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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12회 2016.5.24.MP3
장소: 전북 익산 원광대학교 교학대학 1층 세미나실 일시: 2016년 5월 24일(화,오후 1시 15분~ ) 강사: 곽준(묘원 법사님)
교재 : 사념처 명상의 세계(도서출판 행복한숲 刊)
3) 마음의 작용(cetasika)
오온의 색온(色蘊)은 물질이며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은 마음의 작용이고 식온(識薀)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마음의 작용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똑같이 마음의 작용이 없어도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과 마음의 작용은 바늘과 실처럼 서로가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각각의 기능을 합니다.
이 둘의 관계를 왕과 신하라고도 합니다. 왕이 있는 곳에는 항상 신하가 있듯이 마음과 마음의 작용은 왕과 신하처럼 함께 있으면서 각각의 역할을 합니다. 마음이 모든 것을 이끌기 때문에 마음을 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작용은 마음에 의해서 일어나서 여러 가지 일을 하기 때문에 신하라고 합니다. 왕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신하가 일을 다 하듯이, 마음은 비물질이라서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왕은 결제만 하고 신하가 모든 일을 하듯이 마음과 마음의 작용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의 작용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의 작용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마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할 때도 이 마음의 작용을 함께 알아차리지 않고서는 바르게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할 때 마음을 알아차리기도 하고 수, 상, 행인 느낌과 인식과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도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마음의 작용을 빨리어로 ‘쩨따시까(cetasika)’라고 합니다. 쩨따시까는 마음에 속하는 것, 또 마음의 작용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주석서에서는 마음의 작용에 대하여 “마음과 함께 있으면서 그것에 의지하기 때문에 마음의 작용이라고 한다”라고 했습니다. 마음은 마음의 작용이 없으면 일어나지 못하고, 마음의 작용은 마음이 없으면 일어나지 못합니다. 이처럼 마음과 마음의 작용은 상호의존적인 관계로 함께 일어나서 함께 사라집니다.
마음이 앞서서 모든 것을 이끌지만 마음의 작용이 없으면 이끌 것이 없어서 마음이 기능을 하지 않습니다. 마음과 마음의 작용이 서로가 하는 역할을 보면 두 가지가 의존하면서 작용하지만 기본적인 요소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정신과 물질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작용은 마음이 의지해서 대상을 인식하도록 돕습니다. 그러니까 느낌이 일어날 때 동시에 느낌을 아는 마음이 함께 일어나는 것입니다.
누구나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시대에 붓다께서 혜안으로 마음에 대해 통찰하신 뒤에 마음과 함께 있는 마음의 작용을 찾아내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비물질인 마음에 대한 것도 알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마음에 소속되는 마음의 작용이 있는 것을 안 것은 붓다의 위대한 지혜가 아니면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붓다께서 열반하신 뒤에 인도를 지배한 미란다 왕과 당시의 아라한이신 나가세나 존자와의 대화에서 나가세나 존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붓다께서 마음의 작용인 수, 상, 행을 밝힌 것은 갠지스 강에 있는 물을 한 움큼 손에 쥐고 이 물은 히말라야의 어느 골짜기, 어느 골짜기에서 모인 물이라고 밝히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강물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식별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골짜기에서 흘러나온 물을 보고 어느 어느 골짜기라고 밝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가세나 존자는 그 물이 흘러나온 골짜기를 모두 밝히는 것보다도 마음의 작용인 수, 상, 행을 밝히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말이 주는 의미가 매우 큽니다. 붓다께서는 마음은 물론 마음의 작용까지 완벽하게 밝히셔서 바로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신 붓다가 되셨습니다.
붓다께서 일체를 알았다고 말씀하신 그 일체는 사실 정신과 물질에 관한 것입니다. 수행자의 대상이 오직 정신과 물질에 관한 것이라면 바로 수, 상, 행의 마음의 작용에 대해서 아는 것이 일체를 알았다는 것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 상, 행을 모르고서는 일체를 알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마음의 작용은 마음과 함께 오온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마음의 작용인 수, 상, 행은 모두 52가지입니다. 그런데 단지 52가지가 있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이것들이 서로 결합을 하면서 여러 가지의 계층으로 나타납니다. 수, 상, 행이 서로가 조화를 이루면서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것은 마음의 작용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청정도론에서는 마음의 작용을 두 가지의 상호보완적인 측면에서 조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결합의 방법입니다. 이것은 마음의 작용이 다른 어떤 마음과 결합하는가를 밝힌 것입니다. 둘째는 조합의 방법입니다. 이것은 마음이 어떤 마음의 작용과 연결되어 있는가를 밝힌 것입니다. 이처럼 오온의 식이 수, 상, 행과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규명하는데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정의합니다. 이것은 마음과 마음의 작용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설정입니다.
첫째, 결합의 방법에서 결합의 특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청정도론에서는 마음의 작용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마음과 함께 일어나고 함께 사라지며 동일한 대상을 가지고 동일한 토대를 가지는 마음과 결합된 52가지 법을 마음의 작용이라고 한다.”
이 내용은 마음의 작용에 대한 모든 것을 밝히는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주석서에서 밝힌 이상의 내용이 무슨 말인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마음과 마음의 작용은 함께 일어나고 함께 사라진다는 것은, 마음이 일어났는데 마음의 작용은 나중에 일어나거나 뒤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라질 때에도, 마음이 사라질 때 마음의 작용은 남아 있지 않고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에 함께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모두 함께한다는 뜻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마음이 일어날 때 느낌도 함께 일어납니다. 마음이 일어날 때 지각, 인식도 함께 일어납니다. 마음이 일어날 때 의도도 함께 일어납니다. 그래서 식이 일어날 때 수, 상, 행도 함께 일어나서 함께 소멸하는 것입니다. 단지 마음과 마음의 작용이 서로 다른 기능을 할 뿐이지, 우리가 산다는 것이나 우리가 안다는 것은 다섯 가지[色․受․想․行․識]의 무더기들이 결합되어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먼저라고 하거나 무엇을 나중이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연기에서 정신과 물질의 열두 가지를 말할 때는 원인과 결과를 밝히기 위해서 선후를 구별했지만 실제로 본 오온은 항상 함께 일어나서 함께 소멸합니다.
다음으로 동일한 대상을 갖는다는 것은 육문(六門)인 안, 이, 비, 설, 신, 의와 육경(六境)인 색, 성, 향, 미, 촉, 법이 부딪힐 때 마음과 마음의 작용은 같은 대상을 가지고 함께 일어나서 함께 소멸합니다. 마음이 눈을 통하여 아는 마음이 일어났을 때 이때 마음의 작용이 다른 것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오직 눈이 대상을 알도록 함께 작용을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서로가 협동하여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일한 대상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마음과 마음의 작용이 이렇게 함께 일어나서 함께 사라지며 동일한 대상을 갖는 배경에는 마음에 대한 일정한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기준을 전제로 할 때 마음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질 것입니다. 그 기준을 다시 한 번 요약해 보겠습니다.
첫째, 마음의 기준이란 마음이란 대상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이건 마음이 일어나면 반드시 대상이 있기 마련입니다.
둘째, 아는 마음의 대상은 현재의 몸과 마음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하지만 마음의 대상은 현재의 물질과 정신뿐만 아니라 과거의 것들까지 그리고 미래의 것들까지 대상으로 삼습니다.
셋째, 마음은 한 순간에 두 가지 대상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것을 동시에 알지만, 사실은 한 순간에 하나밖에 갖지 못하기 때문에 한 순간에 하나만 압니다. 동시에 여러 가지를 아는 것은 마음이 빠르게 이동하면서 아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동시에 아는 것 같지만 모든 것에는 선후가 있습니다. 그래서 붓다께서는 “한 번에 모든 것을 알고, 한 번에 모든 것을 본다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없다.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바로 아는 것이 마음의 실제며, 이렇게 마음이 찰나생 찰나멸 하는 것을 알아야 비로소 무아의 지혜가 납니다.
넷째, 마음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순간은 물질이 한 순간에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의 17배나 빠릅니다. 다시 말하면 물질이 한 번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순간에 마음은 17번이나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몸이라는 물질도 그냥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매순간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몸과 함께 있는 마음도 똑같습니다. 그러나 속도가 다릅니다.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속도는 이처럼 몸에 비해 매우 빠릅니다. 그래서 혜안이 없으면 마음을 이해하기가 어렵고 알기도 어렵습니다. 바로 붓다께서 최고의 지혜가 나셔서 안 것이 마음이 찰나생 찰나멸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마음은 빛의 속도보다 100만 배나 빠르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청정도론에서 밝힌, 마음이 동일한 토대를 갖는다는 것은 마음이 같은 토대를 갖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토대라는 것은 땅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근거하는 것, 기초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안이비설신’은 몸을 토대로 일어나고, 의(意)는 심장을 토대로 일어납니다. 동일한 토대를 가졌다는 것은 마음이 눈을 토대로 작용하면 마음의 작용도 눈을 토대로 작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마음이 눈을 토대로 아는 작용을 하는데 마음의 작용은 다른 것을 바탕으로 삼아서 작용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감각기관인 의가 심장을 토대로 한다는 것은 심장에서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어느 것을 토대로 일어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지 반드시 심장이 있어서 마음이 생겼다는 것을 규명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마음은 몸과 함께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이해가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마음과 결합된다는 것은 지금까지 설명한 네 가지 조건들이 결합하여 마음의 작용이 마음과 함께 일어나고 함께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함께 일어나서 함께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과 마음의 작용뿐만 아니라 오온(五蘊)의 질서입니다. 마음과 마음의 작용과 물질인 오온은 함께 일어나서 함께 사라집니다. 여기서 함께 일어나서 함께 사라진다는 것은 동일한 시간에 일어나서 동일한 시간에 사라진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이 한 순간에 한 번 일어나서 사라질 때 마음은 17번이나 일어났다 사라지기 때문에 그 시간이 똑같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똑같이 일어나서 똑같이 사라진다고 하지 않고 함께 일어나서 함께 사라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은 저마다의 특성이 있어서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만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만은 언제나 변하지 않고 동일합니다. 바로 여기서 무상, 고, 무아의 법이 엿보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동일한 조건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연속적 현상이 바로 무상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괴로움을 줍니다. 왜냐하면 변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들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무아의 법입니다.
마음의 작용인 수, 상, 행은 52가지인데 이것들을 크게 분류하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다른 것과 연관된 마음의 작용은 13가지입니다. 둘째, 선하지 못한 마음의 작용은 14가지입니다. 셋째, 깨끗한 마음의 작용은 25가지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52가지입니다.
첫째, 다른 것과 연관된 마음의 작용은 13가지입니다. 이것을 다시 분류하면 모든 마음과 연관된 마음의 작용 7가지와 다양하게 결합하는 연관된 마음의 작용 6가지로 나눕니다. 다른 것과 연관된 마음의 작용은 다른 것과 같아지는 공통된 마음의 작용을 말하며, 다양하게 결합하는 연관된 마음의 작용은 때때로 나타나서 다른 것과 결합하는 마음의 작용을 말합니다.
둘째, 해로운 마음의 작용은 14가지로 분류합니다. 모든 해로운 것과 연관된 마음의 작용 4가지와 다양하게 연관된 해로운 마음의 작용 10가지입니다.
셋째, 깨끗한 마음의 작용은 모두 25가지입니다. 이것을 다시 분류하면 깨끗함과 연관된 마음의 작용 19가지와 절제 3가지, 무량 2가지, 어리석음 없음 1가지입니다.
이상의 마음의 작용이 모두 52가지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작용 52가지 중에 수와 상은 하나씩이고, 행이 50가지입니다. 수, 상, 행이 모두 마음에 속하는 마음의 작용인데 행이 50가지인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사실 수(受)와 상(想)의 그 수효를 구분하기에는 너무 종류가 많습니다. 그리고 구분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냥 수(受)와 그냥 상(想)이라고 하고, 마음의 의도인 행(行)을 50가지로 분류해서 모두 52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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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작용은 세 가지 그룹이 있는데, 이 그룹은 각각의 특색이 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인 다른 것과 연관된 마음의 작용은 언제나 항상 있는 기본적인 마음의 작용입니다. 이 기능이 없으면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선하고 선하지 않고의 문제를 떠나서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의 작용입니다. 다음에 다양하게 결합하여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이 있습니다. 이것은 때때로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으로 일어날 때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때도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일어날 조건이 성숙되면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을 때때로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그룹은 선하지 않은 마음의 작용입니다. 선하지 않은 마음의 작용은 불선한 마음의 작용을 말합니다. 이것도 역시 항상 있는 해로운 마음의 작용과 다양하게 결합하여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이 있습니다. 항상 선하지 못한 마음의 작용은 자신의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는 축적된 성향입니다. 이러한 선하지 못한 과보심이 마음에 작용해 저장되어 있다가 조건이 성숙되면 나타납니다.
세 번째 그룹은 깨끗한 마음의 작용입니다. 깨끗한 마음의 작용이라 하는 것은 선하고 빛나고 청정한 마음의 작용을 말합니다. 이것도 역시 항상 있는 깨끗한 마음의 작용과 다양하게 결합하여 나타나는 마음의 작용이 있습니다. 항상 있는 깨끗한 마음의 작용도 자신의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는 축적된 성향입니다. 이러한 선한 과보심이 마음에 작용해 저장되어 있다가 조건이 성숙되면 나타납니다.
마음의 작용을 세 가지 그룹으로 나눌 때 기본적으로 항상 다른 것과 연관된 마음의 작용과 선하지 못한 마음의 작용과 깨끗한 마음의 작용이 있습니다. 깨끗한 마음의 작용이란 선한 마음의 작용을 말합니다. 이상의 세 가지 그룹은 다시 항상 있는 것들과 다양하게 결합하여 나타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수행을 한다는 사실은 기본적으로 항상 다른 것과 연관된 마음의 작용을 튼튼히 하고, 선하지 못한 마음의 작용보다는 선한 마음의 작용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의 작용을 받아들여서 아는 마음도 함께 청정해집니다.
마음의 작용 52가지를 세 그룹으로 만들어서 차례로 말씀드리고, 다음에 각각의 마음의 작용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을 말하기 전에 논장에 있는 이러한 분석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붓다께서 설법하신 논장에 있는 정신과 물질에 대한 분석은 오직 수행자의 이익을 위해서 설하신 것입니다. 불교의 모든 것은 오직 수행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학문적인 분석을 위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은 이러한 분석의 의미를 새겨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지나칠 것은 그냥 지나쳐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려고 하면 수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인지 살펴보고 선택을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모른다고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는 안 되며, 몰라도 그냥 진도가 나가야 됩니다.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석서인 청정도론과 아비담마 결집서를 보면, 정신과 물질을 알아차릴 때 이것들의 이름, 숫자, 물질의 분자, 끊임없이 일어나는 과정을 명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런 분류는 단지 이해를 돕는 데 필요한 것이지 그것 자체가 진리는 아닙니다. 만약 이렇게 알아차리면 대상의 이름, 숫자, 물질, 과정에 대한 개념이 생길 수 있습니다. 만약 개념으로 대상을 알아차리면 대상의 실재하는 성품을 알 수가 없어서 결국 법을 볼 수가 없습니다. 법을 보지 못한다면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은 항상 대상의 실재하는 현상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관념입니다. 그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실재하는 내용이 중요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오직 정신과 물질을 알아차리는 수행이고, 이러한 정신과 물질을 알아차릴 때는 그 특성과 역할과 나타남과 가까운 원인을 아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그래서 주석서에서는 대상의 실재를 알게 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정신과 물질에 대한 특성, 역할, 나타남, 가까운 원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행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이상 네 가지로 대상을 알아차리면 대상의 실재를 구체적으로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말고 이것에 주목하십시오. 그래서 주석서에서 밝힌 이러한 요점을 파악하여 대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대상의 특성, 역할, 나타남, 가까운 원인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여기서 요점정리를 하여 대상을 파악하기 바랍니다.
첫 번째 그룹인 다른 것과 연관된 마음의 작용은 열세 가지입니다. 다른 것과 연관되었다는 것은 선업과 불선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그것과 같아진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작용을 이해할 때 그냥 마음의 작용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것과 함께 있으면서 다른 것과 연관된 마음의 작용이 있습니다.
선한 마음의 작용인 수, 상, 행이 일어날 때마다 이런 마음의 작용이 선한 마음과 결합이 됩니다. 그래서 어떤 느낌을 갖느냐에 따라 어떤 마음이냐가 결정되며, 어떤 인식을 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마음이냐가 결정되고, 어떤 의도를 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마음이냐가 결정됩니다. 마음은 대상을 아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마음의 작용이 선하면 이것을 받아들여서 선한 마음이 되고, 선하지 못한 마음의 작용이 있으면 이것을 받아들여서 선하지 못한 마음이 됩니다. 여기서 신하가 일을 잘해도 왕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신하가 일을 잘못해도 왕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처럼 깨끗한 마음의 작용일 때는 선한 마음과 결합하여 나타나며, 해로운 작용일 때는 선하지 못한 마음과 결합하여 나타납니다. 그리고 선과 악에 속하지 않고 설명될 수 없는 마음의 작용일 때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과 결합하여 나타납니다. 이때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작용을 무기(無記)라고 합니다. 무기라는 것은 단지 선과 불선이 아닌 마음의 작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나태하여 무기력한 상태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때 무기를 게으름과 혼침이 아닌 무기명이라고 할 때 무기라는 뜻으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마음의 작용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마음은 단지 받아들이는 기능밖에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마음은 실로 청정합니다. 어느 의미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모든 것들을 수용하는 하늘과 땅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좋은 느낌일 때는 마음의 상태가 좋습니다. 이러한 상태를 알아서 우리는 수, 상, 행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정신과 물질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이 기능들이 작용하는 것을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몸과 마음이 있어서 사는지를 압니다. 이때 몸은 마음이 머무는 장소이고, 마음은 단순하게 대상을 아는 기능밖에 갖지 못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내가 산다는 것의 상당 부분은 바로 마음의 작용인 수(受), 상(想), 행(行)이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이 수, 상, 행이 어떻게 작용해서 살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어떻게 사는가를 분명하게 아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가지고 사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온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사는지 잘 모릅니다. 이제 내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과 마음의 작용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인 동굴을 탐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부터 자신의 내면에 있는 동굴을 탐험해 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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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법문 감사히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