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연구회와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가 10일 발표한 뉴라이트 성향의 (주)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 분석 결과에 따르면 300여 건에 이르는 다양한 오류 등의 문제서술이 발견됐다.
이 날 밝힌 오류를 설명한 자료만도 A4용지 70쪽으로 책 한 권에 이른다. 이들 단체는 “다른 교과서에서도 있을 수 있는 자잘한 오류들은 싣지 않았다. 그것까지 하면 500~600건 정도에 달한다”고 밝혔다. 문제의 교과서가 400쪽임을 감안하면 적어도 한 쪽에 한 개의 오류는 있었던 셈이다.
이 교과서가 이미 국사편찬위원회 검정 과정에서 다른 7종 교과서의 2배가량인 497건의 수정‧보완 권고를 받은 사실까지 더하면 “교과서 자체가 오류”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들 단체가 이날 서울 남대문로 대우재단빌딩에서 설명한 오류 등의 문제 서술은 289건. 이 가운데 201건이 일제강점기를 다룬 5단원(125건)과 박정희 정권 등 현대사를 6단원(76건)에 집중됐다. 오류를 차지하는 비율이 69.6%에 달한다.
"1930년대 명동, 오늘날 도시와 차이 없다. 어떻게 생각했을까” 황당 질문
▲ 한국역사연구회와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제공 ©교육희망 | |
일제강점기 단원의 오류를 분석, 발표한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연세대 연구교수)은 “식민지 근대화론에 근거해 식민통치가 우리나라를 발전시켰다는 점이 관통하고 있고 특히 이승만 전 대통령을 부각시켰다”면서 교과서를 집필한 쪽의 의도성에 주목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으로 교과서 280쪽에 서술된 ‘식민도시의 발달’ 단락의 18줄을 꼽았다. 발달과 발전, 성장 단어가 모두 6차례나 쓰였다. 이 교수는 “도시가 식민통치로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라며 “토막민 등 한국인의 몰락상을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283쪽 ‘교통‧통신의 발달과 공간 관념의 변화’ 단락에서는 “이제 자급자족적 경제관념에 변화가 있어나고 더 넓은 시야에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제공돼 사람들이 생활이 바뀌었다”는 표현도 그 사례에 포함됐다.
5단원 6장 ‘일제강점기의 사회‧경제적 변화’ 주제열기에서는 학생들에게 황당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1930년대 명동 거리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도시 모습과 큰 차이가 없다. 이러한 명동 거리의 생활 모습은 당시 우리나라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라고 물었다. 식민 통치를 긍정적으로 미화할 여지가 큰 질문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기술된 일제강점기에서 친일파는 정당성을 얻는 쪽으로 기술됐다. 당시 <동아일보> 주필로 대표적 친일파는 장덕수에 대해서는 신간회 운동을 벌인 북청 조우의 기사를 장덕수가 직접 쓴 것처럼 적어놨했다. 하지만 친일 행위는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이승만 전 대통령을 부각시키면서 곳곳에서 모순과 오류가 나타났다. 254쪽에서는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 공화제 정부인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수립했다”고 했는데 256쪽에서는 “이승만을 대통령, 이동휘를 국민총리로 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공화정체 정부인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정식으로 출범했다.(1919.9)”라고 명시했다.
이것만 보면 임시 정부가 시기를 달리해 두 번이나 출범한 것이다. 이 교수는 “임시 정부 수립은 1919년 4월이 맞는데 이승만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대통령 취임과 더불어 시작됐다고 쓴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사를 다룬 6단원에서는 이 전 대통령 실정 감추기에 중점을 둔 서술이 나타났다. 307쪽에서 친일파 청산의 과제 단락에서 “1949년 6월 경찰은 반민특위의 사무실을 습격해 특별 경찰을 무장해제 시키기도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경찰의 행동을 묵인했다”고 명시했지만 이 전 대통령은 AP통신과의 회견에서 경찰에 의한 반민특위 습격을 자신이 명령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고 이들 단체는 설명했다.
또 교과서는 3‧15부정선거를 설명하는 단락(323쪽)에서 “1960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정부는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부정선거를 자행했다”고 썼다. 현대사를 살펴본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당연히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기붕이 알면 서운해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연합국 등 외부 요인으로 광복 서술 “집필 기준 위반”
▲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328쪽과 329쪽.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를 북한의 위협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 교육희망 | |
무엇보다 미국의 지원과 북한의 위협 등 외부 조건으로 이승만, 박정희 정권이 불가피하게 독재를 했다는 식의 서술이 내포돼 있다고 이들 단체는 꼬집었다.
6단원 도입 글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면서 자주 독립국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됐다”는 문구와 303쪽 “원자폭탄을 투하하자 일본은 8월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한반도는 일본의 신민 지배에게 해방됐다”는 문구가 가장 두드러진다.
이신철 연구교수는 “우리 민족의 해방을 연합국의 승리와 일본의 패전에서 찾고 있다. 독립 운동 등 자주적인 노력과 함께 서술하는 다른 교과서에 비해 타율적인 서술”이라고 비판하며 “이는 집필기준 위반”이라고 말했다.
이 교과서에 적용된 교육부의 고교 한국사 집필 기준을 보면 “광복은 연합국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타율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끊임없는 독립운동의 결과임을 유의한다”고 명시돼 있다.
328쪽과 329쪽에 걸친 탐구활동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혁명 공약’과 10월 유신 선언문, 이 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등 보여주면서 제목을 ‘북한의 위협과 한국 정치의 변화’로 잡았다. 이신철 교수는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북한 때문에 독재가 불가피했다는 인상을 준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3개의 사료를 제시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분석을 총괄한 하일식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은 “전체적으로 이 교과서를 보면 우리나라가 고대에는 중국의 황허 문명에서 파생됐고 당나라의 지배로 문명의 혜택을 받았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근대화된 뒤 미국의 원조로 잘 살고 있다는 시작이 깔려있다”며 “식민사관에서 씌여 졌고 외부의 역사를 강조했다. 교과서 집필진의 역량 자체가 회의적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