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이 아니라 두려움이다(非榮伊懼)
대제학을 사직하는 글〔辭大提學書〕
······················································· 병산 이관명 선생
삼가 아룁니다. 신이 이번 달 14일의 교지(敎旨)를 공경히 받았는데 양관 대제학(兩館大提學) 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에 신을 임명하는 내용이었으니, 신이 명을 듣고는 놀라고 두려워 넋이 나가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돌아보건대 신은 거칠고 엉성해서 백 가지 중에 한 가지도 취할 만한 것이 없는데 외람되이 큰 은혜를 입어 청현직(淸顯職)을 차지하여 높은 벼슬자리를 대부분 역임하였으되 티끌만 한 성과도 거두지 못하였으니,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더욱 쌓였습니다. 사원(詞垣)의 직임은 더욱이 신과 걸맞지 않으니, 이는 신 스스로 매우 분명히 아는 것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것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지난번에 제학(提學)에 제수하는 명이 뜻밖에 나왔을 적에 신은 평소 정력(定力 수양으로 쌓은 힘)이 부족하여 자신을 정당하게 부르는 명이 아니면 가지 않는 의리를 지키지 못하였고, 타고난 성품이 나약한 탓에 그저 분의(分義 분수)를 두려워할 줄만 알아서, 끝까지 완강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쉽게 발을 내디뎌 지금까지 그대로 눌러앉았다가 끝내 막대한 직책이 쓸모없는 신에게 맡겨지게 되었습니다. 성상의 총애와 영화를 빌려서 명기(名器 벼슬)를 더럽고 욕되게 하여 사방에서 비웃는 자료가 되었으니 “영광이 아니라 두려움이다.〔非榮伊懼.〕”라는 표현이 바로 오늘날 신의 처지를 두고 한 말입니다.
국가에서 학문을 존중하는 정치는 사한(詞翰)의 임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데, 한 시대의 공론을 참고하여 한 시대의 뛰어난 선비를 취해서 재능에 따라 의망하고 차례대로 점차 승진시켜 문형(文衡)에 이르러 그칠 뿐입니다. 선비 중에 포부와 재학(才學 재능과 학문)을 지닌 자가 명실상부하고 지체와 명망이 평소에 정해지면 관직에 제수되지 않았을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제수되기를 기대하고, 제수되면 반대하는 선비가 없으니, 이러한 뒤에야 축적된 역량을 펼쳐 성상의 계책을 보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은 자질이 노둔하고 공부가 엉성해서 글 짓는 일을 대략 익혔으나 과거 시험에 연거푸 낙방하였고 늦은 나이로 한 번 급제하였지만 이전의 학업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관계로, 집에 있을 때에는 향당에서 신을 칭찬하는 것이 부족하였고 조정에 출사해서는 명망이 동료들보다 가벼웠습니다. 더구나 오늘날처럼 기력이 쇠한 노년에 질병을 앓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훼손된 종으로 소리를 낼 수 없고 마른 나무에서 꽃이 필 수 없는 상황이거늘 느닷없이 문원(文苑)의 수장 자리에 두시니 진신(搢紳)들은 놀라고 유생들은 속으로 비웃고 있습니다. 신이 내심 부끄러워하는 것은 굳이 말할 것도 못 되지만, 위로는 성상의 즉철(則哲)한 밝으심에 누가 되고 아래로는 분수에 맞지 않다는 비난을 야기하였으니, 어찌 하찮은 일이겠습니까.
신은 본래 대대로 국록(國祿)을 먹는 집안에서 태어나 경(卿)의 반열에서 벼슬하고 있으니 하나의 자품(資品)과 반개의 계급(階級)이라도 모두 조상의 음덕에 힘입은 것이요, 이번에 외람되이 제수받은 벼슬도 남들은 가업을 계승한 것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만약 연못 위의 봉황 깃털로 하여금 사륜(絲綸 임금의 조칙(詔勅))을 대대로 관장하게 한다면 어찌 신의 가문의 영광이 되지 않겠습니까마는 ‘은거(銀車)’의 기롱을 도리어 문장가의 자식이 받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불초한 자식이 청관(淸官)을 계승했다가 마침내 창려(昌黎)를 부끄럽게 만든 것이니, 이것이 더욱 신이 대단히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오늘날 인재의 성대함이 비록 옛날만 못하지만 문학이 신보다 뛰어난 자가 이미 몇 사람이 있고 대제학을 역임했던 사람 가운데에도 여론에 촉망받는 인물이 있거늘 도리어 신으로 구차히 자리를 채우시니, 이는 거장(巨匠) 대신 칼을 휘두르다가 손가락에 피가 나게 하고 난쟁이에게 천균(千勻)이나 되는 무거운 물건을 들도록 강요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더구나 지금은 문풍(文風)이 날로 쇠퇴하고 인심이 나날이 사나워져서 과시(課試)의 제술(製述)이 점점 괴상하게 변하고 시끄럽게 다투는 말이 과거 시험이 끝난 뒤에도 쉽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직임을 맡을 사람은 온 세상에서 흠모하는 문장력과 나라 사람들이 추앙하는 공정함을 반드시 지녀야 하니, 그런 뒤에야 괴상한 문장을 변화시키고 시끄럽게 다투는 말들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신의 문장은 졸렬해서 바야흐로 배척을 받느라 겨를이 없거니와 신의 성의와 신뢰마저 미더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감히 많은 선비들을 만족시키기를 바라겠습니까.
문형(文衡)은 나라의 중요한 직임입니다. 그것이 득실과 관계된 것이 작지 않으니 반드시 사직(司直)의 논의가 있을 것이거늘 여러 날 움츠려 지내도록 아직 그런 소식을 듣지 못하여, 신의 형편이 위축되었으나 해결책이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속마음을 드러내어 죽음을 무릅쓰고 간절함을 진달하옵니다. 삼가 바라건대 이명(离明)께서는 신의 말이 거짓으로 겸양하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님을 굽어 살피시고 중요한 직임을 가볍게 줄 수 없음을 유념하시어, 신에게 내린 새로운 직명(職名)을 속히 체직(遞職)하시고 감당할 만한 인물에게 돌려주어 관직의 기강을 무겁게 하고 미천한 분수를 편안케 해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다행이겠습니다.
[주-1] 대제학을 사직하는 글 :
이관명은 1719년(숙종45) 5월 14일에 대제학에 임명되었는데, 이 글은 같은 달 18일에 올린 것이다. 《承政院日記 肅宗 45年 5月 14日, 18日》
[주-2] 자신을 …… 의리 :
춘추 시대 때 제나라 경공(景公)이 사냥을 하면서 사냥터를 지키는 벼슬아치인 우인(虞人)을 정(旌)으로 불렀으나 오지 않자 죽이려고 하였다. 이러한 우인을 공자(孔子)가 높이 평가한 이유에 대해 맹자는 “정당한 형식으로 부르지 않으면 가지 않은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取非其招不往也.〕”라고 평하였다. 《孟子 萬章下》
[주-3] 즉철(則哲) :
사람을 알아보는 명철함을 뜻한다. 《서경》 〈고요모(皐陶謨)〉에 “요 임금께서도 어렵게 여기셨으니, 사람을 알아보면 명철해서 사람을 제자리에 쓸 수 있다.〔惟帝其難之, 知人則哲, 能官人.〕”라고 하였다.
[주-4] 연못 …… 한다면 :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들 이관명이 조칙을 작성하는 직책을 맡는다는 뜻이다. 봉황 깃털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문장에 뛰어난 자식을 가리킨다. 《두보집(杜甫集)》 권19 〈봉화가지사인조조대명궁(奉和賈至舎人早朝大明宫)〉에 “대대로 칙서를 담당한 아름다움을 알고자 한다면, 지금 연못 위 봉황의 깃털을 보시게나.”라고 하였다.
[주-5] 은거(銀車)의 …… 바입니다 :
은거는 금은거(金銀車)의 줄임말이고, 창려는 당(唐)나라의 문장가인 한유(韓愈)를 가리킨다. 한유의 아들 한창(韓昶)이 집현전 교리(集賢殿校理)로 있으면서 서책을 교정할 때 ‘금근거(金根車)’를 ‘금은거’로 잘못 고치자, 사람들이 훌륭한 아버지를 두고도 그런 실수를 했느냐고 비웃었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說郛 卷36上 尙書故實》 여기서는 이관명 자신도 아버지 이민서(李敏敍)를 이어 대제학에 임명되었으나, 역량이 부족하여 한창처럼 아버지에게 누를 끼칠 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주-6] 이명(离明) :
세자인 경종(景宗)을 가리킨다. 숙종은 1717년(숙종43) 7월 19일에 세자에게 청정(聽政)하도록 명하였다. 《국역 숙종실록 43년 7월 19일》
병산집(屛山集) 제4권 / 소차(疏箚) 19수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문화연구원 | 황교은 채현경 오항녕 (공역) | 2015
辭大提學書
伏以臣祗受今十四日敎旨。以臣爲兩館大提學 o知成均館事者。臣聞命驚惶。精爽飛越。罔知置身之地。顧臣鹵莽。百無一取。而濫蒙洪造。叨竊淸顯。華貫膴仕。歷遍殆盡。涓埃未效。愧懼冞積。至於詞垣之任。尤不近似。非但臣自知甚明。人亦不以是期之。頃者提學除命。出於意外。而臣素乏定力。莫守非招不往之義。賦性懦弱。徒知分義之是懼。不得終始力爭。容易出脚。仍冒至今。畢竟以莫大之職。委之無用之臣。假借寵靈。玷辱名器。作爲四方嗤笑之資。非榮伊懼者。正臣今日道也。國家右文之治。最重詞翰之任。參一時之公議。取一代之髦士。需才儲望。 a177_082a循序漸進。至於文衡而止耳。士之負抱才學者。名實相符。地望素定。未授而人皆佇之。旣授而士無異論。然後可以展布所蘊。以贊王猷。今臣姿品魯鈍。工夫滅裂。粗習尋摘。積困公車。晩竊一第。舊業亡羊。在家譽乏鄕黨。登朝望輕儕流。况今衰暮之境。疾病侵陵。神精消耗。毁鐘不可使發聲。枯木不可使生華。而卒然置之於文苑之首。搢紳驚駭。章甫竊笑。臣心愧恥。固不足言。而上累則哲之明。下貽負乘之誚。豈細故也哉。臣本世家。致身卿班。一資半級。悉藉門蔭。今玆所叨。人亦指以箕裘之業。若使池上鳳毛。絲綸 o世掌。則豈不爲私門之榮。而銀車之譏。反出於文章之胄。則不肖之繼襲淸官。適足爲昌黎之羞。此尤臣之所大懼也。當今人才之盛。雖不古若。文學之兼臣數輩者。旣有若而人。曾經之臣。輿望所屬。而乃以臣苟然充位。是何異於代斲血指。而强僬僥以千匀之重乎。况今文風日衰。人心日渝。課試之製。漸就詭異。嘵嘵之說。易騰科後。居是任者。必也詞章爲一世歆艷。公正爲國人推重。然後詭異之文可變。嘵嘵之說可杜。而今臣文辭醜拙。方且見斥之不暇。誠信未孚。敢望多士之厭服乎。文衡國之重任。其得失關係非 o細。必有司直之論。而縮伏累日。尙未有聞。情窮勢蹙。計無所出。不得不刳肝瀝血。冒死陳懇。伏乞离明。俯察臣言之非出飾讓。特軫重任之不可輕授。將臣新授職名。亟賜遞改。回畀可堪之人。以重官方。以安微分。不勝幸甚。
병산집(屛山集) 제4권 / 소차(疏箚) 1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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