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월 초 수덕사는 싱그러운 봄빛으로 충만했다. 부모님은 “집을 나오기만 해도 좋다”고 했다. / 충남 아산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연인풀’.
부모님 가슴에 추억 한가득 어떠세요?
평일인 이번 어버이날(8일 화요일)에는 시간 내기 어려울 것 같아서 부모님을 모시고 미리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어머니는 "모처럼 수덕사(修德寺)에 가보자"고 했다. "우리 젊었을 땐 수덕사에 많이들 갔어. 절도 좋지만 거기 계시던 일엽 스님이 유명했잖아. 그런데 90년대 초반인가, 가보니 너무 호화판으로 지어놓은(증축한) 거야. 절집은 약간 퇴색한 듯해야 제맛인데. 그 후로는 안 가봤어."봄을 즐길 틈도 없이 여름이 됐다 싶어 아쉬웠는데, 길을 나서보니 산하(山河)는 여태 봄빛이었다. 고속도로 양옆은 갓 솟아난 여린 초록빛 잎으로 무성했다. 아버지가 창밖을 한참 바라보다 말했다. "나는 봄꽃보다 이 새싹 푸른 빛이 좋아."
절 입구 매표소 직원은 "어르신들은 그냥 들어가시고 아드님만 입장권을 끓으라"고 안내했다. 만 65세 이상은 입장료 2000원이 면제였다. 나이 든 부모님이 부럽다는 철없는 생각을 했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 올라가자 왼쪽으로 '수덕여관'이라는 간판이 붙은 초가집이 보였다. "그 유명한 이응로 화백이 살았던 곳이잖아. 여기까지 식당이며 가게가 들어차 있더니, 정비를 했나 보네. 90년대 왔을 때보다 차분하니 좋아졌네."
사천왕문을 통과해 대웅전이 있는 절 마당까지는 가파른 돌계단이다. 부모님 나이쯤 돼 보이는 어르신들이 "아이고 다리야" "이 나이에 다리 안 아픈 사람이 어딨노"라며 돌계단을 붙들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엄마는 무릎 괜찮아?" "우리는 아직 튼튼하다. 다행이지."
대웅전 건물은 함부로 단청을 칠하지 않아 고즈넉한 분위기가 났다. 어머니가 반가워했다. "이건 옛날 그대로네." 대웅전 뒤쪽에서 따가운 햇살을 피해 잠시 다리를 쉬며 물로 목을 축였다. 대웅전 앞으로 여태 동백꽃이 피어 있었다. 그 옆으로 난 철쭉과 영산홍을 지나 수덕사를 나와 차에 올랐다.
- ▲ 1 옛날 방식대로 국수를 널어서 말리는‘예산버들국수’집에서. 2 예당저수지 3 수덕사에서 사진을 찍는 부부 /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wanfoto@chosun.com
"이제 어디 가니?" "아버지, 예당저수지 알아요?" "몰라." "엄청 큰 저수지예요. '민물낚시 교과서'라고 할 정도로 낚시하러 많이 오는 곳인데."
예당저수지는 넓고 평화로웠다. 저수지 북쪽변 '예당국민휴양지'에는 산책로가 잘 닦여 있었다. 음식만 준비해오면 등나무 평상을 무료로 이용할 수도 있다.
산책을 마친 뒤 저수지에서 멀지 않은 광시면으로 다시 차를 달렸다. 모처럼 부모님에게 쇠고기를 대접할 요량이었다. 예산 광시면은 전국에서 한우를 가장 많이 키우는 지역 중 하나로, 몇 해 전 질 좋은 한우고기를 싸게 맛볼 수 있는 '한우마을'이 생겨 인기를 끌고 있다. 광시면사무소 양옆으로 정육점과 식당, 그리고 정육점과 식당을 겸하는 정육식당 수십 개가 국도를 따라 늘어서 있었다. 양념갈비가 그립다면 예산읍 중앙극장 맞은편 골목 안에 있는 '소복갈비'가 낫다.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老鋪)로,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와서 맛보고 맛있다며 배달시켜다 먹었다고 한다.
고기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예산읍내 '버들국수'집으로 향했다. "엄마, 여기 보면 좋아할 거예요. 옛날 식으로 대나무에 널어서 햇볕과 바람에 말려 국수를 만들어 파는 가게예요." "그래? 어서 가보자."
국수가게 앞 장터에는 마침 5일장이 섰다. 예산 5일장은 양력으로 '0'과 '5'로 끝나는 날마다 장이 선다. 규모가 꽤 크다. 어머니가 여러 나물을 늘어놓은 아주머니 앞에 발길을 멈췄다. "이 고사리는 어떻게 이렇게 부드러워요?" "삶아 뒀쥬. 집에 가져다가 햇볕에 말려서 먹을 때 물에 불려 요리하면 돼유." "1㎏ 담아주세요." 아주머니가 광주리에 담긴 고사리를 싹싹 긁어서 검정 비닐봉지에 몽땅 담았다. "1㎏만 달라고 했는데…." "다 가져가유. 말리면 확 줄어들어서 어디다가 잃어버린 것 같아요. 누가 훔쳐갔다고 한다니까? 이렇게 좋은 고사리 만나기 힘들어."
어머니는 결국 2㎏이 넘는 고사리를 2만5000원에 샀다. "아이고 무겁다, 이거 받아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나물 봉지와 국수 봉지를 모두 넘겼다. 봉지를 받아 든 아버지가 어머니 뒤를 묵묵히 따른다.
예산읍내에서 아산시 도고온천 지역에 있는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로 갔다. 3년 전 개보수를 마치고 물놀이 시설까지 갖춘 종합 스파시설로 재개장했다. "하도 건물이 바뀌어서 못 알아보겠더니, 물은 그대로네. 여전히 물이 매끄럽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가 유난히 막혔다. 갑갑하고 짜증이 나려는데, 부모님은 표정이 여유롭다. 아버지가 말했다. "집을 나오기만 해도 그냥 좋아."
여행수첩
●수덕사: 입장료 어른 2000원, 주차비 승용차 2000원. 충남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 안길 79, (041)330-7700, www.sudeoksa.com
●광시한우마을: 예산군 광시면 하장대리를 관통하는 지방도로를 따라 정육식당 수십 개가 늘어서 있다. 생갈비 4만원, 꽃등심 3만원(모두 200g 기준). 다른 한우마을과 비교하면 싼 편은 아니나, 육질이나 마블링에 비해서는 저렴한 편이다.
●소복식당: 주문하면 숯불에 고기를 구워 나온다. 굽는 솜씨도 훌륭하지만 달지도 짜지도 않게 고기 맛을 살릴 정도로만 자제한 양념이 탁월하다. 생갈비도 있다. 역시 구워서 낸다. 갈비 말고 다른 부위는 맛볼 수 없다. 갈비탕과 설렁탕도 맛있다. 생갈비(200g) 4만원, 양념갈비(250g) 3만1000원, 갈비탕 1만1000원, 설렁탕 6000원. 충남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 210-10, (041)331-2401
●예산버들국수: 건면(乾麵)은 가는 소면과 약간 굵은 중면, 납작하고 넓적한 칼국수까지 세 가지가 있다. 가격은 모두 한 묶음 4000원. 한 묶음은 1.7㎏으로 10인분쯤 된다. 충남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 382-13, (041)335-2920
●소머리국밥: 예산5일장 장터 주변에는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큰 가마솥을 걸어놓은 국밥집이 장터 규모에 비해 많다. 1그릇 4000원으로, 고기가 과장 조금 보태 국물보다 많다.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 스파 어른 2만6000원·아동(만 3~12세) 2만원, 온천대욕장 어른 1만원·아동 8000원. 충남 아산시 도고면 도고온천로 176, (041)537-7100, www.paradisespa.co.kr
◇그밖의 주변 온천·스파
●리솜스파캐슬: 사우나 어른 1만원, 아동 6000원. 충남 예산군 덕산면 온천단지3로 45-7, (041)330-8000, www.resom.co.kr/spa
●아산스파비스: 온천 어른 8000원, 아동 6000원. 충남 아산시 음봉면 신수리 288-6, (041) 539-2000, www.spavis.co.kr
●예산군 관광안내: (041)339-7114, www.yesan.go.kr
●아산시 관광안내: 1644-2468, www.asan.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