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존 켈리 중장
우리는 때때로 미국을 욕하고 비난한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보다 여러 면에서 훨씬 더 건강하고 공정하며 민주적이다.
미국 해병대에 '존 켈리' 중장이 있다.
그는 '쓰리 스타' 장군이었다.
미국 제1 해병 원정군 '사령관'을 지냈으며 지금도 현역으로 근무하고 있는 뛰어난 인물이다.
그의 아들 '로버트 켈리'(29) 중위도 미 해병대에서 복무했다.
그런데 금년 가을 '아프간 전쟁'에서 폭탄 공격을 받았고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
'로버트'는 지난 9년 간 미국이 벌였던 '이라크, 아프간 전쟁'에서 전사한 유일한 '장군의 아들'이었다.
기자가 장군에게 아들의 죽음에 대해 애도를 표했다.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내 아들이 '장군의 아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취급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여전히 적과 마주하고 있는, 그러면서 위험한 사선을 넘나드는 '켈리 중위'의 '소대원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
또한 '로버트'의 형도 역시 해병대 대위로서 '이라크전'에 두 차례 참전했었다.
현재는 남부 캘리포니아의 해병대 기지에서 아프간 참전 군인들의 훈련을 담당, 지원하고 있다.
장군은 각계각층에서 애도의 이메일과 전화가 쏟아질 때마다 가족을 대신해 감사의 뜻을 표하고,
아들이 전사함으로 인해 소대장을 잃은 소대원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많은 기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가슴이 울컥거렸다.
북한의 무자비한 연평도 포격도발로 인해 우리의 해병대 병사 2명과 민간인 2명이 숨졌다.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지 전방위적으로 보복응사를 하지 못했다.
'확전방지' 운운하면서 K9 자주포로 겨우 시늉만 냈을 뿐이다.
한심했다.
"아! 어쩌다가 대한민국 국군이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그러나 힘없는 병사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우리의 현실을 생각할 때마다 큰 무력감이 엄습한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도, 내각을 통괄하는 국무총리도, 집권여당의 대표조차도, 그리고 여러 명의 고위직 위정자들도,
군대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지금 열거한 자들 모두가 하나 같이 군 '미필자들'이다.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런 자들이 청와대와 고위직에 앉아서 군대와 안보를 논하고 있으니 애통하고 한심해 삐질삐질 눈물이 난다.
부끄러움과 자괴감에 내 뼈마디가 아프다.
해병대가 지난 수십 년 간 요구했던 무기 현대화와 장비개선에는 큰 관심을 두지않았으면서, 무슨 일만 터지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난리법석을 떨며 허둥지둥이다.
가관이다.
오죽했으면 국민들이 '국방부'를 '육방부'라고 비아냥거리겠는가?
자주포 몇 문과 90년대 이후 육군에서 쓰다 버린 장비와 무기로 서해 5도를 지키고 있는 해병대.
말로 다 표현할 수도 없는 그런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순결한 충성심과 뜨거운 용맹함으로 대한민국 최전방을 묵묵하게 사수해 왔다.
해병대 선,후배 장병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진심어린 감사를 전하고 싶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말로 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흔들림 없는 철학과 변치 않는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다.
돈 있고, 빽 있으면 군대도 안 보내는 현실에서, 설사 군대에 갔어도 후방의 PX나 편안한 보직에서 세월을 때우기만 하는
우리의 현실이 마냥 슬프고 안타깝기 그지 없다.
언제쯤 우리는 '존 켈리' 중장 같이 성숙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위국충정과 나라사랑을 경험해 볼 수 있을까?
오늘도 여의도와 청와대에선 공허한 메아리들만 사정없이 뿜어져 나온다.
말의 성찬이다.
마치 매케한 매연 같다.
이래 저래 각종 공해로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이다.
그러나 위정자들이 토해내는 진정성 없는 말의 공해들이 그 중에서도 가장 역겹다.
제발 부탁드리건대, 메아리만 요란한 나라사랑을 그 잘난 입으로 더 이상 논하지 말기 바란다.
서해바다와 연평도에서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젊은 넋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싶다.
부디 고이 잠드소서!!
"필승"
2. 참척
부모님이 작고하시면 우리는 하늘이 무너졌다고 한다.
그래서 천붕(天崩)이다.
대신 자식이 먼저 세상을 뜨면 그 귀한 새끼를, 부모는 평생 동안 자신의 가슴에 묻은 채 산다.
그래서 참척(慘慽)이다.
참혹한 아픔이자 가슴을 에는 근심이며 씻을 수 없는 형벌이다.
그래서 '천붕'보다 '참척'이 훨씬 더 비참하고 견디기 힘든 아픔이다.
'천붕'과 '참척'은 비슷한 수준의 슬쁨이나 고통이 아닌 것이다.
요 근자에 '참척'의 눈물을 자주 보게 된다.
천안함 사건 때에도,
연평도 도발 때에도,
모두 군대와 관련하여 참척의 애끓는 절규가 잦았다.
사랑하는 조카를 비롯한 많은 젊은이들이 군에 입대했다.
곧 이어 내 아들도 군대에 갈 나이다.
싱그럽고 예쁜 나이.
못 다 핀 꽃망울들이 속절없이 스러지고 산화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억장이 무너진다.
그러니 '참척'을 당한 부모의 가슴이야 오죽하겠는가.
'단장의 아픔'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애절한 슬픔 속에서도 우리는 다시 한번 대한한국의 희망을 본다.
연평도 포격사건이 터진 뒤로 첫번째 해병대 모집공고가 나갔을 때 구름같은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접수가 다 끝난 것도 아닌데 힘들고 악날하기로 유명한 '해병대 특수 수색대'는 벌써 5.6 대 1의 결쟁률을 보였단다.
놀랍고 듬직했다.
내가 해병대 출신이기에 침소봉대하려는 건 아니다.
이번 사태로 쑥대밭이 되었던 '연평도'가 바로 해병대의 주둔지이기 때문에 이 글을 쓴다.
위험한 최전방이다.
그걸 잘 알면서도 뜨거운 가슴으로 지원자 대열에 동참해 준 대한만국의 청춘들이 정말로 자랑스럽다.
한국전쟁 후에 전국이 폐허가 됐던 우리 나라를 이처럼 짧은 시간 안에 세계 7대 교역국으로 성장시킨 그 놀라운 저력이 바로 한국인들의 '불굴의 정신'이었다.
어려움 앞에서 더욱 용기백배하여 전진하는 한국인들 특유의 진취적인 기상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많은 아픔과 상처들이 치유되지 못한 채 앙금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골수를 헤집고 찌르는 참척의 슬픔이 어찌 쉽사리 잊혀지겠는가.
그러나 언젠가,
우리는 통일된 조국을 환희의 눈물로 맞을 것이다.
반드시 그런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이 아름다운 대지에 서서 목놓아 우는 날이 꼭 올 것이다.
글을 쓰는 이 아침에,
'이육사 선생님'의 '광야'를 다시 한번 내 가슴속으로 읊조려 보고 싶다.
< 광 야 >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참아 이 곳을 범하던 못 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여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 육 사 -
반만 년 역사 속에 외부의 공격과 압제는 숱하게 있었지만 끝내 그 어느 누구도 범하지 못했던 자랑스런 우리 조국이다.
도도한 세월의 흐름 속에서 천붕의 아픔은 어쩔 수 없겠지만,
더 이상 육신과 영혼을 에는 '참척의 눈물'이 우리 강토에 뿌려지지 않기를 진심어린 마음으로 기도하는 아침이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문을 박차고 들어가는 듬직한 대한의 젊은이들.
그들의 앞길에 신의 가호가 언제나 충만하기를 간구한다.
사랑한다.
그리고 고맙다.
2010년 12월 3일.
아침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