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목걸이
서엘리사벳
서늘한 바람 결에 가로수의 낙엽이 거리에 휘도는
깊은 가을, 퇴계로
1가 신세계 본점 락카룸에서 친구를 만난 것은 여고를 졸업하고 처음이었다. 그 녀는 모 여대에 재학 하며 아르바이트로 신세계 백화점에서
일한다고 했다. 우리는 반가워 얼싸안고 연락처를 교환하며 다시 만날 것을 약속 후 자주 만나 식사를 하고
커피도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 고등학교
6년 간 같은 학교에 다녔건만 얼굴 만 알고 있었을 뿐 그저 스쳐 지나곤 했었지.
동그랗고 하얀 얼굴이 동자승을 연상되게 하는
순한 인상에 보드랍고 적은 머리카락을 가졌었는데 많은 세월을 보낸 그 당시에도 여전히 변함 없는 모습이었다.
자주 만남으로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숙명여전을
졸업하고 신문사에 근무하며 하나 뿐인 딸과 친구처럼 살았다. 처음 본 그녀의 어머니는 멋 지고 후덕하며 소녀
같이 여리고 낭만적인 분으로 보였다. 알고 보니 머리는 신 사임당 머리처럼 땋아 올리고 언제나 계량한복을
즐겨 입던 유명한 여류 시조 시인이며 수필작가인 그 분과 어머니는 친 자매였다.
졸업 후 친구는 경기도 어느 고등학교 교사로
떠나고 나는 나대로 바쁜 일상으로 한 동안 소식을 끊은 채 살았다.
얼마의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아이들로부터도 조금 해방되어 동창모임에 나갔다가 친구가 결혼하여 과천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다시 만났다. 머리는 여전히 숱이 적고 단발머리요 유머러스한 말투며
느긋한 성격은 예전과 같아 오랜 세월 만나지 못했음을 망각할 정도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신문사에서 퇴직하고 친구가 결혼하자 분가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하나뿐인 딸을 고이 길러 좋은 신랑
만나 잘 살아 주었으면 하고 얼마나 기원했을까?
친구는 효녀이나 친구의 남편과 어머니는 서로
뜻이 맞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은 특이한 성격으로 아이를 좋아하지 않아
강아지 한 마리만 키우며 모든 경제적 활동은 물로이려니와 자유도 제한하며 심지어 친구를 만나는 것도 간섭한다고 했다.
친구들은 무엇을 믿고 보람을 느끼며 그러한
사람과 한 평생을 같이 할 것이냐며 이혼을 권유하기도 했다. 남편에게 순종하며 살지만 한 때는 별거도 해 보았으나 키우던 개가 재 결합시켜주었다고 천진스레 이야기를 하는 그녀를 우리는 안타까워했다..
그 후 나는 머나먼 이국 땅, 호주로 이민을 왔다.
나는 고국을 방문할 때 마다 친구들을 만나며
그 녀도 연락하여 같이 만났다. 이 년 전 만났을
때 “나는 진주 목걸이를 하고 어디 갈 곳도 없으니 네게 주고 싶다.”며 진주 목걸이를 내게 주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이 될 줄이야.
작년에 한국을 방문하며 친구들을 만났을 때, 그녀가 응당 나오는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궁금하여 그녀의 소식을 물으니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죽자 연고가 없어 국가에서 주는 혜택을 받고 있다는데 외동 딸을 여윈
그 마음이 오죽할까?
그녀가 땅 속에 묻히는 것을 원하지 않아 화장
후 산에 올라 바람에 그녀를 날려 보냈다고 한다. 마지막 가는 길에 세례를 받았으면 좋았으련만…
그녀의 영혼은 어디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착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즐거움을
주며 살았으니 세례는 받지 못했을 지나 하느님도 그 녀를 모르는 채는 안 하실 것을 믿어본다. 그녀는 관음보살을 닮았으니까.
동자승처럼 하얗고 동그란 네 얼굴, 도톰한 네 입술, 보드라운 머리 결, 네가 바람이 되었어도 네 모습 또렷하게 그릴 수 있어, 목소리는 부드럽고 저음이면서 군더더기 없는 위트와 유머로 우리들은 네가 있어 즐거웠지. 아마도
문학을 좋아했던 선비 집안인 외가의 유전자가 네 몸 속에 자리잡아 너는 낙천적이었나 보다.
언젠가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와 “기다렸다. 내가 먼저
와서.”하며 반가이 맞아줄지도 모를 일이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 빰이
몹시도 그리웁구나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 곱게 물들어
그 잎새에 사랑의 꿈을 고이 간직하렸더니
아! 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 줄 왜 몰랐던가!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하오! 어찌하오!
너와 나의 사랑의 꿈,
낙엽따라 가버렸으니
바야흐로 시드니는 가을로 접어들고 잇다. 친구를 그리며 화장대 설합에 누워있는 진주 목걸이를 바라보자니
차중락의 노래가 가슴을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