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소설 「이생규장전」 #2
이런한 노래들은 이생의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나 들어갈 수 없다.
꾀를 내어 종이에 시를 써서 기와에 묶어 던졌다.
서른여섯 무산이 안개에 겹겹 싸였는데
뾰족한 봉우리 울긋불긋 반쯤 보이네.
양왕의 외로운 잠자리 그만 괴롭히고
구름과 비가 되어 양대로 내려오소서.
巫山六六霧重回 무산육육무중회
半露尖峰紫翠堆 반로첨봉자취퇴
惱却襄王孤枕夢 뇌각양왕고침몽
肯爲雲雨下陽臺 긍위운우하양대
초나라의 양왕이 고당(高唐)이라는 곳에서 놀다가 낮잠을 자는데
꿈에 한 여인이 와서 동침을 한다. 이튿날 아침 여인이 떠나면서
자신은 무산의 기슭인 양대에 사는데 아침에는 구름이 되어 무산
으로 올라갔다가 저녁이면 비가 되어 내려 온다고 했는데 고사가
있다. 운우지정(雲雨之情)이리는 말이 여기서 생겼다. 이 작품은
운우지정을 맺고 싶다는 뜻을 건넨 것이다.
무산의 서른여섯 봉우리에 안개가 자욱한데 그중 뾰죽한 봉우리
하나가 울긋불긋한 모습으로 드러나 있다고 한 것은, 이생이 담장
틈으로 본 최씨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기도 하다. 주렴에 아름다운
자태를 감추어 두어 사내의 애간장을 태우지 말고, 자신과 사랑을
나누자고 한 것이다.
최씨는 이생이 던진 편지를 보고 저녁에 만나자고 다시 펴지를 써
서 담장 밖으로 던졌다. 이생이 이를 보고 저녁에 담장 아래로 갔더
니 복숭아 가지 하나가 담장을 넘어와 있었다. 이생은 이를 타고 담
을 넘어가 최씨를 만나게 되었다.
이생의 시나 최씨의 시나 모두 고대 악부를 흉내 낸 것이다. 소설의
문맥에서 이러한 작품을 독립시킨다면 일반적인 의고악부와 다를 바
없다. 김시습 역시 이런 스타일의 시를 지은바 있다.
시로 읽는 소설 「이생규장전」#3
내가 백 척 응달의 얼음이라면
그대는 장대처럼 긴 햇살이지요.
장대 같은 아침 햇살 빌려다가
백 척 응달에 맺힌 시름 풀어주소.
儂如百尺陰崖氷 농여백척음애빙
爾似一竿陽羲騰 이사일간양희등
願借一竿朝陽暉 원차일간조양휘
銷我百尺陰崖凝 소아백척음애응
죽지사는 변방의 풍물을 칠언절구에 담은 시를 가리키는 말로, 그
스타일이 악부와 유사하다. 자신을 응달의 얼음에 비유하고 상대를
따뜻한 햇살에 비유한 다음, 태양처럼 뜨거운 애정으로 얼음같이
차가운 자신의 시름을 풀어달라 한 것이다. 이 작품을 최씨의 노래
로 넣거나 이생의 답시로 넣어도 무방하다. 사랑의 노래는 소설의
스토리 속에 넣어 읽으면 더욱 재미가 있다.
최씨의 집에서 이생은 최씨를 만났다. 그리고 두 사람이 사랑의 노
래를 부르고 답한다.
최씨가
“복사꽃 꽃가지에 꽃은 풍요로운데,
(桃李枝間花富貴 도이지간화부귀)
원앙베개에 달빛이 곱게 떠오르네“
(鴛鴦枕上月嬋娟 원앙침상월선연)라고 먼저 시를 짓자,
이생은
“훗날 봄소식이 누설된다면,
(他時漏洩春消息 타시누설춘소식)
무정한 비바람이 또한 가련하리라“
(風雨無情亦可憐 풍우무정역하련)라 답한다.
최씨는 밝은 달밤 복사꽃 꽃그늘에서 원앙처럼 정다운 뿌의 인연을
맺고자 한 것인데, 이에 대해 이생은 무정한 비바람에 복사꽃이 떨
어질까 두렵다고 하여 부모님이 알게 되면 어찌하겠는가 하고 몸을
사렸다. 최씨는 이생에게 두려워 말라하면서 다시 시를 짓고, 이에
이에 이생이 답을하여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김시습이 한번은
최씨가 되고 한번은 이생이 되어 남녀의 정을 화려하게 적었다.
최씨는 자신의 방으로 이생을 이끌고 들어갔다. 최씨의 방 안에는
아름다운 병풍이 놓여 있는데 그곳에 적힌 시라 하면서 열여덟 편의
시를 제시한다. 만난 그날 두 사람은 최씨의 방에서 정을 통한다.
그곳에서 사흘을 머문 이생은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가 매일 담장을
넘어 밀회를 한다. 이를 눈치 챈 이생의 부친이 감농을 구실 삼아
이생을 울산으로 보낸다, 최씨는 매일 이생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하녀를 시켜 사정을 알아본 최씨는 이생을 만나기 어렵게 되었음을
알고 상사병에 걸려 식음을 전폐한다. 최씨의 부모가 이생이 쓴
시를 우연히 발견하여 사정을 알게 되었고, 최씨의 단호한 의지에
어쩔 수 없이 이생의 부모에게 청혼을 한다.
여러 번 편지가 오간 끝에 마침내 혼사를 정하게 된다.
혼사가 정해진 것을 알게 된 이생이 그제서야 한편의 시를 지어 즐거움을 말하고
최씨 역시 소식을 듣고 병이 나아 비로소 시를 짓는다.
길일을 택하여 혼례를 치른 두 사람은 화락하게 잘살았다. 잠시의
즐거움은 얼마 후 일어난 홍건족의 침입으로 비극으로 전환된다,
개성이 함락되자 피란길에 올랐으나 도적을 만나 최씨가 죽임을 당
한 것이다. 이생은 홍건적이 물러난 뒤 개성으로 돌아왔지만 자신이
살던 집이나 최씨의 집은 모두 불타 버렸다. 한밤이 되어 달빛이 훤
한데 어디선가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최씨가 나타났다.
그렇게 하여 귀신이 딘 최씨와 이생은 재회를 한다. 최씨가 이생을 다시
만나 이렇게 말을 건넨다.
첩은 본디 양가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자수와 재봉에 뛰어나고, 시서와 인의의 방도를 배웠습니다.
규방 다스리는 일만 알았지, 집 밖의 일을 할 줄 알았겠나요?
그러나 한번 붉은 살구꽃 핀 담장을 엿보시기에,
스스로 푸른 바다에 구슬을 바쳤습니다.
꽃잎에 한번 웃고, 평생 의탁하기로 하였지요.
휘장 안에 거듭 만나니, 정이 백 년을 산 것보다 깊었지요.
살아서 못다 이룬 사랑을 이루게 된다. 또 최씨의 재산을 묻어둔 곳과
부모의 유해가 버려진 곳을 일러주어 이생이 장례를 잘 치룰 수 있게
했다. 그 후 이생은 벼슬에 뜻을 잃고 두문불출하면서 최씨와 다정하
게 살았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가 최씨는 시를 남기고 이승을 떠나
고, 이생은 최씨의 유해를 수습하고, 몇 달 후 세상을 떠난다.
출처: 우리 한시를 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