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 7년 전쟁후 조선
임진왜란, 정유왜란, 7년간의 전란으로 조선의 피해는 너무나 컸다.
인구도 줄어들고 국토도 크게 황페해졌다.
경지면적이 종전 3분의1 이하로 줄고 식량문제가 심각해졌다.
흉년과 질병까지 겹쳐지니 농민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조세의 징수로 활용되던 호구대장과 토지대장이 불타버려
나라의 재정이 어렵게 되었다.
노비문서가 불타버렸고 관직을 사고파는 것이 관행화 되었다.
상민이 양반이 되고, 노비가 상민으로 승격되어 혼란이 가중되었다.
경복궁이 불타버렸고,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가 소실되고,
많은 문화재의 손실이 컸다.
일본은 조선의 활자, 서적, 그림등 문화재를 약탈해갔다.
도자기 기술자들과 학자들을 납치해가
일본의 문화 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
왜란 후 국제정세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정세에도 큰변화를 가져왔다.
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정권이 무너지고
두쿠가와가 이끄는 막부정권이 들어섰다.
명나라도 임진왜란 때 따른 전비 지출과 상당한 인명손실로
급격히 국력이 약화 되었다.
인조 22년(1644)에 명나라는 멸망하고, 만주의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 왕조가 들어섰다.
조선은 왕조의 교체는 없었지만,
봉건왕조가 차츰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실학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전후 7년 전쟁을 승리 할 수 있었던 것은,
애국적인 민중과 군인, 농민과 노비, 유생과 승려,
양심적인 양반과 관료들까지 일치 단결한 힘이었다.
광산김씨 선조들도 살펴 본바와 같이 왜적을 몰아내는데,
생사는 뒷전이요, 우국충정으로 전력을 다하였으니,
선조들의 영광스러운 희생을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애국충심(愛國忠心)의 교훈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광산김씨약사
2023년 6월, 편집자, 선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