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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6. 3 주일 낮 예배(교회 설립 기념 주일)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II
여호수아 1장 1-9절(382장 허락하신 새 땅에)
오늘은 우리가 이곳에서 설립 예배를 드린 지 2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행사를 하지는 않지만 ‘교회 설립 기념 주일’로 지키려고 합니다. 오늘 전할 말씀은, 두 주 전에 설교했던 본문의 나머지 부분입니다. 원래 설립 기념 주일에 전하려던 내용이 따로 있었지만, 오늘 본문 역시 지금 우리 교회와 성도가 들어야 하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말씀을 나눕니다.
두 주 전에 한 설교이기는 하지만 오늘 살펴볼 말씀이 그 내용과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간단하게 1-4절까지의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한 후에 5-9절 말씀을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모세가 죽은 직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지는 장면입니다. 저는 지난번에 1-4절에서 모세를 대신해서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운 것이 얼마나 큰 모험이었는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5-9절에서는 그렇게 해서 지도자로 세워진 여호수아가 어떻게 지도자로서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감당할 수 있었는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우시고 사명을 주심(1-4v)
1) 시종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됨(1v)
여호수아가 모세의 시종이라는 말은 그가 모세의 보좌관, 또는 부관(副官)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의 2인자로 지내왔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자가 되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떨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여러 번 그를 향해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갈렙이 여호수아보다 더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갖춘 것으로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굳이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2) 모세와 여호수아(2v)
그것은 모세가 율법을 대표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가나안으로 인도해 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대표하는 자요 예수님의 모형인 여호수아만이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해 들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출애굽 1세대와 아론, 모세가 다 죽은 후에 드디어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워 가나안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죽을 상황이 아닌데도 죽게 하시고, 그가 죽자 드디어 가나안 입성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3)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주심(3-4v)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주겠다고 하시며 주실 땅의 경계를 제시해 주십니다. ‘발바닥’은 ‘순종’을 의미합니다. 순종할 때에 약속하신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상징인 것입니다. 또한 실제로 이스라엘이 이 땅의 모두 차지한 적이 없었다는 것 역시 순종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보다 연약해 보이는 여호수아를 세우시고, 율법보다 영향력이 약해 보이는 복음을 가지고 역사하시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모험이었고, 우리에게 참된 순종의 모험을 시작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2. 여호수아의 성공의 비밀(5-9v)
그래서 저는 본문의 두 번째 부분을 통해서 여호수아는 어떻게 이러한 순종의 모험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었는지를 말씀드리고, 우리도 우리 교회와 우리 개개인에게 요구하시는 순종의 명령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지를 함께 상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모두 2가지의 비결이 나와 있는데, 시간이 되면 한 가지를 더 덧붙여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동행하심(5-6, 9v)
첫 번째 비결은 5절과 6절, 그리고 9절에 나와 있습니다. “(5)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6)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9)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동행’입니다. 여호수아의 성공은 하나님께서 그와 동행하신 것에서 기인합니다. 이제 이 부분을 좀 구분해서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첫째로 살펴볼 것은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계속 반복되는데,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만큼 여호수아가 두려워하고 떨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난번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가 그렇게 되기를 요구하시는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a. ‘강하게’라는 말은 ‘달라붙다, 압도하다, 용기를 북돋우다, 견고하게 되다’라는 뜻입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는 말은 여호수아의 마음을 하나님께 착 달라붙게 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에 압도되어 다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얻어 견고하게 되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온통 하나님께 착 달라붙어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에 압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얻어서 견고한 상태가 되어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하자크’(qz"j;)는 원래 ‘달라붙다, 잡다, 강하다, 용기 있는, 강하게 하다, 치료하다, 돕다, 수선하다, 강화하다, 완고한, 묶다, 제지하다, 정복하다, 돕다, 수선하다, 쪼개다, 확인하다, 지속하다, 강제하다, 꾸준하다’라는 뜻이며, ‘강하게 하다, 압도하다, 굳히다, 강하다, 강하게 되다, 용기를 북돋우다, 견고하다, 견고하게 되다, 단호하다, 아프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b. ‘담대히’라는 말은 ‘방심하지 않다, 확고하다, 용기 있다, 외치다, 요새화 하다, 단단하다’*라는 뜻입니다. ‘마음을 담대히 하라’는 말은 방심하지 말고, 확고한 태도를 취하여 용기 있게 외치며, 자신이 서 있는 자리와 요새처럼 단단하게 만들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용기를 얻었을지라도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확고하게, 그리고 용기 있게 하나님을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그 자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요새처럼 단단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 ‘아마츠’($m'a;)는 원래 ‘방심하지 않다, 확증하다, 용기 있다, 용기 있는, 확고한 마음의, 강한, 더 강한, 확립하다, 요새화하다, 딱딱하게 하다, 증가시키다, 이기다, 강하게 하다, 강해지다, 완강하게 하다, 서두르다’라는 뜻이며, ‘강하다, 주의하다, 용기 있다, 용감하다, 외치다. 강하다, 딱딱하다, 단단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② 그러면 여호수아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동행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여호수아와 함께 하실 것이고(5b) 그를 떠나거나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며(5c) 그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실 것입니다(9b).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라는 말씀만이 아니라 함께 하겠다는 말씀도 여러 차례 반복하십니다.
a.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의 동행을 모세와의 동행과 비교해서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확실히 여호수아의 용기를 북돋아주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지금까지 모세를 보좌해 오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모세와 동행해 오셨는지를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모세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만 하신다면 자신도 모세처럼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모세와 함께 하시고 여호수아와 함께 하신 것처럼 우리와도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하고 확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b. 하나님께서는 또한 여호수아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약속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가 사역하는 동안 한 번도 여호수아를 떠나지도 않으셨고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어리석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거나 떠나신 것처럼 느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약속하신 것이기에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실 것임을 확신하셔도 됩니다!
c.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가 하는 일을 함께 하십니다. 얼마나 대단한 동행자이십니까!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뒤집어 보면 두려운 말씀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반대하는 자리로 가거나 범죄하러 갈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고자 주의해야 합니다.
③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동행의 결과로 여호수아의 평생에 그를 능히 당할 자가 없을 것과 그의 조상에게 약속되었던 그 땅을 얻게 하실 것이라는 두 가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a. 여기에 너를 능히 ‘당할’ 자가 없다는 말은 아무도 네 앞에 ‘(나)설’*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듯이 아무도 여호수아를 대적하고자 나설 수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비록 지금은 두려워하며 떨고 있는 여호수아이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면 아무도 여호수아를 두렵게 할 수 없으며, 아무도 여호수아를 대적하겠다고 나서지조차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동행이 가져오는 위력입니다!
* ‘야차브’(bx'y:)는 원래 ‘(고정시키기 위해 어떤 것을) 놓다, 배치하다, 제공하다, 계속하다, 나타나다, 남아있는, 머무르다, 서다(설 수 있다, 가만히 서다, 견디다, 일어서다)’라는 뜻이며 ‘놓다, 세우다, 서다, 나가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b. 6절의 말씀은 조금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이 백성,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겠다고 맹세하시는 땅을 얻게 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여호수아입니다! 하지만 그 일을 하는 것은 여호수아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동행하시기에 나타나게 될 결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로 하여금 그 일을 하도록 만들어 주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내용을 보면서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고사성어가 떠올랐습니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업고 거짓 위세를 부린다는 말입니다. 여우는 여호수아이고 호랑이는 하나님인 듯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므로 여호수아는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너끈히 완수하게 됩니다. 그것은 여호수아가 잘나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세와 역사 덕분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우와 같은 여호수아를 진짜 호랑이처럼 만들어주신다는 점이 ‘호가호위’와는 다른 점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다보면 우리는 진짜 하나님을 닮은 존재가 되어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율법을 지켜 행해야 함(7-8v)
두 번째 비결은 7-8절에 나옵니다. “(7)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8)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이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순종할 때에야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부분도 구분을 해서 살펴봅니다.
① 첫째로 이 부분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율법을 다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당시에는 모세가 기록한 모세 오경밖에 없었기에 ‘율법’이라고 부르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전체, 즉 성경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a.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을 특별히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율법이 모세를 통해서 주어졌다는 뜻이지만, 특별한 의미에서는 모세가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면서 특별히 지시한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에 일반적으로 듣고 행해야 할 내용이 있는가 하면, ‘이것은 특별히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다’라고 생각하고 순종해야 할 내용도 있습니다. 그런 말씀들을 다 지켜 행할 수 있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 꼭 순종해야 할 내용을 지시하시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알아들었으면서도 모른 체하는 일이 없도록, 또는 순종하되 내가 원하는 것들만 행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b.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대한 순종과 관련하여 특별히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치우치지’라고 번역된 단어는 ‘벗어나다, 빗나가다, 거부하다, 폐지하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조금 전에 지적한 것처럼 말씀을 들었지만 그것을 거부하거나 불순종하는 것, 또는 순종한다고 하지만 올바르지 않는 방향이나 방식으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철저해야 합니다. 내 방식대로 하거나, 내 생각을 우선시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해석도 잘해야 하지만, 순종도 잘해야 합니다. 마치 사울이 아말렉에 대한 명령을 어기면서도 순종했다고 말한 것처럼, 순종한다고 하면서 내 뜻대로 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 ‘수르’(rWs)는 원래 ‘쫓아 버리다, 데려오다, 다시 부르다, 기울다, 떠나다, 피하다, ~을 하지 않고 두다, 떼어두다, 지나가다, 잡아 찢다, 두다(치우다, 내려놓다), 반역하다, 제거하다, 취하다’라는 뜻이며, ‘벗어나다, 빗나가다, 방향을 바꾸어 들어가다, 피하다, 끝내가다, 치우다, 물러나게 하다, 거부하다, 폐지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c. 말씀에 대한 순종에서 몇 차례 강조되는 것은 우리가 그 말씀을 ‘다’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말씀에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선별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이것은 해야 하고 저것은 하지 말아야 하고... 하면서 임의로 순종하거나 불순종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대할 때에 순종하도록 명령 받았다면 다 지켜야 합니다. 철저하게 지켜야 합니다. 더하지도 빼지도 말아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문자 그대로’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만(이것은 보다 더 철저하게 살펴야 하는 주제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냥 넘어갑니다)... 순수하고 철저하게 순종하고자 해야 하는 것입니다.
② 둘째로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다 지켜 행하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a. 하나는 “이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보통은 ‘암송’을 가리킨다고 보지만, 꼭 암송만을 말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은 늘 말씀을 가까이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읽든지, 듣든지, 공부를 하든지, 큐티를 하든지, 또는 암송을 하든지 늘 말씀을 가까이 하라는 말입니다. 성경책을 늘 소지하고 다니라는 의미도 되지만, 그냥 가지고 다니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반가운 편지를 받았다면 가지고 다니면서 보고 또 보고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늘 곁에 두고서 보고 또 보고 하라는 말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b. 하지만 그것에서 그치면 안 되고 그 다음 단계로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라는 것이 따라붙습니다. 밤이든 낮이든 그 말씀을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묵상한다는 것은 되새긴다는 말입니다. 말씀의 의미 가운데로 깊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살피라는 말입니다. 필요하다면 연구도 하고, 중얼거리기도 하고, 상상도 하면서, 속삭이거나 고함을 치기도 하면서 말씀의 의미 가운데 깊이 들어가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내가 무엇을 순종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묵상은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과 순종하는 중간에 위치합니다. 우리는 묵상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묵상이라고 번역된 ‘하가’(hg:h;)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원래는 ‘중얼거리다(기쁘거나 화 남으로), 신중히 생각하다, 상상하다, 묵상하다, 근심하다, 속삭이다, 고함치다, 말하다, 연구하다, 이야기하다, 감명하다’라는 뜻이며, ‘신음소리를 내다, 으르렁거리다, 소리를 지르다, 숙고하다, 중얼거리다, 묵상하다, 고안하다, 계획하다, 말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묵상은 소리를 내어 중얼거리거나 또는 소리를 내지 않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숙고하며 상상하는 것, 또는 연구하는 것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③ 이렇게 말씀에 순종할 때에 오게 되는 결과가 있습니다.
a. 첫째는 ‘형통’입니다. 이것은 ‘신중하다, 지혜롭게 이해하다, 번창하다, 성공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때에 우리는 지혜를 얻어 신중하게 행동하므로 성공하고 번창할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디로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에게 성공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 ‘사칼’(lk'c;)은 원래 ‘신중하다, 이지적이다, 숙고하다, 능숙하다, 지시하다, 번창하다, 성공하다, 가르치다, 이해하다, 현명하게 행동하다’라는 뜻이며, ‘신중하다, 용의주도하다, 지혜롭게 이해하다, 번영하다, 안목을 가지다, 숙고하다, 십자형으로 놓다, (손을) 교차시키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b. 둘째는 ‘평탄’입니다. 이것은 ‘돌진하다, 전진하다, 번성하다, 성공하다’*라는 뜻입니다. 본문 8절은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야 할 앞길이 돌진하고 전진할 수 있도록 잘 닦여져 있게 됨을 의미합니다. 번영과 성공을 향한 길이 활짝 열렸다는 뜻입니다.
* ‘차라흐’(jl'x;)는 원래 ‘(앞으로) 돌진하다, 돌발하다, (세차게) 오다, ~을 건너가다, 좋다, 적당하다, 유익하다, 번영하다’라는 뜻이며, ‘1)돌진하다 2)전진하다, 번성하다, 진행시키다, 성공하다, 이롭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시간이 많이 가서 하나 더 덧붙이려던 내용은 간단하게 소개만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그것은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의 경우에는 ‘성령님’에 대한 별다른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직접 여호수아를 상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 부분을 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좀 더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호수아의 성공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밀은 무엇입니까? 본문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가르칩니다. 하나는 ‘하나님과의 동행’이요, 다른 하나는 ‘말씀에의 순종’입니다. 우리가 이 두 가지에 철저할 때에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물론 ‘성공’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도 다시금 생각해야 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간단하게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성공’입니다. 여호수아의 경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들이는 것이 그의 ‘성공’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 삶의 ‘성공’을 돈 많이 벌고 승진하는 방향으로만 생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적으로는 어떨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완수했느냐에 기준을 두어야 바르게 ‘성공’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머무는 동안 완수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모세에게는 모세의 사명이 있고 여호수아에게는 여호수아의 사명이 있듯이, 우리 교회에는 우리 교회의 사명이 있고 우리 성도에게는 성도의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개개인이 완수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완수해야 비로소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저는 설교 시작에서 ‘순종의 모험’이라고 표현했습니다만...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함으로써만 이 사명을 완수하고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 헌신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