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와 채찍
이 홍사
불이 났어요 잠 속에서 꿈이 홀랑 타버렸죠 잠을 다시 짓습니다 다시 짓는 잠에당신이 들락거릴 출입구를 어느 방향으로 낼까요
재건하는 잠
벽돌로 쌓을까 철골로 뼈대를 세울까 그게 고민입니다 이국의 침대에 홀로 앉아 타버린 꿈의 잔재를 뒤적입니다 기억에 묻어나는 그을림
그러게요
뭔가 비워야 했습니다 짐을 줄여야 했습니다 역시 짐은 짐스러울뿐이었습니다 짐을 벗는다고 자를 부릅니다 어제 버린 줄자 나의 세로와 나의 가로를 측정하던 줄자 벵골만을 건너오며 던져버린 자를 다시 부릅니다 짠물 깊숙이 가라앉아 부식되고 있을 내 측정치 꿈을 반듯하게 짓기 위해선 다시 자가 필요했지요
지난날 어설프게 지어 들어가려면 항상 몸을 웅크렸고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면 채찍을 가했죠 깨문 입술에 채찍질 당할 볼기짝 긴장하는 날의 연속
이젠 몸에 맞는 크기의 견고한 잠을 반듯하게 짓겠습니다 침대에 앉아 다시 지을 잠을 눈대중으로 가늠합니다 튼실하게 지으면 당신 혹시 내 잠 속으로 들어오시겠습니까 이 참에 세상을 다 쓸어담을 정도로 지어버릴까요
불이 났어요 잠 속에서
꿈이 홀랑 타버린 거죠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