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샬 롬
교회의 사명과 전쟁 (계 12:5-12)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교회란 무엇일까요?
본문의 해를 옷 입은 한 여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교회의 모습입니다. 참고로 교회를 어원적으로 살펴보면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인데 '~으로 부터'라는 뜻을 가진 '엑크'(έκ)와 '소집하다'라는 뜻을 가진 '칼레오'(καλέω)의 합성어로 '...으로부터 불러내다.'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낱말은 본래 공적인 사업을 논의할 목적으로 그들의 집에서부터 집회소로 부름을 받아 나온 사람의 모임을 뜻했는데 교회론을 담기에 적합한 용어로 인정되어 교회를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는 유형교회와 무형교회가 있습니다. 유형교회는 지역 안의 교회(행5:10-11, 행11:25-26, 고전11:18, 갈1:2-3)나, 가정교회(롬16:5, 고전16:19, 골4:15)나, 여러 지교회(행9:31) 등으로 전 세계에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임명된 직원들의 지도하에서 예배를 드릴 목적으로 조직된 모든 단체를 가리킵니다(고전10:32, 고전11:22, 12:28). 무형교회는 '에클레시아'의 가장 포괄적인 의미로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되었거나 연합될 신실한 자들의 전 단체를 가리킵니다(엡1:22-23, 엡3:10,21).
교회에 대한 정의가 다양하지만 교회란 구원으로 선택 받은 자들 전원으로 구성되는 유기적 단일체 및 그 구원 실현의 수단으로 지상에 존재하는 유형적 유기적 단일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지상의 교회는 유형적 유기적 단일체로서 무형교회와 유형교회가 함께 하는 형태입니다. 그러므로 계 12장의 전투적인 교회에 대한 말씀은 지상교회 관점으로 기록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당(예배당)인 건물을 교회라고 부르는 무개념 신자들이 있지만 교회론을 알면서도 습관상 그렇게 부른다면 용어 사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의 사명>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앞에서 교회를 향한 사탄의 대적이 얼마나 지능적이고 강하고 집요한지 배웠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보호와 은총은 더욱 크시기 때문에(사46:3-4, 히13:5)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대신 교회가 감당해야 할 큰 사명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 각자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1. 복음으로 낳는 일입니다.
5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여기에 대해 구약교회가 그리스도를 낳았다는 설이 있지만 계시록을 기록한 시기로 볼 때 맞지 않습니다. 성경은 교회를 여자로 비유합니다(갈4:26-28). 여자를 교회로 본다면 신약교회가 진리의 말씀으로 성도를 낳았다는 설이 타당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할 일은 복음으로 낳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4:15에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했습니다. 갈4:19에도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복음의 진리가 정확히 전파되어야 합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예수 + 할례를 주장하다가 해산하는 수고로 다시 해야 했는데, 예수 + 다른 종교라면 그건 더욱 하나님 앞에서 용납되지 못합니다. 약3:1에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했습니다. 거듭나는 것을 신학적 용어로 중생이라고 하는데 중생은 전적인 성령의 일이지만 교회가 담당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는 복음을 가르쳐서 믿음의 자식을 낳을 뿐 아니라 양육하는 것입니다.
2. 악의 세력을 깨뜨리는 일입니다.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철장이란 산산이 부수는 무기입니다. 시편 2편을 보면 다윗에게 준 권세로 장차 그리스도께서 그런 권세를 가질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감사한 것은 성도들에게도 예수 안에서 이 권세가 주어졌습니다(계2:26-27, 막16:20). 계2:26-27에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무얼 이기는 것입니까? 두아디라 교회에 자칭 이세벨 사상, 즉 세상을 이기는 자들 가리킵니다.
이처럼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성도로 길러야 합니다. 만국은 좁은 의미에서 먼저는 나 자신이요 나아가 세상과 사탄입니다. 그리고 남자는 강하고 담대함의 상징입니다(고전16:13). 그러므로 교회는 성도를 예수 안에서 세상을 이기는 강한 자로 기르며(요16:33), 불신과 죄악 세상을 기도와 복음으로 정복하도록 믿음에 굳게 선 자로 길러야 합니다(고전16:13, 벧전3:6, 엡6:10-12). 중요한 것은 흰옷을 입은 교인이 얼마나 되느냐? 세상의 악과 싸우는 성도가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3. 하늘에 속한 자로 기르는 일입니다.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이 아이가 예수가 아닌 것은 예수님은 아버지의 우편 보좌에 앉으셨지 보좌 앞이 아닙니다(막16:19). 그리고 예수님이 아기 예수로 승천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기 아이는 예수 안에서 거듭나 하늘에 속한 우리 성도들입니다(골1:13, 엡2:6). 이처럼 죄인을 세속에서 구원해 하늘에 속한 자로 길러내는 것이 교회의 중요한 사명입니다(딛2:11-13). 어떤 동기로 나왔든 교회의 목적은 그들을 예수의 사람 만들고 하늘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4. 예배자로 살게 해야 합니다.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이라고 두 번이나 강조합니다. 하나님 앞은 경배의 자리요 은혜 받는 시은소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교회의 중요한 사명은 예배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예배하는 성도로 만드는 일입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다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면전의식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을 라틴어로 ‘코람데오’라고 하는데 코람은 '면전에서', Deo는 ‘하나님’을 의미하는데 ‘하나님 앞에서 사는 면전의식’을 가리킵니다. 이런 교인들로 양육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5. 양육을 받고 양육하는 일입니다.
6절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양육은 산모가 받는 것이 아닌데 아이는 보좌 앞으로 올라가고 여자가 양육을 받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교회가 곧 성도들이고 성도가 곧 교회라는 점에서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하늘에 속한 자로 살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지상의 교회에 속해 있어 양육을 받아야 합니다(고전12:28, 엡4:11-13).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직 하나님만 섬기기로 언약하고 예배하며 신앙훈련을 받던 곳입니다. 광야란 오직 하나님, 오직 말씀, 오직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척박한 곳입니다. 바로 그 훈련을 하는 곳입니다. 진실로 연단을 거친 자만이 오직 예수,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도망하매”는 막1:12에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처럼 신앙의 훈련은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이 말씀에는 광야 배경에다 예수님의 제자 훈련의 배경이 동시에 나타납니다. 광야가 신앙의 훈련소인 교회나 시련을 의미한다면, 1260일은 그 기간이 3년 반의 예수님의 제자훈련 기간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두 개념을 합치면 제자훈련을 소홀히 받아서는 안 됨을 가리킵니다. 신앙생활을 내가 사느냐 죽느냐 그런 각오로 해야 합니다. 성도들 중에 교회의 가르침을 피해도 하나님은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경건에 이르도록 열심히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6. 지상성도를 위한 특별한 기관입니다.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여기 예비하신 곳을 페트라성이라는 하는 주장도 있는데 페트라는 남쪽 요르단의 한 암벽도시로 세계 기독교인을 용납할 넓은 장소가 아닙니다. 진정한 페트라(반석)는 예수님이 페트라이시고(고전10:4), 하나님이 페트라이십니다(시94:22). 그러므로 피하려면 하나님께 피해야 합니다. 그런데 양육하기 위해 예비하신 곳이니 교회입니다. 교회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양육하는 곳입니다(엡4:11-13). 하나님 떠나서 어디서 숨고, 교회 떠나서 어디서 양육을 받습니까?
<교회의 영적전쟁>
지상교회를 향한 사탄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론에서 지상의 교회를 전투적인 교회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교회가 처한 영적 현실은 싸우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 이후 인류의 역사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으면서 가장 치열하고 광범위한 전쟁은 바로 사탄과의 영적전쟁입니다. 사탄의 전쟁은 마음에서 뿐 아니라 세상의 문화 정치 경제 군사 역사 학문 법률 생활 등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엡6:12). 그러므로 이웃과 나라와 세계를 위해 기도하고 이교와 이단과 거짓과 환경과 공산주의 등과도 싸우고 악법을 만드는 자들을 용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탄이 인류를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 벌이는 이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영적전쟁은 어떤 것일까요?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1. 하늘과 땅이 함께 하는 전쟁입니다.
7절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여기 하늘은 선과 악의 존재들이 싸우는 걸 보아 우주라는 공간개념이라기보다 영적세계를 말합니다. 이 영적 전쟁을 엡6:12에서 씨름에 비유했는데 각인의 태도에 따라 이길 수도 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적전쟁은 엎치락뒤치락하는 특징을 갖습니다. 깨어 기도하며 대적하면 공중권세 잡은 사탄이 물러가지만(엡2:2), 방심하면 사탄에게 정복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어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우지만, 그렇다고 성도는 가만있는데 천군장이 싸우는 그런 전쟁도 아닙니다. 언제나 천상의 움직임은 지상 성도의 믿음과 맞물려 있으며(눅10:17-18), 교회의 권세는 천상까지 그 영향이 미칩니다(마16:18-19). 지상 성도 역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싸워야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마음으로 힘써 싸우시기 바랍니다.
2. 영적전쟁은 질서의 전쟁입니다.
7-8절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여기서 미가엘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미가엘은 천군장으로 그 이름의 뜻이 “누가 하나님과 같으냐?” 입니다. 사탄은 자신의 직무를 버리고(겔28:13-15, 시103:21-22),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고 월권한 교만한 자요(벧후2:4, 유1:6, 사14:12-14), 동료를 거짓으로 이간질하고 충동질하여 타락시킨 자입니다.
이처럼 영적전쟁은 질서의 전쟁입니다. 그래서 고후10:3-5에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만과 교만과 오만과 불순종을 물리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3. 영적 전쟁은 거룩의 전쟁입니다.
7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단수인 용이 대장인 사탄이라면 복수인 그의 사자들은 귀신들입니다. 막3:11에 “더러운 귀신들”이라 한 것처럼 귀신은 더러운 존재입니다. 더럽다는 것은 악하고 어둡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영적 전쟁은 죄악과 싸우는 전쟁입니다. 모든 악의 배후에 악령이 있느냐에 대해서 논쟁이 있지만 경험으로 보면 대체로 그렇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 거룩해지듯이 악령이 지배할 때 그 반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말씀과 성령으로 거룩해지시기 바랍니다.
4. 영적전쟁은 진리전쟁입니다.
9절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여기 사탄에 대한 이름이 5-6가지 나오는데 문맥으로 볼 때 온 천하를 꾀는 자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큰 용" 크다는 것이 구속사와 관련이 있듯이 여기서는 타락시키는 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계13:11에 “용처럼 말하더라”한 대로 용의 미혹력에서 그를 따라올 자가 없습니다. 옛 뱀은 에덴동산에서 아담 부부를 꾀던 간교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창3:1) 용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마귀는 ‘중상모략, 책잡는 자, 비방자, 대적자’ 그런 의미이고, 사탄은 헬라어로 ‘디아볼로스’, 히브리어로는 ‘사탄’으로 “파괴자, 대적자, 비방자, 이간하는 자, 훼방자, 고소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서서 바로 분별하여 바로 믿고 바로 살고 바로 행할 때 우리는 마귀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한 편 우리를 더욱 온전한 믿음에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토록 까다로운 자를 붙이신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넘어지는 것도 그 공력을 시험함의 일종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 공력을 시험할 때가 오므로 각성하여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5. 영적 전쟁은 세속과의 전쟁입니다.
9절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여기 땅이 어딜까요? 땅은 하늘과 반대 개념으로 세상이나 육신적인 자아와 같은 것입니다. 뒤에도 나오지만 사탄이 성도의 영을 직접 공격할 수 없기 때문에 세상이나 성도의 육신의 욕심이나 육신적인 생각 등을 통해서 넘어뜨리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세속과 자기와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방심하지 말고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안일하거나 방심하면 어느 순간에 넘어질 날이 옵니다.
6. 영적전쟁은 은혜의 전쟁입니다.
10절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이 말씀은 계11:15의 주님이 임하심으로 말미암는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사탄이 가장 무서워하는 분은 예수님이시고, 그 안의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권세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재림이지만 좁은 의미에서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는 성령으로 임합니다. 예수 믿는 것도 성령의 역사이지만 더욱 성령의 능력으로 강하시기 바랍니다(막9:1). 하늘에 큰 음성 역시 구원의 큰 능력임을 암시합니다. 사탄이 물러간다는 것은 성령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것입니다(마12:28). 얼마나 깨어서 은혜 받는 생활을 하느냐가 영적 전쟁의 승패를 가릅니다.
7. 보혈로서 하는 전쟁입니다.
10-11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참소란 법정용어로 고소 혹은 고자질입니다. 이 참소가 우리 양심의 법정에서도 일어나 정죄의식을 이기지 못하면 사탄에게 점령당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사용할 무기는 먼저 어린 양의 피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위해 흘리신 보혈의 공로 의지하여 양심의 평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피가 아니면 천국 문에 한 발자국도 들여놓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피의 복음을 몰라 양심이 정죄감에 붙들려 있다면 은혜의 세계에 한 발도 나갈 수 없습니다.
피의 공로를 막연하게 생각하기 쉬운데 피의 의미는 한 마디로 권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피 값을 주시고 모든 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피를 누리는 비밀은 나를 위한 피 공로를 믿고 그 권리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강하게 주장하면 할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누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죄사함의 피의 공로를 믿고 주장함으로 양심의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엡1:7, 히9:22). 축도에도 나오듯 평안은 성령을 의미하는 다른 표현이듯 양심의 평안은 성령이 임하신 것으로 그래서 보혈을 믿으면 인격의 변화가 찾아옵니다(히9:14, 요일1:7, 롬8:1-2). 나아가 보혈의 공로로 허락하신 물질의 복(갈3:13, 고후8:9), 건강의 복(벧전2:24), 승리의 복(계12:11), 생명의 복도(요3:14-15, 요6:54-55) 믿고 주장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는 보배로운 피입니다(벧전1:18-19). 그러므로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허락하신 권리를 강하게 주장할 뿐 아니라 날마다 감사하며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보혈을 누리는 비밀입니다. 저주를 물리치고 복이 있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회개한 후에야 보혈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실패합니다. 회개하기 전에도 하면서도 후에도 아버지의 용납하시는 사랑과 보혈 공로에 의지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양심이 죄에 무감각해도 문제이지만 지나치게 예민해도 안 됩니다(롬14:22).
8. 영적전쟁은 명령으로 합니다.
“자기들의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여기 증언하는 말씀은 넓게는 전도이지만(고전2:1-2), 좁게는 그리스도의 승리에 서서 사탄에게 명령하는 것입니다. 보혈을 의지하여 담대할 뿐 아니라 승리의 복음에 서서 당당하게 사탄을 패배자로 격하시키고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찬송과 기도가 보다 힘차야 하는 것은 사탄을 대적하는 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9. 영적전쟁은 순교신앙으로 합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순교하기까지 믿음을 지켰다는 의미입니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삽니다. 목숨을 걸면 다 이깁니다. 반면 육신의 안일과 영광과 체면과 이익과 취향을 생각하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스데반처럼 죽기까지 신앙지키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생명이 있습니다. 아담에 속한 옛사람의 생명과 예수 안의 거듭난 생명입니다. 아담에 속한 옛 생명은 예수와 함께 장사지낸바 되었으므로 어떤 충동적 상황에서도 따르지 마시기 바랍니다(롬6:11, 롬8:13). 성령으로 더욱 충만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습니다.
10. 영적전쟁은 확보된 승리를 누리는 것입니다.
12절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여기 두 영역의 사람들이 언급되는데 알고 보면 지상 교회의 특수한 삶을 가리킵니다. 성도는 하늘에 속한 자이면서 이 땅에 사는 이중적 영역에 살고 있습니다(빌1:21-24).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승리적 부분과 전투적인 부분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12절과 같이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주신 구원과 승리와 영광과 복을 날마다 감사하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을 누리는 비밀이요 사탄을 이기는 능력이 됩니다.
11. 정신 차려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땅과 바다는 좁은 의미에서 육체와 세상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성도가 하늘에 속했을지라도 한 편으로 세상과 육신에 속해 있으므로 사탄은 이 약한 부분을 공략하려 합니다. 그래서 방심하면 바다처럼 환난과 풍파가 일어나고 땅처럼 온갖 근심과 죄악의 잡초들이 우거집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은 사탄과 맞서며 전쟁해야 합니다.
12. 온전한 믿음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궁극적으로 사탄의 패배는 성도가 육신을 벗고 천국에 갈 때이거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입니다. 사탄이 분노하는 것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때가 재림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신앙 안에서 세상인 음녀를 이기고 세속의 바벨론이 무너지고 예수와 함께 승리의 백마 탄 군대가 될 때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경외함과 주님을 더욱 사랑함으로 세상과 사탄에 대한 면력력을 더욱 높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를 향한 사탄의 대적이 아무리 지능적이고 강하고 집요할지라도 성도는 예수 안에서 이긴 자이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보호와 은총이 더욱 크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믿음이 약해진다면 승리했어도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고(벧전5:8-10, 눅22:31-34), 선줄로 생각하지 말고(고전10:12), 뒤도 돌아보지 말고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앞만 보고 전진하는(빌3:12)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