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헨조 다로 -- 발굴된 고대 도시
모헨조 다로와 하랍파
(본래 공부의 계획은 고대문명 발상지인데. 그렇다면 인도, 중국의 순서입니다. 중간에 유대인 역사 공부를 한 탓애---이제 본 자리로 넘어 왔습니다.)
19세기 말의 영국 대외 정책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 것이었다. 영국군이 파키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철도 공사를 하면서 수 천 년을 묻혀 있던 고대 문명이 햇빛을 보게 되었다. 고대 도시들 중에 모핸조 다로와 하랍파가 대표적이다.
인더스 문명은 세계 4대 고대 문명 발상지의 하나이다.
이 문명을 일군 사람은 인도의 토착민으로 피부는 검었다. 드라비다 족이라고 부르는 사람으로, 농경 정착 생활을 하면서 찬란한 문화를 일궜다. 벽돌을 구워서 집을 지었고, 도시계획을 한 듯 길은 곧고 바닥은 벽돌로 포장하였다.
약 4000년 전에 인더스 강 유역에 문명을 꽃피운 이들이 오늘의 인도인의 뿌리이다. 인더스 강이 흘렀던 지금의 파키스탄 지역으로 사막화가 되면서 물이 마른 인더스 강은 오래 동안 모래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으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문자인 듯한 부호도 보이나, 지금 부호(문자?)를 읽지 못함으로, 지금도 역사 이전 시대로 남아있다.
사진은 인도의 고대 지도이다. 그리고 유적지 중의 목욕탕 이다. 벽돌로 쌓아서 집을 지었고, 계획도시로서 길은 포장이 되어있고, 바른 길이었다. 하수도도 있고, 도시마다 공중 목욕탕은 반드시 있었다.(사진)
오늘의 목욕탕 개념이 아니고, 제사 의례를 올릴 때 몸을 깨끗이 정화하기 위한 목욕탕이다. 인도인은 지금도 갠지스 강의 물로 목욕하여 자신을 정화하는 것은 신성한 종교 행사이다.(바리나시)
인더스 문명을 이룬 주인공은 인도의 토착민으로 검은 피부를 가진 드라비다 족이다.(드라비다 족 이외의 토착민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에 북방에서 유목생활을 하다가 남하한 아리안 족이 그들을 복속시키고는 인도의 주인이 되었다. 검은 피부를 가진 토착민은 카스트 제도에 의하여 최하층민(수리야)이 되거나, 남쪽으로 쫓겨 갔다.(남쪽으로 갈수록 피부가 더 검다.)
드라비다 족은 그들의 문화마저 정복 당한 것은 아니었다. 아리안 족이 갖고 온 베다 문화와 혼합하여 오늘의 인도 문화의 근간을 이루었다.
불교의 뿌리도 인더스 문명이다. 우리가 아주 가까이서 만나는 불교와 불교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더스 문명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 인더스 문명이 어떻게 인도의 뿌리인지를 공부하는 것이 인도 알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