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疏通)
(출19;1-6,행2:42)276.278교독35
2013.9.29.9시 시온성군인교회
2013.9.30.10시 중앙실버대학
2013.10.1.14시 실버대학원
2013.10.2.13시 태안보건의료원
글:-남제현목사
태안자살예방생명지킴이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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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1:1)“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그러다가 <노아>시대의 대홍수가 끝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온 땅에 퍼져 번성하기 시작한 그들은 시날 평야에 이르러 흩어짐을 면하려 탑을 건설하고 그 탑이 하늘에 닿게 하려 했다. 교만 이었다..<하나님>께서 그 일을 막기 시작한다...
그래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언어를 혼잡케 하신 것이다..이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불통하게 된 역사이다..그래서 불통은 <하나님>께서만 푸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엡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화평을 이루시려고 보내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 사이의 소통의 주인시다. 불화와 반목과 갈등이 그칠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 소통을 하게 하셨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상호이해로 소통을 원활하게 한다. 부부 사이는 “여보,...”라고 만 해도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안다. 숨소리만 듣고도 상대방의 의사를 알아차린다. 이것이 소통이다..사람 사이에 편견이나 신뢰가 무너지고 사랑이 무너지면 교제가 끊어지고 불통하게 된다..
교제라는 말은 희랍어로 코이노니아(κοινωνια)인데, 친밀한 상호관계로 함께 나누고 협력과 연보의 뜻을 가지고 있다. 사람과 연관을 맺고, 그 일에 동참하는 것이나 영적인 연합이나 상관관계를 의미한다. 더 불어 '공유하다' '서로 나누다' '동반자가 되다'는 의미로 계획, 감정, 슬픔, 기쁨 등을 나눔으로써 서로가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동반자가 되는 것은 서로를 위해서 시간을 내고, 서로 높여주고 서로 격려하는 것이다. 이것이 신령한 교제로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기독교에는 <하나님>이 전혀 원하시지 않는 신령한 교제가 없는 불통의 위가 온 것이다...독일의 개신교 신학자<위르겐 몰트만>은 현대 기독교를 위기 세대로 보았다..정체성의 위기와 상관성 위기로 규정했다. 정체성의 위기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아닌 위기이란 말이다. 교회가 세속화되면서 덩달아 교인들도 세상의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와 교인인들 정체성이 없다..이것은 자신 있게 내세우지도 못하는 것이 위기상황에 놓여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상관성의 위기로 맡겨진 신앙의 비밀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마이다. 교회는 세상과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세상관여, 세상참여로, 변혁적인 입장을 취하여야 하는 데 교회가 세상안에 존재하는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다..그러므로 오늘날 이 교회는 상관성에서 심각한 도전으로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두 가지 위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제부터라도 교회가 바른 정체성을 회복하는 길만이 세상과의 소통과 상관성 구축에 가장 효과적인 길이 될것이다. 모이면 세상과 소통하자는 말은 많이 하는데 정체성과 상관성의 위기를 창조적으로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세상의 아우성 소리를 외면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향하여 중보자적인 소통을 외면하고 때문이다.
세상과의 진정한 소통은 세상과 원수 맺는 것도, 세상과 짝하는 것도 아니라 그들의 탄식과 고통에 공감하며 복음에 중보자적인 사역이다.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엘리야, 이사야, 아모스, 예레미야 그리고 에스겔 등 모두가 중보자들이다. 교회는 세상의 고통과 탄식을 <하나님>께 전달한 소통의 대행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늘의 언어로 그리고 땅의 언어로 통역했을 뿐만 아니라 땅의 언어를 하늘의 언어로 통역한 사람들이다. 출가한 딸이 엄마에게 “엄마, 나 힘들어”엄마가... ? “너만 힘드냐. 지금 온 세상이 사람이 힘들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엄마가 너 만 했을 때 너보다 힘든 일이 많았다. 지금 너는 팔자가 좋아 그런 소리 하는 거냐. ”딸은 다시는 엄마에게 마음을 열지 않기로 작정했다.
반대로 “그래 네가 많이 힘든 모양이구나. 엄마가 자랄 때도 힘든 세상이었지만 지금은 훨씬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다. 내 딸아 널 힘들게 하는 게 뭔지 엄마에게 이야기 해 주렴 기도하고 싶구나.”그래서 마음을 열기 시작할 때 세상이 변하기 시작한다. 현대 사회는 전화나 인터넷, 휴대폰 등 통신수단의 발달로 언제든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대이다.
그런데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 그런가 서로 간에 말이 통하지 않는다. 자기주장과 동문서답이다. 물이 계속 흐르지 않고 계속 한곳에서 만 고여 소통이 안 되면 썩어 냄새만 만다.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공동체는 썩는다. 한의학에 인간은 통(通.통항통)하지 않으면 통(痛.아플통)한다는 말이 있다..동맥경화에 걸리면 혈류가 서로 통하지 않아 신체적인 고통이 온다.
소통하지 않으면 고통 할 수밖에 없다. 가정의 비극도, 교회의 갈등도, 사회의 방황도 결국은 소통의 문제이다. 마음 열기에서부터 시작하는 인생을 다시 배워야 한다. 소통은 마음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이다. 영어로는 ‘communication’혹은 ‘mutual understanding (상호이해) 세상의 삶은 커뮤니케이션은 중요하다. 생각을 말, 글, 소리, 표정이나 몸짓으로 주고받는다.
현대사회에서 성공을 위한 첫 번째 습관은 바로 목소리이다. 목소리를 탄력적으로 운용할 줄 아는 사람만이 성공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내가 누구에게 메시지 보내지 예의와 상식적인 준비가 있어야 한다.,.같은 내용이라도 표현방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아무리 표현은 자유라 하지만 언어가 아닌 글로 표현하려면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강아지와 고양이의 사랑의 표현이 다르다. 강아지는 반가움의 표시로 꼬리를 세우고 흔든다. 그러나 고양이는 꼬리를 세우고 흔들면 상대방을 위협하고, 공격하는 표시가 된다. 강아지는 고양이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면 할수록 고양이는 한판 붙자는 표현이 되어 서로 앙숙이 되어 싸우는 것이다..우리는 식탁에 밥그릇을 놓고 먹는 것이 상식이지만 일본인들은 그릇을 들고 먹는 것이 더 예의바른 태도이다.
사람은 본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전화로 주고받는 언어도 문자로 주고받는 소통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고 자기좋은 식으로 전달한다면 소통이 아닌 불통이 되는 것이다..전화로 고객 서비스를 담당하는 분들의 “사랑합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 말에 자기를 사랑하는 줄 안다면 이것을 절대로 소통이 아니다..그래서 소통에서 언어 사용에도 배워야 하고 교제도 윗 사람에대한 예의를 바른 몸가짐을 배워야 한다...(행2:42)“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