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하게도 슈베르트가 자신을 희생하며 고통과 절망 속에서
찍어 쓴 음표 하나하나는 우리들에게 무한한 기쁨과 용기를 주며
우리들 감정을 맑게 정화시켜줘"
슈베르트(1797-1828)는 그 짧은 생애 동안에 600곡이 넘는 가곡과 교향곡을 비롯한 당시의
모든 음악 양식을 폭넓게 작곡했으며, 자신은 인식하지 못했지만 후일 남만주의 음악의
선봉장이 되었다. 유명한 <미완성 교향곡>은 후세의 브람스와 브루크너, 말러 교향곡의 모태가
되었고, 18살의 나이에 쓴 극적인 긴장감으로 가득 찬 가곡<마왕>은 슈만과 볼프, R. 시트라우스로
이어지는 독일예술가곡의 출발점이 되었다.
슈베르트 음악의 본질적인 특징은 깊은 숲 속의 이끼 낀 바위틈에서 끊임없이 솟아 오르는
샘물과 같이 그의 영혼에 흐르는 서정적인 노래에 있었고 이러한 점은 가곡을 포함한 그의 모든
작품에서 발견된다. 1828년은 슈베르트에게는 괴로운 나날이었다. 그의 절친했던 친구들은 하나
둘 떠나갔고 그를 오랫동안 괴롭혀온 병마와 가난은 그의 죽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죽음에 대한 예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가슴에서 샘솟듯이 물결치는 악상은
그의 손을 잠시도 쉬게 만들어 주지 않았다. 그의 피아노 음악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B장조
피아노소나타는 이 시기에 작곡되었으며 이 곡의 작곡 후 그에게 허용된 삶은 불과 수주일
뿐이었다.
곡은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악장은 피아노곡인 <즉홍곡>을 연상시키는 참으로
슈베르트다운 선율로 시작하여 전개부와 몇번의 전조의 과정을 거친 후 조용히 끝난다.
2악장은 3부형식으로서 이곡과 같은 시기에 작곡된 그의 실내악 중 최고 걸작인 <현악5중주>의
2악장이 한편의 아름다운 서정시인데 비하여 어둡고 절망적인, 거의 구원을 찾을 수 없는 무거운
분위기가 전체를 지배한다. 이 악장은 죽음을 목전에 둔 슈베르트의 괴로웠던 당시의 심정을
토로한 것으로 가곡집 <겨울나그네>중 12곡 〈고독〉과 <백조의 노래>중 13곡 〈그림자> 등과
함께 슈베르트의 작품중에서도 가장 어둡고 고통에 찬 곡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슈베르트 자신을 희생하며 고통과 절망 속에서 찍어 쓴 음표 하나하나는
우리들에게 무한한 기쁨과 용기를 주며 지나온 과거를 재조명하게 해주며, 우리들의 감정을
정화시켜 주어왔다. 3악장과 4악장에서 빠른 템포로 다시 원기를 찾은 듯 했으나 그의 영혼은
이미 깊은 상처를 입어 어딘가 불안정한 표정을 지니며 곡은 끝난다.
고흐가 그림을 통해서만이 자기 자신을 말할 수 있었듯이 슈베르트 역시 음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만이 자기 세계를 표출할 수 있었다. 슈베르트는 사후 그 자신의 소원대로 그가 평생
존경해 온 베토벤의 옆자리에 영원한 안식처를 얻었으며, 그가 남겨놓은 재산은 헌 양복
3벌과 낡은 침구뿐이었지만 그의 가슴에서 흘러 넘친 그 주옥같은 선율과 아름다움은 영원히
우리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 ‘서상중’의 ‘음악이 있는 공간'에서
https://youtu.be/TKy0Lyl4g-s?si=F3Y_l6OV6_AJYqh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