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2:6-11 유월절의 시그니쳐, 어린 양과 그 피
하나님께서 바로와 애굽을 심판하실 때, 이스라엘을 그 재앙으로부터 철저히 구별하셨다. 네 번째 파리 재앙 땐 이스라엘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파리가 없게 하셨고(8:22), 가축 돌림병[구제역] 때도 이스라엘의 가축과 애굽의 가축을 구별하여 이스라엘 가축은 한 마리도 죽지 않게 하셨고(9:4), 우박 재앙 때도 이스라엘이 거주하는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고(9:26), 흑암 재앙 때도 흑암으로 뒤덮인 애굽 땅과 달리 이스라엘이 거주한 곳에는 빛이 있었다(10:23).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끔찍이 사랑하셨다. 그런데 10번째 재앙 땐 이스라엘을 구별하는 것은 기본이고, 기적의 현장에 이스라엘을 동참시키셨다. 어떻게 동참시키셨을까?
(1)
그달 10일에 어린 양을 취하여 14일까지 4일간 간직하고 있다가 14일 해 질 때 그 양을 잡으라고 하셨다. 양이 없으면 염소로 대신할 수 있었다. 어린 양은 흠 없는 1년 된 수컷이어야 했다, 양 한 마리에 10인분이었다. 가족 수가 적으면 이웃과 함께 사람 수를 맞춰야 했다. 양을 잡을 때 나온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야 했다(3-7).
(2)
이 작업이 끝난 다음 그날 밤 저녁 식사로 문설주와 인방에 피가 발라진 그 집에서 잡았던 그 양고기를 날것이나 삶아서 먹지 말고 반드시 불에 구워 먹되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어야 했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고 혹 남았다면 무조건 불살라야 했다(8-10).
(3)
그리고 식사 때 복장은 편안한 복장이 아니라 여행을 위한 복장이어야 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급히 먹어야 했다(11).
(1) 왜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바르게 했을까?
14일 밤에 하나님은 애굽 땅을 두루 다니며 사람,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의 처음 난 것을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셨다(12). 애굽의 최고 장자이자 장차 최고의 신이 될 바로의 맏아들과 애굽인들이 신으로 섬기고 있는 짐승들의 첫 태생들을 치실 계획이었다. 하나님은 이 재앙에서 자기 백성들을 구별해야만 하셨다. 그래서 이스라엘 장자를 대신하여 희생되어야 할 제물이 필요했다. 그것이 어린 양이었다. 흠 없고, 1년 된 수컷은 신체적으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때이기 때문에 최상급이다. 장자는 그 집안의 최상이다. 대들보이다. 희망이다. 이를 대신할 제물로 어린 양을 선택하여 죽이고, 그 죽인 시그널로 피를 그 죽인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놓아야 했다. 그 피는 이미 장자를 대신하여 어린 양으로 희생을 치렀다는 하나님과 이스라엘만의 그날 밤 암호[시그널]였던 것이다. 생명의 시그널이다. 물론 하나님이 명령한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해내기 위해 수만 마리의 어린 양을 대속물로 삼으셨다. 그리고 이 어린 양의 피가 유월절의 시그니쳐[특징]가 되었다. 바로와 애굽인들에겐 이런 시그널이 없었다. 그리하여 바로와 애굽인들은 장자의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벧전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셨다. 마치 좌우 문설주와 인방은 십자가로 중첩[overlap]이 되고, 그곳에 바른 어린 양의 피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연상된다. 이스라엘은 어린 양의 피로 사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듯이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론 예수님의 피를 통해 죄 사함을 받을[애굽과 같은 사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히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 그 피 때문에 바울은 희망을 선포했다.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예수의 이름, 예수의 피로 회개하면 죽음을 가져다주었던 22개[재앙; 교만, 음란, 거짓, 우울, 분노 ,,,]로부터 해방된다. 예수의 피로 이런 죄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여러분에게 사망이 찾아온다. 생명인 천국으로 가야 할 인생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사망 즉 지옥으로 간다. 예수의 피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이 세상에서나 내세의 삶에서 전혀 다른 길로 걸어간다. 교회의 시그니처는 예수님의 피이다. 기독교인들의 시그니처 또한 예수님의 피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사망이 와 있고, 사망의 길을 갈 것이고, 죽어서 사망의 나라 지옥으로 갈 것이다. - Happiness or Blessing
죄는 여러분을 아끼지 않는다. 악감정과 상처는 여러분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왜 여러분은 이런 죄를 사랑하려고 하는가? 이것들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예수의 이름으로 미워하라.
(2) 양고기, 무교병, 쓴 나물을 먹었을까?
어린 양의 고기는 골고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몸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잔[피]과 떡[살]을 나누셨고, 영원히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먹었던 유월절 식사엔 양고기가 없었다. 왜? 예수님이 그 유월절 어린 양이었기 때문이다.
요 6:54-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 양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 되는 시간이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한 공동체[백성]라는 것이다.
무교병을 먹으라는 것은 누룩과 같은 죄로 물든 애굽에서의 옛 생활을 청산하고(고전 5:7), 이제는 더 이상 죄악을 먹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죄로부터 정결하고 성화된 삶을 살라는 뜻이다. 예수님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다(마 16:6,11). 여기서 누룩은 무엇일까? 그들의 교훈[전통](마 16:12)과 외식(눅 12:1)을 말한다. 결국 그들이 말한 교훈과 외식은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죄다. 쓴 나물은 애굽의 쓰라린 노예 생활을 상징한다. 쓴 나물을 먹으면서 고통의 애굽 생활을 돌아보면서 어린 양의 피로 구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쓴 나물의 쓴맛은 양고기의 달콤한 고기와 중화가 되어 콜라보[컬래버]를 이룬다. 이처럼 고난은 예수의 피[이름]가 추가되면[기도/찬양/말씀듣기/실천] 중화가 된다.
(3) 왜 복장을 갖추고 먹었을까?
보통 저녁 음식은 어떻게 먹는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먹는 것이어서 최대한 편안하고 여유롭게 먹는다. 띠를 풀고 최대한 편안한 복장으로 느긋하게 즐기면서 먹는다. 그런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고 하셨을까? 대부분 집에 들어오기 전에 신을 벗는다. 집에서 신을 신을 때가 언제인가?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거나 더 이상 그 집이 필요가 없어서 이사 갈 때이다. 따라서 신을 신고 음식을 먹었다는 것은 곧 떠날 것이라는 뜻이다. 지팡이는 언제 필요한가? 장거리 여행을 떠날 때이다. 식사할 때 지팡이를 손에 잡고 먹는다는 것은 곧 떠날 것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에게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모두 이런 복장으로 먹으라고 명령하셨다. 재앙의 밤이 지나 내일이면 곧 애굽을 떠날 거란 뜻이다. 마치 출정하는 군인들처럼 긴장감이 돈다. 달리기 선수처럼 온 신경을 곤두세워 출발 신호를 기다리듯이 긴장하며 먹고 있다.
무교병을 먹는 것도 죄가 없는 음식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누룩을 부풀릴 여유가 없었다. 고기를 구워 먹는 것도 시간을 단축하기 위함이다. 음식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않고 불사르라는 것은 이제 오늘 밤이 이스라엘에겐 애굽에서의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급히 떠나야 한다. 음식을 남겨 놓을 이유가 없다.
죄에서 벗어날 때, 여유를 부리며 서서히 느긋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죄악의 자리[애굽]에서 매우 신속하게 박차고 떠나야 한다. 경건에 긴장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