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한 궁금증 /
윤영
방충망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 알갱이도 헤아릴
수 있는 공식이 있을까.
싱싱하던 팔손이 큰
잎은 누가 부러뜨렸을까.
문주란은
5년이 넘었건만 도대체 꽃을 피우지 않는
원인은 뭘까.
마삭줄 화분에
더부살이하는 코딱지꽃은 어디서 날아왔을까.
무궁화와 접시꽃을
구분 못하는 그 사람의 첫사랑은 아직도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을까.
간절하게 백석 시인을
만나고 싶은데 환생해 올까.
베란다 난간에 비둘기
두 마리가 수시로 날아드는 걸 보니 둥지를 틀었나 보다.
몇 마리를
품었을까.
공사 중인 청사 건물 위로 낮게 날아가는
쇠백로는 목적지를 두고 날아갈까.
태화강변 양귀비는
갈아엎었을까.
내 나이 일곱 살
때,
마구간에서 하룻밤
자고 간 노루는 아직 살아 있을까.
비가 오던 그날
복상이 아저씨는 왜 서울까지 걸어갔을까.
석포항 조개는 몇
센티씩 자랄까.
대동배에서 바닷가에
빠져 죽었다는 사람은 뼈마디 덜 자란 아이였을까.
그날 장걸리 카페
여주인은 왜 인상을 쓰고 있었을까.
해파랑길 여왕바위에
붉은 새는 아직 앉아 있으려나.
뒷산 미륵불 마당엔
오늘도 비질이 되어 있으려나.
방동저수지 가는 길에
포도밭은 얼마에 필렸을까.
아랫배미 벚나무는
어디로 팔려 어느 곳에서 다시 고향을 가질까.
나부끼는 현수막의 평균 수명은 며칠이
될까.
몇 달 동안 병원
생활하는 오빠는 요즘 무슨 기억을 되살리고 있을까.
근
35년을 병원에서 환자들과 생활했더니 자신의
마음마저 병든 거 같다며 술 한잔하자던 선생님은 요즘 덜 힘들까.
3년 전에 죽은
친구는 왜 자꾸 꿈속까지 찾아와 나보고 좋은 데 가자고 할까.
신랑은 잇몸이
내려앉으면서도 왜 담배를 끊지 못할까.
일본에서 돌아오던
날,
내가 싫어하는 고구마
과자를 애 사다 줬을까.
무한정으로 반복되는 생활이 짜기만 해서 조금
싱거워지고 싶다던 친구는 실안포구에 닿았을까.
수원으로 이사 간
친구가 정조 임금이 그립거든 기차를 타고 오라는데 언제가 좋을까.
편의점을 개업한
후배는 매출이 올랐을까.
한정식 식당을 하는
후배는 계약 기간이 다 되어 가는데 재계약은 했을까.
미용실을 하는 수키는
뒤꽂이 비녀핀으로 나비장식을 샀을까 매화장식을 샀을까.
세미나를 발표한다던
친구는 서울 가는 기차를 탔을까.
날이 좋으면 청암사가
생각난다는 언니는 한 바퀴 휙 들러보고 수도암도 거쳐 왔을까.
팔공산 치산계곡
산방에 사는 언니는 요즘 무슨 차를 덖을까.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한
첫 손을 안은 언니의 떨리는 마음은 몇 킬로그램쯤 될까.
미역귀를 파는 아저씨는 오늘도
왔을까.
서울말 쓰는 반찬가게
아저씨는 몇 살일까.
청태 낀 수족관에
잉어,
중어 잡고기를 파는
아저씨는 청소를 좀 했을까.
그날 정육점 총각은
내 딸애한테 그 많은 부산물을 왜 챙겨줬을까.
아래층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 많은 양파로 무슨 요리를 만들까.
주물공단의 쇳물에 흰
바람꽃 꽃잎을 넣으면 천년은 남아 있을까.
밀랍 양초도 잘라
먹으면 맛있을까.
수많은 책 표지는 그
작가의 성격과 닮았을까.
정말
‘다이소’에는 무엇이든 다
있을까.
자상하고 인상 좋은 경비 아저씨는 왜
나갔을까.
유리창에 순자국은
누구 것일까.
열쇠 천국 아저씨는
장가를 들었을까.
코다리찜 집 메뉴에
빨간 찜닭은 무슨 맛일까.
젊은 청년들이 차린
장터국밥집 손익분기점은 지났을까.
감포항 총각은 정말
아버지가 직접 잡은 생선으로만 만들어 내놓을까.
취영루 반점은
짜장면을 2,900원에 팔아도 돈이
남을까.
고향머리방 미용실
원장은 왜 삼백예순날 태극기를 꽂아둘까.
시든 피튜니아 다섯
개 사면 팬지꽃 끼워주는 아지매는 덧신도 팔고 월남치마도 판다.
누가
사갈까.
수선집 할매는 왜
SK
휴대폰 간판을 걸고
치마에 레이스를 박을까.
헤픈 말의 반대는 꾹
다문 입술인가.
빵점짜리
언변인가.
오늘은 제대로 된 글 한 줄 못
썼다.
죽은 시간을 보냈던
것일까.
근 열흘을 책 한 줄
읽지 않았다.
얼큰하고,
칼칼하고,
진하고,
강하며,
독한 것들만
찾는다.
혀가 굳어가는
것일까.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귀찮다.
사지가 마비되어 가고
있는 걸까.
요즘 심장이
팔딱거리며 설레어본 적이 없다.
이름만
심장일까.
나날이 계산하기가
힘들다.
뇌세포가 지워지고
있는 것일까.
매일 마음이
쪼개진다.
부스러기만
남았을까.
밤마다 떨어지고 죽고
도망가는 꿈을 꾸다가 가위에 눌린다.
정말 죄 많은 사람의
업보일까.
십 년 후가 되면 나는 삶의 일 순위에
무엇을 두고 있을까.
몇 권의 저서를
출판했을까.
변함없이 저녁
6시에서 8시 사이를 사랑하고
있을까.
논둑길을 걸으며
전기현 씨가 그윽한 음성으로 들려주는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고 있을까.
피곤이 몰려오면
그때에도 반신욕을 하고 있을까.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잘 살아 있을까.
챙겨 먹어야 할 약은
몇 가지나 될까.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 그 이름 그대로 곁에 남아 있을까.
두 아이가 결혼을
하고 주말마다 찾아와 손자 손녀의 재롱에 세월을 즐기고 있을까.
돌아가는 날에는
좋아하는 총각김치와 깻잎장아찌를 실어 보내줄 수 있을까.
남편은 내내 어느
바닷가에서 잡아 온 볼락이나 게르치로 고급 횟감을 먹여주려나.
그러고 보면 이 사소한
것들,
내가 옴팡지게
짊어지고 가야 할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