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지(三國志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영한대역 만화 삼국지
화병(畵餠) - 그림 속의 떡. 바라만 보았지 쓸모가 없음.
화병충기(畵餠充飢)
- '그림의 떡으로 굶주린 배를 채우다'라는 뜻으로, 아무런 실속이 없는 일 또는 허황된 상상이나 공상으로써 스스로 위안을 삼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명제(明帝) 조예(曺叡)와 노육(盧毓)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1) 화병(畵餠) 또는 화중지병(畵中之餠)이라고도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그림의 떡'이라는 말로 사용된다. 노육은 후한(後漢) 말기의 중신(重臣) 노식(盧植)의 아들로, 학식이 높고 행실이 단정하여 명성이 높았다. 명제는 그를 중서랑(中書郞)이라는 요직에 임명하였다. 어느 날, 명제는 노육(盧毓)에게 "인재를 등용하는 일이 그대에게 달려 있다. 인재를 가려 천거할 때에는 그 명성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니, 명성이란 땅에 그린 그림과 같아서 먹을 수 없는 것이다(得其人與, 在盧生耳. 選擧莫取有名, 名如畵地作餠, 不可啖也)”라고 말하였다.
이에 대하여 노육(盧毓)은 "명성만으로 이인(異人)을 얻을 수는 없지만, 상사(常士)는 얻을 수 있습니다. 상사는 가르침을 두려워하고 선함을 그리워하여 명성을 얻은 것이므로 이는 미워할 바가 아닙니다. 옛날에는 말로써 아뢰고 공으로써 공정하게 시험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시험 제도가 폐지되어 비방과 칭찬으로써 진퇴가 결정되므로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있고, 허와 실을 가리기 어려운 형편입니다"라고 아뢰었다. 이 말을 듣고 명제는 시험 제도를 다시 시행하도록 하였다.
이 고사는 《삼국(畵餠充飢)지(三國志)》의 〈노육전(盧毓傳)〉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화병충기(畵餠充飢)는 그림의 떡처럼 먹을 수 없어 아무런 쓸모가 없고 실속이 없는 일을 비유하거나, 먹을 수 없는 그림의 떡으로 배를 채우는 것처럼 허황된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는 일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 출처 : 영한대역 칼라 만화 삼국지(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제7권 P200) / 아래 스캔 자료 참조
- 저자 :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21st C.E.T.A.)
- 출판사 : (주)파우스트 칼리지
-------------------------------------------------------------
노육(盧毓, 183년? ~ 257년) Lu Yu
(1) 노육(盧毓, 183년? ~ 257년)은 중국 삼국 시대 위(魏)의 정치가로, 자는 자가(子家)이며 유주(幽州) 탁군(涿郡) 탁현(涿縣) 사람이다. 후한 말의 정치가 노식(盧植)의 4남이다.
(2) 열 살에 부친이 죽었고, 당시에는 후한 말기의 혼란기였는데, 두 형이 죽었고 원소(袁紹)와 공손찬(公孫瓚)이 서로 싸우며 유주와 기주(冀州)에는 흉년이 들었다. 노육은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형들이 남긴 식구들을 길러, 학문과 행실로 명성을 얻었다. 조비(曹丕)가 오관중랑장(五官中郞將)이 되면서 오관중랑장 소속의 문하적조(門下賊曹)가 되어 처음으로 출사했고, 최염(崔琰)이 기주주부(冀州注簿)로 천거했다.
당시 전란 중에 새로운 질서를 세워가고 있는 중에, 도망치는 병사를 다스리는 법령이 엄해 처자도 연좌했다. 이때 도망친 병사의 아내 백(白) 등이 사로잡혔다. 비록 이들은 혼인한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을 보지도 못했지만, 대리는 기시(棄市)에 처할 것을 주장했다. 노육은 《시경》(詩經)과 《예기》(禮記)를 인용하여 혼인해도 남편을 못 본 여자는 아직 부인이 아니라고 하여, 이러한 연좌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 논변과 학식에 승상(丞相) 조조(曹操)가 감탄했다. 그래서 노육은 승상법조의령사가 되었다가, 서조의령사로 전임했다.
조위가 후한의 제후국으로 세워지면서 이부랑으로 승진했고, 조비가 칭제건원(위 문제)하면서 황문시랑이 되었다가 외직인 제음상(濟陰相), 양군태수, 초군태수(楚郡太守)를 역임했다. 문제는 자기 본향인 초군에 사람들을 이주시켜 충실히 하려고 했으나, 노육은 초군이 황폐하여 이주된 백성들이 곤고하므로 표를 올려 이 둔민들을 인근의 양국으로 옮기도록 청했다. 문제는 이를 허락하고, 노육이 자기 뜻을 거슬렀으므로 수양전농교위로 좌천시켰다. 노육은 백성들의 이익을 도왔고 백성들도 노육에게 의지했다. 나중에 안평태수(安平太守) · 광평태수(廣平太守)를 지내며 백성들에게 은혜를 주고 교화에 힘썼다.
청룡(靑龍) 2년(234년), 내직인 시중(侍中)으로 전임했다. 유소의 정률 미진 문제를 두고, 법 해석의 모호함을 우려하는 상소를 했다. 3년 재직하면서 법률 개정 문제를 놓고 자주 논변을 펼쳤고, 명제의 칭찬을 받아 이부상서(吏部尙書)로 승진했다.
명제가 노육에게 인재 임용을 자문한 사례가 몇 있는데, 시중이 공석이 된 이때가 첫째 기회로, 이때 노육에게 후임 시중을 천거하게 했다. 노육은 정충(鄭沖)을 천거했으나, 명제가 받아들이지 않자 완무와 손옹을 천거했고 손옹이 임용되었다. 당시 제갈탄(諸葛誕) · 하후현(夏侯玄) · 등양(鄧颺) 등 부화한 무리가 서로 “사총팔달”이라 하며 명성을 드날렸다. 명제는 이런 풍조를 싫어했다. 마침 중서랑 문제가 생기자, 명제는 조칙을 내려 “적임인지 아닌지 알아낼 사람은 노생(노육) 뿐이다.”라고 해 노육에 대한 신임을 드러냈고, 또 “명성은 그린 떡 같아, 먹을 수 없다.”고 하여 부화한 무리들이 쌓는 허명에 대한 증오를 드러냈다. 노육은 명성은 평범한 선비를 모으는 데는 유용하며, 이들의 덕도 있으므로 아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명제는 이를 받아들여 고과법을 지었다. 경원(景元) 원년(237년), 사도 진교(陳矯)가 죽고 한동안 사도직이 비어 있었다.[5] 명제는 노육에게 천거를 맡겼다. 노육은 옛날 광평태수 시절 처사 관녕(管寧)을 대우함이 지나치다고 비판한 적이 있었으나, 관녕을 천거했다. 관녕이 출사를 거부하자, 한기(韓曁)와 최림(崔林)과 상림(常林)을 천거했고, 명제는 한기를 택했다. 노육은 천거할 적에 그 사람의 재능과 언사보다 성품과 행실을 우선시했다. 그 의도를 이풍(李豊)이 묻자 재능은 선을 행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럴 수 없다면 재능이 있어도 임용할 수 없다고 답했다.
조방(曹芳)이 즉위하면서 관내후가 되었다. 조상(曹爽)이 집권하면서 자기 당인 시중 하안(何晏)으로 노육을 대신하고, 노육은 상서복야로 삼았다. 얼마 못 가 정위(廷尉)로 내몰렸고, 또 다른 조상의 심복 사례교위 필궤(畢軌)와 사이가 틀어져 면직됐다. 그러나 세간의 비판에 직면해, 노육은 다시 등용되어 광록훈으로 임명됐다. 사마의(司馬懿)가 정변을 일으키고 조상을 실각시키자, 노육을 사례교위로 임명하고 조상 일당의 치죄를 맡겼다(고평릉의 변). 이부상서로 복직하고, 봉거도위를 또 받았으며 고악정후에 봉해졌다. 상서복야로 승진하고 관리 선발을 맡았으며 광록대부가 더해졌다. 정원 원년(254년), 조모(曹髦)가 즉위하면서 봉작이 올라 대량향후가 되었다. 이듬해 관구검(毌丘儉) · 문흠(文欽)의 난을 사마사(司馬師)가 진압하러 가면서 노육을 남겨 후방의 일을 맡기고 시중을 더했다. 감로 원년(256년), 사공이 되었다. 왕창, 왕관, 왕상에게 사양했으나 거절당했고, 봉작이 또 올라 용성후가 되었다. 감로 2년(257년)에 죽었으며, 시호를 성후라 했다.
-------------------------------------------------------------------------
1. 영한대역 칼라만화 삼국지(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 나관중 / 20권 / 할인가 108,000원
2. 도서 구입 안내 : 각권 정가 15,000원 / 택배비 무료
(각권 정가 15,000원 / 10% 할인 정가 13,500원)
(1) 출판사명 : (주)파우스트 칼리지
(2) 저자명 :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21st C.E.T.A.)
(3) 도서 구입 전화 : 1599-9039(파우스트 칼리지)
입금 계좌 : 국민은행 024801-04-350812(예금주 (주)파우스트 칼리지)
(4) 이메일 : faustcollege@naver.com
(5) Blog : http://blog.naver.com/ceta211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
(6) Cafe : http://cafe.daum.net/21ceta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
http://cafe.naver.com/ceta21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
(7) Web-site : www.faustcollege.com (주)파우스트 칼리지
(8) 판매처 : 교보문고, YES 24, 알라딘
------------------------------------------------
[재미로 읽는 영한대역 세계명작 만화]
징기즈칸[Genghis Khan, 成吉思汗]
출생 – 사망 : 1162 ~ 1227
재위 기간 : 1206 ~ 1227
지역 : 아시아 대륙
왕조 : 몽골 제국
거대한 몽골 제국은 동방으로부터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유럽 세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서양사에 공포의 상흔을 남긴 징기즈칸, 그리고 몽골은 어떠한 존재였을까?
(1) 배경 - 동방 왕의 전설
리처드 왕의 십자군도 만족스러운 전과(戰果)를 올리지 못하고 유럽 세계가 이슬람과의 오랜 싸움에 염증이 났을 무렵, "적국 이슬람의 동쪽 저편에 기독교도들의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 왕은 프레스터 존(Prester John), 즉 '사제 요한'이라고 한다"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동방에서 이슬람과 싸우면서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을 노리고 있다는 이 왕의 이름은 서방의 '십자군' 사이에 하나의 구세주의 전설로서 사실인 양 퍼져 나갔다. 전설의 근원이 된 것은 당시 위구르와 몽골 고원의 일부에서 널리 퍼져 있던 네스토리우스파(派) 기독교(景敎)의 일부인데 그 실체는 전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유럽은 이 허상을 바라고 있었다. 페쇄된 시대에 성스러운 왕이 동방에서 나타나 이슬람군을 격파해 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결국 희망대로 동방에서 전설의 왕이 왔다. 하지만 그 왕의 이름은 징기즈칸이었다.
(2) 태생 - 몽골의 고아
징기즈칸이 이끄는 몽골이 역사의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13세기 초이다. 당시 몽골 고원에서는 위구르 유목 제국이 해체된 이후에 3세기 반에 걸쳐 분열과 할거(割去)가 이어졌다. 요(遼)를 비롯한 주위 국가들은 모두 몽골의 유목 부족이 하나로 뭉치는 것을 두려워했는데 그 이유는 과거의 흉노(匈奴), 돌궐(突厥)같이 하나가 된 부족 연합은 틀림없이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유력한 부족이 나타나면, 그 대항마(對抗馬)를 지원하여 서로 싸우게 했고 그래도 안 될 때는 대군을 북벌(北伐)하게 하여 직접 격파했다. 경연(硬軟) 양면에서 간섭한 결과 유목 부족들이 통일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요(遼)가 금(金)에 쓰러지고 멀리 중앙 아시아에서 서요(西遼)가 된 이 당시에는 몽골 고원에 대한 압박도 다소 느슨해져 있었다. 사실, 이 시대에 이르면서 몽골 부(部)는 통일되었고, 칸도 3대째에 이르렀다. 그러나 유목 부족 사이에서 여전히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고, 몽골 고원 전체를 하나의 군단(軍團)으로 통일할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징기즈칸, 그의 어릴 때 이름은 테무진이었는데 초년 시절은 그리 평탄치 않았다. 아버지 에스게이는 쿠트라 칸의 뒤를 이어 몽골 부의 제4대 족장에 오를 것으로 촉망받고 있었으나 테무진이 어렸을 때 숙적(宿敵) 타타르 부(部)에 의해 독살당했다. 그러자 에스게이를 따르던 타이치우트 씨족은 손바닥 뒤집듯이 테무진을 배신했고, 테무진의 복수를 염려해 어린 그를 죽이려고 계획했다. 난세에 이용 가치가 없는 사람을 배척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각별히 사악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테무진이 어리고 힘이 없을 때 제거하려 한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테무진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호에른의 엄한 교육 때문에 테무진은 아주 가혹하고 격렬한 성격으로 자라났다.
이런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테무진을 비롯한 4형제가 강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이때 에스게이의 또 다른 아내의 아들, 이복형제 두 명이 찾아와서 그들이 낚은 고기를 빼앗았다. 테무진은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말했는데, 어머니는 형제끼리 싸워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어머니의 책망을 듣고 테무진은 남동생 카사르와 활을 들고 집을 나가 이복형제를 앞뒤에서 공격하여 활로 쏘아 죽였다. 집으로 돌아온 두 아들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된 어머니는 "같은 집안 사람끼리 싸워서 어떻게 하느냐"고 테무진을 꾸짖었다고 한다. 그런 성격의 소유자가 조용히 참으며 살 리가 없었다.
테무진은 보르테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눈에 불이 있고 얼굴에 빛이 있는' 소년 테무진과 소녀 보르테를 약혼하게 한 것은 아버지 에스게이였지만 정식 결혼은 그로부터 9년이 지나서야 성사되었다. 이때 보르테가 갖고 온 결혼 선물 크로텐(검은담비) 가죽옷이 테무진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당시에 크로텐 가죽옷은 매우 고가품이었고 유목민 사이에서 진귀한 옷이었다. 테무진은 이 털가죽을 가지고 케레이트 부(部)의 군주 토오릴 칸에게 찾아갔다. 토오릴 칸은 선친 에스게이의 친한 친구였고 그를 같은 편으로 만들면 100만의 우군을 얻게 되는 셈이었다. 테무진은 몽골 고원 최대의 군주를 우군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이용하려는 과감한 도박에서 결국 이겼던 것이다. 크로텐 모피에 기분이 좋아진 토오릴은 기뻐하며 말했다.
"답례로 너의 해산된 씨족 사람들을 모아 주마."
(3) 인격 - '유린하라'고 초원은 말했다
유목민의 생활은 가혹한 편이다. 으레 초원이라고 하면 초목과 바람, 끝없이 높은 하늘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기후는 1년 중 짧은 여름에 불과하며 이 시기를 제외하고는 혹독한 추위 속에 갇힌다. 1월의 평균 기온은 영하 26.1도. '눈에 방목된 소의 머리가 얼어서 깨지거나' '쇠꼬리가 얼어붙어서 뚝 잘려 땅에 떨어지기도' 하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 유목민들이 철저한 약육강식의 논리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정확한 판단력과 단호한 행동력이 없으면 유목 생활을 해나갈 수 없으며 그것이 몽골 제국 전체의 특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징기즈칸은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는 "남자가 쾌락과 기쁨으로 삼는 것은 모반인(謀叛人)을 유린하고 적을 정복하여 재산을 박탈하고 그 시종들의 눈, 코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며, 그들의 살진 말을 타고 그들의 아내를 나의 침상으로 삼아 그 장미 같은 뺨을 애무하고 진홍빛 입술에 입맞춤하며 끌어당기는데 있다"고 말했다.
징기즈칸의 이 잔학성은 젊을 때 겪은 여러 굴욕적인 사건이 원인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죽음을 당하고 가난의 밑바닥에서 허덕이며 아내를 빼앗기고 아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의 아들을 낳은('징기즈칸의 큰아들' 박스 글 참조) 데 대한 분노는 마음 속 깊이 앙금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징기즈칸이 단순히 어두운 분노에 자극받아 행동할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떤 분노에도 좌우되지 않는 냉철함, 그것이 징기즈칸이 무서운 진짜 이유였다. 그의 냉철함과 지략(智略)은 원정(遠征)에서 충분히 발휘되었다.
(4) 징기즈칸의 큰 아들
징기즈칸의 아내 보르테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메르키드족에 의해 납치당했다. 그녀는 토오릴 칸이 9개월 동안 교섭을 벌인 끝에 징기즈칸에게 돌아올 수 있었는데, 돌아온 직후에 사내아이를 낳는다.
징기즈칸은 아들의 이름을 주치[朮赤]라 했는데, '객인(客人)' 즉 '이방인'이라는 뜻이다. 이런 이름을 붙인 이유는 보르테가 남편에게 돌아오는 도중에 뜻하지 않게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설과 사실은 징기즈칸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5) 대서정(1) - 호레즘 샤와의 대립
1219년, 징기즈칸은 서양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때까지의 10년 동안 그는 몽골을 강력한 통일 국가로 통합하고 중국 북부의 금(金)을 침략하여 정복했다. 당초에는 유목민 특유의 약탈 행위로 시작된 이 침략은 해를 거듭하면서 토지를 제압하고 항구적으로 지배하는 정복 행위로 그 성격이 바뀌어 갔다. 혹독한 자연 속에 자란 유목민들에게 정착민들의 토지는 처분하기에는 너무 풍요로웠던 것이다. 지배를 하게 되면서 몽골 유목민들의 성격도 바뀌어 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지배하기 위해 서쪽으로 눈을 돌렸다. 몽골의 서양 정복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 당시에 서아시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이던 호레즘 샤 왕조는 1210년에 국력이 쇠퇴해 있던 서요(西遼)를 멸망시키고 북쪽은 카스피해 연안으로부터 남쪽은 페르시아, 동쪽으로는 힌두쿠시로부터 서쪽은 코카서스(카프카스)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징기즈칸은 몽골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호레즘 샤와 당초에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1215년에 징기즈칸은 호레즘 샤가 보낸 사절단에게 말했다.
"내가 동방의 패자가 될 것이니 샤는 서방의 패자가 되시오. 우리는 서로 평화와 우호를 유지하여 상인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겠소?"
그러나 징기즈칸의 진의는 다른 데에 있었다. 『집사(集史)』에 의하면 1216년에 대금(對金)침략에 일단락을 지은 징기즈칸은 몽골 전군에게 2년간 휴식을 명령했다. 부족 전체적으로 대원정 준비가 진행되어 서방으로 첩보(諜報)·조략(調略)을 목적으로 통상단이 보내졌다. 표면상의 우호 관계는 적의 내정을 다 살필 때까지의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1219년에 호레즘 영(領)인 오트라르(시르다리야 강의 동안, 그 지류 아리스 강 남쪽에 있었으며 옛 명칭은 파라브. 호레즘 왕국 시대에는 그 국경 도시가 되고, 태수가 몽골의 대상을 살해했기 때문에 징기즈칸이 서부 정벌을 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에서 몽골 통상단이 첩자 혐의로 학살을 당했다. 문명국 사이에서 통상단이 파견되는 경우 그것은 보통 스파이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며,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받아들일지 아닐지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 방식이었다. 호레즘이 취한 방법은 그다지 문명적이지 못했다. 징기즈칸은 분노했고, 이것은 침략을 개시할 아주 좋은 빌미였다.
(6) 대서정(2) - 중앙 아시아에서 러시아로
용의주도한 첩보 활동을 벌인 결과 호레즘에 대한 조사가 끝났다.
골 왕조, 아바스 왕조를 누르고 이슬람 세계의 최대 패자(覇者)로 알려졌던 서방의 강국은 실은 겉보기보다 실속은 없었다.
호레즘 샤 왕조가 갑자기 대두하게 된 것은 아랄해(海) 북방의 사나운 유목 민족인 터키계 캉글리족(族)의 무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직접 충성을 맹세한 것은 호레즘 국왕 무하마드의 생모, 캉글리족 출신의 테르켄 하튼이었고, 호레즘 왕조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이 대립하고 있었다. 캉글리족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킬 것을 염려한 무하마드는 병력을 집중시킬 수 없었다. 이러한 사정은 몽골측에 바로 누설되었다. 몽골의 철저한 내부 교란(攪亂)의 결과, 공격의 손길은 무하마드의 어머니 테르켄 하튼에게까지 뻗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결국 호레즘 군대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개별적 도시 방위군으로 몽골 군대 전체와 싸워야 했고, 마침내 모조리 패하고 만다.
1219년, 징기즈칸이 이끄는 원정군은 오토라르 시를 공격하고, 이어서 마와라 안나르 지역을 침공했다. 나중에 제왕 티무르에 의해 번영하는 이 지역은 옛날부터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비옥한 지대였고 수도 사마르칸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탐내던 곳이었다.
오아시스 여러 도시를 공격, 함락시킨 몽골군은 공성전(攻城戰)에도 뛰어났다. 오토라르를 공략하는 데는 5개월이 걸렸지만 부하라는 며칠 만에, 그리고 사마르칸트는 4일 만에 함락되었다. 금(金)과 서하(西夏)에서 등용한 기술자에게서 습득한 공성전 기술이 주효했음은 물론이고, 몽골군(軍)이 두려워 자진해서 문을 여는 도시들도 많았다. 사전에 조사한 대로 호레즘 샤 왕조의 행동은 전혀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몽골군은 강력하고 잔학한 군대임을 알려 전쟁 전부터 정보전에서 상대방의 사기를 꺾어 놓았다. 사마르칸트에 몽골군이 오기 직전에 국왕 무하마드는 도시에서 도망쳐 버렸다.
서양 세계에 이 사태는 전설의 구현으로 전해졌다. 프레스터 존은 다윗 왕으로 이름을 바꾸고, 페르시아를 석권하고 바그다드 근처까지 육박했다는 정보가 로마 교황청을 통해 유럽에 퍼졌다. 환상의 구세주가 나타났다는 데 힘을 얻은 십자군은 아이유브 왕조의 수도 카이로를 공격했으나 물론 동방으로부터의 원군(援軍)은 오지 않았다. 십자군은 참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서양 세계에 동방에서 온 군단이 루시(러시아)를 향해 올라오고 있다는 새로운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7) 진격 - 러시아 공략전
사마르칸트에서 도망친 호레즘 국왕 무하마드는 서쪽으로 달아났다. 무하마드가 도망친 것은 몽골군을 내지(內地)로 유인, 공격하려는 책략이었다는 설이 있지만 이미 때늦은 일이었다. 국왕의 추태가 호레즘 샤 왕조의 해체를 앞당겼다는 설도 있다.
이 시기에 니샤푸르에서 징기즈칸이 낭독한 선언문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사령관, 대관, 평민들이여. 신이 동에서 서에 이르는 지상의 제국을 짐에게 준 것을 알라. 항복하는 자는 목숨은 살려 줄 것이다. 그러나 저항하는 자는 불행을 당하여 처자(妻子), 평민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풍요로운 마와라 안나르를 제압한 징기즈칸은 세계 제패의 실현을 계획했는지도 모른다. 징기즈칸의 군대는 이란 서부 여러 지역을 공략하는 한편, 장군 제베와 스베테이가 군대를 이끌고 루시로 향했다. 무하마드를 쫓아간다는 것이 명목이었지만 사실은 새로운 땅을 정복하기 위한 침략 행위였다.
무하마드는 추격을 피해 카스피해 남안의 쿠르간까지 달아났다. 그러나 결국 몽골군에게 발견되어 카스피해 앞바다의 아바스쿤 섬으로 다시 탈출했으나 폐병이 악화되어 죽고 말았다. 이것이 1220년 12월의 일이다.
제베와 스베테이의 진군은 계속되었다. 몽골군은 그대로 카스피해 서안에서 북진하면서 도시들을 함락해 나갔다. 카프카스 지방을 지나 흑해 연안으로 들어간 원정군은 곧 칼카 해반(海畔)에서 루시군(軍)과 일전을 벌인다.
몽골군은 당초에 남러시아 초원에 분포하는 터키계 유목민 부족 킵차크족(族)을 정복하려는 계획도 있었는데, 킵차크족은 예전의 징기즈칸의 숙적 메르키드족과 교류하는 부족이기 때문에 제압해야 할 적이었다. 몽골군이 쳐들어오자 킵차크의 족장이며 루시와 인연이 있던 코치아는 루시측에 협력을 요청했고, 루시의 대공 게오르규는 몽골에 대항하는 동맹을 맺게 된다.
루시 제후들로 이루어진 연합군은 드네프르 강 우안(右岸)에 진을 치고 몽골군을 기다렸다. 연합군은 8만 정도였고, 이에 비해 몽골군은 훨씬 열세였다. 첫 전투에서는 연합군의 가리치 공(公)이 몽골군을 압도했다. 기세등등해진 연합군은 후퇴하는 몽골군을 추격했고, 몽골군은 연합군을 방어하면서 칼카 강 동안(東岸)까지 후퇴했다. 그러나 그것은 몽골군의 책략이었다. 몽골에 비해 기동력이 뒤떨어지는 루시군(軍)은 추격전에 지쳐 있었는데, 가루치 공은 혈기만을 믿고 칼카 강을 건너는 작전을 감행했다. 때를 기다리고 있던 몽골군은 일제히 반격에 나섰고 루시군은 꼼짝없이 격파당하고 말았다.
가루치 공의 군단과 그것을 지원한 킵차크 군대는 괴멸되었고 몽골군은 제후들을 추격하여 그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키에프 공, 체르니고프 공은 붙잡혔고 공전승(共戰勝)의 연회석상에서 함께 처형되었다.
칼카 강의 결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그후 원정군은 동쪽으로 전진하여 징기즈칸의 본군대와 합류하여 본국으로 돌아갔다. 루시 남쪽에 몽골군의 직접적 영향이 미치지는 않았지만, 이 패배는 루시 제후, 그리고 흑해 건너편의 비잔틴 제국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상흔(傷痕)을 남기고 몽골은 이렇게 떠났다. 1227년 징기즈칸은 서하 정복전이 한창일 때 죽었는데, 그가 만든 제국과 정복에 대한 야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서양 세계는 다시 한번 징기즈칸의 그림자에 떨게 된다.
(8) 재방문 - 유럽 침입
1236년, 루시인들이 몽골을 거의 잊어갈 무렵에 몽골은 다시 동쪽에서 왔다. 징기즈칸의 뒤를 이은 오고타이 칸의 명령하에, 죽은 징기즈칸의 장남 주치의 아들인 바투 칸이 군을 이끌었다. 이번 원정의 목적 또한 킵차크족 지배, 호레즘 잔당의 괴멸, 그리고 서양 세계의 정복이었다.
바투 원정군은 우선 가까이 있는 킵차크족을 공격했다. 유목민 집단에 불과하며 몽골처럼 군단으로서 통일되지 않은 킵차크족은 몽골군의 적수가 못 되었다. 어떤 자들은 서쪽으로 도망치고 어떤 이들은 투항하여 대부분이 몽골의 지배하에서 몽골군의 일원으로 재편성되었다.
새롭게 킵차크군을 얻게 된 바투 원정군은 그 다음으로 루시를 침공했다. 카스피해에서 북상하여 모스크바, 블라디미르 여러 도시를 장악하고 노브고로드를 위협한 후에 방향을 바꾸어 폴란드, 헝가리 방면으로 침입해 들어갔다.
겁에 질린 두 나라는 동유럽의 비잔틴 제국과 로마 교황에게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했지만 당시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는 신성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2세와의 전쟁에 패해 그 호소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9) 압도 - 발슈타트 전투
유럽의 권력자들이 방관하고 있는 동안, 몽골군 별동대는 폴란드에 침입하여 폴란드 대공은 국내가 수습되지 않은 채 이를 맞아 싸우게 되었다. 1241년 4월, 양군은 리그니츠 평원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이고 몽골군은 폴란드군을 괴멸했다. 이곳은 훗날 발슈타트라 불렸는데 독일어로 '시체의 도시'라는 뜻이다. 이는 전투 후에 시체가 많이 나왔기 때문인 듯하다. 이 전투의 규모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몽골군의 가차없는 살육은 러시아인들에게 이질적인 모습으로 비쳤을 것은 확실하다.
그 무렵 바투가 이끄는 본대(本隊)는 헝가리로 향하고 있었다. 당시 헝가리 왕국의 군대는 유럽 최강으로 알려져 있었고, 국왕 베라 4세가 이끄는 헝가리군은 전력상 몽골군에 뒤지지 않았다고 한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현 부다페스트)로 진로를 잡은 몽골군과 헝가리 국왕군은 사요 강의 하반(河畔)에서 대치했다. 몽골군의 노궁포(弩弓砲)가 빗발치듯 쏟아져 헝가리군 내부에서는 참전한 수도원장과 국왕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이 혼란을 틈타 몽골군은 헝가리를 격파했다. 참패한 헝가리군은 몽골군의 추격을 받아 퇴로에는 여정 이틀에 걸쳐 시체가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10) 공포의 전설 - 타타르의 멍에
유럽은 위기에 처해 있었고, 몽골군이 어디까지 공격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헝가리에서부터 서쪽으로 향하면 그곳은 독일, 프랑스와 평원이 이어져 있었다. 라인 강 이외에 몽골군의 진격을 저지할 요충지는 없었다. 그대로 대서양에 도달하고 마는 것이다. 바투군은 헝가리 평원의 목초 지대에 주둔하며 전진에 대비하고 있었다. 만약 몽골군이 유럽을 정복했더라면 라인 강가의 구릉지대는 목초지대로 모습을 바꿔, 훗날 유럽의 역사, 아니 세계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유럽을 구한 것은 1241년 12월의 오고타이 칸의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정복 명령은 본래 오고타이 칸이 내렸으므로 그것을 계속할 것인지는 대회의를 열어 결정할 문제였다. 바투 칸은 빈을 눈앞에 두고 군사를 돌려 유럽을 떠났다. 그후에 몽골군이 유럽을 공격하는 일은 없었지만, 루시 땅에서는 제후와 각 도시, 그리고 정교회(正敎會)가 몽골의 지배를 완전히 받아들여 이후 수백 년간 루시는 킵차크 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를 러시아인들은 '타타르의 멍에'라 불렀고, 이 말은 지금도 불행을 뜻한다.
몽골인들의 지배는 몽골군의 가혹함과 잔학성에 비하면 훨씬 온후한 편이어서 기독교는 보호되었고 국내의 치안은 양호했다. 하지만 그들은 러시아인으로부터 10분의 1세(稅)를 거두는 한편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했는데, 거역할 경우에는 가차없이 학살했다.
러시아 제후는 이 타타르의 멍에 아래에서 단결을 결의했다. 1380년에 모스크바 대공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주위의 제후에게 킵차크한국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호소하여 크리코보 전투에서 한번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대군을 이끌고 역습한 킵차크한국에 패하여 모스크바는 황폐화되었고 1만 내지 2만 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결국, 러시아가 타타르의 멍에에서 탈출하려면 이반 뇌제(雷帝) 시대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11) 몽골 제국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서양 제국에게 몽골, 그리고 징기즈칸은 파괴와 약탈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몽골에 관한 저서들은 대부분 그들의 파괴와 약탈, 폭력과 살육만이 묘사되어 있다. 그들이 서양 세계에 던져준 공포를 생각하면 당연하겠지만, 몽골이 서양 세계에 준 또 다른 영향 ― 몽골이 동서의 교통을 활발하게 만들었다 ― 에 대해서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몽골의 지배자들은 '초원의 길'이라 전해지는 동서의 교통로에 역과 말과 숙사(宿舍)를 마련했고 그 때문에 외국 사절과 여행자들은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또한 금과 은으로 된 파이자라는 여권이 발행되어 이것이 있으면 외국인도 여행할 때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상인 마르코 폴로가 멀리 중국을 여행하다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그 영향이 크다. 파이자는 현재의 러시아 영(領)에서 여러 장 발견된 바 있다.
몽골인들은 통상을 통해 얻는 이익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결국은 육로뿐 아니라 해상로도 열렸다. 몽골 제국의 지배하에 통일을 회복한 중국 남부 항구에서 3층 갑판의 큰 배가 인도를 향해 항행(航行)했다. 몽골 제국의 보호하에 중국, 페르시아, 인도, 중앙 아시아, 흑해 주변에서 러시아까지를 포함한 거대한 통상 시장이 나타나 세계는 동과 서가 서로 통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쇄술, 항해자의 나침반, 화기(火器), 사회생활의 매우 중요한······이것들은 유럽에는 없는 것들이며 몽골의 영향에 의해 극동(極東)에서 유럽에 이입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몽골 고원의 한촌(寒村)에서 태어난 소년 테무진, 징기즈칸은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상징으로서, 또 한편으로는 세계를 발전으로 이끈 공로자로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
[재미로 읽는 영한대역 세계 명작 칼라 만화]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Dr. Jekyll and Mr. Hyde)
1.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Dr. Jekyll and Mr. Hyde)
/ 스티븐슨(R.L. Stevenson)
1.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Dr Jekyll and Mr Hyde)》(원제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상한 사건(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이지만 한국에는 줄인 제목으로만 알려져 있다. 영미권에서도 종종 줄여서 부른다.)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단편소설이다. 그 내용은 변호사인 찰스 어터슨이 그의 오랜 친구인 헨리 지킬 박사와 사람을 혐오하는 사람인 에드워드 하이드의 괴상한 관계의 조사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은 1886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출간될 당시에는 정관사 "The"가 붙어있지 않았다.)
이 책이 환각제의 영향하에 쓰였다는 주장이 있다. 집필 당시에, 스티븐슨은 지역 병원에서 버섯류인 맥각으로 치료받고 있었다. 맥각이 LSD 성분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일부의 소문과는 반대로, 맥각은 예측할 수 없는 양의 비슷한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LSD가 합성된 것도 바로 맥각류의 파생 종으로부터 인데, 그것은 맥각의 활성 성분의 순수한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이 자아와의 싸움을 주제로 한 것과, 이것이 그에게 통제 불능의 느낌을 준 우연한 마약 복용 경험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는 것일 수도 있다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 is a Gothic novella by Scottish author Robert Louis Stevenson, first published in 1886. The work is also known as The Strange Case of Jekyll Hyde, Dr. Jekyll and Mr. Hyde, or simply Jekyll and Hyde. It is about a London legal practitioner named Gabriel John Utterson who investigates strange occurrences between his old friend, Dr. Henry Jekyll, and the evil Edward Hyde. The novella's impact is such that it has become a part of the language, with the vernacular phrase "Jekyll and Hyde" referring to people with an unpredictably dual nature: outwardly good, but sometimes shockingly evil.
2.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Dr. Jekyll and Mr. Hyde) 줄거리
어주미의 어터슨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 지킬 박사의 보장에도 불구하고 이 조사는 그저 호기심과 걱정에서 시작되었다. 그 조사는 하이드가 명망있는 국회의원의 잔인한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을 때 양상이 바뀐다. 어터슨이 그 범죄 수사를 돕게 되자, 지킬은 점점 더 은둔적이고 우울해지고, 어터슨은 지킬 박사가 하이드씨를 돕고 있다고 믿게 된다.
결국, 지킬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는 정신적 부담에 사로잡힌 채 그의 실험실에 그 자신을 고립시킨다. 어터슨의 다른 친구인 래니언이, 지킬이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끔찍한 정신적 충격으로 갑작스레 죽는다. 결국, 지킬의 집사가 어떻게 해서 지킬의 잠긴 실험실에 들어와서 지킬을 죽인 낯선 사람을 처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하러 어터슨에게 온다. 그들은 함께 실험실에 있는 낯선 사람은 하이드라는 것을 알아내고, 그들은 문을 부수고 들어가지만 자살로 죽은 하이드의 시체를 찾아낼 뿐이었고 지킬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마침내, 어터슨은 그의 죽은 친구가 그에게 남긴 두 통의 편지를 읽는다. 첫 번째 것은 래니언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그 편지는 하이드는 지킬의 연구로 만든 약물에 의해 지킬이 육체적으로 다른 자아로 변형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래니언이 직접 목격했다고 밝힌다.
다른 편지는 모든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게 하는 두 가지 모습-선과 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가 깨달았을 때 일어난 일을 밝힌 지킬로부터의 고백이다. 이 두 가지 모습을 양분하고 고립시킬 수 있다는 이론에 관해 실험하고는, 그는 한 사람을 그의 악한 면의 화신으로 바꿀 수 있고, 또한 그로 인해 그의 선한 면을 순수한 선으로 만들 수 있는 약물을 창조해 냈다. 그 약물을 그 자신에게 사용한 후, 지킬은 육체적으로 작아졌고 동시에 그의 악한 본성은 강력해졌다. 이 인격은 에드워드 하이드라고 불리었다. 하이드로서 약간의 시험을 행한 이후에, 지킬은 그가 지킬 박사로서는 결코 저지르지 못할 모든 금지된 반사회적인 기쁨에 취하기 위해 곧 이 변화를 정기적으로 겪기 시작한다. 그러나 하이드의 모습은 더 강하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지킬이 반작용제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게 되었다. 하이드가 살인을 저지른 후에, 지킬은 약물을 먹기를 그만두기로 하지만, 결국 하이드의 모습에의 중독은 저항하기엔 너무 강하게 진행되어 버렸고, 그는 다시 약물을 복용했다.
지킬은 결국 약물 없이도 하이드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약물의 반작용제는 효력을 잃기 시작했고, 약물이 그의 분류 선반에 있는 동안까지만 지킬이 그의 원래 모습으로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지킬에게는 그 약물만의 희귀한 재료가 남아있지 않게 되었고, 특히 그가 처음에 아주 많은 양을 얻은 "소금"이 없었다. 이 소금의 새로운 공급분은 효력이 있는 약물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그는 처음에 그 이유를 새로운 공급분에 불순물이 있어서라고 여겼지만, 마침내 그는 최초의 주문에 불순물이 있었고, 약물에 있는 그 "알 수 없는 불순물"이 그 효력에 필수적이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이 불순물이 섞인 소금을 더 이상 구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하이드로 영원히 남게 될 운명에 처하여 자살을 택하였다.
Gabriel John Utterson and his cousin Richard Enfield reach the door of a large house on their weekly walk. Enfield tells Utterson that months ago, he saw a sinister-looking man named Edward Hyde trample a young girl after accidentally bumping into her. Enfield forced Hyde to pay her family £100 to avoid a scandal. Hyde brought Enfield to this door and gave him a cheque signed by a reputable gentleman later revealed to be Doctor Henry Jekyll, Utterson's friend, and client. Utterson fears Hyde is blackmailing Jekyll, as Jekyll recently changed his will to make Hyde the sole beneficiary. When Utterson tries to discuss Hyde with Jekyll, Jekyll tells Utterson he can get rid of Hyde when he wants and asks him to drop the matter.
One night in October, a servant sees Hyde beat Sir Danvers Carew, another one of Utterson's clients, to death and leave behind half a broken cane. The police contact Utterson, who leads officers to Hyde's apartment. Hyde has vanished, but they find the other half of the broken cane. Utterson recognizes the cane as one he had given to Jekyll. Utterson visits Jekyll, who shows Utterson a note, allegedly written to Jekyll by Hyde, apologizing for the trouble that he has caused. However, Hyde's handwriting is similar to Jekyll's own, leading Utterson to conclude that Jekyll forged the note to protect Hyde.
For two months, Jekyll reverts to his former sociable manner, but in early January, he starts refusing visitors. Dr. Hastie Lanyon, a mutual acquaintance of Jekyll and Utterson, dies of shock after receiving information relating to Jekyll. Before his death, Lanyon gives Utterson a letter to be opened after Jekyll's death or disappearance. In late February, during another walk with Enfield, Utterson starts a conversation with Jekyll at his laboratory window. Jekyll suddenly slams the window shut and disappears, shocking and concerning Utterson.
In early March, Jekyll's butler, Mr. Poole, visits Utterson and says Jekyll has secluded himself in his laboratory for weeks. Utterson and Poole break into the laboratory, where they find Hyde's body wearing Jekyll's clothes, apparently having killed himself. They find a letter from Jekyll to Utterson. Utterson reads Lanyon's letter, then Jekyll's. Lanyon's letter reveals his deterioration resulted from the shock of seeing Hyde drink a serum that turned him into Jekyll. Jekyll's letter explains he had indulged in unstated vices and feared discovery. He found a way to transform himself and thereby indulge his vices without fear of detection. Jekyll's transformed body, Hyde, was evil, self-indulgent, and uncaring to anyone but himself. Initially, Jekyll controlled the transformations with the serum, but one night in August, he became Hyde involuntarily in his sleep.
Jekyll resolved to cease becoming Hyde. Despite this, one night he had a moment of weakness and drank the serum. Hyde, his desires having been caged for so long, killed Carew. Horrified, Jekyll tried more adamantly to stop the transformations. Then, in early January, he transformed involuntarily while awake. Far from his laboratory and hunted by the police as a murderer, Hyde needed help to avoid capture. He wrote to Lanyon in Jekyll's hand, asking his friend to bring chemicals from his laboratory. In Lanyon's presence, Hyde mixed the chemicals, drank the serum, and transformed into Jekyll. The shock of the sight instigated Lanyon's deterioration and death. Meanwhile, Jekyll's involuntary transformations increased in frequency and required ever larger doses of the serum to reverse. It was one of these transformations that caused Jekyll to slam his window shut on Enfield and Utterson.
Eventually, one of the chemicals used in the serum ran low, and subsequent batches prepared from new stocks failed to work. Jekyll speculated that one of the original ingredients must have had some unknown impurity that made it work. Realizing that he would stay transformed as Hyde, Jekyll wrote out a full account of the events and locked himself in his laboratory with the intent to keep Hyde imprisoned and, as Poole and Utterson smashed down the door to the laboratory, committed suicide by poison.
------------------------------------------------------------------------------
2. 도서 구입 안내 : 각권 정가 15,000원 / 택배비 무료
(각권 정가 15,000원 / 10% 할인 정가 13,500원)
(1) 출판사명 : (주)파우스트 칼리지
(2) 저자명 :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21st C.E.T.A.)
(3) 도서 구입 전화 : 1599-9039(파우스트 칼리지)
입금 계좌 : 국민은행 024801-04-350812(예금주 (주)파우스트 칼리지)
(4) 이메일 : faustcollege@naver.com
(5) Blog : http://blog.naver.com/ceta211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
(6) Cafe : http://cafe.daum.net/21ceta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
(7) Web-site : www.faustcollege.com (주)파우스트 칼리지
입금 계좌 : 국민은행 0244801-04-350812 (주)파우스트 칼리지
(8) 판매처 : 교보문고, YES 24, 알라딘
3. 재미로 읽는 영한대역 세계 명작 칼라 만화
세계 최초 / 국내 최초[영어 만화 세계 문학 + 상세한 작품 해설]
완벽한 논술 구술 대비 / 완벽한 AP 영문학 대비 / 해외 유학 대비 !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의 학교 내신 및 필독서 시리즈 !
모든 가족이 한글 또는 영어로 함께 읽을 수 있는 가족용 세계 문학 시리즈입니다.
아래의 모든 만화 작품은 소년조선일보, 매일경제, 에너지데일리신문, 아시아일보, 욧안신문, The Korea Times, The Korea JoongAng Daily 등에 100% 연재된 도서들입니다.
3. 영한대역 세계 명작 칼라 만화 : 총 20권(각권 정가 15,000원)
(각권 정가 15,000원 / 10% 할인 정가 13,500원)
(1) 돈키호테 Don Quixote / 세르반테스 (Miguel de Cervantes)
(2) 걸리버 여행기 Gulliver's Travels / 조나단 스위프트 (Jonathan Swift)
(3) 우주 전쟁 The War of The Worlds / H.G. 웰즈(H.G. Wells)
(4)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 /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
(5) 로빈슨 크루소 Robinson Crusoe / 다니엘디포우(Daniel Defoe)
(6) 파우스트 Faust / 괴테(Goethe)
(7)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 /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8) 왕자와 거지 The Prince and the Pauper / 마크 트웨인(Mark Twain) - 사무엘 클레멘스(Samuel Clemens)
(9) 보물섬 Treasure Island / 스티븐슨(R.L. Stevenson)
(10) 백경(白鯨) Moby Dick 모비 딕 / 허만 멜빌(Herman Melville)
(11) 슬리피 해로우의 전설 The Legend of Sleepy Hollow / 워싱톤 어빙(Washington Irving)
(12) 노트르담의 꼽추 The Hunchback of Notre Dame /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3) 정글 북 The Jungle Book / 루드야드 키플링(Rudyard Kipling)
(14)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Dr. Jekyll and Mr. Hyde / 스티븐슨(R.L. Stevenson)
(15) 크리스마스 캐롤 A Christmas Carol / 촬스 디킨즈(Charles Dickens)
(16) 80일간의 세계일주 Around The World in Eighty Days / 쥴 베른(Jules Verne)
(17) 해저 2만리 20,000 Leagues Under the Sea / 쥴 베른(Jules Verne)
(18)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 / 촬스 디킨즈(Charles Dickens)
(19) 모히칸족의 최후 The Last of the Mohicans /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James Fenimore Cooper)
(20) 죄와 벌 Crime And Punishment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Fyodor Dostoevskii)
4. 영한대역 칼라 만화 징기즈칸((Genghis Khan) : 5권(각권 정가 15,000원)
(각권 정가 15,000원 / 10% 할인 정가 13,500원)
5. 영한대역 칼라만화 삼국지(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 나관중 / 20권
/ 할인가 108,000원
6. 이솝우화 10권(오디오 CD 포함) : 할인 가격 30,000원
7. 10주 완성 영어 회화(1권 - 정가 15,000원)
(각권 정가 15,000원 / 10% 할인 정가 13,500원)
8. 위 도서 관련 내용
(각권 정가 15,000원 / 10% 할인 정가 13,500원)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 / ㈜ 파우스트 칼리지 제공
도서구입 전화 : 1599-9039
이메일 : faustcollege@naver.com / ceta211@naver.com
Blog : http://blog.naver.com/ceta211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
Cafe : http://cafe.daum.net/21ceta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
http://cafe.naver.com/ceta21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
Web-site : www.faustcollege.com (주)파우스트 칼리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