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잠 / 박미숙
출근 준비하면서 항상 시비에스(CBS) 레인보우(Rainbow) 앱(Application)을 켜 놓는다. 며칠 전, 정민아 아나운서의 해설로 ‘평범한 기적(Ordinary Miracle)’을 듣게 되었다. ‘샬롯의 거미줄’ 영화에 나오는 음악이다. ‘오늘은 또 다른 일상의 기적’(It’s just another ordinary miracle today)이란 노랫말이 가슴에 팍 와닿은 것은 이번 글쓰기 주제인 ‘천국의 맛’에 대하여 계속 생각 중이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큰딸은 대학교 때부터 비폭력 대화 연수를 들으며 학생들 생활 지도를 잘해 보려고 준비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성질대로 감정을 표출하는 데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잘 먹히지 않았다. 이론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며, 교사로서 권위가 서지 않아 매우 힘들어했다. 단호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가지는 교사가 되기 어렵다고 했다.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힘들어했다. 행동 하나하나를 상점과 벌점을 매겨 생활 지도를 하는 동 학년 분위기에 쉽게 동화되지 못했다. 너무 소란스러워 옆 반 선생님이 자기 반에 와서 아이들을 꾸중하면 마치 본인이 혼나는 것 같다고 했다. 과다한 업무 처리, 교재 연구 등으로 깜깜한 밤중에 퇴근하는 것이 다반사고 토요일에 출근하는 날도 많았다.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니 밤에 잠도 설쳐 늘 피곤해 했다.
작년 11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토할 것 같다고 전화가 왔다. 뇌출혈 증세와 비슷하여 “얼른 119를 불러 병원에 가라.” 하고 나도, 작은딸도 바로 부산으로 쫓아갔다. 빈혈이 너무 심하여 나타난 증상이었다. 달걀과 우유도 먹지 않는 비건(Vegan)인데,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않아 빈혈 수치가 입원 치료해야 할 정도로 바닥이었다.
자기 집에서는 거리의 불빛과 소음 때문에 제대로 자지 못하겠다고, 학교에서 5분 거리의 방을 두고 한 시간 30분 걸리는 이모 집에서 다니기도 했다. 퇴근 후 전화 목소리만 들으면 그날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딸의 감정 상태에 따라 내 마음도 왔다 갔다 했다. 드센 아이들을 감당하지 못해 울면서 “출근하는 것이 무섭다.”라고 할 때는 참 난감했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다. 대학을 보내면 뒷바라지가 끝인 줄 알았는데, 취업까지 하고 나면 내 손이 안 가도 될 줄 알았는데, 큰딸은 끝없이 신경을 써야 했다. “건강이 우선이니 학교를 좀 쉬어라.”라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올해까지만 가보고 정 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겠다.”라고 했다.
걱정과는 달리 교직 3년 차인 올해는 훨씬 잘 지낸다. 정신적으로 많이 단단해지고 육체적으로도 더 건강해지니 어려운 일도 헤쳐 나가는 힘이 생긴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사했다. 방을 옮기고 나니 잠이 잘 온다고 한다. 푹 자고 나니 머리도 맑고 몸도 가뿐하다고, 본인이 이렇게 좋은 곳에서 잘 지내는 것이 모두 엄마 덕분이라며 “고맙다.”라는 말을 수시로 한다. 방 때문만은 아니고 마음이 많이 가벼워져서이리라. 전화 목소리도 한결 밝다. 요즘은 오히려 “엄마 반 개구쟁이들 때문에 힘들어서 어쩌냐?”라고 나를 위로해 준다. 이제 한시름 놓아도 되겠다.
큰딸이 잘 지내니 우리 가족 모두 편안하다. 큰일을 겪어봤기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안다. 이 평범한 하루하루가 바로 천국인 게다.
오늘 아침에도 라디오를 들었다. 일곱 시 시보를 알리면서 나오는 광고에 “잠을 잘 자면 삶이 달라집니다”라고 한다. 딱 맞는 말이다. 누가 생각했는지 문구 한번 참 잘 만들었다.
첫댓글 해피엔딩이라 아침이 더 행복하네요.
네~ 연휴랑 딸들이 와서 함께 지내는 중인데 계속 happy입니다.
와, 정말 다행이예요. 평범한 하루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네요. 저는 하루 종일 잠이 와서 걱정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미인이신가 봅니다.
맛습니다. 평범한 지금이 가장 천국입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직 새내기 선생님인 따님에겐 엄마 선생님이 멘토시겠네요.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이 눈에 보이듯 선생님들이 성장하는 모습도 대견할 때가 많지요? 저는 초년병 선생일 때 부모님 들일 따라가서 시시콜콜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은 무조건 저를 칭찬하셨구요. 잘 적응해가는 따님께 폭풍 칭찬 선물하세요.하하
정성스러운 댓글 감사합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폭풍 칭찬하겠습니다.
글을 읽으며 걱정이 앞섰네요.
잘 이겨냈으니 다행입니다.
'샬롯의 거미줄' 동화책은 읽었지만 영화는 보지 못했네요.
저도 영화는 보지 못하고 이 음악만 들었답니다. 기회 되면 영화를 보면서 음악을 들어 보려구요.
마음 아파하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좋은 교사가 되려고 미리 준비하고 노력하는 따님이 훌륭합니다.
이제 훨씬 잘 지낸다니 다행입니다.
그래요 평범한 하루가 천국인 것 같아요.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더 깊어지네요.
엄마자 선배인 선생님이 계셔서 참 다행이네요.
저도 평범한 일상이 천국이라 생각한답니다. 잘 읽었습니다.
힘든 고비를 잘 넘겨서 다행입니다. 앞으로 선생님도 따님도 평안했으면 좋겠네요...
엄마가 현명하니 따님도 닮았군요.
같은 길을 걷는 엄마가 계셔서 딸이 훨씬 든든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