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오늘 하루
직장 후배의 아들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암울한 드라마가 펼쳐지는 징조를 연상하며, 하늘은 낡은 볏집단을 포기 포기 엮어 놓은듯 거므스레 을씨년스럽다. 아니 이젠 봄이라면서?
아침 찬바람에 부슬거리는 빗방울이 차창에 부딧쳐 차갑게 흘러내린다. 바라다보는 차창밖 풍광은 봄기운에 물기 젖은 짙은 안개가 산허리감은 모습이다.
창밖에 스쳐가는 화사한 봄꽃들을 기대했지만, 이따끔씩 눈에 띄는건 빗속 운무에 가려진 빛바랜 매화나무 꽃들뿐이다.
옛사람 같이 길흉사 날에 날씨보고 인심을 점치고, 평가하던 때라면 혼주는 걱정스러울테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자동차와 온라인 통신의 발달에다 장소는 호화스런 실내장식으로 꾸며졌다.
오랜 친구가 차를 몰고 시외버스 하차장으로 마중을 나왔다. 반가운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뭣하려 택시를 타려했는데 운전이냐며 말했지만, 진실은 오랫만에 옛직장동료, 후배들의 얼굴을 혼자 대하기가 겸연쩍었다. 그래서 함께 들어가자는 심산이 포함되었다.
요즘의 결혼식이야 뻔하다. 양가 집안 어른들은 안중에도 없이 부모는 전대만 풀고, 지들끼리 춤추고 노래하며, 새신랑에겐 바보놀음을 시킨다.
백년해로는 말뿐이고, 검은 머리 파뿌리 운운은 그때 가봐야 안다는게 야속한 말이 아닌게 된 세상이다.
다행이 후배의 아들은 자수(?)성가를 했다니 남의 아들일지언정 반가울 뿐이다. 엇그제 여동생의 말이 요즘 젊은이들 형제들이 많지 않아 적당히 살고, 부모 유산을 기다린다고들 하더란다.
요즘 세상엔 결혼도 귀한 집안역사라, 양가 부모 재산 다 받으면 그들은 가진자의 반열에 서게 될까? 안타깝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국가란 파이는 커지기가 걸렀다.
사실 지금의 우리 세대로선 직계 혈족아니면 하객으로서의 용도가 지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소위 꼰대라는 감투가 세대의 단절을 요구한다.
혼주와 인사를 마치고, 곧장 먹거리장을 찾았다. 온기 빠진 음식들, 그래도 본전 생각이면 균일하고 작은 접시가 열밉다. 나의 평소 지론은 어차피 남아 버릴 음식이면 양껏 먹고, 다음 한끼를 건너뛰자는 꼼수이다.
우리네 보릿고개 세대가 언제 배불러 다이어트 한적이 있었던가? 이참에 위와 장이란 넘들도 놀래키고, 게으른 것들 비상을 걸어 이완수축훈련도 시킬거나 싶은 심사다.
구석진 곳에 앉았는데 옛동료들이 찾아들었다. 퇴직 10년을 넘었으니 모두의 모습이 정겹다. 그런대로 평범하다고 평하려 들려해도, 어디든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지리산 산지기를 자처하며 세상 여인을 마다하던 50초반 후배는 약초전문 대학강사를 만나 늦깍기 새신랑이 되었고, 지금은 산을 떠나 있단다.
나를 돕던 산악동아리 만년 총무는 가족(아내)를 잃고, 산을 떠났다며 말수가 줄었다. 그렇다면 산은 누가 지키노?
이야기를 나누다 식장을 나오던길, 입구에 앉은 사람이 아는체를 했다. 아뿔싸! 나는 깜짝놀랐다.예전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직원이었다. 두번의 수술로 고생을 했다하니 육신이 위축되어 몰라보게 왜소해졌다. 저럴수도 있을까? 그래도 우리는 누가 먼저갈지 모른다며 마주보고 웃었다.
나를 태워왔던 친구는 싫다는 나를 다시 버스터미널까지 바래다 주었다. 요즘 약을 먹는다며 소주 한잔 같이 못마시는게 아쉽다는 말을 연신 해댔다.
10여분 차이로 버스를 놓쳤다. 다음 배차시간은 두시간 후이다. 이럴땐 탁월한 선택권이 있다. 지겨움을 느껴 오래 사는 기분 들게 하려면 기다려 다음 차를 타고, 가는 세월 즐기려면 중간지점 환승하는게 맞다. 나는 주로 후자를 택하는 편이다.
내 인생이란게 어차피 토막의 연속이 아니었나? 비는 내일도 내린다고 하였다. 절기와 일기가 이나라 정치판처럼 제잘났다며 거드럼 피우는 불안정한 시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