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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DSLR!”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해발 4,130m)에 오르면서 몇 번이나 이 비명을 질렀다. “쓸 만한 사진기를 빌려서라도 가져올 것을….” 안나푸르나는 내가 가지고 간 똑딱이 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는 것이었다. 집에 있던 카메라를 별 생각 없이 들고 간 것이 불찰이었다. 각도를 이리저리 맞춰 보아도 시야를 압도하는 그 광경들을 붙잡아 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국에서 산에 다닐 때에는 산이 멀리 보이고 고개를 들지 않아도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히말라야 산은 눈앞에 바싹 다가와 있다. 가파른 양쪽 협곡 중 한쪽에 걸쳐 있는 길을 오르다 보면 계곡 건너편 산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한국의 산이 연립주택 앞에 서 있는 느낌이라면 히말라야는 삼일빌딩 앞에 서 있는 느낌이다. ABC를 오르면서 마주 대하는 마차푸차레(6,993m) 같은 산은 하늘의 절반을 덮고 있다. 시선을 60도 이상 추켜 올려야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스케일이 다르다. 마차푸차레는 전 세계의 산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산이다. 네팔 정부도 마차푸차레만은 등정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최정상 경사의 각도가 70도는 돼 보인다. 등정을 허용하더라도 가능할지 의문이다.
해발 3,000m쯤부터 협곡 좌우로 수직 폭포들이 나타난다. 낙차가 200~400m쯤 돼 보이는 놈들이다. 베이스캠프까지 올라가면서 100개 이상 본 것 같다. 폭포가 널려 있다는 것은 지형이 완만하지 않다는 얘기다. 폭포들의 위는 산악 빙하일 것이다. 빙하 녹은 물이 폭포로 떨어진 후 히말라야 계곡을 거쳐 인도 갠지스강까지 간다. 히말라야 북쪽 빙하가 녹은 물은 중국 양쯔강까지 흐른다. 히말라야 산악빙하는 인도-아시아 대륙의 젖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