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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거룩한 주님의 날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오늘도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삶과 가정 가운데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우리 앞뒤 좌우에 계신 분들과 사랑이고 백 축복의 인사 나눕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지난주 오늘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초대교회가 부흥하게 되었던 이유에 대해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는 외부의 박해와 내부의 원망, 즉 위기 앞에 놓여져 있었죠. 교회가 무너지고도 남을 만한 큰 파도가 그들 앞에 직면해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이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애썼고 그 결과 도리어 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이죠. 마치 바람과 파도를 이용해서 수면 위에서 자유롭게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처럼 외적인 위기 발언, 외적인 위기였던 파도를 잘 이용해서 도리어 연합과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주 말씀을 기억해 보시면 외부로부터 왔던 박해 첫 번째 박해가 무엇이었습니까?
야 공예원들이 너희들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도 말고 전하지도 말아라.
금지령을 들었을 때에 그들은 도리어 합심 기도하여서 그 일을 돌파하게 되었고, 성령 충만하여서 복음을 다시 전하는 힘을 얻게 되었다. 그로 인해서 두 번째 박해가 왔잖아요. 이제는 금지령뿐만 아니라 매를 맞는 아픔과 수모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도들이요. 우리가 예수의 이름 때문에 능력을 받을 만큼 정말 가치 있는 자들이 되었다고 하면서 기뻐했다는 것이죠. 그것을 기쁨으로 여겼다. 즉 박해가 도리어 기쁨이 된 것이죠. 이처럼 박해가 기도와 기쁨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또 내부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앞서서 땅을 파는 문제, 그것을 들이는 문제 때문에 어려움이 한 번 있었는데 두 번째는 이 원망이라는 거 원망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실 원망이라는 것은 공동체를 허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초대교회는 그 힘에 제압당하지 않고 그 힘을 발판 삼아서 문제를 대화로 풀어갔고 또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더 좋은 제도를 만들었던 것이죠. 공감할 만한 사람 7 사람을 세우면서 그 일을 참 순탄하게 만들어간 것입니다. 그 일꾼들 안에는 그래서 히브리파 유대인, 헬라파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되면서 이 다양한 구성원으로 인해서 더 이상 갈등이 증폭되지 않도록 좋은 조치를 취해놓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초대교회는 내적인 문제 앞에서도 든든하게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이 초대교회가 부응할 수 있었던 요소 가운데 일꾼으로 세운 집사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묵상을 해보려고 합니다.
질문을 먼저 드릴게요. 여러분 교회에서 집사를 세우잖아요. 어느 교회나 조금 시간이 되면 집사를 세우고 권사를 세우고 안수집사 장로 이렇게 직분자들을 세웁니다.
그러면 이렇게 직분자들을 세우면 어느 교회나 부흥할 수 있을까요?
실제적으로 이렇게 쭉 돌아보면 교회들을 돌아보면 그렇게 직분자를 세워서 부흥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렇죠. 반면에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부흥되지 못하는 교회도 허다하다는 것이죠.
또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야 부응할 수 있는 거니까 집사를 세웠다고 해서 무조건 부흥되는 건 아니겠죠.
그런데 우리가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초대교회는 집사를 세움으로 인해서 부흥하게 된 첫 번째 케이스이기 때문에 우리가 좀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어떤 사람을 집사로 세우느냐 또한 그 집사의 역할을 통해서 사도들이 어떠한 사명을 감당하느냐에 따라서 교회 부흥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집사를 세운 결과가 어땠는지를 먼저 말씀을 통해서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6절 7절을 우리 함께 읽어보실까요? 6절 7절입니다.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이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6절에 보니까 안수하여서 세웠더니 7절에 세 가지 결과가 나타났다고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졌다는 걸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교훈이 더 많아지고 질적으로 더 깊어졌다는 의미이겠죠.
그렇다면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동안 사도들이 말씀 양육과 더불어서 구제 사역을 함께 했는데 이 구제 사역을 집사들에게 다 맡김으로 인해서 성경에 대한 나눔의 시간 또한 연구하는 시간들이 더 깊어졌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죠.
이제 사도들은 그들이 마땅히 감당해야 될 기도 사역과 말씀 사역 전모하는 일에 힘썼다는 것이죠. 그로 인해 사도의 가르침은 깊어지고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요소들이 있지만 실상 교회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죠. 말씀이 생명이 돼야 교회는 교회되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믿음이라는 걸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믿음이 있어야 구원을 받잖아요.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도 믿음이 있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죠.
하나님을 믿는 믿음. 그런데 이 믿음이 어디에서 옵니까?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성경은 이야기하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 안에 믿음이 생기고 믿는 가운데 구원의 기쁨과 감격 속에서 예배자로 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인생이 된다는 것이죠. 따라서 초대교회는 집사를 세움으로 인해서 더욱 성경 중심 말씀 중심의 교회로 세워질 수 있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기 때문에 구제하는 일이 축소되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사도들이 하던 일을 세움 받은 집사들이 감당했기 때문에 구제 사역 역시 더 풍성하게 오히려 더 조직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지고 사역의 분대 사역의 전문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신은 교회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각자의 직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목사인 저를 비롯해서 성도는 성도 집사는 집사로서 권사는 거기서 안수 집사 또는 장로로서 세움을 받았는데, 내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오늘 한번 좀 나의 직분을 바라보며 점검해 보시고, 또한 앞으로 내가 이 직분으로 무엇을 감당해야 할지 깊이 생각하는 그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직분 사명을 위해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그리하여서 우리 신은교회가 목사는 목사의 역할을 감당하고 또한 직분자는 직분자의 역할을 감당하고, 성도는 성도의 역할을 감당함으로 인해서 아름답고 조화로운 교회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정말 건강한 교회로 잘 세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둘째 제자의 수가 더 심이 많아졌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사역의 분배는 그들 공동체로 하여금 제자의 수가 더 많아지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죠.
여기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될 것, 주목해야 될 것은 무엇입니까?
제자라는 단어 제자의 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시죠.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라. 제자를 삼아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우리 인생들에게 주신 사명 아니겠어요 따라서 제자의 수가 많아졌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사건인 것이죠. 그냥 교인이 많아졌다가 아닌 것입니다. 실제 초대교회 같은 경우는요. 구제 사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제공받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죠. 필요에 의해서 내가 그 필요를 얻고자 가야겠다 해서 모여든 사람이 많았어요.
근데 그게 초대교회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도 그랬어요.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 무리들이 막 몰려다녔잖아요. 오병이어 사건이 끝나자마자 더 많이 모였으니까 왜 내 필요를 충족 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가면 뭔가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따라간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구제받고 싶어서 교회에 왔는데 그곳에서 사도의 말씀을 듣고 세운 집사들의 영향을 받다 보니 어느 순간에 예수를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되고 주를 섬기는 자로 성장해 가더라.
더 나아가서는 이들이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살겠노라고 고백할 뿐만 아니라 참 제자의 길을 걸어가는 수가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먼저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을 잘 섬기는 참 제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셔서 지금까지 양육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참 제자가 돼야 되지 않겠어요?
참 제자가 되시고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제자의 수가 더해지는 초대교회와 같은 놀라운 은혜가 임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번째는 심지어 복음 증거에 방해하는 세력이었던 제사장들이 그 도에 복종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죠. 집사를 선출한 결과 사도들은 더 힘있게 복음을 전하는 거예요. 그리고 구제 사역은 점점 더 공평해지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허다한 제사장들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더라는 거예요.
여러분 제사장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당시 교회를 핍박하던 대제사장들 그룹에 속한 사람들 아니겠어요? 그들과 함께 사역했던 제사장들 레위인들이죠. 당시 예루살렘의 만 8천 명 정도의 레위인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8천 명 정도가 제사장으로 대제사장을 협력해서 사역했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당시 제사장들의 삶이 녹록지가 않았어요.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서 레위인들을 각 지파에 분배했잖아요. 땅도 안 줬어요. 하나님께서 왜 안 줬냐 제사드리러 온 사람들을 잘 제사할 수 있도록 그 사역을 하고 그중에 10분의 1을 너희들이 취해서 먹고 살아라 그렇게 말씀하신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들의 10분의 1을 취해서 살았기 때문에 삶에 문제가 없었단 말이죠.
그런데 신약 시대에 와서 이때 제사장들은 예배도 흔쾌히 드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절기적으로 보통 예배를 그리고 이 십일조를 온전하게 제사장들에게 돌아가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죠. 그러다 보니까 삶이 쉽지가 않았어요. 가난에 허덕여야만 했던 제사장들이었던 것이죠.
그런 사람들이 초대교회의 이 사역들을 보니 우리도 가서 조금 우리의 필요를 얻어야겠다 그러면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자들이 점점 늘어났다는 것이죠. 쉽게 말해 초대교회는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는 교회였다는 거예요.
여기서 우리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단의 수가 왜 증가하는지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가끔 우리 성도님들하고 대화하다 보면 도대체 왜 이단에 빠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동의하십니까?
이해가 안 되죠. 왜 이단에 빠지는가 그런데 실상 보면 이단에 가서 거기에서 배우는 사람 그래서 수가 증가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되잖아요. 이들이 하는 것은요.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앞장서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는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좋은 관계를 통해서 어떻게 합니까?
그들의 교리를 집어넣기 시작하는 것이죠. 교리가 먼저가 아니라 복음이 먼저가 아니라 좋은 관계를 맺어서 그들을 이끌어와서 계속해서 교리를 집어넣는 것이죠.
제가 언젠가 이단에 속한 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제가 물었어요.
왜 그곳에 가세요? 거기 이단인데요.
그랬더니 이분이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이단인지 아닌지 그건 제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단 그거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가는 것은 고마음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이 이유를 들어보니 팔을 다쳐서 병원에 입원을 해서 이렇게 보내야 되는데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데 너무 힘든데 근데 어떤 한 사람이 와서 매일같이 옷도 갈아입혀주고 머리도 감겨주고 밥도 먹여주고 이분의 어려움을 보고 잘 도와준 거죠. 잘 수가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분이 내가 그렇게 고마운 분에게 어떻게 외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가기싫어도 간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가운데 듣다 보니까 그냥 뭐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아서 내가 갑니다.
여러분 자신의 피로를 충분히 채워줬다는 것이죠. 실상 교회가 사랑으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일들을 이단은 형식적으로라도 이 일에 앞장서서 시작을 해서 그들에게 교리를 집어넣는 사역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부터 고아와 가부를 돌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죠. 즉 어렵고 힘든 사람들 어떤 문제에 직면해서 아파하는 자들 그들의 피로를 채워주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사명이고 그것이 복입니다.
오늘 청년부에서 한 형제와 자매의 작은 결혼식을 만들어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청년들끼리 이렇게 조촐하게 결혼식을 못해서 축하해 주기 위해서 만든 자리 현 형제가 있고요. 자매는 태국 자매 간단한 파티로 축하해 주려고 했는데 제가 어저께 저녁에 어저께 아침인가 카톡을 보니까 갑자기 태국에서 어머님이 오신대요. 그리고 태국 사람들 10명 정도가 온다는 겁니다.
여러분 왜 그분들이 이 자리에 오려고 하실까요?
그것은 한 가정의 필요 그들에게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마음 다해 준비하는 그 모습을 알았었기 때문에 그들이 와서 함께 기쁨을 나누려고 하는 것이겠죠. 따라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보면 사실 처음에는 나 중심으로 시작하게 돼 내 필요에 의해서 교회에 오죠.
사실 교회에 오시는 분들 보면 그렇게 해서 오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아파서 오기도 하고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오기도 하고 또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 옵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고 내가 주님 안에 거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을 느낄 때에 나 중심에서 세상을 향해서 확장되기 시작하는 것이죠.
이게 바로 신앙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서 이단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돌아오는 축복이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서 우리를 핍박하던 자들이 주님 믿겠다고 돌아오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서 다른 종파에 있던 사람들이 나 하나님 믿겠습니다. 개종하고 뛰어나올 수 있는 은총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런 축복의 통로가 되어줘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여러분 초대교회 어떤 사람들을 집사로 세워졌기에 부흥에 좋은 열매를 맺었는가 그것을 우리가 좀 살펴보려고 합니다.
3절 보면 당시에 집사 자격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세웠는가 우리 3절을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여기 보니까 세 가지 중요한 내용이 담겨져 있죠. 첫 번째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집사는요 무엇보다 성령 충만해야 됩니다. 성령 충만하다는 것을 쉽게 말하자면 늘 하나님과 교제하는 성도 성령께 붙잡혀 사는 인생을 말하는 것이죠. 결국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하나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생활임과 동시에 하나님께 늘 기도하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성령 충만한 자들은 무슨 일을 할 때 내 뜻대로 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붙잡힌 바 되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여러분 주변에 보면 아이브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야 느껴집니까? 보여집니까?
사실 알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열매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죠. 늘 미워하면서 살아요. 성령 충만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언제나 슬픔에 가득 차 있었는데 성령은 기쁨을 주신다는데 한숨 안 쉬고 슬퍼만 합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하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겠어요 다툼의 자리에 앞장섭니다. 어떻게 성령 충만하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삶의 원망과 불평, 이것들만 늘어놓고 산다.
여러분 그런 분들에게 성령 충만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하게 성령 충만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무엇입니까?
성령이 말하게 하시는 대로 말하는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은요.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사는 사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사는 사람,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고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서 예배자의 삶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 희생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협력하면서 하나 됨을 힘써 지키는 사람 이런 사람 아니겠어요?
저와 여러분들이 이러한 성령 충만한 사람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 자비, 양성, 충성, 절제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삶의 현장 가운데 흘러나가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어 살아가는 초대 교회와 같은 귀한 집사의 모습이 저와 여러분 삶 가운데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는 집사가 아닌데요. 아니요. 집사가 아니어도 이러한 모습을 추구하는 게 우리 신앙의 모습이어야 됩니다. 내가 아직 집사 식구는 아니지만 봐도 교회에 왔으니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 더 힘쓰고 노력해야겠다 그런 마음이 필요한 것이죠.
둘째,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서 나는 성령 충만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성경은 지혜에 대해서 두 가지로 이야기하죠. 하나는 세상적 지혜,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얻는 지혜입니다. 세상적 지혜는 땅 위의 것이고 정욕적인 것이고 사단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서부터 오는 지혜는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위로부터 오는 지혜인 것이죠. 에베소서 5장에 보면 사도바울이요.
죄악된 세상 가운데 신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권면하는데, 이 죄악된 세상 속에서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면 얘들아 빛의 자녀들처럼 행해라. 그렇게 보는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러면서 빛의 열매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데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세상에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살아가는데 이것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지혜롭게 기도하십시오. 특별히 지혜가 없는 자, 지혜가 있는 자라는 표현을 통해서 지혜를 강조해 주는데, 에베소서 5장 15절 16절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시작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빛의 자녀들처럼 사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지혜 있는 자같이 사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러면 지혜 있는 자 같이 사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 그다음 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17절 같이 읽어볼까요?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사람 어떤 사람의 위에 보니까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바꿔서 지혜로운 자가 되어서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또 질문을 해요. 그럼 주의 뜻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 이하에 보면 몇 가지 주의 뜻에 대해서 쭉 기록해 줍니다. 그중에 첫 번째가 뭐냐 하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 충만을 받으라.
할렐루야.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빛이 자녀들처럼 행하는 것은 가장 우선되는 게 세상이 요구하는 술에 취하는 게 아니라 성령의 지혜에서 성령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씀하시는 대로 그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된다. 그렇게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나가면 다른 도의자를 주겠다 그렇게 약속해 주시죠. 그것이 무엇입니까? 따라갑시다. 성령 성령을 보내주시겠다 약속합니다. 여러분 성령을 다르게 표현하면 무엇입니까? 따라해 볼까요?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영이죠. 우리의 영이 아니죠. 하나님의 영 네 여러분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밀한 것까지도 아신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안에 성령이 임하면 성령을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어요? 하나님의 은밀한 것을 하나님의 은밀한 것은 뭐예요?
하나님의 뜻이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성령을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 인간의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소통의 문제 내가 영어를 못하는데 영어하는 사람하고 대화하면 소통 안 되잖아요. 안 되는 거예요.
물론 이제 바디랭귀지로 어느 정도 이렇게 할 수는 있지만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소동이 되겠어요?
그래서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 분별해야 된다고 가르쳐줍니다. 고린도전서 2장 13절 우리 큰소리로 한번 읽어볼까요?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는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가르쳤는데 사도바울이 굉장히 지식과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었어요. 아마리 문화에서 잘 배우고 율법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고백합니다.
내가 세상의 지혜로 가르친 거 아닌가 성령께서 가르쳐주신 것 그것 가지고 너희들 가르쳐봐라.
그렇게 말씀하세요.. 영적인 것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해야 된다.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죠. 이런 맥락에서 보면 여러분 이 말씀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은 영이지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영과 진리로 예배를 안 하면 예배가 아닌 거예요. 자리에 와서 예배는 드리지만 그냥 이것이 하나님과 진짜 소통이 되는 예배가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여기서 그럼 영과 진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이죠.
성령이 있어야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휘장이 찢어지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잖아요. 그러니까 예수의 길 예수를 붙잡고 나아가는데 성령께서 도우셔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이게 예배예요. 그러니까 오늘 이 자리에 왔어도 저와 여러분들이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성령의 능력과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의 예배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것 성령의 충만함과 지혜의 충만 특별히 야고보서 1장 5절에 말씀하잖아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아버지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지혜를 구해 하나님께서 후의 주시는 그 지혜를 마음껏 가지고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 번째는요. 칭찬받는 사람 칭찬받는 사람 여러분 성령 충만과 지혜 충만한 사람은 대부분 보편적으로 평판이 좋을 수밖에 없겠죠. 말하지 않아도 야 성령 충만해 진리도 충만해. 그러면 사실 묻지 않아도 그들은 평판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누가 칭찬받는 사람인가 지식 많고 일 잘합니다. 그런데 격이 없고 이기적이고 굉장히 독선적이라면 여러분 칭찬합니까?
인간의 판단으로 볼 때 그것 가지고 칭찬하지 않는다. 좀 잘 못하더라도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정말 최선을 다해서 묵묵히 일하시는 분,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서 예배드리고 성도에게 덕을 끼치는 분 그런 분들은 인간적으로 볼 때 칭찬을 다 저 정도면 칭찬받을 만해라고 우리가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도 우리의 인간적인 보편적인 생각일 뿐이잖아요. 그 성경이 말하는 칭찬받은 사람은 누군가 우리가 그걸 좀 볼 필요가 있는데 로마서 14장 17절 18절에는 성경이 말하는 칭찬받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로마서 14장 17절 18절 우리 같이 한번 읽어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리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여러분 공동체가 먹는 거 잘 먹는 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체육대회 때 잘 먹었잖아요. 제가 끝나고 들어보니까 먹은 얘기밖에 없더라. 땅콩도 맛있었고 떡도 맛있었는데 나도 못 먹었고 어쨌든 피자 또한 치킨도 많이 남았다. 풍족해서 너무 좋았다고 이야기 먹는 것
잘 먹어야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체육대회를 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잘 먹기 위해서였나요?
아니죠.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심을 힘에서 지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한 거예요. 근데 잘 먹었어요. 그리고 체육대회 하는 가운데 막 이기겠다고 분쟁하고 다투고 시기했다면 그거는 우리 취지에 맞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냈겠죠.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생명이 하나를 위함을 힘써 지키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으로 했다면 칭찬받고 잘 목적 취지에 맞게 한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여러분 다시 한 번 말씀을 볼까요? 로마서 말씀 다시 한번 띄워줘 보세요.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기 보면 성령 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게 먹는 거 마시는 게 되게 좋은 거예요. 그쵸?
행복한 거예요. 먹고 살 수 있다는 거 근데 그것보다 그것도 좋은데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사는 것이 그것이 훨씬 더 좋은 거다. 그래서 그러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다. 성령 안에서 성령 안에서
따라합시다.
성령 안에서
그래서 여러분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 매우 선한 영향력을 끼쳤던 것은 초대교회 집사 그렇죠 이들이 성령 충만했고 지혜가 충만했고 칭찬받는 사람이었다.
여러분 이런 자들이 자신들에게 맡겨진 일에 충실했기 때문에 교회는 성장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이들이 세운 목적이 무엇입니까?
3절 끝에 보니까 맡기고 맡겼다는 거죠. 전적으로 맡겼다는 거 그러니까 일을 잘 하는 사람들에게 맡긴 것이죠. 여러분 이 일을 생각하면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잘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제대로 된 사람이 있으면 일은 제대로 돌아갑니다. 그렇지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일이어도 제대로 된 사람이 없으면 돌아가기가 어렵습니다. 그 일이 잘 되어지기 어렵다는 거예요.
저도 군 생활을 했습니다. 저는 22사단 뇌종부대라는 우리나라의 최동북단 그곳에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거기는 이제 전방을 투입하는 곳이라 6개월씩 전방에 들어갑니다. 6개월 내지 8개월 그러다 보니까 들어가기 전에 신병들을 막 넣어줘요. 그래서 한소대 40명인데 6개월 동안 10명 이상이 들어와요. 그래서 이등병이 10명 이상 돼요. 일병 달 때 되면 한 20명 돼요.
그러니까 거기에서 가장 먼저 온 기수가 제일 좋겠죠. 가장 늦게 온 기수가 제일 힘들어요. 왜 위에 봐도 고참 고참 병장 때까지 고참만 있어요. 그래서 이제 병력이 투입이 됐는데 저희가 전방에 들어가서 내려왔는데 또 전방을 투입할 시기가 돼서 사람들을 보냈죠.
그런데 제가 봐도 이분은 군대 오면 안 될 분인데 하는 분들이 좀 오셨어요. 정신적으로나 좀 힘들어하는 데 사실 사회 돌봄을 받아야 될 분들인데 군대 가버리고 그것도 전방을 투입하는 그러니까 여러분 중대장이 얼마나 노심초사하겠어요? 이들을 잘 관리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제가 이제 좀 앞서에 들어가서 제 밑에 후임병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세상 말로는 군대가 풀렸다고 이제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제가 병장을 달고 전방과 페바의 중간에 있는 한 초소가 있어요. 거기에 우리 소대가 배치를 받은 거예요.
그런데 중대장이 갑자기 저를 부르더니
견장 떼
그래서 병장 달자마자 떼게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너는 본부에 좀 남아야겠다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서 군대에 오지 말아야 될 그 친구들이 한 4~5명 되는데 실제 의사소통이 잘 안 돼요. 어떤 친구는 진짜 머리가 좋아요. 그래서 일본 노래를 다 외워요. 그런데 관물대를 보고 이렇게 노래를 해요. 그 친구한테 얘기를 해도 소통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중대장이 이들에게 어떤 임무를 맡기기가 쉽지가 않죠. 그리고 그들을 돌봐야 되니까 제가 그래도 신학생이고 또 교회 애들을 데리고 왔다 갔다 하니까 거기 가면 안 되는 와서 이렇게 해서 좀 이들을 봐야겠다.
그래서 제가 병장 휴가 때 며칠 휴가인데 중간에 중대장이 전화가 왔어요.
좀 빨리 들어오면 안 돼. 내가 감당이 안 된다고
그리고 포상휴가도 심지어 잘렸어요. 저는 마지막 군생활 병장 때 사실 그 초소에 가면 되게 편하게 보낼 수 있는 건데 정말 제일 어려운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돌아보니까 그게 저에게 주신 은혜였고 축복이었다라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때 생각한 게 있어요. 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맡길 수 없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그러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여러분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었지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성령 충만하고 지혜가 충만하고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수 있는 사람 일곱을 세웠기 때문에 그 교회는 조금 더 튼튼하게 성장해갈 수 있었다.
왜요?
그것 때문에 사역자들이 사도들이 그들이 해야 될 본연의 기도와 말씀 사역에 충실하게 되었고 그동안 구제 사역에 힘썼던 것들을 다 이쪽으로 집중했을 것 아닙니까?
그리고 사도들만 하던 것들을 성도들에게 다 분배해주면서 이들이 감당하여서 교회가 더 든든하게 세워질 수 있도록 그렇게 조직화하게 되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 구제 사역을 통해서 풍성한 더 큰 풍의 은총이 임했다.
거기에다 중요한 건 오늘 말씀 성령 충만하고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받는 집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선한 영향력이 사람들에게 흘러가는 은혜가 있었다. 이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성령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지혜가 충만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누구에게나 칭찬받을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에 나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고, 나를 통해 주님을 만나는 한 영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