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는 내가 오늘 사용할 비전이다.
1.
나는 매일, 매 시간, 매 순간, 바라보고자 원하는 것, 듣고자 원하는 소리, 내 자신에 대한 진리이기를 원하는 증거를 선택한다.
오늘은 그리스도가 내가 보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보고 신의 참음성을 들으며, 신의 창조 안에서 진리인 것에 대한 증거를 구하기로 선택한다.
그리스도의 눈으로 볼 때 세상과 신의 창조가 만나며, 그 둘이 함께 만남으로써 모든 지각이 사라진다.
그리스도의 친절한 눈은 죽음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보는 것은 살아있을 수밖에 없고, 성부와 아들을 기억하며 창조주와 창조가 통합되기 때문이다.
2.
아버지, 그리스도의 비전은 당신께 이르는 길입니다.
그리스도가 보는 것은 제게 당신의 기억을 회복시킵니다.
제가 오늘 바라보려는 것이 바로 이것이도록 선택합니다.
...
[예수의 추가 설명]
“예수”는 물론 사람의 이름이었고, 그리스도의 시각(Christ’s vision)은 그 생애를 살면서 내가 오랫동안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의식(意識)을 깨어난 존재로 변형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만의 정체가 아니다.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인 존재들로서 그 정체를 잊었을 뿐이다.
그대의 본성은 사랑이다.
그대의 본성은 친절이다.
그대의 본성은 창조성과 확장인데, 그대는 잊었을 뿐이다.
빛나는 마음의 거울 위에, 아무런 잘못없이 의식적으로 흙먼지를 겹겹이 쌓았을 뿐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대의 마음 안에 무엇을 허용할 것인지, 지금부터 그대의 마음에 무엇을 더할 것인지를 결정할 때이다.
그러므로 두렵거나 두려움을 일으키는, 또는 살인하거나 죽음에 초점을 두는 자료나 정보를 보거나 읽을 때, 그대는 깨어나는 과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용서를 실천할 때, 그대의 삶을 신성한 마음의 사랑하는 표현으로서 볼 때, 그 깨어나는 과정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매일 매순간 어디를 향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대의 자유의지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데 미치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습관이 있다면, 더이상 행하지 않는 그대 자신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그대는 한동안 그 행동을 계속 할지도 모르지만, 행동을 바꾸기 전에 그 행동을 가져오는 생각을 바꿔야 함을 이해하기 바란다.
그대가 행동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그 행동을 가져오는 생각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진동이 낮은 무언가를 하고 있음을 안다면, 이제는 진동이 낮은 것을 행하지 않고 다른 것을 하는 자신을 떠올려 보라.
한동안 그렇게 하라.
여기서 한동안이란 일주일 정도를 의미한다.
마음의 변형을 강화하는 수단으로서, 그 행동을 줄이기 시작하라.
이전의 건강하지 못한 행동을 대체하는, 새로운 행동을 떠올리기를 계속하라.
완전한 형식 안에서의 그대가 원하는 삶을 떠올리면서, 그 삶이 기적수업의 용서 실천과 결합하여 작동함을 이해하라.
그대는 그대의 창조적인 자유의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그대가 경험하고자 원하는 세상과 삶을 디자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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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의 설명]
워크북은 다시 한 번 우리로 하여금, 우리는 우리가 보기를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본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합니다.
오늘 레슨은, 우리에게 이런 과정이 끊임없이 계속 되고 있다고 말해 줍니다.
“매일, 매 시간, 매 순간, 나는 보고자 원하는 것을, 듣고자 원하는 소리들을, 내게 진리가 되기를 바라는 것에 대한 증인들을 선택하고 있다.”
이 문장의 뒷부분은 우리가 그런 선택을 하는 이유를 알려주므로 중요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우리 자신에 대한 진리를 보기를 선택합니다.
예를 들어 만약 내가 계속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면, 그 이유는 내 안의 어떤 부분이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는 의식적으로는 누구라도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희생자를 볼 때마다 나는 비밀스럽게 나의 잘못에 대해 다른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레슨의 요점은 우리의 부정적인 선택에 있지 않습니다.
요점은 선택, 즉 대안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에고에게 귀 기울인다면, 나는 죄, 죄책감, 두려움, 그리고 죽음을 보겠다는 선택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에게 귀 기울인다면, 나는 뭔가 다른 것이 나에 대한 진리이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에서 뭔가 다른 것을 보기를 원할 것이며, 그러므로 그것을 볼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것을 보는 것이, 바로 그것이 나 자신에 대한 진리임을 알게 되는 방법입니다.
죄의 증인들을 보기를 원하는 대신에, 나는 진리의 증인들을 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구하는 것을 발견하고야 말 것입니다.
나의 지각이 점점 더 그리스도의 비전과 통합되어가면서, 나는 지각이 완전히 사라지는 지점에 다가갑니다.
변화된 지각은 나에게 기적수업이 실재세상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고 지각이 사라진다는 것은, 세상의 종말과 우리가 천국으로 깨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보기를 원하나요?
내가 나를 사랑으로 보기를 원한다면, 나는 오늘 형제들 안에서 사랑을 보고자 할 것입니다.
내가 나를 결백하다고 보기를 원한다면, 나는 다른 이들 안에서 결백함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
내가 나에게 죄가 없다고 보고자 한다면, 나는 다른 이들 안에 죄가 없다고 보고자 합니다.
오늘 나는 아래의 구절을 기억하겠습니다:
"네가 누구를 만나든 그것은 거룩한 만남임을 기억하라.
너는 그를 보는 대로, 너 자신을 볼 것이다.
너는 그를 대하는 대로, 너 자신을 대할 것이다.
너는 그에 대해 생각하는 대로, 너 자신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네가 빛 속에서 보는 모든 이가, 너의 빛을 너 자신의 알아차림에 더욱 가까이 가져다준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는 네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 이라고 가르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