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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 여행] 연천 7경, 연천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옥녀봉 그리팅맨 외 필리핀 참전공원과 기황후 릉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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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 여행] 연천7경, 연천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옥녀봉 그리팅맨 외 필리핀 참전공원과 기황후 릉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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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누리길 13코스인 통일 이음 길은 군남홍수조절지~대광리역까지 19.8km에 이르는 고즈넉하면서도 아름다운 沿江
[연강] 자연 나룻길이 포함되어 있다. 그 길목에 연천 7경에 올라가 있는 그리팅맨이라는 이색적인 동상 하나가 하늘에서
옥녀가 내려와 노닐었다는 설화가 깃든 옥녀봉을 즈려밟고 서 있는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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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연강이 자욱한 안개를 토해 내는 날 이 옥녀봉에 오르면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 전성기에 그린 최고의 명작
羽化登船[우화등선]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옥녀봉은 연천의 7경에 이름을 올려놓을 만큼 큰 자랑이다. 또한 해 질
무렵 하늘금 석양이 아름다운 일몰 명소로도 유명한 옥녀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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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 뒤로 보이는 이 조각상은 인사를 건넨다는 뜻의 영어 단어인 그리팅과 사람을 뜻하는 맨이 합쳐진 '그리팅맨'이
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곳에 설치된 뒤 우루과이, 에콰도르 등 전 세계 곳곳에 잇따라 설치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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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팅맨. 유영호 작가의 작품으로 만남·존중·화해·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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羽化登仙[우화등선]을 한자로 풀이 하자면 문자 그대로 ‘羽[깃털 우]'는 가볍고 자유로운 날갯짓을, '化[변할 화]'는 애벌레
가 나비로 변태하듯 놀라운 변화와 성장을, '登[오를 등]'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상에 도달하는 상승을, '仙[신선 선]'은 속
세를 초월한 자유롭고 신성한 존재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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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나비가 날갯짓하며 하늘로 날아오르듯 속세를 벗어나 신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이 네 글자가 합쳐
져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우화등선'은 마치 玉女峰[옥녀봉]과 沿江[연강]이 만들어준 화선지에 그동안 꿈꿔왔던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는 것처럼 이상향으로 향하는 몽환적인 마법의 주문 같은 그림을 볼 수 있는 곳 玉女峰[옥녀봉]이 방문자들
에게만 주는 정상의 풍광이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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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평화 누리길은 옥계리에서 임진강을 따라 조성된 자연 친화적인 연강 나룻길이 13코스가 이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과 4km 떨어진 해발 205m의 옥녀봉에 설치된 그리팅맨은 인공 조형물로 10m 높이로 북녘을 바라보고 서 있으며 머
리를 15도 각도로 숙여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하는 거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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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우리 나라의 정서상 함께 인사를 나누는 것은 서로의 존중과 배려, 친화의 자세다. 작가[유영호/설치미술가]는 북한
정은이가 허락만 한다면 향후 임진강 건너편인 북녘땅, 황해북도 장풍 마량산에 그리팅맨이 건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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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나뉘어도 하늘은 하나, 평화를 향한 휴전선 아래 처음 길“
예전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던 곳이라는 범바위를 지나, 군남면 옥계리와 삼곶리 경계에 위치한 해발 205미터의 옥녀봉
에 오르면, 연천군 전 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으로는 산맥들이 휴전선을 향해 곧장 이어지며, 서쪽으로는 연천 평야
를 타고 휴전선을 넘어와 태풍전망대와 필승교를 지나 미수 허목이 잠든 무덤 앞을 흘러 삼곶리로 남하하는 임진강물이 푸
르게 흐른다.
그 강을 따라 민통선이 시작되고, 더 옛날에는 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이 땅을 빼앗기 위해 고구려 군이 남하하던 길목이기
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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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온 옥녀가 노닐었다는 전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멀리 우뚝 솟은 산성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북쪽 삭
녕(朔寧)에서 뻗은 산맥이 상리 솟을 봉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으로 내려온 산줄기에는 남자의 정기가 흐른다고 하여
군자산이라 하고, 오른쪽으로 내려와 끝에서 봉긋 솟아오른 봉우리에는 여자의 정기가 흐른다고 하여 옥녀봉이라 불렀다.
옛날에 선녀가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질 만큼 지역 주민들이 신성시했던 이 옥녀봉은 삼국시대부터 한국전쟁까지
치열한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그것은 옥녀봉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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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봉 정상에는 태뫼(머리띠)식 석축 성이 있었는데, 이것을 옥녀봉 산성 혹은 옥계리 산성이라 부른다. 6세기 이후 신라
가 쌓은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시대에는 주민들을 정착시키기 위한 읍성(邑城)과 비상시 도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
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 높지 않지만, 사방을 훤히 조망할 수 있는 망루의 필수 요건을 갖추고 있어 1차 방어선이 무너졌
을 때 후방을 지키는 2차 방어선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50만 년 전 이 땅에 인간이 처음 살기 시작한 이
래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어렵게 성취한 평화는 이내 탐욕과 정복욕으로 깨지고 침략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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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끝까지 이 땅을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진정한 한반도의 패자(覇者)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영웅의 역사는 언제나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삼국 간의 치열한 접전도, 신라와 당나라 사이의 지루한 줄다리기도,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분단의
비극도 모두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지금도 이 땅은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다. 발아래 강줄기는 나뉘었어도 고개를
들어 보면 하늘은 여전히 하나다. 휴전선을 넘어 남으로 유유히 달려 내려온 임진강 물길처럼, 서부 휴전선 아래 첫 '평화
누리길’인 이곳에서, 통일과 평화와 미래를 향한 첫걸음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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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옥녀봉은 북한과 4km밖에 안 떨어진 곳으로 해발 205m의 옥녀봉 정상이다. 헬기 착륙장 보이고 주변으로 깔끔
한 데크로까지 조성해 두었고 차량이 정상까지 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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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내판을 읽어보았다. 연천 9경 중 7경에 올라와 있는 그리팅맨(Greeting man)은 유영호 작가가 만든 조각상으로.
2016년 4월 23일 이곳 옥녀봉에 설치하였다. 조각상은 15도 각도로 고개와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은 서로에 대한 배
려, 존중, 평화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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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옥녀봉이 주는 풍광은 정말 대단하다. 그렇게 높지도 않은 산[205m] 임에도 불구하고 정상에 서면 연천군 전 지역
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권을 자랑한다. 특히 요즘같이 연두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계절이라면 자연은 더더욱 아름답다.
싱그러운 5월의 山河[산하]! 1년 중 산하의 색은 언제 가장 예쁠까? 하고 묻는다면 유랑자는 신록이 한창인 5월의 山川[산
천]이라 생각한다. 옅은 연두, 짙은 연두, 연초록, 초록, 진초록 등 다채로운 초록빛이 향연을 이룬 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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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호 작가는 서울대 미술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설치미술가로 활동 중이다. 그의 꿈은 전 세계 분쟁지역이나 여러 의
미가 담긴 지역에 그리팅맨 1,000개를 세운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싶어 한다. 연천에 세워진
그리팅맨도 남북 평화의 상징물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작가의 소원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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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색이 연중 유달리 예쁠 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인 여름 산은 짙푸른 綠陰[녹음] 뿐이다.
또한 한해 임무를 다한 잎이 시드는 가을에는 자연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나무가 예쁘다, 산의 색이 고운 것은 이때가 아닌
가도 싶다. 그리고 겨울 설산이 멋진 것은 정갈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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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유랑자는 이제 잠시 전망대에 서서 산 멍에 빠져본다. 그런데 유랑자만 산 멍을 때리는 게 아니고 여기 올라온 관
광객 모두가 임진강이 그려낸 옴팡진 풍광에 빠진다. 그야말로 一望無際[일망무제]의 초록빛 바다를 바라보며 이유 없이
멍때린다. 능선들이 연꽃잎처럼 펼쳐지고, 그 가운데 임진강[沿江[]이 담겨있다. 동서남북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산군들의
뒷모습과 멀리 아련한 하늘 금으로 이어진 실루엣들은 감동의 크기와 깊이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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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하는 사람(그리팅맨)
'나는 그리팅맨(인사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취하고 있는 자세는 한국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인사를 할 때 행하는 자세입니
다. 인사는 모든 관계의 시작입니다. 만일 우리가 길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 인사 없이 지나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서로 인사를 나누면 관계가 만들어지고 친구가 됩니다. 인사는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 서로 다른 정
치적 신념이나 종교, 국가와 인종의 벽을 넘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작점이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
이고 문화적인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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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자연, 우주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과의 관계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2012년 한국
으로부터 지구의 정 반대편에 있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처음 세워져 우루과이 사람들에게 인사의 진정한 의미를 전하
고 있으며, 한국의 양구 해안 마을과 제주도의 서귀포에도 서 있습니다. 그리고 곧 멕시코와 페루, 브라질 등 북, 중남미는
물론 실크로드와 아프리카, 유럽 대륙에도 세워져 한국의 인사가 가진 겸손과 존중,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예정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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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한반도의 중심이자 선사시대로부터 우리 역사의 중요한 무대였던 연천에 왔습니다. 특히 제가 서 있는 옥녀봉은
예로부터 신성시되던 장소로서 옥녀봉을 차지한 자가 한반도를 지배한다는 역사적인 요충지이자 50만 년 전 한반도에 사
람이 살게 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반도의 역사를 기억하는 땅입니다.
삼국시대 각축의 중심지로서, 현대 한민족의 비극이자 아픔이라 할 수 있는 한국전쟁의 고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조국의
분단된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습니다. 남북의 화해는 서로가 진심으로 인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시작된다고 믿습니
다. 그리고 인사하는 마음은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의 마음이자 세계인에게 전하는 인류 평화를 위한 강렬한 희망의 노래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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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봉에 서면 남과 북으로 조국의 산하가 파도처럼 펼쳐지고 사방으로 열려 거침없이 뻗어가는 장쾌한 기상을 몸으로 느
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늘로 열린 명당 옥녀봉에서 나는 앞으로 지구상의 여러 장소에서 세워지게 될 그리팅맨의 중심
으로서 세계를 연결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겸허한 자세로 인류와 우주를 향해 깊은 감사의 마음과 평화의 인사를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2016년 4월 23일 작가 유 영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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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넘어 북녘땅과 불과 4km 떨어진 산마루에 세운 조각상, 그리팅맨이 팔을 몸에 붙이고, 고개를 숙인 각도는 15
도이다. 이 각도는 자신을 낮추면서도 비굴하지 않게 가장 정중히 예의를 표시하는 자세이다.
인사를 통해 남과 북이 대립을 멈추고 화합의 길을 가자는 염원을 작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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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초록 바다는 沿江[연강]의 물길과 숲, 하늘이 색상의 모두를 담아내며 빛난다. 이는 자연의 빛깔이 빚어낸 마법이다.
사방으로 앞이 탁 트인 옥녀봉의 풍광, 그리팅맨의 언덕 그 그늘에서 미풍에 실린 연초록이 품어낸 향을 맡노라면 어느새
마음도 잔잔한 호수처럼 평상심을 찾게 된다.
이렇게 자연의 빛깔이 빚어낸 마법들을 보고 있노라면 羽化登船[우화등선]의 주인공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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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中何所有[산중하소유] 산중에는 무엇이 있을까?
嶺上多白雲[영상다백운] 산마루 흰 구름 많이 머물러 있구나
只可自怡悅[지가자이열] 다만 나 홀로 즐길 수 있을 뿐
不堪持寄君[불감지기군] 그대에게까지 바칠 수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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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언젠가 북쪽에도 남녘을 향해 인사하는 조각상과 마주 서게 되기를, 서로 어깨를 나눠 남과 북을 잇는 교두보가
될 수 있기를, 북녘을 향해 고개 숙인 그리팅맨은 오늘도 이런 꿈을 꾸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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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의 정서와 딱 맞아떨어진 기가 막힐 시문이다. 이시는 구곡산에 은거하며 한나라 황제 武帝[무제]가 조정으로 돌아
와 자신을 보필해 달라고 간곡하게 부름에도 불구하고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던 남북조시대 도홍경이 읊은 시문이다. 유랑
자가 좋아하는 시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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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제천 여행에서 어느 암자 주련에서 본 기억이 있다. 유랑자의 삶이 참으로 부끄럽고 또한 도홍경이 부럽다.
그렇다 시시때때로 벗들과 차를 나누고 때론 술잔을 기울이니 그까짓 세상일 알아서 무엇 하랴? 세월 따라 늙어가며 현재
를 즐길 뿐. 그것이면 족할 것이다. 유랑자가 원하고 바라는 念願[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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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팅맨 찾아가기
주 소: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옥계리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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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필리핀 참전 공원
6.25 전쟁사에서 잊혀선 안 될 영웅들이 있다! 6.25당시 서부전선에서 장렬히 싸웠을 뿐만 아니라 오늘의 유랑자를 있게
한 영웅들을 기리는 곳 '필리핀 참전 공원'을 지나는 길에 잠시 들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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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은 1950년 9월 20일 한국에 연인원 7.148명을 파병해 아스널-이리고지 전투·백석산-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등에서
대활약했고, 이 과정에서 112명이 희생되었고 부상 299명. 실종 16명의 전사자가 발생 하였으며 41명의 포로도 발생했다. 필리핀 참전비는 필리핀군이 행한 전투 중 가장 큰 전투인 율동 전투(1951.4.22. / 중공군 34사단 병력의 공격을 대대
급 병력으로 격퇴) 의 승리를 기념하고자 연천군에서 1966년 4월 22일 3.4m의 높이로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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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필리핀'이라는 국가는 평소에도 크게 생소하다고 느껴지지 않은 동남아시아 국가로 유랑자 또한 필리핀 여행을 한
기억이 있다. 필리핀은 오늘날도 다양한 관광지로 우리 내국인들도 해외 여행지로 종종 찾는 유명한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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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필리핀은 유명한 '해외관광지'이기도 하지만, 同族相殘[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시작된 '6·25전쟁'과도 매우 연관이
깊은 나라 중 하나이다. 바로 미국과 영국에 이어 6·25전쟁이 발발하고 세 번째로 파병을 온 고마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필리핀 참전 공원에 대한 안내와 '필리핀'이라는 국가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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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참전비'는 국가보훈처에서 정식으로 지정한 '국가 현충 시설'이다. 비슷한 장소로는 경기도 고양시 관산동에 있는
'필리핀군참전기념비'를 꼽을 수 있다. 필리핀군의 6·25전쟁 참여사와 그 활약, 값진 희생은 이렇게 경기도권에서 많이 찾
을 수 있다. 당시 치열했던 '서부전선'에서 장렬히 싸우고 산화해 간 필리핀군은 총 7천148명을 파견해 준 고마운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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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군은 파병 규모도 규모이고, 미국과 영국에 이은 아시아 국가 중 최초의 파병 국가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 필리핀은
미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어수선한 정국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당당히 자신들을
희생해 준 고마운 나라였음을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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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군의 다양한 활약상은 6·25전쟁을 기록해 둔 다양한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1951년 4월 22일부터
23일까지 펼쳐진 '율동 전투'를 꼽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아스날&애리고지 전투와 백석산&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등 굵직
굵직한 전투에서 당시 중공군의 공세를 격퇴한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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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군은 이렇게 율동 전투를 비롯하여 여러 전투 및 작전에 투입되는 과정 중 많은 희생에 따른 인명피해가 발생하였
다. 이런 희생과 노고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대통령 부대 표창 3회, 을지무공훈장 8회 등이 수여되었다. 국난의
시기, 자국의 어려운 정세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위해 파병을 아끼지 않은 필리핀에 존경의 마음을 표하게 됩니다.
참전비는 필리핀 참전 공원 내에 위치해 부담 없는 방문이 가능하고, 경원선 신망리역 1.5㎞ 내에 위치해 연천 여행 시 한
번쯤 들러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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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참전비 찾아가기
주 소: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상리 산2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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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傳) 기황후릉 터
유랑자는 2013년 MBC에서 방영되었던 ‘기황후’라는 드라마를 본 기억이 있다. 당시 공녀로 끌려간 기황후에 대해서는 특
별한 관심이 없는 터였음에도 불구하고 기황후라는 드라마를 거의 다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기황후의 능 터
가 연천에 있다. 이 또한 궁금해서 유랑자가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전(傳), 즉 전해온다는 의미의 한자가 붙은
것처럼 이곳이 기황후 능이 있었다는 사실은 명확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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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황후는 행주 기(奇) 씨이며 고려 출신 공녀로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혜종의 황후이다. 기황후는 원이라는 대제국을 무려
37년간 지배하였다. 기황후는 출생과 사망 시기가 전해지지! 않는다. 고려 출신의 환관 고용보의 추천으로 궁녀가 되었다
가 황후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는 기록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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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종은 기씨를 총애하여 황후로 삼고자 하였으니 조정 대신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가 후에 황태자를 낳자, 제2 황후로 책
봉하였다. 기황후는 혜종의 총애를 바탕으로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아들을 황태자에 오르게 하고 군사권도 장악하여 승
승장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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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기황후가 원나라에서 권세를 휘두르게 되자 고려에 남아있던 기 씨의 친족들도 공민왕에 의해 모두 숙청되었다. 이
에 기황후는 공민왕을 폐하고자 군사를 일으켜 고려를 공격하였으나 최영 장군에게 대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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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원나라에서는 기황후를 위시한 황태자파와 반대파 사이에 정쟁이 벌어지고 결국 반대파를 숙청했다. 황후가 죽자, 기
황후가 정후가 되었으나 황태자의 황위 계승을 둘러싼 정쟁으로 원의 국력은 급격하게 쇠퇴하였다. 기황후능 터를 가기 위
해서는 연천군 상리를 가야 한다. 필리핀 참전비가 있는 도로에서 맞은편 길로 1.2km쯤의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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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황후능 터가 있는 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꼬불꼬불하고 좁은 차도를 아슬아슬하게 거쳐야 한다. 전신주 옆 팻말 앞에 밭
과 밭 사이에 차 한 대가 간신히 멈추고 돌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곳에 차를 세우고 팻말 좌측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기
황후능 설명한 안내문이 보이고 소나무를 심어놓은 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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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아래가 능 터이다. 안내문 아래에 있는 무덤들은 기황후 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보통 일반인들 무덤이다. 그래
서 사실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야트막한 산의 한 부분일 뿐이다. 전 기황후능 터는 2013년 11월 25일
연천 향토 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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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동국 여지지] 등의 기록에 ‘기황후는 죽기 전 고국에서 장례 치르기를 원하여 이곳 연천 현에 장사하였다’
라고 전한다. 현재, 능의 형태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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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기록과 더불어 이곳 능선 아래쪽에 기와 파편이 다수 보이고 능의 석물로 보이는 석수 2점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
곳 능선에 남향하여 능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이곳에서 발견된 석수(석양)들은 현재 연천군 문화원 정원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연천 읍내에 있는 연천군 문화원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앞마당에 석양이 소박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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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 문화원에 전시해 둔 것으로 보아 전 기황후 릉 터는 결정적인 스모킹 건은 없지만 어느 정도 그 신빙성을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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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문화원 화단에 있는 원나라 기왕후 능 터의 석양이다. 이 석양은 연천읍 상리 제궁마을에서 2015년 3월 3일에 수습하
였다. 석양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많은 행주기씨 종중의 후손들이 많은 수고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기황후에 대하여서는 전문가들조차 많은 이야기가 서로 대립하는 부분이 많다. 이는 기씨 가문과 학자들과 더 많은 연구와
많은 합의점을 도출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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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傳) 기황후릉 터 찾아가기
주 소: 경기 연천군 연천읍 상리 산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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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팅맨 찾아가기
주 소: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옥계리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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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참전비 찾아가기
주 소: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상리 산2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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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傳) 기황후릉 터 찾아가기
주 소: 경기 연천군 연천읍 상리 산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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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관광은 이곳에서 : https://www.yeoncheon.go.kr/tour/index.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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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전화 : (031) 839 - 2114(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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