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 - 원칙과 융통성에 대한 신유학과 기철학의 관점
원칙과 융통성에 대한 신유학과 기철학의 관점에 대한 주제에 대해 배우며 1학년 때 논어와 21새기 수업에서 배웠던 원칙과 융통성의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저는 원칙과 융통성 중에 원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이미 수 많은 원칙들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고 ,정말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이며, 이러한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온갖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러한 우리 사회의 특성을 고려하였을 때 모두에게 적용되고, 모두에게 공평한 ‘ 원칙 ’ 이 더 중요한 사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원칙이 없으면 이리저리 휘둘리게 되고, 이 사람 사정과 저 사람 사정을 다 들어주게 되면 누군가는 억울한 사람이 생길 수 있고, 또는 공평하지 못한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다수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규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칙이 흔들리면 결국 사회도 흔들리게 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칙을 지키는 사람을 융통성 없는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원칙을 지켜야 삶을 떳떳하게 살아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떳떳해야 원칙도 잘 지킬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원칙을 잘 지켜야 사회로 부터 보호받고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결국 원칙이 준수되어야 청렴한 사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원칙과 융통성을 신유학과 기철학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원칙과 융통성에 대한 신유학과 기철학의 관점에서 먼저 권도라는 것의 개념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었습니다.
먼저 권도의 개념과 경과의 관계에 대해 전통 유가철학에서 ‘권’의 의미를 ‘저울’이라고 명시한 것처럼, 1)권이란 움직임 가운데 어떤 물건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균형을 잡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통 유학자들은 권을 변화하는 현실 사회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합리적인 균형을 찾는 역할로 생각합니다. 전통 유학자들은 권을 경과 관련시켜 논하기도 합니다. 경은 어떤 것을 규정 하는 근거이며, 준칙이고 원리의 의미를 갖습니다. 전통 유학자들이 논하는 권과 경의 의미로 인하여 두 관계에 대해 의견 차이가 있습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것은 한대의 학자들과 송대 이후의 학자들 사이에서의 의견 차이 그리고 송대 이후의 학자들 사이에서의 의견 차이입니다. 먼저 한대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면 한대 학자들은 경과 권을 주로 일정함과 변화의 관계로 파 악하며, 「춘추공양전」의 논리를 수용합니다. 권도가 경에 반하게 된다면, 반드시 그래야 하는 한 계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춘추공양전」에서 변화의 관점에서 권도를 해석하는 견해는 위진남북 조 시대의 학자들에게도 공통으로 나타납니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학자들은 수시로 변화하는 현 실 속에서 권도는 밝히기도, 실행하기도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송나라 학자들에게는 “경에 반한 것이 권도이다”고 하는 권도와 보편 법칙에 관한 관점이 비판적으로 계승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정이는 “한대의 유학자들이 경에 반하여 도에 합하는 것 을 권도라고 했기 때문에 권변과 권술의 말이 있으니, 모두 잘못되었다. 권도는 다만 경이다. 한대 이래로 사람들이 ‘권’이라는 글자를 알지 못했다”라고 지적하며, 권도와 경의 경계를 제 거하여 권도가 바로 경이라고 합니다. 곧 정이는 권도에 대해 한대 학자들이 경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해석함으로 말미암아 권모술수까지 권도로 여기는 풍토가 조성될 수 있음을 염려하여 권도를 경과 동격이라고 여깁니다. 주희는 정이의 견해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차이를 드러낸다. 권도와 경은 마땅히 구별 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권도와 경이 깊게 관계되었을지라도 둘은 차이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왕부지는 주희의 관점과 차이를 드러내며, 정이의 관점을 더 지지합니다. 주희, 왕부지 의 입장 차이는 맹자의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으로 구한다’라는 말로 그 내용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주희는 권도와 경은 반드시 다른 점이 있을 것이나, 그렇다고 권도는 경을 떠나지 않고 그 차이는 아주 작다고 보았고 왕부지는 정이의 관점 지지, 실제로 구할 경우 가벼움과 무거움을 살피지 않는다면 어떻게 경을 행할 수 있겠는가 의문 제기. 경과 권도는 긴밀하게 관계하고 있음을 주장하며 권도의 역동성을 중시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신유학의 관점을 먼저 살펴보면 정이는 “한대 유학자들이 경에 반하여 도에 합하는 것을 권도라고 했기 때문에 권변과 권술의 말이 있으니, 모두 잘못되었다. 권도는 다만 경이다. 한대 이래로 사람들이 권이라는 글자를 알지 못했다”라고 지적하며, 권도와 경의 경계를 제거하며 권도가 바로 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희는 이러한 정이의 견해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 권도와 경의 차이를 드러냅니다. 주희는 “선배 유학자들은 이 문장을 오해하여 아래 글의 그 반(反)에 치우친 것으로 한 문장을 삼았기 때문에 경에 반하여 도에 합치한다는 말이다.
정자는 “그것을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것은 옳다. 그러나 맹자는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을 사용하여 구한다는 뜻이 있으니, 그것을 미룬다면 권도와 경은 또한 마땅히 구별이 있어야 한 다.”고 말하며, 권도와 경이 깊게 관계되었을지라도 둘의 차이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또한 그는 “경과 권도의 분리는 여러 사람들의 말이 합치하지 않습니다. 만약 권도가 저절로 권도이고 경이 저절로 경이라고 한다면 서로 관여하지 않으니 진실로 불가할 것입니다. 만약 일에는 반드시 권도를 사용해야 하고, 경은 반드시 권도로 행해야 하며, 권도는 다만 경이라고 한다면 권도와 경은 또한 온전히 분별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공자가 ‘함께 설 수는 있지만 함께 권도를 행할 수 없다’고 한 말과 맹자가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으로 구한다’고 한 말을 보 면 권도와 경은 반드시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비록 다른 점이 있지만 권도는 사실 경을 떠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차이는 아주 작다. 이천이 권도는 다만 경이라고 말한 것은 아마도 미 진한 듯하다”라고 지적하여, 권도와 경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에 대해 기철학의 관점은 앞서 주희는 “경과 권도가 깊게 관계하지만 궁극적으로 경과 권도는 구별되는 개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기철학의 관점에서 왕부지는 주희의 이러한 관점을 비판합니다. 기철학의 관점에서 왕부지가 주장한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희는 「논어」에서 보이는 권도의 의미는 학문과 심덕이라고 말합니다. 즉 권도는 경과 본질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고 본 것입니다. 또한 권도는 경보다 먼저이며, 경이란 권도의 실행 속에 내재한 규율이이라고 보았습니다. 즉 현실 세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경을 내재적으로 함유한 권도의 실행을 통해 합리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늘 변화는 현대사회 속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현실에 주목하며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현실 속에서 내재한 공통의 규율을 찾아 제한적인 보편의 질서의식을 확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권도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인이어야만 할까? 라는 물음에 대해 왕부지는 권도를 행할 수 있는 사람 이 반드시 성인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왕부지가 정의하는 성인이란, 변화의 상황이나 일정한 질서의식이 유지되는 상황에 관계없이 항상 권도를 실행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12주 토론 주제 : 주희와 왕부지 사이에 발생하는 세계관은 주희가 선험적인 이치를 우주 운행의 근거로 설정하여 ‘본연지성(本然之性)’을 선(善)으로 여기고 ‘기질지성(氣質之性)’을 불선(不善)으로 여긴 것과 달리, 왕부지는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기(氣)를 우주 운행의 원리이며 선(善)으로 여김과 아울러 이치를 기의 조리로 여기고, 기가 소통되지 않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불선(不善)으로 여긴다. 주희와 왕부지의 입장 중 어느 입장을 지지하는가?
12주차 토론 주제에 대한 저의 입장은 저는 주희의 입장을 지지합니다.
주희는 기본적으로 본연지성을 선이라 여기고 기질지성을 불선이라고 여긴다는 점에 주목하여 생각하여보았을 때 인간에게는 기질지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거울을 닦지 않아 흐릿한 거울을 보는 것처럼 천리가 가려져있는 것이기에 본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러한 기질지성을 제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저의 입장은 주희의 입장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여 저는 주희의 입장을 지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