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5일
제목 강보에 싸인 아기
본문 눅 2:1-14
성탄절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온 성도님들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그분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풍성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누가는 아기 예수가 탄생한 때를 소상하게 기술합니다. 태어난 예수님이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사실에 강조를 두고 있습니다. 강보에 싸인 아기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요?
예수님은 구세주가 틀림없습니다
천사는 목자들에게 나타나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있는 아기”가 구주라는 사실을 전해주었습니다. 목자들은 표적을 구하지 않았는데도 표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표적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있는 아기"를 보리라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천사들의 전해준 말대로 베들레헴의 구유로 나아갔습니다. 구유의 모습은 초라하지만 기쁨의 근원이신 주님을 발견하는 소중한 곳이 되었습니다. 목자들은 확실한 표적을 통해 의심 없이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를 드렸습니다.
이 아기는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임이 틀림없습니다. 그 아기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있으므로 증명했습니다. 이 땅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으려는 자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잉태할 때부터 구주임을 증명하였습니다. 그가 공생애를 사는 동안 많은 표적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주임을 증명하였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빚으신 일로 시작하여 오병이어의 기적, 중풍병자를 걷게 하심, 바다를 명령하고 물 위를 걸으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셨습니다. 마침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주임을 확증하였습니다. 이러한 표적들은 우리의 믿음을 위한 하나님의 증거였습니다.
목자들은 강보에 싸인 예수님을 구주로 확신하고 경배하였고, 동방박사들은 별빛의 인도를 받고 아기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며 경배하였습니다. 우리도 아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주이심을 믿고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본래 죄인에게는 기쁨이 없습니다. 탄식과 고통이 따릅니다. 죄는 대통령, 장관, 군대의 사령관이든 상관치 않고 형벌을 면제해주지 않습니다. 애굽의 바로는 왕궁에 살았어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도 왕궁 호화로운 침대에서 누웠지만 죄의 무게에 짓눌려 잠들지 못하며 괴로워하였습니다. 죄로부터 자유로운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는 사람이 스스로 죄를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다른 종교로도 안 됩니다. 사람은 죄로 인하여 어찌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죄로 인하여 슬픔과 고통을 겪는 인생들에 기쁜 소식을 준비하였습니다. 눅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를 이 모든 죄에서 자유롭게 하는 기쁨의 소식입니다. 구유에 누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목자들만 아니라, 온 백성들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이 기쁨의 좋은 소식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탄절에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고 노래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분입니다. 성탄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죄 사함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시다
예수님의 출생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입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 되십니다. 당시 로마의 왕은 아구스도입니다. 당시 팍스로마나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로마군이 가는 곳에서 반란이 진압되고 평화가 임했습니다. 미국이 세계 분쟁지역에 평화유지군이라는 이름으로 군인을 파병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기의 힘일 빌려 얻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군사력으로 유지된 일시적 평화였습니다.
사람은 정치적 평화, 경제적인 안정만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심령은 목마르고, 심히 어둡습니다. 그러한 인생들에 하나님께서 진정한 평화의 선물을 내려 주셨습니다. 바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진정한 평화는 구유에 누우신 예수님에게서 나옵니다. 예수님은 심령과 삶을 변화시키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엡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사9:6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라고 반복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평화를 선물해 주심을 감사하십시오. 머리가 무겁고 마음이 답답할 때 예수님께 평화를 부탁하십시오. 땅에 사는 동안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일상에서 만나주시는 분입니다
목자들이 아기 예수님 탄생 소식을 들을 때는 언제일까요?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라고 했습니다. 일상의 일을 하고 있던 때입니다. 예수님을 특별하신 분이지만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 찾아오시고 만나주십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와 마리아에게 천사가 찾아간 때도 일상적인 일에 종사하고 있을 때입니다. 누가는 특별히 이러한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유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이신 높으신 분께서 우리의 작아 보이는 일상적인 삶의 현장에서 만나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찾아오시고 도우시고 일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을 때, 세리 마태는 세관 앞에서 부르셨습니다. 평범한 일터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은 깊은 기도와 묵상 속에서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이뤄짐을 배웁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우리 일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경험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직장, 가정, 심지어 고단한 일상에서도 만나주십니다. 일상의 삶 속에 깊숙이 개입하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분을 믿고 기쁨과 평화를 누리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여러분의 일상에서도 함께하심을 경험하며 일상을 특별한 날로 살아가십시오. 성탄의 기쁨이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