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17. 7. 12. 수요일.
긴 장마가 끝났는지 날씨가 무척이나 후덥지근하게 덥다.
예순다섯 살의 늙은 아내가 살짝 돌았나 보다.
'오빠, 삼계탕 먹으러 가요.'
아니, 왜 내가 오빠가 되었지?
얼마 전부터 아내는 남편인 나를 보고는 '오빠'라고 불렀다.
신세대인 며느리가 큰아들을 부를 때 오빠라고 말했지만 설마하니 늙어빠진 아내가 오빠라고 부르다니.
나는 소름이 돋는다.
그리고 삼계탕이라니. 오늘이 초복날인가 보다. 그렇다고 해서 삼계탕 먹으러 가자니. 말도 안 된다.
삼계탕(三鷄湯). 닭 세 마리를 끓인 탕이라고? 그거 다 먹다가는 배 터져 죽을 게다.
소식하는 나한테 그 비린내 나는 닭 세 마리를 먹으라니. 그냥 죽으라고 하는 게 낫겠다. 이 무더운 날에 펄펄 끓인 닭 세 마리를 뜯어 먹으려면 먼저 지레 죽을 게다.
수십 년 전, 시골집 안마당 끝에서는 닭 예닐곱 마리를 쳤다.
바깥마당에서는 수십 마리도 키웠고.
오후 무렵에는 닭장 문을 열어두면 닭들은 닭장 바깥으로 나와서 마당이며, 위아래 텃밭으로 마구 쏴질러 다니면서 똥을 찍찍 내갈겼다. 마루에도 싸고, 심지어는 안방에도 들어와 갈겨댔다. 이런 닭이 때로는 미워서 붙잡아서 혼내려고 쫓아가면? 세상에나, 닭은 새처럼 훌쩍 날아서 다른 곳으로 내뺐다. 이건 닭이 아니라 새다.
닭은 오랫동안 살았다. 설날, 추석날, 제삿날에나 잡았기에 오래 산 닭은 살이 무척이나 질겼다. 닭뼈도 오지게 딱딱하고 억세서 쇠망치로 부셔야만 뼛속 골을 빨아서 먹을 수 있었다.
요즘 닭은 알에서 깬지 며칠 만에 잡을까? 아마도 병아리는 32일 쯤이면 잡을까?
삼계탕에 넣을 만큼 닭은 고작 30여 일에 불과하다고?
나는 싫다. 과도비만증에 걸린 것들이 내는 비린내가 싫다. 능정거리는 살점도 싫고.
그런데 아내는 고기탐을 하는지 오늘도 삼계탕 먹으러 가자고 말을 꺼냈다.
남편인 내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숱하게 경험했기에 기대조차도 하지 않을 게다.
그냥 빈말이라도 하면서 자신을 위로할 게다.
나도 그렇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흘리는 날에는 보양탕이라고 하는 닭탕을 먹으면 좋으련만 나는 아니다.
복날은 개고기 먹는 날이다. 닭 먹는 날은 아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닭으로 변했지? 나는 다 싫다. 닭, 개들이 싫다. 모두 비윗장을 거슬리니까.
하지만 아내는 육탐하는지 이런 비린내가 좋다는 뜻으로 나한테 말했다.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별 것도 아닌 것이 또 갈등을 일으킨다.
오늘은 내 고향 5일장날.
재래시장 국밥집에서는 삼계탕, 멍멍탕 먹는 장꾼들이 무척이나 많겠다.
예전, 직장 다닐 때다.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지하철) 뒷골목에는 국밥집이 정말로 많았다.
먹기 싫은데도 직장 동료와 함께 멍멍탕, 삼계탕을 억지로 떠먹는 체하는 못난 사람이 떠오른다.
특히나 멍멍탕은 후제후제, 나중에나중에서야 겨우 먹기 시작했으니...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못난 것은 늘 있더라.
내 시골 텃밭에는 삼이 없다. 도라지, 더덕, 잔대 등은 있어도 인삼은 없다.
도라지, 더덕, 잔대를 캐 씻어서 고추장에 비벼서 나물로 먹으면 좋을 터인데도 지금은 서울에 있으니...
재작년이던가, 서울 청량리 재래시장에서 인삼묘를 사다가 텃밭에 심었는데 깡그리 다 죽였다.
나한테는 삼 체질이 아닌가 보다.
2.
복날.
복(伏). 한자가 맞는지 모르겠다.
사람변과 개견자가 합성된 글자다. 엎드릴 복자이니 복종한다는 뜻을 지닌단다.
개가 사람한테 충실하게 뒤따른다는뜻이다. 그렇다면 왜 충성하는 개를 잡아서 먹어야 하지?
아득한 옛날에야 먹을 것이 없어서, 배 고프고 허덕거려서 몸이 허약한 시절에야 동물을 잡아서 몸보신한다지만 지금은 2017년. 너무나도 많이 먹어서 병이 생기는 때다. 특히 비만병, 당뇨병이라는 것이 덜 먹도록, 음식물을 먹었으면 덜 소화되거나 영양화되지 못하도록 약을 먹는다.
잘 먹어서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세상에 복날이라는 핑계로 개, 닭, 장어 등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개장국장사, 닭장수나 돈 벌려고 하는 말인데도 왜 사람들이 몰려서 먹어대지?
오늘도 아내는 초복이라면 삼계탕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개장국은 비싸니 조금은 값이 싼 닭탕이라도 먹어야만 기운 차리겠다는데도 나는 아뭇소리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예전 시골집에서는 어머니는 닭도 키웠고, 개도 키웠다. 돼지, 소, 염소도 키웠다. 할머니 제사, 할아버지 제사,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야 했다. 한 달 두 번씩인 삭망 등의 제삿상에는 으레껏 닭고기를 올려야 했다. 나는 사내아이였기에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닭을 붙잡아서 목을 비틀어서 죽인 뒤에 뜨거운 물을 퍼붓고, 털 뽑고, 날카롭게 숫돌에 간 부엌칼로 닭 배를 갈라서 내장을 꺼냈고, 내장에서 똥을 빼닌 창사구(창자)를 소금 절여서 깨끗이 씻은 뒤에 부엌에 갖다 주었다.
그런데 그게 영 싫었다. 사내인 내가 해야만 했던 살생이었는데 그게 영 아니었다.
나는 닭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병아리, 암탉, 회를 치고 길게 잡아빼는 장탉소리가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정을 주고싶은 가축이었다.
수십 년이 지난 뒤 나는 육류를 먹어도 그다지 즐겨하지 않았다. 남의 살점, 남의 고기였기에. 살아 있는 생명을 갑자기 붙잡아서 죽여야 하는 그 잔인성이 혐오스러웠다.
사람보다 더 강한 동물이 사람을 붙잡아다가 목을 비틀고,칼로 뱃때지를 쑤셔 죽여서 살을 뜯어먹는다면? 사람은 얼마나 무서워서 떨며, 잔인하게 죽어야 할까를 생각했다. 사람보다 더 힘 센 동물이 있어서 사람을 울안에서 사육하다가 잡아먹으면?
복날은 개를 의미하는데도 닭, 오리, 장어, 미꾸라지, 문어 등도 먹어치우나 보다.
개는 멍멍탕, 사철탕이라고 한다. 개고기 먹는다고 하면 보다 솔직한 표현인데도 에둘러서 멍멍탕, 사철탕이로 둘러대는 게 그다지 정직하지 못하다.
나는 훗날 후회할까?
내가 훌쩍 떠날 때 아내한테 삼계탕, 개장국, 추어탕 등을 먹으러 가자고 한번도 말하지 않았다는 게 걸려서... 아내가 말했는데도 고개를 흔들어 댔던 것이 후회가 될런지도 모르겠다.
다섯 살이나 어린 아내가 나보다 먼저 저너머의 세상으로 떠난다면? 나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후회할런지도 모른다.
'그때 그 시절에 내가 모르는 체하고 같이 가서 함께 먹었더라면' 할런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게다.
나는 철저한 채식주의자도 아니다. 육류도 가리지 않고 먹는다. 다만 즐겨하지 않는다.
못 먹어서, 굶주려서 먹을 것에 허덕거리는 사람도 아니다. 아무 거나 다 먹는다는 신념을 지녔다. 그 어떤 나무와 풀도 다 먹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다. 온 천지에 널린 게 나무와 풀인데 왜 구태여 살아서 뛰어다니는 동물 특히나 사람을 가까이 따르는 가축을 잡아서 먹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배 고파서, 먹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면 동물을 잡아서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맛으로, 보양식 운운하면서 남의 살점을 뜯어먹는 행위는 싫다.
내가 어릴 때, 젊은날 한때, 가축을 조금은 돌봤다. 병아리와 닭, 염소, 돼지, 강아지와 개, 소이다.
암소만 키웠다. 농사 일을 하려면 소를 잘 먹여야 했다. 일꾼은 농사 짓기에 바빴기에, 나는 일꾼과 함께 썬 여물을 사랑솥에 넣고는 불을 2시간 정도 끄느름하게 땠다. 뜨거운 김이 펄펄 나는 여물을 퍼서 외양간의 구수통에 쏟아주고, 또 저녁 때에도 여물을 쒔다.
풀 뜯기려고 소를 몰고 뒷산 신한재 말랭이, 들판 논둑길로 다녔다. 일꾼이 추석 등 제 집으로 돌아간 뒤에는 나는 지게를 짊어지고 들판에 나가 낫으로 풀(깔)을 베어서 생풀을 던져주고 쇠죽도 쑤었다. 소는 나한테는 하나의 가족이었다.
돼지도 그렇고. 어머니 대신에 소마통에 가득찬 구정물을 떠서 살겨를 섞어서 구수통에 부어주고, 쇠스랑으로 돼지우리칸의 더러운 똥오줌을 쳐 주어야 했다.
닭도 그랬다.
염소도 그랬다.
그들은 농촌사람과 함께 교류하는 가족이었다. 살림밑천도 되고...
강아지와 개에 관한 글도 제법 길게 쓸 것 같다.
오래 전이 일이었다. 늙은 어머니 곁에서 함께 하던 이쁜이 개가 늙어서 죽었다.
감나무 밑에 묻고는 개는 다시 키우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정 떼는 게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수십 년이 지난 뒤의 내 느낌이다.
사람들은 오로지 입맛으로 남의 살을 뜯어먹고 즐긴다.
예전 가축을 키웠던 나는 이제는 육류를 별로 즐겨하지 않는데도...
동물을 한번도 키워보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남의 살을 탐한다.
2017. 7. 12. 수요일.
三鷄湯은 蔘鷄湯이 아니다.
인삼뿌리 고작 한두 뿌리 넣고는 삼계탕이라고 말한다.
탕은 인삼이 핵심이여?
내가 보기에는 鷄蔘湯이 맞다.
나도 한자 썼다. 유식한 체하려고...
三鷄湯, 參鷄湯, 蔘鷄湯...
첫댓글 초복날
삼계탕 어울어 지는 향기글에
감사드립니다 ^^
댓글 고맙습니다.
쓰다만 잡글이지요.
아직 덜 썼으니 오탈자가 수두룩할 테인데도 댓글 달아주심에 죄송하고요.
하나의 글감으로 나중에 더 보태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