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편의 탁월한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이다
/ 찰스 브리지스
시편 119편은 ‘시편 중의 시편’이다. 시편 전체의 주제와 내용을 함축적이고 암시적으로 표현한 표제적 성격을 가진 시편은 1편이다. 그 시편 1편의 확대판이 바로 119편이다. 1편은 복 있는 사람의 ‘마땅한 도리’를 지시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1,2)
119편은 무어라 하는가?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런 다음에 그 ‘복 있는 사람’의 행로의 실제를 시편 기자가 개인 경건의 실천을 통하여 상세하게 증거하고 있다.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시119:131).- 역자 서문.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외양적 조건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으나 다 같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자라는 모습에서 하나님의 권속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민24:9)
이 책은 구약시대의 신자에게 신약의 복장을 입혀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구약시대의 신자도 신약시대 이후에 사는 우리와 ‘동일한 정신을 가지고 동일한 행보를 보인다.’는 관점으로 이 시편을 살피려 한다는 말이다. ‘구약 신자의 여러 성품적 특성들을 복음적 기준에 비추어 보면 둘 사이에 완전한 일치가 나타난다.’는 전제를 붙들고 이 시편을 강론하려 한다.
이 시 119편은 하나님의 일들을 깊이 배우고 오랜 믿음의 삶과 행보 속에서 실천한 사람의 일기이기도 하다. 이 시편은 ‘체험적 신앙의 몸’을 해부학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님의 자녀의 ‘내면의 실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 시편은 모든 시대의 신자들의 생명이 걸린 경건의 시금석으로 활용하도록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에돔의 자손들은 ‘가나안 땅에서 나는 포도송이’를 맛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자들이 그 땅을 아주 좋게 평가하였다.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민13:27).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사32:17)
이 시편의 구조는 특이하다. 모두 22부로 나뉘어 있는데, 이는 히브리어 알파벳의 수와 그 순서를 따랐다. 각 부마다 8구절로 되어 있고, 각 부의 첫 문장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에 해당하는 글자로 시작한다. 이 시편 전체는 처음 세 구절과 다른 한 구절(115절)을 제외하고 ‘절규하는 청원’ 형식을 띠고 있다.
이 시편의 탁월한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열 가지나 다양한 이름으로 표현된다. 하나님의 말씀의 다중적인 탁월성과 완전성이 다양하고 우아한 표현으로 예증되고 있다. 이 시편이 가진 한없는 충만함을 생각하면 이 시편의 권위가 더욱 돋보인다. 그래서 이 시편을 읽고 믿고 사랑하고 시편대로 살아야 할 당위성이 더 강화된다.
이 시편을 통해 영적 유익을 최선으로 도모하는 방식은,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 필립 헨리(주석가 매튜 헨리의 부친)가 자녀들에게 한 충고를 참고하는 것이다. “너희는 매일 아침 시편 119편의 한 구절씩 묵상하거라. 그러면 1년에 그 시편 전체를 두 번 묵상하는 셈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성경의 나머지 책들과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루터는 이 시편을 어찌나 높게 평가하던지, ‘온 세상을 준다 해도 이 시편의 작은 한 부분조차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카우퍼 감독은 이 시편에 ‘거룩한 알파벳’이라는 아름다움 별명을 붙여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시편은 어린이들도 이해할 만큼 명백하고, 가장 지혜롭고 체험이 많은 이들도 매일 양식을 얻을 만큼 풍부하고 교훈적이다.” 헨리 벤 목사의 말이다. “저는 아직도 성경에서 이보다 더 유익을 줄 수 있는 부분을 만난 적이 없다. 이 시편에는 기자의 전인과 내면이 윤곽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우리 가련한 마음이 겪는 여러 가지의 변화와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매우 감동적인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제 자신의 마음에 기도의 정신이 메말라 있다고 여길 때마다 이 시편으로 돌아가곤 한다. 그러면 결국 마음의 불이 다시 일어 기도할 수 있게 된다.”
헨리 마틴은 이 시편을 통해 얻은 복락과 그 용도에 대한 인식 역시 동일하다. “시편 119편의 어떤 부분을 배우면 경건의 힘을 얻는다. 저녁에 시편 119편을 읽음으로 더 자라는 느낌을 받는다. 대개 그 시편 읽기가 ‘영의 생각’의 구조로 마음을 돌려준다. 내 생각이 어떤 유익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불만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시편 119편의 한 대목을 읽으면 다시 회복된다. 참으로 시편 119편은 매우 엄숙하기 이를 데 없다.”
필자는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을 숙고하는 은혜로운 방편으로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독자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자신의 죄됨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며, 더 순전한 복락의 원천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용서도 받고 복락도 누리어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의 이름이 더욱 풍성하고 영화롭게 높여지기를 원한다. - 저자의 머리말에서
- 찰스 브리지스, 「시편 119」, PP 6-19
출처: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강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