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독재 행동 편향
왜 대학 입시 제도는 3년 10개월마다 ‘성형수술’을 할까?
야구계엔 ‘희생번트 무용론’이란 게 있다. 야구 통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희생번트보다는 강공이 유리한 전략이라는 주장이다. 스포츠 경제학자 이영훈이 미국 메이저리그의 4만 5,495개 상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무사 1루에서 득점 확률은 44.2퍼센트인 반면 1사2루에서 득점 확률은 41.5퍼센트였다고 한다. 또 일본 프로야구 2005년 시즌 기록에 따르면, 무사 1루에서 평균 득점은 0.84점인 반면 1사2루에서는 0.75점이었다고 한다.
야구전문 기자 박동희는 데이터 야구를 외치면서도 정작 객관적 데이터를 외면했던 일본 야구계가 뒤늦게 반성하고 있지만 한국 야구계의 ‘희생번트 신봉’은 아직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감독이 효과적이지도 않은 희생번트를 지시하는 이유에 대해 한 야구인의 말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무사 1루나 무사 1,2루에 희생번트를 대지 않고 강공을 펼쳐 병살이 됐을 경우 감독의 ‘작전 실패’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이에 반해 번트를 실패했을 경우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의 책임이 된다. 번트가 성공해 1사2루가 된 뒤 후속타가 이어지지 않아도 역시 선수에게 비난이 쏠린다. 희생번트는 안정적인 득점원이 아니라 감독직 유지에 안정적 역할을 해주는 면피용 작전이다.”
이 주장이 맞다면, 그런 ‘면피용 작전’의 심리를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이른바 ‘행동 편향(action bias)’이다. 똑같은 결과, 아니 더 나쁜 결과가 나오더라도 가만 있는 것보다는 행동하는 게 낫다는 믿음이다. 아니 어쩌면 그건 본능인지도 모른다. 영국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는 “우리는 먼저 생각하고 나중에 행동할 수 없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행동 속으로 빠져들게 되며, 생각을 통해서 행동을 적절히 이끌어 나갈 수 있을 뿐이다”고 했다.
이스라엘 학자 마이클 바-엘리(Michael Bar-Eli)는 축구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차는 선수들을 관찰했다. 3분의 1은 공을 골대의 중앙, 3분의 1은 왼쪽, 3분의 1은 오른쪽으로 차더라는 게 밝혀졌다. 그런데 골키퍼들 중 2분의 1은 왼쪽으로 몸을 날렸고 2분의 1은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확률은 같은데도 중앙에 멈춰 서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왜 그랬을까? 동네 축구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그 이유를 쉽게 짐작할 것이다.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공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는 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차라리 틀린 방향으로라도 몸을 날리는 편이 훨씬 나아 보일 뿐만 아니라 골키퍼 자신도 심적으로 덜 괴롭다. 아무런 소용이 없더라도 행동을 보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행동 편향은 인류의 오랜 진화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사냥꾼과 채집가들이 살던 환경에서는 번개처럼 빠른 반응이 생존하는 데 중요했으며, 오히려 생각하는 것은 치명적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세상은 크게 달라졌지만, 인간의 그런 습성은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아기가 타고 있어요.” 미국과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자동차 스티커다. 이런 스티커가 인기를 누리는 것 역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믿는 우리 인간의 성향 때문이다. 미국 철학자 잭 보웬(Jack Bowen)은 그런 성향의 심리적 메커니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불운을 겪을 때’ 느끼는 부정적 감정은, 실제로 무언가 행동을 하고 나서 불운을 겪을 때 느끼는 부정적 감정보다 더 크다. 불운이나 실패를 겪을지언정 ‘그래도 최소한 노력은 했잖아’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좋은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데도 말이다. 예를 들어 주식거래에서는 주식을 팔지 않고 장기간 보유하고 있는 게(즉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게) 더 나을 때가 많다. 하지만 고객이 보기에는 증권 브로커가 뭔가 행동을 취해야만 그가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보인다. 고객 입장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 있으라고 브로커에게 돈을 지급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도 증권 브로커와 비슷한 처지에 처해 있다. 국민 역시 정부가 가만 있으라고 세금을 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공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최악의 행동 편향은 정부의 대학 입시 정책에서 나타난다. 살인적인 입시 경쟁과 과도한 사교육비 문제는 한국 사회의 학벌주의, 즉 간판주의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입시 방법을 좀 바꾸는 수준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역대 정부들은 달라질 게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는데도 입시 정책을 가지고 사실상 장난을 치는 어리석은 짓을 수없이 반복해왔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이주호는 장관이 되기 전에 “장관 따라 정권 따라 바뀌는 입시 제도에 신물이 날 지경이다. 교육부 장관이나 대통령 마음대로 입시를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 역시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에 굴복해 언론에서 “정권마다 성형수술되는 대입에 국민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비판을 받았다. 물론 그 이후로도 ‘대입 성형수술’은 계속되었다. 2013년 8월에 나온 다음의 세 지적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이번 대입 개편안은 교육정책이 정부가 바뀔 때마다 ‘불충분한 의견 수렴→탁상정책 마련→졸속 추진→제도 폐기’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교육계에서 ‘교육오년지소계(敎育五年之小計)’란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오락가락 교육정책의 피해자는 결국 학생과 학부모다.”
“교육부가 결정한 내용을 몇 년도 안 돼 손바닥 뒤집는 일이 반복되면서 대입은 불신의 대명사가 됐다. 해방 이후 현재까지 총 16번, 3년 10개월 주기로 바뀌다 보니 우리의 교육제도가 ‘삼년지소계(三年之小計)’라는 비판을 사는 주된 이유도 입시 제도의 불안정성에 있다.”
“이번 대입 개혁안도 그동안 하도 자주 바뀌어 누더기가 돼버린 우리 대입 제도 변천사(變遷史)에 또 하나 칼자국을 보탠 것뿐이다. 광복 이후 68년간 우리 대입 제도는 굵직한 것은 18차례 바뀌었고, 수능 난이도 조정이나 전형 방식 변경 같은 자질구레한 변화는 연례행사처럼 있어 왔다. 그럴 때마다 겉으론 학생 부담 완화, 사교육비 절감, 공교육 정상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학생·학부모·학교는 바뀐 제도를 따라잡지 못해 혼란에 휩싸였다. 그 덕에 사교육, 입시 정보 업체들만 살판났다.”
교육부는 도대체 그 미련한 짓을 왜 하는 걸까? 지적으로 좀 모자란 사람들이 교육부에 몰려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학생과 학부모들을 괴롭히겠다는 악의(惡意)나 악취미 때문일까? 그게 아니다. 행동 편향 때문이다. 새로 들어선 정권, 새로 바뀐 장관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한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의 포로가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연례행사처럼 반복하는 것이다.
개인 차원에서든 사회 차원에서든 행동 편향은 사라지기 어렵다. 우리 인간은 행동을 예찬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상가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들이 방 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지 못하는 데 있다”고 했다지만, 행동(실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속담과 격언이 훨씬 많다.
역사적으로 존경받는 인물들의 이름을 떠올려보라. 그들은 100퍼센트 어떤 행동 때문에 존경을 누리는 것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걸로 인정을 받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희생번트’ 작전이 야구 감독들의 숙명이듯이, 행동 편향은 우리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짝사랑의 열병을 앓는 사람들에겐 좀처럼 이게 나타나질 않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랑을 고백하는 행동을 저질렀다가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행동 편향을 압도하기 때문일까? 하긴 두려움 때문에 행동을 취하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행동하는 양심’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오게 된 게 아니겠는가?
[네이버 지식백과] 행동 편향 - 왜 대학 입시 제도는 3년 10개월마다 ‘성형수술’을 할까? (감정독재, 2014. 1. 9.,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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