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육사 27기 동기회가 졸업한 지 52 주년이 되는 해이다. 매년 1월이 다가오면 기초군사 훈련을 받았던 가입교 시절이 떠오른다. 육사 기초군사훈련은 생도가 되기 위한 필수 과정으로 5주간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이 정식으로 사관생도가 될 수 있다. 그 당시 가입교한 생도는 260명이었으나 육사 입교식(1967.3.2)에는 256명이었다. 2019년 1월 20일(일) 생도 가입교(1967 1. 25) 52주년을 맞이하여 육사 27기 자전거 동호회는 기초군사훈련시 사용했던 막사와 생도시절에 단독및 완전군장으로 구보한 코스 그리고 동계 내한훈련(1968.1.18-1.20)시 행군 코스와 훈련지역을 답사한 후
생도교육의 요람인 육사 캠퍼스를 일주하기로 하였다. 이동코스는 청량리역에서 시작하여 당시 구보 코스였던 한독약품 중앙연구소, 구목동교, 서울공대(현 한국과학기술대학교)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제2초소까지 이동한 후에는 동계내한훈련시 행군코스를 따라 사능으로 가는 루트다. 청량리역은 1971년 4월 15일 소위 계급장을 달고 동기생 12명과 함께 더블백을 걸머지고 전곡역으로 향하던 추억이 깃든 역이었다. 그 당시 청량리역의 상징은 시계탑이었다. 그러나 역사를 포함한 주변 풍경이 많이 변하여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날 청량리역은 동부 서울의 교통 중심지로 중앙선, 영동 태백선의 종착역이고 수도권 전철 경의 중앙선및 경춘선 그리고 강릉선의 중간역으로 변모하였다. 청량리역에서 왕산로와 망우로를 타고 동일로로 접어들면 한독약품 중앙연구소가 나온다. 한독 약품중앙연구소 맞은편 한독약품이 있던 자리에 한신아파트가 대신 들어서 있었다. 한독약품은 구보시 마다 눈에 익은 상징적인 건물이었다. 이곳에서 약 2,5km정도 가면 구 묵동교가 나온다. 구 목동교는 1967년 9월 생도들이 트럭을 타고 국군의날 퍼레이드 예행연습 차 여의도광장으로 향하던 도중에
교량 난간에 부딪치면서 생도들이 먼저 낙하하고 뒤이어서 트럭이 묵동천으로 굴렀는데 다행이도 생도들을 덮치지 않아서 큰 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당시 묵동천 바닥은 모래톱이었기 때문이었다. 사고 당일 상황을 전인구가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약 2km 거리에 서울공대(현한국과학기술대학교)가 위치해 있다. 서울공대 정문은 구보 코스의 반환점 이었으며 교내 건물은 붉은 벽돌 이었으나 신축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서울공대(현 과학기술대학교) 후문을 지나 노원로로 진입하면 화랑대 사거리와 육사 정문에 도착하게 된다.
육사 정문 옆에 낭만과 추억이 깃든 화랑대역(폐역)이 있다. 화랑대역은 성동역에서 춘천역까지 연결된 옛 경춘선 노선 중 서울에 자리한 마지막 간이역이었다. 화랑대역은 1939년 7월 태릉역이라는 이름으로 개설되었으나 1958년 1월 육군사관학교의 별칭인 화랑대로 역명이 바뀌었다. 과거 육군사관학교 생도를 비롯한 군 병력을 이동시키는 역으로 평상시에도 휴가를 다녀오는 생도들이 주 이용객이었다. 2010년 폐역된 후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2017년 철도공원화 사업으로 화랑대 철도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화랑대역은 경춘선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2010년 12월12일 폐역이 되었다.
화랑대 폐역은 2018년에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전시관으로 리모델링해 화랑대역사관으로 재탄생했다. 역사관 밖 공원에는 400m 길이의 긴 부지에 다양한 열차들이 전시돼 있다. 이외에도 시계탑, 빨간 우체통 등 다양한 곳에서 추억을 남길 수 있다. 화랑대역은 철도공원으로 새롭게 변신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노원구의 명소로 자리매김하였다. 화랑대 정문 옆을 지나 제2초소(간성문)를 경유하여 경춘선 숲길을 따라 갈매역으로 향하였다. 갈매역에서 별내역, 퇴계원 사거리, 뱅이고개 삼거리, 비석거리, 사능천, 사능초교, 사능에 이르는 도로는 동계내한훈련시 행군코스이기도 하다.
육군사관학교에서 사능까지는 약 15km 이다. 동계내한훈련은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전 생도가 함께 참여하는 훈련이다. 행군시 육사 교장인 중장 김희덕(육사 2기) 장군이 지프차 대신 긴 장화를 신고 말을 타고 행군 대열과 함께 가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비석거리는 RP지점 이었으며 사능은 숙영지였다. 사능(思陵)은 단종의 비 정순왕후 능으로 단종을 생각하면서 한평생을 보냈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사능에 도착하니 52년 전 감회가 무척 깊었다. 그러나 사능을 제외한 나머지 풍경들이 많이 변하여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한파가 몰아친 추운 겨울 날씨에 야외에서 텐트를 치고 먹고 자면서 2박3일간 훈련을 하였다. 한마디로 동계작전시 추위를 극복하는 혹독한 훈련이다. 훈련과목은 주로 각개전투, 수색및 매복작전, 경계, 분소대공방훈련 등 이었다. 특히 분소대공방훈련장은 사능초등학교 뒷산이라 기억이 생생하다. 숙영지와 훈련지역을 일별하고 점심식사 장소인 생선구이 전문점 어촌으로 향하였다. 갈치조림에 고등어구이와 삼치구이로 맛있게 식사하면서 52년 전 생도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웃음꽃을 피우고 모교인 육군사관학교로 향하였다.
육군사관학교는 1951년 10월 진해에서 4년제 대학과정으로 육사 11기생도가 입교한 이후 1954년 6월에 태릉으로 이전하였으며 올해로 66년을 맞이한다. 사능천, 왕숙천, 불암천, 삼육대학교를 거치면 육군사관학교 제2초소(간성문)가 나온다. 오후 3시20분경 교내로 진입하고 우선 기초군사훈련(1967. 1.25-2.28)시 기거하였던 2층 콘크리트 건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육사 11기부터 18기까지 생도들의 세면, 목욕, 세척장 뿐만 아니라 후배들을 위한 정신훈련장으로서 이용되어 애환이 서린 유서깊은 태릉탕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태릉탕은 19기 이후 방치 매몰되었으나 1984년 11월 30일 복원하였다. 기초군사훈련시 기거하였던 2층 콘크리트 건물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대신 신축 건물로 병사들의 병영시설과 일부 참모부 시설로 활용하고 있었다. 교수부와 화랑대연병장 사열대를 지나 학교본부로 향했다. 학교본부는 화랑연병장과 불암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마치 국회의사당 건물을 꼭 빼어닮은 모습이었다. 학교본부 건물 앞에서 화랑대 연병장을 굽어보면서 생도시절을 상기하였다. 아침 8시에 질서정연하게 학과출장하는 모습, 매주 월요일 하기식 후 단독및 완전군장 구보,
토요일마다 화랑대 연병장에서 퍼레이드를 펼쳤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 그리고 1967년 기훈 분대장이었던 남재준 생도(25기, 전 육군참모총장)가 구정(2월9일) 새벽에 화랑 연병장을 바라보며 '사자는 사자새끼를 낳아서 낭떠러지에서 살아남은 새끼만 키운다'고 하면서 강한 사자를 키우기 위해서 상의을 탈의하고 빤스만 입은 채로 칼바람이 부는 눈이 소복히 쌓인 화랑연병장에서 낮은 포복, 높은 포복으로 혹독한 얼차려 교육을 받았던 추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학교 본부 앞 화랑대 연병장 위에서 바라본 북한산, 도봉산, 불암산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학교본부에서 생도대로 가는 길에 육사박물관이 위용을 뽐낸다. 육사박물관은 육사 27기가 졸업한지 12년 만인 1983년에 준공하여 1985년에 개관하였다. 교훈탑은 육사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탑으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웅장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기존의 지인용(智仁勇) 교훈탑은 교수부로 이전하고 현재의 지인용 교훈탑은 졸업생 성금으로 1986년 준공했다. 탑 높이는 64m로 육사를 상징하고 있다. 생도시절에 지인용 교훈탑의 내막을 잘 몰랐지만 이번 방문 기회을 통하여 새롭게 알았다. 지인용 탑은 육사 11기 졸업 기념물로 1955년 9월30일에 건립하였으며 이 탑의 휘호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로 음각하였다.
화랑연병장 정문 옆을 지나면 생도대가 나온다. 생도대는 생도들이 4년간 동거동락하는 숙소이다. 생도대를 보는 순간 만감이 교차하였다. 4년 동안 동기생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내무반으로 추억이 켜켜이 쌓인 영혼이 깃든 보금자리였다. 그리고 훌륭한 호국 간성의 자질을 육성하기 위하여 학문을 배우고 익히면서 군사지식을 겸비한 최고의 엘리뜨로 성장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만나는 생도마다 반갑고 정겨웠다. 52년 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으며 마치 생도시절로 뒤돌아간 기분이었다. 생도회관은 내무반과 떨어진 면회장소였다.
그리고 생도들은 일과 후부터 저녁 8시까지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었다. 생도회관은 그 당시와는 다르지만 생도회관을 볼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 어머니가 1967년 매주 토, 일요일에 면회 왔기 때문이다. 그 당시 1학년 생도는 외출, 외박이 금지되어 있었다. 생도회관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파리바케트가 있었으며 생도들이 테이블 주위에 끼리끼리 모여 앉아서 빵과 커피를 식음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생도들이 붐비지 않았다. 생도들 대부분 외출, 외박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2층에 올라온 이유는1967년 기초군사훈련시 배고픔의 상징이었던 추억의 빵을 먹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파리바케트에는 곰보빵 한 개만 달랑 놓여있었다. 판매원은 생도들이 곰보빵을 무척 선호한다고 한다. 52년 전이나 지금이나 곰보빵은 세대 차이를 넘어 누구나 좋아하는 빵이었다. 곰보빵을 모처럼 오래간만에 먹으니 맛이 일품이었다. 그리고 포켓샌드땅콩도 곁들여서 먹었다. 옆 자리에 있던 4학년 여 생도와 3학년 기훈 소대장과 함께 자리를 하였다. 전인구는 52년 전 기초군사훈련부터 생도생활에 대한 경험담을 구수한 입담으로 들려주었다. 생도들은 선배들의 경험담에 귀기울이며 흥미있게 경청하였다. 선배 생도로서 생도들에게 육사인의 자긍심을 심어주고 기훈교육대로 향했다.
기훈교육대는 과거 11,12중대 막사를 이용하고 있었으며 가입교한 신입 생도(79기)들이 1월 21일부터 5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있었다. 화랑 후예의 기상을 닦는 국방의 요람지로서 새로운 면모로 발전하고 있는 육군사관학교의 모습을 보니 감개무량하고 가슴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정든 모교를 떠나 태릉입구역에서 각산진비 하였다. 무락카를 힘차게 외쳐본다. 육사인들은 단결과 승리의 기쁨을 표현할 때 무락카를 제창해 왔다. 무락 Veni Vidi Vici(육사여!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억센 MA Vital Vigo(억세고 강한 육사여! 힘차고 용맹하게 달려가서),
카슈카라 Lebe 사자 호랑나(묵사발을 만들어라! 그러나 사자나 호랑이처럼 항복하는 자는 너그럽게 살려주겠노라, 카레스 카레스 육사 육사!(나의 사랑 육사여! 나의 사랑 육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