화장군이 3군단사령관으로 오시었으나 12.12때 계엄사령관을 박탈 당하고 비운의 일생을 마치었지요.
자유인 인생나그네는 1302부대3군단사령부-5016부대3여단을 거쳐 7971부대 125야전공병대대로 11월초 자대 배치되여 의무과 위생병으로 군복무가 시작되였다.
2019년11월 44년이 지난 후 군시절이 생각이 나 자유인 나그네의 군시절 진다리와 가리산의 전우들의 사진이 있어 추억을 더듬어 보기로 하였다.
무엇이 그리도 바쁘게 세월을 넘고넘어 지나왔는지 세월은 참 무심히 흘러 갔소이다.
44년전 군시절을 회고하게 됨은 우연히 “가리산전우회” 다움카페를 찾은것이 계기가 되었음을 알리면서, 가리산전우회 카페를 사랑하는 전우님들에게 감사를 드리는 바이요.
특히 안영한 행정과 전우님과 1중대1소대 김종덕전우님께서 소장한 군시절의 사진들을 올려놓아 진다리와 가리산의추억을 되세기게 해주어 찬사를 드립니다.
안영한행정과 전우님은 군시절의 인연들을 소흘히 하지 않고 사회 나와서도 유지하신 것을 보고 보람있는 삶을 사시었다고 말하고 싶군요.
의무실 조병장은 가까이 있었던 옛전우들과도 관계를 갖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한참후배의 서명기전우님께서 카페를 만들었기에 추억을 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서명기전우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되오나 연락처를 모르니 죄송할 따름이다.
자유인 인생 나그네 조병장은 2019.11월 모일에 안영한전우님과 통화, 김종덕전우님 통화, 김근태전우님 통화 옛시절 이야기를 나누어 즐거웠습니다.
진다리 가리산의 인연들, 조병장은 그냥 스쳐 지나간 인연중에 확실히 남아있는 선후배 전우들을 기억해 내다.
통신과 진병우, 봉중배, 행정과 안영휘, 이무열, 장비과 박경원, 세탁소 김사길, 안길선, 김근태, 진경호, 통신과 정효근하사, 문무성소령님, 장비과급수대 김천섭, 강경일, 행정과 표병장님, 의무과 홍석걸 구제운 우선종 행정과 박성영상사님등 전우들이 스쳐지나갑니다.
3중대장 문무성소령님은 당시 절도 있고 기백이 대단했지.
어쩌다 의무실에 들려 조병장 노나(미제비타민)있나 하시던 기억이 생생히 나는구먼.
가리산의 겨울에 개울가에서 잡은 개구리를 술안주로 끊여 먹던 추억,
유격-기초훈련장-그네타기, 가리산 유격대 올빼미들도 모두들 제대하여 어디선가 노후를 보내겠지.
125야전공병대대는 주로 겨울에 한계령에 눈이 오면 제설작업을 하였으며 도로공사도 하였다.
당시만해도 카메라도 귀하던 시절이었는데 군시절 위생병으로 복무하던 사진이 남아 있어 추억을 느끼게 되어 감회가 새롭답니다.
구굽낭을 멘 사진은 유격대에 파견나가 복무하던 사진이네요.
긴급 응급환자 발생시 조치하라고 파견 나간 것 같소이다.
호랑이 담배피던 이야기 같은데 구급낭속에 별약이나 들어 있다고, 겨우 소독약, 소화제, 해열진통제, 핀센트, 압박붕대, 무좀약 상처에 바르는 연고등이 고작이었지요.
한날 35사단에 입대하여 훈련소에부터 현리, 가리산까지 군생활을 하였던 강경일은 이발사였고, 배정수는 보안부대장 식사당번이었지. 제대기념으로 사진까지 같이 찍었지만 제대하여 김제의 배정수는 만나보았지만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강경일은 연락이 않되여 한번도 만나보지 못하고 세월은 무심히 흘러갔네.
추억으로 남은 사진중 본부중대 병사들과 같이 현리 진다리찍은 사진 몇장과 가리산 7971부대 사진 몇장이 남아있소이다.
세상사는일이 바빳는지 자유인 조동화는 그들을 기억은 하였지만 찾아 보지는 못했지.
장비과 박경원은 함열이 집이었는데도 찾아보지를 못했으니, 이만큼 세월의 고개를 넘어 그냥 추억으로 잊혀진 이야기가 되어 버렸도다.
그도 어디에선사 황혼의 인생을 보내고 있으리라.
안영한전우님께서 행정과에서 복무했으니 사진속 얼굴들을 기억할수 있을것 같아 기쁜 마음으로 추억을 느끼신다면 좋으리요.
가리산 조병장은 진다리와 가리산의 추억이 그리워, 생각나는데로 끄적 끄적한 것을 이해 드리며 전우들의 무궁한 행운과 행복을 기원하는 바입니다.
자유인 인생 나그네 병장 조동화
진다리의 어느날 의무실 앞 자유인 나그네가 폼을 잡다.⇓
의무과 간판 표찰이 보인다.
의무과 막사 뒤편엔 급양대가 있었지.
명찰에 조동화 이름이 선명하구먼.
안영한전우는 조동화를 기억하겠지요.
진다리의 7971부대125대대의 추억이여.
진병우전우(우측)와 나(조동화 좌측)⇓
1974년 봄 진다리 부대 위병소앞 개울건너서 찍은사진으로
서울이 집이었던 진병우전우는 통신과에 복무하였고, 나보다 조금 일찍 제대하였지.
군시절 우정이 있었던 전우 진병우, 군에 오기전 동일건축설계사무실에 근무하였다던 진병우전우, 전화번호까지 주고간 진병우 전우, 복무 마치고 사회나가면 다시 설계사무소 근무할것이라고 했는데 나그네가 제대하여 몇 년후 전화해보니 연락불통, 그후 한국통신의 전국전화번호 진병우를 찾아보니 25명정도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일일이 전화해보아도 내가 아는 그이름 진병우를 찾지 못해 진병우 전우를 만나지 못한 아쉬운 인연이여.
어디선가 황혼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오
좌로부터 부대장당번병 나(조동화) 진병우전우⇓
의무과앞에서 찍은 사진으로 부대장당번병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는구먼
진다리 장교식당앞 좌로부터 나(조동화) 장비과 박경원전우 정작과 전우⇓
장교식당앞에서 1974년 봄 찍은 사진으로 정작과전우는 망각의 세월에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구먼
진다리 좌로부터 두번째 나(조동화) 네 번째 행정과 안영휘전우 여섯 번째 장비과 박경원전우⇓
1974년 봄 진다리 부대 위병소앞 개울건너서 찍은사진으로 행정과 안영휘전우와 장비과 박경원전우만 이름이 기억에 남아 있구먼.
진다리 좌로부터 나(조동화) 행정과 안영휘전우 행정과 이무열전우⇓
1974년 봄 진다리 부대 위병소앞 개울건너서 한창 젊은 청춘들이 늠름한 자태를 뽐내며 찍은사진이다.
진다리 맨우측이 나(조동화) 세탁병 김사길전우 아래는 정작과전우 맨위의 전우는 세월탓에 기억이 않남⇓
1974년 봄 진다리부대안에서 찍은 사진같소이다.
진다리 의무실앞에서 나(조동화)⇓
진다리 좌로부터 두번째 나(조동화) 세 번째 행정과 안영휘전우⇓
1974년 봄 진다리 부대 장교식당부근 벤취에 앉아 점심후 전우들이 사진촬영하다.
진다리 부대안에서 사격포츠를 취하고 사진을 남기다. 나(조동화)⇓
안영한전우님이 가리산전우회카페에 올려놓은 74년 봄에 촬영한 본부중대단체사진을 허락도 없이 가져옴을 너그럽게 생각하시길 빌며, 추억을 느끼고자 합니다.⇓
진다리에서 본부중대 출입구 앞에서 본부중대단체사진을 남기었네요.
자유인 인생 나그네는 사진속에 없어 아쉽지만 추억할수 있어 고맙지요.
의무실 위생병들도 호출하여 같이 사진을 남기었다면 좋았을텐데 행정과 전우들을 원망해야 될까요.
장비과 박경원전우도 보이고 행정과 안영휘전우도 보이네요.
키가 컷던 세탁병 김사길전우도 보이는구먼요.
키가 큰 표병장님이 생각이 나는데 이름을 망각했소다.
표병장님은 행정과 있었는지, 정작과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안영한전우님은 확실히 알고 있겠지요.
※김종덕전우와 통화한즉 아래사진은 가리산 유격대에서 125부대로 올라가는 계단이라 하더군요.
1중대 전우들이 한계령 108계단에서 기념사진찍은 것 같군요⇓
김종덕전우가 올려놓은 사진을 살짝 가져와 옛시절 추억을 다시 느끼고파 자유인 나그네 조병장이 가져왔수다. 감사인사 꾸뻑!
앞줄좌측 유격 훈련받다가 다리 뿌러진 이영수, 우측 익산의 김근태전우,
뒷줄 좌측 김상근병장, 가운데가 김종덕전우, 우측 중대행정계입니다.
자유인 나그네 조병장도 군시절 한계령 108계단에 올라가 본 기억이 있는데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 많이 아쉬워 했는데, 108계단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한계령에 108계단에 얽힌 사연→한계령 도로공사 중(1971~1973년) 희생된 장병들의 추모와 명복을 위해 위령비를 세우고 108계단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계단 끝에는 설악루(雪嶽樓)를 세웠습니다. 한계령 위령비 뒷면에는 희생 장병 이름과 함께 당시 공사를 관장하고 준공했던 제3군 군단장 김재규 중장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군단장 이름만 지워진 채 희생 장병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하네요.
김재규장군의 박정희암살사건으로 인하여 당시 권력자 전두환측의 소행으로 김재규장군의 이름을 지운 것으로 보인답니다.
자유인 인생 나그네 조병장이 1975년 군시절 모월모일 어느날 한계령 108계단에 올라 위령비를 보았을때는 김재규장군의 이름을 분명히 확인 했었지요.
나의 초년인생 경험담
1970년 鐵道에 入門하여 40여년을 철도에 젊음을 불사르고, 무엇하나 만족스럽게 이룩 한 것 하나 없이 흘러간 歲月!
1970년2월20일 목포기관차사무소 기관조사 초임발령으로 사회 초년생이 되어 목포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당시 철도는 증기기관차(영국의 조지스티븐슨 1829년발명)의 운행에서 디젤전기기관차로 동력이 바뀌어가는 과정에 있었으며, 목포-광주간을 운행하는 몇 개열차는 증기기관차사업이 있었으므로 신규발령된 기관조사에게는 증기기관차승무로 지정되어 기관사1인 본무기관조사1인 보조기관조사1인 3명이서 하는 근무형태로 기관사는 운전만담당하고 기관조사는 교대하여 석탄을 투척하여 증기를 가열시켜 증기기관차가 움직이므로 석탄을 투척하는 작업이 기술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힘을 쓰는 작업이었기에 어려운 작업이었다.
칙칙폭폭, 철컹철컹 한밤의 정적을 깨며 기적소리를 직접울리면서 달렸던 추억어린 시절이 있었음을 추억삼아 이야기 해보았습니다.
시골의 어른들은 기차소리에 깨어 많은 자손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허구한 이야기는 아닐것이요, 그래도 인정있고 살기가 좋았던 시기는 그때 그옛날이 좋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순천철도국 목포기관차사무소 기관조사의 사회초년생은 2년6개월의 반복되는 임무후 1972.8.29. 군에 입대, 전주 35사단에서 6주간 훈련을 마치고 후방기 교육을 춘천에서 2주간의 훈련후 강원도 인제 현리 공병부대 의무실 위생병으로 자대 배치되었다.
군생활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35사단 훈련병때 모악산KBS송신소 건설 작업시 모악산아래에서 세멘 한포대씩 등에 메고 정상까지 오르던일이 가장 내인생에서 힘들었던 일이었답니다.
자유인 趙東和는 黃金萬能主義의 核家族 개인주의 세상에서 옛시절의 인정은 찾아볼수 없고 하루면 수도없는 갖가지 사건사고 홍수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속에 나자신도 예외가 될수 없듯 바쁜일상으로 어영부영 하루가 흘러간다.
자유인 조동화 그는 누구인가?
전쟁의 포성이 한창인 6.25 시대에 태어나, 인생의 삶이 무엇인가 고뢰하며 즐거운 인생을 꿈꾸고자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쉼없이 흘러가는 세월속에 지나온날들이 아쉬움만 가득하지만 흘러보낸 세월은 다시오지 않기에 지나간 시간들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무상한 삶의 여정을 자연에 순응하며, 오직 한번의 인생 소중한 시간을 즐겁게 살기 위하여 나날이 최선을 다하자.
인간의 삶이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왔으니 삶에 이유가 없고, 그냥 태어났으니 사는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정답이 없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정답없는 인생, 내가 하고자 하는것 하면서 행복 느끼며 살면 그것이 행복아닐까 생각해본다.
조동화의 벗님들!
자유인 조동화의 신조는 삶의 여로에서 이세상 살아가는 것이 모두가 “부질없다” 하면서 그냥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누가 속세를 가리켜 잠깐의 꿈속세상이라 했던가?
인생은 한조각 뜬구름 같은것이며 자연에 순응하며, 오직 한번의 인생 소중한 시간을 즐겁게 살자.
오늘 해야 할일이 있다면 바로 시행하고,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행복의 자원임을 꼭 기억하며 사리라.
과거는 지나갔고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닐수도 있기 때문이다.
행복이 뭐 별거 있습니까? 그냥 내가 하고 싶을거 하면 그게 행복입디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방랑시인 김삿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