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 인간으로 살고싶다 - 나혜석/ 이상경 지음
* 읽은 날짜: 9월 22일/10월 9일
* 줄거리:
- 나혜석(1896-1948) - 최초의 여성서양화가, 여성작가, 여성해방론자로 근대적 자의식과 자기 확립으로 나아가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자 의무로 여기면서 여성이 아닌 사람이 되고자 몸부림쳤다.
- 인형의 가 - 내가 인형을 가지고 놀 때 기뻐하였음 아버지의 딸인 인형으로 남편의 아내 인형으로 그들을 기쁘게 하는 위안물 되다. 남편과 자식들에게 대한 의무같이 나에게 신성한 의무 있네 나를 사람으로 만드는 사명의 길로 밟아서 사람이 되고저,,,,
- 돈많고 개명한 아버지는 자녀들(나혜석)을 신교육을 시켰다. 수원여학교에서 그린 그림에 칭찬을 받다.
- 양반의 집안에는 첩이 있다. 자신의 아비도 첩을 둔 것에 어렸을때부터 여자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다.
- 1913년 일본유학에서 도쿄사립미술학교에 그림을 그리며 연애대상자가 병으로 죽고 신랑될 이도 만나다.
- 일본에서 신여성운동을 지켜보다. 1918년까지 귀국하여 그림전을 열고 <이상적 여인>글을 발표하다.
- 염상섭 - <해바라기>에서 나혜석과 첫사랑 최승구의 모델로 글을 쓰다. 최승구가 죽었을때 나혜석은 발광상태에 이르나 그의 오빠 친구 김우영과 약혼하다. 이광수와 연애가 소문이 나다. 가난한 이광수는 문학적취향이 맞지만 오빠의 반대로 김우영과 결혼하다. 나중에 김우영은 그의 회고에서 4번 결혼했는데 처음 결혼한 여인과 네 번째 여인만 언급하고 두 번째 이혼한 나혜석과 세 번째 여인은 언급하지 않는다.
- 1918년 귀국하여 독립만세에 참여하다 아이 낳기까지 학교에서 가르치다. 결혼하고 나서 그림을 계속 그릴것이고 시어머니와 전처와 같이 살지 않겠다는 답을 받아내고 결혼하였다.
- 나혜석의 <이혼 고백장>은 노츨증적 광태라고 비난받았다.
- 1927년 6월에 남편과 기차로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 1929년 미국에서 일본으로 3월에 한국으로 오다. 유럽에서 남편은 법공부로 나혜석은 파리에서 그림공부로 흔히 주말부부로 유럽에 있을 때 만났는데 그때 나혜석이 최린과 연애한 것이 빌미로 이혼을 하다.
- 1932년 여자미술학사를 열다. 손을 떨다. 불교를 신봉하다. 선전에 입선하지 못하니 그림을 팔지 못했고 그림도구까지 살 형편도 아니되었다. 글을 쓰다.
- 남편과 재산을 분할하자고 하나 받지 못했음
- 위자료 소송청구를 나혜숙이 최린에게 함, 최린은 천도교에서 상위 지도자로 나혜숙에게 얼마간 돈을 주었고 신문사에 기사를 빼라고 압력을 넣었다. 나혜숙은 소를 취하 했다.
- 1944년까지 수덕사에 수덕여관에 있다가, 노인병원에 갔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1948년 12월 추운 날에 행려병자로 죽다.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이 홀로 눈을 감았다. 나혜숙의 끝은 중풍으로 어느 것 하나 들 수 없었고 여기저기로 옮겨 다녔다. 그리고 병원을 나와 길에서 지켜주는 이 없이 죽었다. 어디로 가는 길이었을까?
- 느낌> 구한말시대에서 일제지배아래에서 남존여비가 강한 사회상에서 신교육을 받고 일본유학과 긴 유럽여행을 경험하면서 이혼을 당하며 홀로설수 없었던 사회에서 홀로서지 못한 삶으로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