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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돌뫼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조중하
대포집 그때를 아십니까?
★ 니나놋 집(일명
대폿집) 생활과 일에 찌든 술 꾼들이 피곤과 삶의 시름을 달래기 위해
삼삼오오 어울려 찾아 들던 이른바
★ 금 줄
남아 선호 사상이 팽배
하던 시절 금 줄에 걸린 붉은 고추는 행인 들의 입가에 지가 매달렸으면 아들이고 솔가지와 숯만 걸리면 딸이었다.
★ 이
300기 이하이신
선.후배님들은 현역 복무시절 털로 짠 동내의 틈 사이에서 있다.
★ 헌 책 방
40대중반 이상이면
학창시절 헌 책방에 얽힌 추억을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새책값으로 헌책을 구입하고 나머지는 군건질이나 미팅 비용에 슬쩍했던 일등….
★ 뻥 튀기 장수
먹을 것이 흔치 않았던 60∼70년대의 풍경이다. 당시는 주전부리 라고
해봐야 고작 찐 고구마,감자,옥수수
등이 전부였다. 이런 가운데 뻥 튀기 장수라도 올라치면 최고의 군것질 거리가 생기는 것이었다. 물론 "눈깔사탕"과 같은 것도 있었지만 큰돈 들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이 뻥 튀기였다.
★ 측 간
결코 아름답거나
향기롭지 못했던 것들도 현실이 탈색되면 향수의 대상이 된다. 게 쌓여 있다.
★ 지 게
북청 물장수 물지게, 영 호남의 바지게 등 온갖 지게는 사실상 용도 폐기되고 몇개는 박물관으로 옮겨가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난데없이 ‘지게차’란 서양차가 태어나 지긋지긋한 혈통을 이어가고 있다.
★ 전 당 포
전당포가 절박한 삶의
마지막 구원처가 되었던 그때 그 시절이 있었다.
★ 서 커 스 단
빨간 코에 얼룩무늬 옷을 입은 피에로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재롱을 피울 때는 부초(浮草)같이 떠도는 그네들의 삶의 서글픔 마저 배어났다. ★ 엿 장 수
보리 밥 한 그릇도 제대로 먹기 어려웠던 배고픈 시절, 엿 장수는 시골 어린이 들에게 가장 반가운 손님 이었다. 동네 입구에서 가위질
소리가 들리면 집집마다 꼬마들은 부리나케
움직인다.
★ 흑 백 탤 레 비 죤
시골에 처음 흑백 T
V 가 들어온 것은 60 년대 말에서 70 년대 초. 마련 이었다. 라디오 보다 몇 백배나 신기하고 재미있어 저녁마다 그 부자집 마당은 T V 를
보러온 마을 사람들로 꽉 차곤 했다. 모시듯 했다. 낮에는 자물쇠 를 채워 놓은 집이 흔했다.
★ 꽃 상 여
기억 나시지요. 아득한 들길 멀리 너울 너울 꽃 상여가 떠나고 마침내는 "어 화 널 어 화 너 얼 어화리 넘 자 어 화 너얼" 애잔한 상두꾼들 소리조차 가물 가물 아지랭이에 먹 힐 즈음이면 뜸부기 우는 들 가운데 서서 까닭없이 눈물을 훔쳤던 콧잔등 싸한 추억이.....
★ 방 앗 간
정미소가 사라지는 것은
쌀 생산량이 줄어 들어서가 아니다.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 요 강
돌이켜 보면 요강 만큼
우리 삶의 흔적을 많이 함축한 것도 흔치않았습니다.
마친
어머니 요강 단지를 방 한쪽 구석에 들여놔야 비로소 일과가
끝났습니다. ★ 학 교 종
조용하고 아늑한 시골 교정에 맑고 은은하게 울려 퍼지든 학교 종소리. 땡 땡 땡,그 소리가 그립다. ★ 고 무 신
20 여년 전만 해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애용되던 고무신이 요즘은 특별한 때 특별한 곳에서 쓰는 것으로 인식될 만큼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 성
냥
★ 물 장
수 못했던
옛 시절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있다.
◈세월의 역사속에서 빛바랜 옛 모습◈
↑ 인천 중국인촌
1968
↑ 파주 용주골
1968
↑ 양양 남해항
1968
↑ 영주역
1969
↑ 부산 영도다리 부근
1970
↑ 안동 牛(소)市場 1971
↑ 구례 피아골
1973
↑ 서울 종로 2가
1974
↑ 강릉 선교장
1980
↑ 성철스님
1987
↑ 1930년대 서울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근처에서 통학중인 배재고보 학생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제공
↑ 1943년 일본식 속옷
훈도시를 입고 강가에서 수영하다 찍은 기념
사진.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제공 ↑ 1933년 경주 수학여행을
찍은 사진들.
불국사와 석굴암, 첨성대 등을 뒤덮은 학생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제공↑ 1936년 졸업앨범 사진.
학생들이 서로 엎드린
자세로 어우러져 배재학당의 교표 이미지를 만들었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제공
↑ 1920년대 화학 수업
광경.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 1920년대 교정에서
테니스를
치거나
실내에서 탁구를 치는
모습이다.
각양각색의 자세로
연사 흉내를 내는 모습이
재미있다. 예나 지금이나 교실에서 도시락을 까먹는 건 즐겁다.
↑ 70년대초 대구…넝마주이
소년
1970년대초만 해도 대구
지역 곳곳에는 넝마주이나 아침에 밥을
얻어 먹으러
다니는 거지, 허잡스러운 물품을 팔러다니는
상이군경 등이 많았다.
블록 담장에 지친 몸을 기댄 채 해바라기를 하며 생모를 생각하는 듯 어린 넝마 주이의 표정이 더없이 서럽기만
하다.
↑ 60년대 대구 물장수 아저씨
60년대만 해도 대구의 상수도
보급률은 형편
없었다.
변두리 달동네 주민들은 매일 공동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오거나 매일 동네를 방문하는 물장수 아저씨한테 물을 사먹어야만 했다. 이때는 드럼통이 급수통으로
이용됐다.
↑ 60년대 개구쟁이들의 신천
나들이
60년대 동구
신천동 푸른다리
근처 징검다리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아이(왼쪽에서 네번 째)가 갓난애기를 등에 업고 돌보는 장면이 웃음을 자아낸다.
↑ 구름과자를
아시나요?
반세기 전만
해도 '국민학교' 앞은 불량 군것질
거리의 집산지였다.
특히 뜨겁게 달궈진 철통 안에 설탕을 집어넣으면 금세 양철통에서 구름이 피어올랐다.
'구름과자'로 인기가 높았던 솜사탕 제조기는 척박한 일상을 살던 아이들에겐 꿈결 같은 것이었다.
↑ 엄마 제가 이 잡아
드릴께요.
공중위생 시스템이 무했던
60년대에는 이와 벼룩, 빈대가 주민들의 몸
곳곳에
기생했다.
좋은 날 동구 신천동 푸른다리 근처 판잣집 앞에서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헤집 으면서 이를 잡아 주고 있는 딸의 눈매가 더없이
훈훈하기만 하다.
↑ 동네 개구쟁이들의 놀이터
'준공 직전의 경북도청'
준공 직전
공사 중인 경북 도청 창문 턱에
올라가 손을 잡고 놀고
있는 동네
개구쟁이들. 도청은 옛 중앙공원
자리에서 1966년 4월1일
현재자리로
이전했다.
대구고생들이 경찰에 검거되어
끌려가고 있는
모습
↑ 1960. 3. 15
마산여고생
시위대에 소방차가 물을 쏘고
있다
↑ 2·28직후 여학생들이
시위하고 있는 모습
↑ 이순재와 남정임의 한창때 모습.
최인현 감독이 1969년에 발표한 영화 "춘원 이광수"의 한 장면. 춘원의 젊은시절 역을 맡은 "이순재"와 그의 아내 허영숙 역을 맡은 "남정임"이 극중 연애하던 시절의 한창 때
모습이다
"남정임"의 눈물이 고인 듯한 눈망울이 참 아름답게 느껴지는사진이다. 이 영화에서 중년 이후의 춘원과 허영숙 역은 "김진규"와 "조미령"이 맡아서 열연 한다.
"이광수"의 일대기를 "최인현"감독이 당대의 톱스타를 더블 캐스트로 기용하는 등 심혈을 기울여
영화화하였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 60년대 극장
쇼무대의 트위스트 김 1960년대 극장 쇼 공연사진.
"트위스트 김"과 한 사람이 노래를 하면서 춤을 추고 있는 있는데 저 사람이 극장 쇼의 전설이라는
"체리보이"이다.
1968년경 부산의 극장무대로 추정되는 사진.
↑ 60년대 통금위반자들.
5.16 이후
통금위반자를
서울 명동에 있던
시공관에 임시 수용하고 있는
모습 ↑ 노래하는 추억의 스타
"김승호"
↑ 1960년대 아리랑 꽃신 ( 5cm ~ 7 cm )
1960년 주한미군 이나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기념품으로 사간 아리랑 모형 꽃신 선물세트. 소형 남녀
고무신
한 켤레로
규격은 아주 작은
모형이다.
신발 안에는 KOREA라고 선명하게 찍혀 있는 글씨와 함께 두루마기의 남자와 한복을 입고 춤을 추는 여자가
그려져
있다.
↑ 1962년 강화대교 기공식.
5.16 직후에 갑곶나루에서 거행된 강화도 육로개설 기공식에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참석하여 치사를 하고
있다.
이 강화대교는 오랜 난공사 끝에
1970년
준공된다.
▲ 1951. 4. 20. 대구
근교
훈련소에 신병 입대자들이 입소하고
있다.
▲ 1951. 5. 15. 대구
근교
훈련소에서 신병들의 수료식이 열리고
있다.
▲ 1951. 5. 15. 대구
근교
훈련소,
수료식을 마친 신병들이
부대배치를 받고
있다. ▲ 1951. 5. 18.
대구. 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친 신병들이 열차를 타고
전선으로 가고
있다.
▲ 1951. 5. 20.
지게부대.
!
▲ 1950. 7. 7. 기마대
행렬.
▲ 1950. 7. 29.
주야간 전투에 지친 국군 병사들이 아무데서나 쓰러져
자고
있다.
▲ 1951. 5. 29.
평화로운 한국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
▲ 1951. 5. 26.
마을의 평화를 깨트리는 전차가 고개를 넘어 마을로
들어오고
▲ 1951. 9. 11.
피난길에 만난 형과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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