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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장 1-18절.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
1. 오늘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나 뵌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말씀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번 텔레반 인질 사건처럼 죽을 위험에서 살아난 사람들을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서 예수님은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나셨습니다.
지난주에는 예수님이 완전히 죽으신 사건을 말씀드렸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많은 피를 흘리고, 붉을 피톨과 물같이 하얀 혈장이 분리될 정도로 완전히 죽으셨습니다.
로마 군병이 창으로 예수님이 옆구리를 찌르니까, 피와 물이 쏟아지는 것을 요한이 곁에서 분명히 보았습니다.
2. 이처럼, 예수님은 금요일에 죽으셨다가 일요일 새벽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습니다.
3. 오늘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4. 내용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10절.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에 달려가서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본 내용입니다.
11-18절.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 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내용입니다.
1-10절.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에 달려가서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본 내용입니다.
1절.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 주일의 첫날에 막달라 마리아가 아직 어두울 때 일찍 무덤에 갔는데, 돌이 무덤에서 이미 치워진 것을 보았다. (Now on the first day of the week Mary Magdalene came early to the tomb, while it was still dark, and saw the stone already taken away from the tomb.)
안식 후 첫날
Τῇ δὲ μιᾷ τῶν σαββάτων
the now first of the Sabbath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Μαρία ἡ Μαγδαληνὴ ἔρχεται--εἰς τὸ μνημεῖον,
Mary the Magdalene comes --to the tomb
‘와서’(ἔρχεται)는 현재형으로서(comes) 오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πρωῒ σκοτίας ἔτι οὔσης
early dark still it being
동사(οὔσης)는 현재분사로서(it being) 어두운 상태를 가리킵니다.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καὶ βλέπει τὸν λίθον ἠρμένον ἐκ τοῦ μνημείου
and she sees the stone having been removed from the tomb
‘옮겨진’이라는 단어(ἠρμένον)는 완료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removed) 이미 옮겨진 상태를 가리키고, 원형(αἴρω)은 ‘일으키다, 들어올리다, 옮기다, 제거하다’(to raise, lift up, take away, remove)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고’(βλέπει)는 현재형으로서(she sees) 보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안식후 첫날’은 오늘날 주일에 해당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일곱 귀신을 쫓아내준 여인으로서(눅 8:2) 다른 여인들보다 예수님을 지극 정성으로 섬겼던 여성도였습니다.
공간복음에는 막달라 마리아 외에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매 등 다른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간 것으로 나옵니다(막 16:1).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에 누락된 것을 보충하여 막달라 마라이가 개인적으로 무덤에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요한복음은 공관복음 보다 약 20년 후에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공관복음에 빠진 부분들을 많이 보충하고 있습니다.
2. 유대지방에서는 무덤을 매장하지 않고, 동굴에 시신을 안치하고, 짐승이 시신을 훼손하지 않도록 무덤 입구를 돌로 막았습니다.
그런데, 이 때 예수님의 무덤 입구의 돌이 굴러간 것은 천사가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 마 28:2)
2절.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래서 그 여자가 달려가서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셨던 그 다른 제자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그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는데, 우리가 그들이 그 분을 가져다 둔 곳을 모르고 있다”고 했다. (So she ran and came to Simon Peter and to the other disciple whom Jesus loved, and said to them, "They have taken away the Lord out of the tomb, and we do not know where they have laid Him.")
시몬 베드로와---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τρέχει οὖν καὶ ἔρχεται πρὸς Σίμωνα Πέτρον καὶ πρὸς τὸν ἄλλον μαθητὴν
She runs therefore and comes to Simon Peter and to the other disciple
직역하면 ‘그러므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에게로 달려서 가서’란 뜻입니다.
‘달려가서’란 말은 두 단어(τρέχει와 ἔρχεται)로 되어 있는데, 두 단어 모두 현재 직설법 동사로서,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며, 가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첫째 단어(τρέχω)는 ‘달린다’(run)는 뜻이고, 둘째 단어(ἔρχομαι)는 ‘오다, 가다’(come, go)란 단어입니다.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ὃν ἐφίλει ὁ Ἰησοῦς,
whom was loving the Jesus
‘사랑하시던’이란 단어(ἐφίλει)는 미완료과거 동사로서(was loving) 지금까지 계속 사랑해오신 것을 가리키고, 원형(φιλέω)은 ‘친구 관계로 사랑하다’(love of friendship)는 뜻입니다.
말하되
καὶ λέγει αὐτοῖς
and she says to them
직역하면 ‘그 여자가 그들에게 말하기를’이란 뜻입니다.
‘말하되’(λέγει)는 현재형으로서(she says)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Ἦραν τὸν Κύριον ἐκ τοῦ μνημείου,
They took away the Lord from the tomb
직역하면 ‘그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가버렸다’는 뜻입니다.
‘가져다가’란 단어(Ἦραν)는 부정과거 동사로서(took away) 단호하게 가져가버린 확실한 사실을 가리키고, 원형(αἴρω)은 ‘일으키다, 들어올리다, 옮기다, 제거하다’(to raise, lift up, take away, remove)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καὶ οὐκ οἴδαμεν ποῦ ἔθηκαν αὐτόν.
and not we have known where they laid Him.
직역하면 ‘그들이 그분을 어디에 두었는지를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두었는지’란 단어(ἔθηκαν)는 부정과거 동사로서(they laid) 확실하게 두어버린 것을 가리키고, 원형(τίθημι)은 ‘두다, 놓다’(to place, lay, set)는 뜻입니다.
‘알지’란 단어(οἴδαμεν)는 완료형으로서(we have known) 이전에 알지 못한 상태를 가리키고, 원형(οἶδα)은 ‘알다, 인식하다’(be aware, know, perceive)는 뜻입니다.
1. ‘시몬 베드로’ 이름이 먼저 나온 것은 여전히 베드로가 열한 제자의 지도적 위치에 있음을 가리키고,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란 사도 요한을 가리킵니다.
이 때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2.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는 것은 아직 막달라 마리아와 다름 여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이었음을 나타냅니다.
여기 ‘우리’라는 것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이 함께 베드로와 요한에게 갔음을 의미합니다.
3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래서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가고 있었다. (So Peter and the other disciple went forth, and they were going to the tomb.)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Ἐξῆλθεν οὖν ὁ Πέτρος καὶ ὁ ἄλλος μαθητής,
Went forth therefore the Peter and the other disciple
직역하면 ‘그러므로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갔다’는 뜻입니다.
‘나가서’(Ἐξῆ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went forth) 홀연히 나간 모습을 가리킵니다.
무덤으로 갈새
καὶ ἤρχοντο εἰς τὸ μνημεῖον.
and were coming to the tomb
‘갈새’란 단어(ἤρχοντο)는 미완료 동사로서(were coming) 계속 가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ἔρχομαι)은 ‘가다, 오다’( go, come)란 뜻입니다.
1.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 즉 요한 두 사람은 여자들에게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보고를 받고, 곧바로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베드로는 수제자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달려갔고,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고, 또 인간적으로도 이종사촌 간이었기 때문에 달려갔습니다.
4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 둘이 함께 달려가는데,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앞서 달려서 먼저 무덤에 도달했다. (The two were running together; and the other disciple ran ahead faster than Peter and came to the tomb first;)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ἔτρεχον δὲ οἱ δύο ὁμοῦ·
Were running now the two together
‘달음질하더니’란 단어(ἔτρεχον)는 미완료 동사로서(were running) 계속 달음질 하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τρέχω)는 ‘달리다’(run)란 뜻입니다.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καὶ ὁ ἄλλος μαθητὴς προέδραμεν τάχιον τοῦ Πέτρου
and the other disciple ran ahead faster than the Peter
‘빨리 달려가서’란 단어(προέδραμεν)는 부정과거 동사로서(ran ahead) 단호하게 빨리 달려가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προτρέχω)은 ‘먼저 달리다, 앞서서 달리다’( to run forward, run in advance)는 뜻입니다.
먼저 무덤에 이르러
καὶ ἦλθεν πρῶτος εἰς τὸ μνημεῖον,
and came first to the tomb
‘이르러’란 단어(ἦλθεν)는 부정과거 동사로서(came) 확실히 이르른 분명한 사실을 가리키며, 원형(ἔρχομαι)은 ‘오다, 가다’(come, go)란 뜻입니다.
1. 베드로는 열 두 제자들 중 나이가 많은 수제자였고, 사도 요한은 가장 어린 젊은이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사도들 가운데서도 특히 친밀한 사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가 친밀한 요한에게 머릿짓으로 예수님을 팔 자가 누구인지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요 13:24)
2.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무덤으로 달려갔지만, 연장자인 베드로 보다 젊은 요한이 먼저 도착했습니다.
5절.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리고 구부리고 안을 들여다보는 가운데, 그가 세마포 포장지들이 거기에 놓인 것을 보았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and stooping and looking in, he saw the linen wrappings lying there; but he did not go in.)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καὶ παρακύψας, βλέπει κείμενα τὰ ὀθόνια,
and having stooped down, he sees lying the linen cloths
직역하면 ‘구부리고 세마포 옷들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구부려’란 단어(παρακύψ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tooped down) 확실하게 구부린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παρακύπτω)은 ‘곁에’라는 접두어(παρά)와 ‘허리를 구부린다, 머리를 숙이다’는 동사(κύπτω: bend, stoop down, bow the head)의 합성어인데, 그 뜻은 ‘옆으로 구부린다, 구부려서 바라본다’(to stoop sideways, to stoop to look)는 것입니다.
‘놓인’이라는 단어(κείμενα)는 현재분사로서(lying) 놓여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원형(κεῖμαι)은 ‘놓이다, 눕다, 기대다, 위치하다’(to be laid, lie, recline, am placed)는 뜻입니다.
‘보았으나’란 단어(βλέπει)는 현재 동사로서(he sees) 보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므로, ‘보고 있으면서도’라고 번역해야 하고, ‘바라보다, 보다, 인식하다, 분간하다’(look, see, perceive, discern)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οὐ μέντοι εἰσῆλθεν.
not however he entered
‘들어가지’(εἰσῆ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he entered) 단화하게 들어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1. 요한은 무덤에 먼저 도착했으나 들어가지는 않았는데, 행동이 항상 앞선 베드로는 무덤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이처럼 사색적인 요한과 행동파 베드로는 성격이 상반되어서 서로 좋아하고, 서로 조화를 잘 이루어서 초대 교회를 반석위에 세워놓았습니다.
2. 우리들도 성격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고, 서로 조화를 잘 이루어서 더욱 완벽한 사역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남편과 아내는 성격이 반대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서로 사랑하고 조화를 잘 이루면, 성격이 같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큰 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화성에서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존 그레이/John Gray: Men Are from Mars, Women Are from Venus 참조)
6절.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리고 시몬 베드로가 역시 그를 따라서 도착해서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세마포 포장지들이 거기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And so Simon Peter also came, following him, and entered the tomb; and he saw the linen wrappings lying there,)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ἔρχεται οὖν καὶ Σίμων Πέτρος ἀκολουθῶν αὐτῷ,
Comes then also Simon Peter following him
직역하면 ‘그러므로 시몬 베드로도 그를 따라서 들어오고’란 뜻입니다.
‘따라와서’란 말은 두 단어로 되어 있는데, ‘따라’란 단어(ἀκολουθῶν)는 현재분사로서(following) 베드로가 요한을 따라오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ἀκολουθέω)은 ‘따르다, 동행하다, 시중들다’(to follow, accompany, attend)란 뜻이며, ‘와서’란 단어(ἔρχεται)는 현재형으로서(comes) 오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ἔρχομαι)은 ‘오다, 가다’(come, go)란 뜻입니다.
무덤에 들어가
καὶ εἰσῆλθεν εἰς τὸ μνημεῖον·
and he entered into the tomb
직역하면 ‘그가 무덤에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들어가’(εἰσῆ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he entered) 단번에 확 들어가버린 모습을 가리킵니다.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καὶ θεωρεῖ τὰ ὀθόνια κείμενα,
and sees the linen clothes lying
직역하면 ‘그리고 세마포 옷들이 놓여있는 것을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보니’란 단어(θεωρεῖ)는 현재형 동사로서 ‘그가 보고 있다’(he sees)란 뜻이고, 원형(θεωρέω)은 ‘바라보다, 주시하다, 보다’(to look at, gaze, behold)는 뜻입니다.
‘놓여 있는’(κείμενα)은 현재분사로서(lying) 놓여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세마포’는 시신을 장사할 때, 방부제 향품을 발라서 시신을 감싼 수의를 가리킵니다.
즉 시신이 빨리 부패하지 않도록 방부제 역할을 하는 몰약과 침향을 몸에 바르고 세마포에도 발라서 수의로 시신에 입혔습니다.( 요 19:40)
그런데 일단 한번 향품을 발라서 시신을 처리한 세마포는 굳어져서 망치로 깨뜨리기 전에는 다시는 벗길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마포가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는 것은 기적적인 일이요, 예수님이 부활하신 증거가 됩니다.
7절.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리고 그 분의 머리 위에 있었던 얼굴을 싼 천이 세마포 포장지들과 함께 놓이지 않고, 한 장소에 그대로 개켜져 있었다. (and the face-cloth which had been on His head, not lying with the linen wrappings, but rolled up in a place by itself.)
수건은
καὶ τὸ σουδάριον,
and the soudarion
‘수건’이란 단어(σουδάριον)는 ‘순수건, 머리수건’(a handkerchief, a head cloth)을 가리킵니다.
머리를 쌌던
ὃ ἦν ἐπὶ τῆς κεφαλῆς αὐτοῦ,
which was being on the head His
직역하면 ‘그분의 머리 위에 있던’이란 뜻입니다.
‘있던’(ἦν)은 미완료과거로서(was being) 계속 있었던 것을 가리킵니다.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οὐ μετὰ τῶν ὀθονίων κείμενον
not with the linen clothes lying
‘놓이지’란 단어(κείμενον)는 현재분사로서(lying) 놓여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원형(κεῖμαι)은 ‘놓이다, 눕다, 기대다, 위치하다’(to be laid, lie, recline, am placed)는 뜻입니다.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ἀλλὰ χωρὶς ἐντετυλιγμένον εἰς ἕνα τόπον.
but by itself having been folded up in a place
직역하면 ‘한 곳에 쌌던 그대로 (놓여있더라)’는 뜻입니다.
‘쌌던’이란 단어(ἐντετυλιγμένον)는 완료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folded up) 이미 싸여진 상태를 가리키고, 원형(ἐντυλίσσω)은 ‘안에’라는 접두어(ἐν)와 ‘비틀다’란 동사(τυλίσσω)의 합성어인데, 그 뜻은 ‘싸다, 감싸다, 봉하다’(wrap up, roll round, envelop)는 뜻입니다.
1. ‘머리를 싼 수건’이란 역시 몰약과 침향을 발라서 시신의 얼굴을 덮은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일단 한번 몰약과 침향을 수건에 발라서 얼굴을 덮으면, 그것이 딱딱하게 굳어서 망치로 깨뜨리기 전에는 벗길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머릿수건이 벗겨져서 따로 놓여 있었다는 것은 역시 기적적인 일이고, 예수님의 기적적인 부활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8절.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래서 먼저 무덤에 도착했던 그 다른 제자가 그 후에 역시 들어가서 그도 보고 믿었다. (So the other disciple who had first come to the tomb then also entered, and he saw and believed.)
그 때에야--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τότε οὖν εἰσῆλθεν καὶ ὁ ἄλλος μαθητὴς
then therefore entered also the other disciple
직역하면 ‘그러므로 그 때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들어가’(εἰσῆ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entered) 단호하게 들어간 사실을 가리킵니다.
무덤에 먼저 갔던
ὁ ἐλθὼν πρῶτος εἰς τὸ μνημεῖον,
the (one) having come first to the tomb
‘갔던’(ἐλθὼν)은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come) 확실히 먼저 간 사실을 가리킵니다.
보고 믿더라
καὶ εἶδεν καὶ ἐπίστευσεν·
and he saw and believed
‘보고’(εἶδεν)는 부정과거로서(he saw) 확실히 본 사실을 가리키며, ‘믿더라’(ἐπίστευσεν)도 부정과거로서(he believed) 확실히 믿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요한은 베드로보다 후에 무덤에 들어갔는데, 먼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보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여자들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여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여자들(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저희와 함께한 다른 여자들)이 보았다고 보고했으나, 역시 허탄한 듯이 뵈어 믿지 않았습니다. (눅 24:10-11)
그후에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은 없어지고, 세마포가 개켜져 있는 초자연적인 사건을 보고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눅 24:12)
그리고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에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만져보고서야 믿었습니다. (요 20:25-28)
9절.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이는 아직 그들은 그 분이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그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For as yet they did not understand the Scripture, that He must rise again from the dead.)
그들은---아직 알지 못하더라
οὐδέπω γὰρ ᾔδεισαν τὴν γραφὴν
not yet for they had known the Scripture
‘알지’란 단어(ᾔδεισαν)는 대과거 동사(pluperfect)로서(they had known) 그 이전에 이미 알지 못했다는 뜻이고, 원형(οἶδα)은 ‘알다, 인식하다’(be aware, know, perceive)는 뜻입니다.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ὅτι δεῖ αὐτὸν ἐκ νεκρῶν ἀναστῆναι.
that it behooves Him from the dead to rise
직역하면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일어나게’라는 단어(ἀναστῆν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로서(to have risen) 단호하게 일어나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ἀνίστημι)은 ‘위로’라는 접두어( ἀνά)와 ‘서다, 서게 하다’란 동사( ἵστημι: to make to stand, to stand)의 합성인데, 그 뜻은 ‘일으키다, 일어나다’(to raise up, to rise)란 것입니다.
‘마땅하다’(δεῖ)는 현재형으로서(it behooves) 언제나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1. 죽은 자의 부활을 말씀한 성경은 시편 16편 9-10절(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초기에 사도들도 부활에 관한 성경을 알지 못했고, 예수님의 부활도 쉽게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성령 강림 이후에는 제자들이 부활신앙에 굳게 섰고(행 2:24, 4:2), 더욱이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뵌 후에 부활신앙에 대해서 재판(23:6, 산헤드린 재판, 26:23, 가이사랴에서 총독과 아그립바 왕 재판)에서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2.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신앙 여정에 등불이 됩니다. (시 119:105)
우리가 죽음 후의 천국에 대해서도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지만, 영생 천국에 대한 성경 말씀(고전 15:42-52, 살전 4:17, 계 21:1-7)은 우리 신앙 여정에 등불이요 빛이 됩니다.
10절.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래서 그 제자들은 다시 자기들의 집으로 떠나갔다. (So the disciples went away again to their own homes.)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ἀπῆλθον οὖν πάλιν πρὸς αὑτοὺς οἱ μαθηταί.
went away therefore again to their (home) the disciples
직역하면 ‘그러므로 그 제자들이 다시 자기 집으로 갔다’는 뜻입니다.
‘돌아가니라’란 단어(Ἀπῆλθον)는 부정과거 동사로서(went away) 확실히 돌아간 사실을 가리키고, 원형(ἀπέρχομαι)은 ‘-로부터’라는 접두어(ἀπό)와 ‘가다’라는 동사( ἔρχομαι)와 합성어인데, 그 뜻은 ‘떠나가다, 돌아가다, 다다르다’(to go away, depart, return, arrive)는 것입니다.
1. 베드로와 요한은 각각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때 요한은 집에 가서 예수님의 모친인 마리아에게 이 모든 사실들을 말했을 것입니다.
<1-10절 보충 설교>
1. 막달라 마리아는 갈릴리 호수 서편에 있는 <막달라>라는 작은 마을 출신의 마리아였습니다.
이 마리아는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죄 많은 여인이 아니고, 요한복음 12장에서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마리아(나사로의 누이)도 아닙니다.
이 마리아는 누가복음 8장 1절의 말씀대로, 일곱 귀신이 들렸다가 에수님께 고침받고, 가진 재산을 다 드려서 예수님을 섬겼던 여성도입니다.
이 마리아는 받은 은혜가 남달리 많았기 때문에, 그만큼 남다른 헌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2. 이 막달라 마리아는 안식일이 지난 후 일요일 새벽에 제일 먼저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무덤 입구에서 경비를 보던 로마 군병들이 없고, 무덤 입구를 막은 돌문도 열려있는 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달려갔습니다.
이때, 무덤을 경비하던 로마 군인들이 없어진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의 장면을 목격한 로마 군인들이 무서워서 총독에게 보고하러 갔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 문이 열린 것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서 말하기를,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어디다 두었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때까지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3.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젊은 요한이 베드로보다 먼저 무덤에 도착했습니다.
요한은 무덤속에 들어가지는 않고, 밖에서 무덤 안을 들여다보면서, 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던 세마포가 놓여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뒤늦게 달려온 베드로는 곧 바로 무덤 안으로 들어갔는데, 세마포가 놓여 있는 것과 예수님의 머리를 감쌌던 수건이 따로 개켜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4. 이 세마포는 몰약을 발라서 예수님의 시신을 감았던 것입니다.
처음에 세마포에 몰약을 바를 때는 부드럽지만, 하루가 지나면, 석고처럼 단단하게 굳어졌습니다.
그래서, 부수지 않고는 그냥 벗겨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마포가 부셔지지 않고 곱게 벗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건이란, 시신의 머리가 둥글기 때문에, 세마포 천으로 길게 감싸지 않고, 수건 모양의 천들을 여러 장 몰약을 발라, 시신의 얼굴을 둥글게 감싼 수건들이었습니다.
이 방부제를 바른 머릿수건들도 하루만 지나면, 석고처럼 딱딱하게 굳어집니다.
그래서, 머릿수건들을 부수지 않고는 벗겨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머리에서 벗겨낸 머릿수건들은 여러 장이 차례차례 곱게 개켜져 있었습니다.
5. 이처럼 세마포와 수건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는 것은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도적질해간 것이 아니고, 요한복음 11장 44절 나사로의 경우처럼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결정적 증거가 됩니다.
6. 이 때,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에 남아 있는 초자연적인 사실을 보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도마처럼 육체적 감각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은 불완전한 믿음이었습니다.
완전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9절에 <아직 저희는 죽은 자의 부활을 말씀한 성경 말씀을 알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7. 확실한 믿음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얻습니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6:63. 주의 말씀이 영이요 생명입니다.
로마서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3-4절에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다>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완전한 감정이나 지식이나 경험을 믿지 마시고,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창조적이고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399장>
주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영원토록 주를 찬송하리라
소리 높여 주께 영광 돌리며
약속 믿고 굳게 서리라
굳게 서리 영원하신 말씀 위에 굳게 서리
굳게 서리 그 말씀 위에 굳게 서리라
11-18절.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 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내용입니다.
11절.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러나 마리아는 울면서 무덤 밖에 서 있었다: 이처럼 그녀는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았다. (But Mary was standing outside the tomb weeping; and so, as she wept, she stooped and looked into the tomb;)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Μαρία δὲ εἱστήκει πρὸς τῷ μνημείῳ ἔξω κλαίουσα.
Mary however had stood at the tomb outside weeping
직역하면 ‘그러나 마리아는 울면서 무덤 밖에 서 있었다’는 뜻입니다.
‘서서’란 단어(εἱστήκει)는 대과거 동사(pluperfect)로서(had stood) 그 이전에 이미 서 있었던 것을 가리키고, 원형(ἵστημι)은 ‘서게 하다, 서 있다’(to make to stand, to stand)는 뜻입니다.
‘울고 있더니’란 단어(κλαίουσα)는 현재분사로서(weeping) 울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κλαίω)은 ‘울다, 애곡하다, 슬퍼하다’(weep, mourn, lament)는 뜻입니다.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ὡς οὖν ἔκλαιεν, παρέκυψεν εἰς τὸ μνημεῖον,
as therefore she was weeping, she stooped down into the tomb
‘울면서’라는 단어(ἔκλαιεν)는 미완료 동사로서(she was weeping) 계속 울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κλαίω)은 ‘울다, 애곡하다, 슬퍼하다’(weep, mourn, lament)는 뜻입니다.
‘들여다보니’란 단어(παρέκυψεν)는 부정과거형으로서(stooped down) 확실하게 들여다보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παρακύπτω)은 ‘곁에’라는 접두어(παρά)와 ‘허리를 구부린다, 머리를 숙이다’는 동사(κύπτω: bend, stoop down, bow the head)의 합성어인데, 그 뜻은 ‘옆으로 구부린다, 구부려서 바라본다’(to stoop sideways, to stoop to look)는 것입니다.
1.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가서 보고 한 후에, 베드로와 요한을 따라서 다시 무덤에 갔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도 역시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집에 돌아갔는데요, 막달라 마리아는 집에 가지 않고,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이때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다른 여인들도 동행했습니다. (마 28:5, 막 16:5)
12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리고 그녀는 하얀 두 천사들이 하나는 예수의 신체가 놓여 있었던 곳의 머리쪽에 그리고 하나는 발쪽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and she saw two angels in white sitting, one at the head and one at the feet, where the body of Jesus had been lying.)
흰 옷 입은 두 천사가--앉았더라.
καὶ θεωρεῖ δύο ἀγγέλους ἐν λευκοῖς καθεζομένους,
and she sees two angels in white sitting
직역하면 ‘그리고 그 여자는 흰옷의 두 천사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앉았더라’는 단어(καθεζομένους)는 현재 분사로서(sitting) 앉아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καθέζομαι)은 ‘밑에’라는 접두어( κατά)와 ‘앉다’라는 동사(ἕρζομαι)의 합성인데, 그 뜻은 ‘앉아 있다’(sit down)는 것입니다.
‘보고 있었다’(θεωρεῖ)는 현재형으로서(she sees) 보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ἕνα πρὸς τῇ κεφαλῇ καὶ ἕνα πρὸς τοῖς ποσίν,
one at the head and one at the feet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ὅπου ἔκειτο τὸ σῶμα τοῦ Ἰησοῦ.
where was laying the body of Jesus
직역하면 ‘예수의 신체가 뉘어 있던 곳’이란 뜻입니다.
‘뉘었던’이란 단어(ἔκειτο)는 미완료 수동태로서(was laying) 계속 뉘어 있던 상태를 가리키고, 원형(κεῖμαι)은 ‘놓이다, 눕다, 기대다, 위치하다’(to be laid, lie, recline, am placed)는 뜻입니다.
1. 요한복음에는 두 천사가 무덤 안에 있었던 것으로 나옵니다.
공관복음에 누가복음에는 두 사람으로(눅 24:4), 마태는 한 천사로(마 28:2), 마가는 한 청년으로(막 16:5)로 나오는데, 요한복음이 다른 복음서의 부정확한 것을 정확히 밝혔습니다.
그러나 다른 성경이 틀린 것은 아니고, 서로 더욱 보완적입니다.
13절.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리고 그들이 그녀에게 말하기를 “여인이여, 왜 울고 있느냐?”고 했다. 그녀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그들이 내 주님을 가져갔는데, 그들이 어디에 그 분을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고 했다. (And they said to her, "Woman, why are you weeping?" She said to them, "Because they have taken away my Lord, and I do not know where they have laid Him.")
천사들이 이르되
καὶ λέγουσιν αὐτῇ ἐκεῖνοι
and they say to her
직역하면 ‘그들이 그 여자에게 말하기를’이란 뜻입니다.
‘이르되’(λέγουσιν)는 현재형으로서(they say)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Γύναι, τί κλαίεις;
Woman, why you weep
‘우느냐’란 단어(κλαίεις)는 현재형으로서(you weep) 울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κλαίω)은 ‘울다, 애곡하다, 슬퍼하다’(weep, mourn, lament)는 뜻입니다.
이르되
λέγει αὐτοῖς
she says to them
직역하면 ‘그 여자가 그들에게 말하기를’이란 뜻입니다.
‘이르되’(λέγει)는 현재형으로서(she says)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ὅτι Ἦραν τὸν Κύριόν μου,
Because they took away the Lord mine
직역하면 ‘그들이 내 주님을 옮겨갔기 때문에’라는 뜻입니다.
‘옮겨다가’란 단어(Ἦραν)는 부정과거 동사로서(took away) 과거에 확실히 옮겨간 사실을 가리키고, 원형(αἴρω)은 ‘일으키다, 들어올리다, 옮기다, 제거하다’(to raise, lift up, take away, remove)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καὶ οὐκ οἶδα ποῦ ἔθηκαν αὐτόν.
and not I have known where they laid Him
‘두었는지’란 단어(ἔθηκαν)는 부정과거 동사로서(thet laid) 과거에 단호하게 둔 확실한 사실을 가리키고, 원형(τίθημι)은 ‘두다, 놓다’( to place, lay, set)는 뜻입니다.
‘알지’(οἶδα)는 완료형으로서(I have known) 아직 알지 못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1. 천사들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어찌하여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때 다른 여자들은 천사들을 보고 무서워했다고 했습니다. (마 28:5, 막 16:5).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오직 예수님에 대한 마음이 간절해서 천사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천사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2. 천사의 물음에 대한 막달라 마리아의 대답은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울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일편단심 예수님에 대한 마음 뿐인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이때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막달라 마리아는 절망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14절.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녀가 이렇게 말하고 몸을 돌려 예수께서 거기에 서 계신 것을 보았는데, 그 분이 예수이신 줄을 알지 못했다. (When she had said this, she turned around and saw Jesus standing there, and did not know that it was Jesus.)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ταῦτα εἰποῦσα, ἐστράφη εἰς τὰ ὀπίσω,
These having said, she turned back the around
‘말을 하고’란 단어(εἰποῦσα)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aid) 단호하게 말한 사실을 가리키고, 원형(ἔπω)은 ‘대답하다, 말하다, 명령하다’(answer, bring word, bid)는 뜻입니다.
‘돌이켜’란 단어(ἐστράφη)는 부정과거 동사로서(she turned back) 단호하게 확 돌이킨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στρέφω)은 ‘돌아서다, 변화하다, 회개하다’(to turn, to change, am converted)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καὶ θεωρεῖ τὸν Ἰησοῦν ἑστῶτα,
and she sees the Jesus having stand
‘서 계신 것’이란 단어(ἑστῶτα)는 완료 분사로서(having stand) 이미 서 계신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ἵστημι)은 ‘서게 하다, 서 있다’(to make to stand, to stand)는 뜻입니다.
‘보았으나’(θεωρεῖ)는 현재형으로서(she sees) 보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현재형이므로 ‘보고 있었으나’란 뜻입니다.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καὶ οὐκ ᾔδει ὅτι Ἰησοῦς ἐστιν.
and not she had known that Jesus He is
직역하면 ‘그 분이 예수이신 줄을 알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알지’란 단어(ᾔδει)는 대과거 동사(pluperfect)로서(she had known) 그 이전에 알지 못한 상태로 있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οἶδα)은 ‘알다, 바라보다, 생각하다, 인식하다, 기억하다’(be aware, behold, consider, perceive, remember, appreciate)는 뜻입니다.
1. 막달라 마리아는 천사들과 대화를 나눈 후에 뒤돌아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아마 누군가 뒤에 계신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2.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당장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 28:17, 막 16:12).
뿐만 아니라 엠마로로 가던 두 제자도 함께 대화하고 걸어가면서도 몰랐습니다. (눅 24:16)
3. 이처럼 놀라운 예수님의 부활의 모습은 장차 우리들의 부활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할렐루야!
찬송가 240장. 주가 맡긴 모든 역사 힘을 다해 마치고 밝고 밝은 그 아침을 맞을 때 요단강을 건너가서 주의 손을 붙잡고 기쁨으로 주의 얼굴 뵈오리. 나의 주를 나의 주를 내가 그의 곁에 서서 뵈오며 나의 주를 나의 주를 손의 못자국을 보아 알겠네.
1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여인이여, 왜 울고 있느냐? 네가 누구를 찾고 있느냐?”고 하셨다. 그녀는 그 분이 정원지기인 줄로 생각하고 그 분에게 말하기를 “선생님, 만일 당신이 그 분을 옮기셨으면, 그 분을 어디에 두었는지 나에게 말하시오, 그러면 내가 그 분을 가져가겠습니다”고 했다. (Jesus said to her, "Woman, why are you weeping? Whom are you seeking?" Supposing Him to be the gardener, she said to Him, "Sir, if you have carried Him away, tell me where you have laid Him, and I will take Him away.")
예수께서 이르시되
λέγει αὐτῇ Ἰησοῦς
says to her Jesus
직역하면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하기를’이란 뜻입니다.
‘이르되’(λέγει)는 현재형으로서(says) 말씀하고 계신 모습을 가리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Γύναι, τί κλαίεις;
Woman, why do you weep ?
‘울며’란 단어(κλαίεις)는 현재형으로서(do you weep) 울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κλαίω)은 ‘울다, 애도하다, 한탄하다’(weep, mourn, lament)는 뜻입니다.
누구를 찾느냐
τίνα ζητεῖς;
Whom do you seek ?
‘찾느냐’란 단어(ζητεῖς)는 현재형으로서(do you seek) 찾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ζητέω)은 ‘찾다, 탐색하다, 바라다’(seek, search for, desire)는 뜻입니다.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ἐκείνη δοκοῦσα ὅτι ὁ κηπουρός ἐστιν,
she thinking that the gardener He is
직역하면 ‘그녀는 그분이 동산지기인 줄로 생각하면서’란 뜻입니다.
‘알고’란 단어(δοκοῦσα)는 현재분사로서(thinking) 생각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원형(δοκέω)은 ‘견해를 갖다, 인 것 같다, 생각한다, 처럼 보인다’(to have an opinion, to seem, think, appear)는 뜻입니다.
맨 뒤의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He is).
이르되
λέγει αὐτῷ
she says to Him
직역하면 ‘그 여자가 그분에게 말하기를’이란 뜻입니다.
‘이르되’(λέγει)는 현재형으로서(she says)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Κύριε, εἰ σὺ ἐβάστασας αὐτόν,
Sir, if you have carried off Him
직역하면 ‘주여, 만일 당신이 그분을 옮겼거든’이란 뜻입니다.
‘옮겼거든’이란 단어(ἐβάστασας)는 부정과거 동사로서(carried off) 단호하게 옮긴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키고, 원형( βαστάζω)은 ‘옮기다, 운반하다, 치우다’(carry, bear, take away)는 뜻입니다.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εἰπέ μοι ποῦ ἔθηκας αὐτόν,
tell me where you laid Him
‘두었는지’란 단어(ἔθηκας)는 부정과거 동사로서(laid) 확실히 둔 과거의 사실을 가리키고, 원형(τίθημι)은 ‘두다, 놓다’(put, place, lay, set)는 뜻입니다.
‘이르소서’(εἰπέ)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tell) 확실히 말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κἀγὼ αὐτὸν ἀρῶ.
and I Him I will take away
직역하면 ‘그러면 내가 그분을 가져가리이다’는 뜻입니다.
‘내가’(κἀγὼ: and 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가져가리이다’란 단어(ἀρῶ)는 미래 동사로서(will take away) 앞으로 가져갈 것을 가리키고, 원형( αἴρω)은 ‘일으키다, 가져가다, 들어올리다, 치우다, 옮기다’(to raise, take up, lift, take away, remove)는 뜻입니다.
1. 앞에서는 천사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어찌하여 우느냐’고 물었고, 막달라 마리아는 ‘사람들이 내 주님을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셨고, 막달라 마리아는 ‘당신이 주님의 시신을 옮겼거든 내게 알려주면 내가 가져가리이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처럼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을 찾고 있는데,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몸을 보여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이와같이 우리 인간들은 지상 낙원을 찾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생 천국을 이루어주십니다. 할렐루야!
즉 우리는 약하고 천한 것을 달라고 기도하지만, 주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할렐루야!
마태복음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16절.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마리아야!”라고 하셨다. 그녀가 돌아서서 그 분에게 말하기를 히브리어로 “라보니!”(이것은 선생님이라는 뜻이다)라고 했다. (Jesus said to her, "Mary!" She turned and said to Him in Hebrew, "Rabboni!" (which means, Teacher).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λέγει αὐτῇ Ἰησοῦς, Μαριάμ.
Says to her Jesus, Mary
직역하면 ‘예수께서 그녀에게 마리아야 하시니’란 뜻입니다.
‘하시거늘’(λέγει)은 현재형으로서(says) 말씀하고 계신 모습을 가리킵니다.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στραφεῖσα, ἐκείνη λέγει αὐτῷ, Ἑβραϊστί· Ῥαββουνεί
Having turned around, she she says to Him, in Hebrew, Rabboni
직역하면 ‘그녀가 돌이켜 그분에게 말하기를, 히브리어로 라보니 하니’란 뜻입니다.
‘그녀가’(ἐκείνη) 강조되어 있습니다.
‘돌이켜’란 단어(στραφεῖσα)는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turned around) 단호하게 확 돌아서게 된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στρέφω)은 ‘돌이키다, 변화하다, 회심하다, 내 방향을 변화시키다’(to turn, to change, am converted, change my direction)는 뜻입니다.
‘하니’(λέγει)는 현재형으로서(she says)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ὃ λέγεται, Διδάσκαλε).
that it says, Teacher
‘말이라’(λέγεται)는 현재형입니다(it says).
1.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이 양되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마리아야’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막달라 마리아는 히브리말로 ‘선생님’(랍오니)라고 불렀습니다.
2. 영화의 극적인 대단원처럼, 성경에서 특이할 만한 명장면입니다.
‘하염없이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절대적인 위로를 주신 예수님이십니다.
이처럼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위로해주시는 참 좋으신 주님이십니다.
고린도후서 1:3-4.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찬송가 566장] 사랑의 하나님 귀하신 이름은 내 나이 비록 적어도 잘 알 수 있어요
1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매달리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노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내 아버지, 너희들의 아버지, 그리고 내 하나님, 너희들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하라”고 하셨다. (Jesus said to her, "Stop clinging to Me, for I have not yet ascended to the Father; but go to My brethren and say to them, 'I ascend to My Father and your Father, and My God and your God.'")
예수께서 이르시되
λέγει αὐτῇ Ἰησοῦς
says to her Jesus
직역하면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이란 뜻입니다.
‘이르시되’(λέγει)는 현재형으로서(says) 말씀하고 계신 모습을 가리킵니다.
나를 붙들지 말라
Μή μου ἅπτου,
not Me touch
‘붙들지’란 단어(ἅπτου)는 현재 명령법 동사로서(touch) 계속 붙들고 있지 말라는 뜻이고, 원형( ἅπτομαι)은 ‘만지다, 굳게 붙들다, 붙들다, 육적으로 알다’(touch, fasten to; lay hold of, know carnally)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οὔπω γὰρ ἀναβέβηκα πρὸς τὸν Πατέρα·
not yet for I have ascended to the Father
직역하면 ‘왜냐하면 아직 내가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올라가지’란 단어(ἀναβέβηκα)는 완료형으로서(have ascended) 아직 올라가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고, 원형(ἀναβαίνω)은 ‘위로 가다, 올라가다’(to go up, ascend)란 뜻입니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πορεύου δὲ πρὸς τοὺς ἀδελφούς μου
go however to the brothers Mine
직역하면 ‘그러나 내 형제들에게 가라’는 뜻입니다.
‘가서’란 단어(πορεύου)는 현재 명령형 동사로서(go) 지금 가라는 명령이고, 원형(πορεύομαι)은 ‘가다, 여행하다, 죽다’(to go, travel, journey, die)는 뜻입니다.
이르되,
καὶ εἰπὲ αὐτοῖς
and say to them
직역하면 ‘그들에게 말하라’는 뜻입니다.
‘이르되’(εἰπὲ)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say) 확실히 말하라는 단호한 명령입니다.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께로 --올라간다 하라
Ἀναβαίνω πρὸς τὸν Πατέρα μου καὶ Πατέρα ὑμῶν
I ascend to the Father Mine and Father your
‘올라간다’란 단어(Ἀναβαίνω)는 현재형으로서(I ascend) 올라가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원형(ἀναβαίνω)은 ‘위로 가다, 올라가다’(to go up, ascend)란 뜻입니다.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καὶ Θεόν μου καὶ Θεὸν ὑμῶν.
and God Mine and God your
1.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붙들려고 했습니다.
그토록 주님을 보고 싶어하던 마리아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직 하나님 아버지께로 승천하지 못하셨기 때문에, 붙들어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그때는 얼마든지 주님을 붙들고 살 수 있지만, 부활하신 주님은 지상에 머물러 사실 것이 아니라, 승천하셨다가 장차 재림하셔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사실 것입니다.
이처럼 그토록 간절히 주님을 사모했던 마리아는 오히려 부활하신 주님의 승천을 방해하는 방해꾼이 되었습니다.
2.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사명을 주셨는데, 나를 붙잡아놓지 말고, 제자들에게 가서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하신다는 사실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첫 번째로 만나서 말씀하신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이고, 첫 번째 사명을 주신 사람도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 출산하는 사람이 되었고,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 승천을 세상에 알리는 첫 사람이 되었습니다.
3.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형제’라고 호칭하셨는데, 그러면서도 ‘내 아버지와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과 너희 하나님’으로 구분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 성도들은 양자된 자녀들이라는 뜻입니다.
18절.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알리기를 “내가 주님을 보았다”고 하고, 그 분이 이것들을 자기에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Mary Magdalene came, announcing to the disciples, "I have seen the Lord," and that He had said these things to her.)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하고,
ἔρχεται Μαριὰμ ἡ Μαγδαληνὴ ἀγγέλλουσα τοῖς μαθηταῖς ὅτι
Comes Mary the Magdalene bringing word to the disciples
직역하면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그 제자들에게 말을 전하고’란 뜻입니다.
‘가서’(ἔρχεται)는 현재형으로서(comes) 가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말)하고’란 단어(ἀγγέλλουσα)는 현재분사로서(bringing word) 말을 전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ἀπαγγέλλω)은 ‘--로부터’라는 접두어(ἀπό)와 ‘알리다’는 동사(αγγέλλω)의 합성어로서, 그 뜻은 ‘보고하다, 알리다’(to report, announce)는 뜻입니다.
내가 주를 보았다
Ἑώρακα τὸν Κύριον,
I have seen the Lord
‘보았다’란 단어( Ἑώρακα)는 완료형 동사로서(have seen) 이미 본 것을 가리키고, 원형(ὁράω)은 ‘보다, 인식하다, 주시하다, 바라보다, 경험하다, 분간하다, 알다’( to see, perceive, attend to, look upon, experience, discern, beware)는 뜻입니다.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καὶ ταῦτα εἶπεν αὐτῇ.
and these He said to her
직역하면 ‘그리고 그분이 그녀에게 이것들을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말씀하셨다’는 단어(εἶπεν)는 부정과거 동사로서(He said) 과거에 확실히 말씀하신 사실을 가리키고, 원형(ἔπω)은 ‘대답하다, 말하다, 말을 전하다, 명령하다’(answer, bid, bring word, command)는 뜻입니다.
1.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당부를 듣고, 곧바로 제자들에게 가서 자신이 부활의 주님을 본 사실과 주님이 당부하신 말씀을 제자들에게 전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첫 목격자였고,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첫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11-18절 설교 보충>
1.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에서 세마포와 수건이 개켜 있는 것을 보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숨어 있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에 계속 머물러 주님을 보고 싶어 울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이 쓰셨던 세마포와 수건만으로써는 아직 마음에 위로를 받지 못했습니다.
주님 자신을 만나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만일 부활하신 주님이 마리아를 만나주지 않으셨더라면, 마리아는 평생 울면서 죽어 갔을 것입니다.
이 만큼 마리아는 주님을 사랑하고, 보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2. 이때 두 천사가 흰옷을 입고 마리아에게 나타났습니다.
마리아는 그들이 단순히 사람인 줄만 알고, 천사인 줄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그들이 천사인 줄 몰라본 것은, 마리아의 마음이 온통 예수님께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마리아가 일편단심 예수님만을 사랑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천사들의 모습은 잘 생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타처럼 잘 생긴 천사들의 모습을 보고서도, 마리아는 전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말을 걸었어도, 마리아는 오직 <내 주님>을 찾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3. 마리아가 <예수님을 찾고 싶다>고 말한 후에, 뒤를 돌아보니, 그토록 사모하던 예수님이 서 계셨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처음에는 예수님인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고통을 지고 가시던 예수님의 모습과 부활하신 영광스런 모습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는 아직도 부활 신앙을 갖지 못해서, <죽은 예수님의 시신만>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산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부활신앙>이 없으면, 유교처럼 <무덤 신앙>이 되고 맙니다.
(1) 며칠이 지나면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인 추석이 다가옵니다.
추석 때면, 온 나라가 성묘객들로 가득찹니다.
물론 성묘는 우리 기독교인들도 잘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자손들이 <무덤 속에 있는 조상의 시신>에 얽매어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저 정성껏 무덤을 잘 관리하면 좋지만, 자식들은 대학을 갈 형편이 못 되는데도, 수 천만 원씩 빚을 내서, 무덤을 화려하게 가꾸는 것은, 잘못된 <무덤신앙>입니다.
<무덤에 돈을 많이 쓰면, 조상이 복을 준다>는 생각은 잘못된 미신입니다.
무덤은 풀을 깎아주고, 부모님과 자손들의 이름을 새긴 비석을 하나 간단히 세워두면, 족합니다.
(2) 그리고, 생활은 어려운데도, 묫자리를 명당을 찾아 쓴다고 수천만 원, 수억 원씩 들여서, 전망 좋은 땅을 사는 것도 잘하는 일이 못 됩니다.
물론,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산이, 물 잘 빠지고, 바람 잘 통하고, 전망 좋은 곳이면, 좋겠지요.
그러나, 자녀들과 가족들은 어려운 살림을 하고 있는데, 소위 명당에다가 묘를 쓰면, 자손이 복을 받는다는 데 온통 정신이 팔려서, <무덤신앙>에 빠져 있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만연한 아주 잘못된 미신입니다.
인생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지, <무덤 속에 있는 조상의 시신>이 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3) 그리고, 돌아가신 조상을 신으로 섬겨야, 조상신이 복을 준다고 믿고, <조상신 제사>에 몰두하는 것도 잘못된 풍습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 것은 <조상은 세상을 떠나면, 천국이나 지옥에 가 계시지, 이 세상에 귀신으로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조상의 영혼은 비록 지옥에서라도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자손들이 예수 믿고 천국 가기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 누가복음 16장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6:27-28.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이 세상에서 <조상신> 모습을 한 것은 마귀 귀신의 속임수입니다.
귀신은 원래 천사였지만, 타락해서 귀신이 된 것이고, 조상의 영혼은 귀신이 아닙니다.
무당은 귀신을 보고, 조상신이라고 말하지만, 귀신이 조상신 흉내를 내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귀신은 거짓말쟁이이므로, 무당 귀신의 말을 다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을 기억하여, 하나님 앞에 예배하면서 형제끼리 우애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생전에 부모님께 효도하고, 마귀 귀신에게 제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추모하면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 받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4) 이처럼, 우리나라는 잘못된 <무덤 신앙>이 있는데, 막달라 마리아도 이때 <산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었고, <죽은 사람>에게만 관심을 쏟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서 본받아야 할 귀한 점이 있습니다.
즉, 마리아가 예수님을 사랑하되, <죽음을 초월한 지극한 사랑>을 한 것은 본받아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 대한 마리아의 사랑은 죽음이 끊어놓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죽고 못 살 것 같이 법석을 떨던 사람이, 죽음은커녕 1년간 외국에 유학만 갔다 와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가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옛날에는 군대 갔다 온 사이에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고무신 거꾸로 신고 가버렸다고 하지만, 요즘에는 잠깐 화장실에만 갔다 와도, 벌써 눈이 다른 남자에게 돌아가버린 답니다.
그러므로, 직장인들에게 아내 잘 챙기라고 한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예수님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했습니다.
아가서 8장 6절에 말씀합니다.
<사랑은 죽음 보다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 같으니라>
이처럼, 막달라 마리아는 죽음을 초월하여,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막달라 마리아처럼 끝까지 예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변찮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448장>
이 세상 끝 날까지 주 봉사하리니
내 친구 되신 주여 늘 함께 하소서
주 나와 함께 하면 전쟁도 겁없고
주 나를 인도하면 늘 안심하리라
4. 드디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습니다.
그토록 애타게 예수님을 찾고 있던 마리아에게, 목숨 바쳐 사랑하신 예수님께서, 죽음의 골짜기까지 따라와서 예수님을 찾고 있는 마리아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마리아야!>
오직 그토록 예수님만을 찾아 헤매던 마리아는 <생명 보다 소중한 예수님의 음성을>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길 잃은 양이 목자의 부드러운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1) 목자 되신 예수님이 양된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자, 마리아의 영혼은 <죽음의 골짜기>에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즉, 죽은 예수님을 따라 죽어가던 마리아는 그 마음과 육체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할렐루야!
정말 놀라운 <심령의 부활>이 마리아에게도 일어난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5절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자마다 살아나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한 순간이었습니다.
(2) 이처럼,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는 곳마다 부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소녀야 일어나라, 달리다굼>하신 예수님의 음성이 들릴 때, 죽었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예수님의 음성이 들릴 때,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살아났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열 사람의 문둥병자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딸아,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말씀하실 때,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나음을 얻었습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말씀하실 때, 소경이 눈을 떴습니다.
<일어나 걸어라> 말씀하실 때, 중풍병자가 일어나서 걸었습니다.
(3) 오늘날도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는 가정마다 고침을 받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절망에서 소망을 얻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부모님을 미워한 데서 고침을 받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여성이, 용서 못할 남자를 용서하게 됩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나라가, 모든 죄악과 불신과 방탕에서 고침을 받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교회가, 미움과 다툼에서 치료를 받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주님의 음성을 마음의 귀로써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영혼이 고침 받고, 육신도 고침 받고, 가정과 사회도 고침 받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219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하는 말일세
믿는 맘으로 주께 가오니, 나를 영접 합소서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구세주의 흘린 보배 피로써, 나를 정케 합소서
5.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자, <죽은 예수님의 시신이라도 가져가려던 간절한 마음으로> 즉시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붙잡으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사랑하고 간절히 찾던 예수님을 보았으므로, 인간의 육정으로 당연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붙잡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성도들과 혼인잔치를 갖기 이전에는, 누구도 <지상에서는 완전한 행복을 누리지 못함>을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도들끼리 사랑하고 친밀한 교제를 나눈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는 완전한 동고동락을 누리지 못합니다.
오직, 하늘나라에 가서 부활의 주님을 모시고 살 때, 완전한 동고동락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6.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사랑을 나누지 못해 아쉬워하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사명을 일러주셨습니다.
즉, 부활의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로 올라가신다는 기쁜 소식을 형제들에게 전해주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아버지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그래서, 마리아는 <기쁨과 행복감>을 가지고, 형제들에게 달려갔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눈앞에서 사라지셨어도, <사명>을 안고, 슬픔 없이 기쁨으로, <예수님의 부활과 장차 승천하실 것>을 사도들에게 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리아처럼, 눈앞에 예수님이 보이지 않더라도, 예수님이 부탁하신 사명을 가지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장차 천국에서 예수님을 기쁨으로 만나시고, 큰 상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7. 한 가지 명심할 것은 17절에서, 예수님은 <내 형제들>이란 말씀과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란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의 결과로, 성도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되었고, 예수님과 형제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서, 이제 성도들도 장차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님을 형님으로 모시고 살게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로 이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에 가서 살 것을 소망하면서, 기쁨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리아처럼, 눈앞에 예수님이 보이지 않더라도, 예수님이 부탁하신 사명을 가지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천국 생활에 대한 산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령님 모시고, 주님의 말씀에서 산 소망을 얻으면서, 날마다 천국을 바라보면서 승리의 생활을 해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