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으로 유명한 전라북도 고창 선운사에는 도솔암이라는 암자가 있고 이 도솔참에서
365계단을 올라가면 도솔천내원궁 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는 조그마한 법당이 나타난다.
도솔천 내원궁! 불교의 세계관에서 볼 때 도솔천은 욕계의 6천 중 네번째 하늘에 해당하며,
그 도솔천의 중심부에 내원궁이 자리잡고 있다.이 내원궁은 극락세계와 함께
불교의 대표적인 정토로 손꼽히고 있으며,현재 내원궁에는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보살이
머물러 계시면서 법을 설하고 계신다고 한다.
그런데 도솔암의 도솔천 내원궁의 문을 열어보면 미륵보살은 보이지 않고 보물 제280호로
지정된 지장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참배객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지게 만드는
아름답고 당당한 지장보살님의 모습이...
비례감이 매우 뛰어나면서도 몸의 어느 한 곳에도 인위적인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단정한 자세를 우러러보고 있노라면,모든 중생을 남김없이 제도한 다음 성불하겠다고
맹세한 지장보살의 의지가 풍겨져 나옴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타원형의 갸름한 얼굴,초승달 같은 눈썹,긴 눈매,오똑한 코,단아한 입술 등
단정하면서도 다소 여성적인 얼굴 모습에는 지장보살의 깊은 사랑이 배어 있는 듯하다.
아울러 이 지장보살님께 예배를 드리면 도솔암이 한국의 대표적인 지장성지가 된
까닭을 저절로 느낄 수가 있다.
이제 지장보살에 대해 우리가그냥 지나치기 쉬운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그것은
도솔천 내원궁에 당연히 있어야 할 미륵보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왜 지장보살이
좌정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원래 미륵보살을 모셨던 이 법당이 폐허가 되자 다시 적각을 지어 지장보살을
모셨지만,이름만은 옛날 그대로 도솔천 내원궁으로 하였을 것이라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큰 억측이다.
사찰의 전각 이름중 석가모니불이 안인 다른 부처님을 모셔 놓고 그 전각 이름을
대웅전 이라고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있는 일이다.어떠한 부처님도 영웅 중의 영웅이신
대웅이시고 그러한 대영웅을 모신 큰법당이 대웅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락전 이라 하여 놓고 이마타불 대신 약사여래를 모시거나 관음전이라 하여 놓고
문수보살을 주존으로 모실 수는 없는 일이다.이름과 내용이 맞지 않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장보살만을 모신 전각을 도솔천 내원궁 이라 할때는 특별한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만 용납된다.명분과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던 우리네 스님들이
불교 교리에 맞지 않는엉뚱한 편액을 달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오랫동안 그 까닭을 찾은 결과 두 가지 이유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1.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사바세계의 중생을 교화해 줄 것을
위촉받은 지장보살의 역할
2.이 땅에 뿌리 깊게 전승되어 온 참회불교의 전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두 가지 사항에 대해 심도 있게 살펴보면서 지장신앙의 참된 면모를 함께
규명해 보도록 하자.
석가모니불의 부촉과 지장보살의 맹세
지장보살본원경을 보면 지장보살이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말세중생의 제도를
부촉받는 장면이 두 차례 묘사되어 있다.석가모니께서 열반에 든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수많은 분신을 이 사바세계에 나타내어 일체 중생을 교화해 줄 것을
당부 받은 것이다.
"나는 이 사바세계에서 억세고 거친 중생을 교화하여,그들의 마음을 바로잡아
삿된 것을 버리고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였느니라.그러나 그 중 열에 한두 명은
아직도 나쁜 버릇에 있느니라(...)
그대는 스스로가 지은 억세고 거친 죄업의 과보로 나쁜 세상에 떨어져 큰
고초를 받는 중생을 보거든 내가 이 도리천궁에서 간절히 부촉한 것을 생각하여
사바세계에 비륵불이 오실 때까지 중생들이 모든 고통을 영원히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장차 미륵불을 만나뵙고 수기를 받을 수 있게 할지니라"
그때 모든 세계에서 모인 지장보살의 분신들은 다시 한몸이 되어 애절한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저의 분신으로 하여금 모든 세계에 가득 차게 하고,그 한몸마다
백천만억 사람을 제도하여 삼보에 귀의하게 하며,길이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
열반락에 이르도록 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오직 바라옵건대 후세의 악업중생에 대해서는 염려를 마옵소서!
세존이시여,오직 바라옵건대 후세의 악업중생에 대해서는 염려를 마옵소서!
세존이시여,오직 바라옵건대 후세의 악업중생에 대해서는 염려를 마옵소서!"
<분신집회품>
"현재와 미래의 모든 중생을 내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노니 그대는 큰 신통과
큰 방편으로 중생들을 두루 널리 제도하여 나쁜 세상에 떨어지지 않게 하라"
이때 지장보살이 무릎을 꿇어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오직 바라옵건대 염려를 놓으소서,미래의 선남자 선여인이 불법에 대해
한 생각의 공경심만 내어도 저는 백천 가지 방편으로 그 사람을 제도하여 생사
중에서 속히 해탈을 얻게 할 것이옵니다"<촉루인천품>
도리천궁에서 열반 직전에 지장보살본원경을 설하셨던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의 부처님 공백기 동안에 중생을 제도할 이로써 지장보살을
지정하셨다. 내가 못 다한 일을 지장보살이 계속해 줄 것을 당부하신 것이다.
이에 지장보살은 불법에 대하 한 생각의 공경심만 있는 이라면 갖가지 방편을
구사하여 반드시 그 사람을 제도하고 고통을 벗어나게 할 것 이라고 다짐하였다.
특히 분신집회품 에서는 후세 중생을 책임지겠다고 세 번이나 맹세하였다.
세 번의 맹세는 불경 속에서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그런데 왜 세번씩이나
맹세를 하였는가? 그만큼 틀림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상에서 살펴본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의 후세 중생에 대한 교화를 지장보살에게 부촉하였다.
그 부촉은 어떠한 보살이나 제자들에게 했던 것보다 간곡하였고 맹세 또한
지극하였다.그렇기 때문에 선운사 도솔암의 내원궁에다 미륵보살 대신 지장보살을
모신 것이다.곧 현재 도솔천 내원궁에 계신 미래불 미륵보살을 대신하여
이 사바세계에서 활동하며서 중생들에게 현실적인 행복을 안겨주고 마침내는
미륵의 정토로 인도하는 분이 지장보살이기 때문에 내원궁에다 지장보살을 모실수
있었던 것이다.
김 현준 (불교신행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