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토요학교 -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만들어서 아이들을 태우고 밀알 선교단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매 주 토요일 장애(자폐아)를 가진 교민 자녀들 약 스무 명 정도가 밀알 선교단에서 운영하는 토요학교에 등교를 합니다.
오전 10시까지 부모님들이 도시락을 챙겨서 픽업을 오시는데 특수 학교 다 보니 가는 곳 마다 몇 달을 채우지 못하고 세를 얻은 건물에서 쫓겨나기 일쑤였습니다. 밀알 선교단 후원회원인 나는 어느날 밀알 회보를 보았는데 아주 근사한 건물 사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교민이 운영하는 건물을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를 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딸아이들 네 명만 버스에 태우고 치매에 걸린 목사님 어머님과 담소를 나누었는데, 늘 아들 자랑만 하시던 할머니는 내 귀에다 대고 연거푸 두 번이나 아들 목사님을 욕하셨습니다.
집안이 답답해서 따라가고 싶어도 아들은 절대 허락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목사님께 제의를 했더니 펄쩍 뛰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유인즉, 정신이 없으신 분이라서 잃어버릴까봐 걱정이 되어서 가능한 한 외출을 자제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는 제가 책임질터이니 걱정마시라"고 말씀드렸더니 의외로 쉽게 목사님은 승락을 하셨습니다. 할머니를 모시고 버스에 올랐는데 너무 좋아서 어린아이처럼 깡충깡충 뛰시면서 연신 내 볼에 뽀뽀 세례를 퍼 부으셨습니다.
중년의 현지인 여자 버스기사가 운전을 했는데 너무 기쁜 나머지 할머니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기사의 팔을 덥석 잡더니 고맙다며 흔들어 대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운전기사는 손을 뿌리쳤는데 나는 기사 바로 뒷 좌석에 앉아서 할머니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 위해 구차한 변명을 늘어 놓았습니다.
버스가 달린지 몇 분이 지났을까 아이들이 수시로 차안의 벨을 눌러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이식이 파트너인 진수가 앞 좌석에 껌을 붙여 놔서 통솔하시던 선생님은 노발대발 하셨습니다. 1시간여 거리에 도착한 곳은 너무나 광대하고 아름다운 푸른 초원이었습니다.
넓은 땅과 많은 건물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곳은 오래 전 뉴질랜드 정부에서 운영하던 정신병원이었다고 했습니다. 철망이나 쇠창살이 처졌던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정신병자들의 거대한 집단생활은 환자를 더 병들게 한다는 판단하에 소 집단으로 축소를 해서 지속적인 관찰치료와 약물복용을 병행한다고 했습니다.
몇 년전 한 교민이 이곳의 많은 건물을 사서 운영을 한다는데 기만평의 너른 잔디밭과 십 여개 동은 족히 되어 보이는, 600여평이 넘는 건물 하나하나는 모두 단층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잔디만 잘 관리하고 이끼 낀 지붕만 손을 본다면 너무나 멋진 피정(모임) 장소가 될 것도 같았습니다.
아이들 한 명에 교사와 보조교사가 한명씩 정해져서 간단한 율동과 노래로 오전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와중에도 일식이가 돌보는 귀엽고 통통한 다인이는 오늘따라 고집을 심하게 부렸고 이식이가 돌보는 남산만한 진수는 오늘도 역시 다른 아이들을 때리기에 급급했습니다.
1년에 네 번 있는 방학때 마다 봉사를 하는데 나는 가끔 아이들과 함께가곤 했습니다. 노천온천을 갔던 어느날 아이들이 구내수 퍼에서 아이스블럭을 마음대로 꺼내서 따끈한 온천물 속 안에 들고 들어가기도 하고 현지인이 먹고 있던 감자칩도 빼앗아서 물속으로 가지고 들어가곤 했습니다.
정오가 되자 각자 준비해 온 도시락을 꺼냈는데 정말 통제가 되질 않았습니다. 뛰어난 순발력으로 잽싸게 낚아 챈 음식들로 주위는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행동이 빠른 아이들 뒤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조금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선생님들께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저 또한 치매걸린 목사님의 어머님을 보살피느라 한눈을 팔 겨를이 없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다과를 나누고 차를 마시는 시간이 되어서야 담소를 나누며 휴식도 취했습니다. 잠시 나는 할머니를 사식이에게 맡기고(?) 설겆이를 하러 부엌으로 갔습니다.
식당에서 라면을 먹던 연승이가 갑자기 돌출 행동을 했는데 순간 여러 명의 선생님들이 밖으로 뛰쳐나간 연승이를 잡으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다행이 돌아오기는 했지만 짧은 순간 많은 상념들이 오고갔습니다. 나는 고국에서 정말 나를 필요로 하는 사회에 참 많이도 참여하고 쫓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장애우 시설엔 선배 수녀님들과 책임자로 계셔서 아이들을 데리고 한두 번 방문했던 게 전부였습니다. 통제가 안 되는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는 부모들이 얼마나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아이들을 통해 몸소 체험할 수 있었고 몇 년 동안 방학 때마다 자원봉사자로 뛴 우리 *식이들이 대견하고 고마웠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처음 방학을 이용해 자원봉사를 할 때, 점심 시간이 되어 도시락을 꺼내면 얼굴엔 눈물, 콧물, 침물이 범벅이 되어 땟국물 줄줄 흐르는 손을 이용해 마구잡이로 밥을 집어 먹던 아이들 때문에 준비 해 가지고 간 도시락도 먹지를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젠 정이 흠뻑들어 함께 입을 맞대고 나누며 가끔 봉사자들이 피치못할 사정이 생겼을 때에도 우리 이쁜 *식이들은 항상 PRN(땜빵(?))으로 대기를 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매 주 열리는 토요학교로 인해 다른 환경에서 아이(자폐아)들이 회포도 풀 수 있어서 좋고,
긴 시간은 아니지만 방학 때와 토요일 하루라도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서 벗어나 편안한 영과 육으로 삶의 여백을 즐겼으면 하고 바랬습니다. 나는 약속대로 할머니를 잃어버리지 않고 무사히 목사님께 인계(?)를 했습니다. 천진스런 할머니를 아기처럼 돌보면서 역시 "나는 양로원 체질이야" 라며 중얼거렸습니다.
함께가는 길.. 더불어 사는 것은 생명을 주신 주님께, 그리고 존재의 감사함을, 내가 흠모하는 그 분께 드리는 효도(도리)라 생각했습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 가슴속엔 명관이도, 다인이도, 토마스도, 창현이도, 진수도, 연승이도, 또 민정이도 진달래 빛 촉촉한 그리움으로 물들어 있을 것입니다.
2003.4.
추신 : 어느 님이 제 아이디를 보고 글을 좀 올려달라고 해서 예전에 끄적여 놓았던 수필을 한 편 올려봅니다.
참조 : 윗 글에 * 식이들은 우리 아이들 닉네임입니다. 세례명으로 이름을 지어 한국 이름이 없어 아이들이 많이 아쉬워해서
요즘 유행하는 중성적인 이름을 따 끝 자를 식이로 통일해서 부르곤 했습니다. 일식이, 이식이, 삼식이 이렇게...
애니는 둘째라서 이식이라고 부른답니다.^^
|
첫댓글 자주 올려 주세요..너무 멋진 수필입니다.............와우~!!
이쁜 초롱이운영자님.. 황공하옵니다. ㅋ 가끔 생활에서 묻어나는 진솔한 이야기 올려드릴께요. 좋은 하루^^
이야기샘터방에도 좀 올려 주세요.ㅎ
우리 선배 한분이 자폐아들을 기르시는데 인생의 모든 귀착이 다 거기에 닿드만, 요즘 어케 사시는지 연락이 없네~~ 에휴~
뉴질로 이민온 가족 중 특히 자폐아가 많더군요. 복지국가를 택해서 왔겠지요. 삶의 무게가 그들은 더 무거울 것 같아요.
함께 더불어 사는 삶~ 쉽지만은 않은데....가끔은 혼자이고 싶을때도 있는 내자신이 사치스럽게 느껴지네요
불루카라님.. 저도 때론 운명의 사슬에서 벗어나 도망치고 싶어요. ㅋ
따뜻한 인상의 모녀가 다 이유가 있었어요.넘 아름다운 분이셔요.8/22뵈어요.
걸망님.. 만나뵙게 되어 기뻤어요. 인상도 너무 좋으시고요. 감사^^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지난 밤에 잠이 오질 않아 애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바쁘신 일정에도 봉사에 참여 하시는 멋진 모습 떠올리며 둘이서 아사비님 칭찬(?)을 많이 했네요. 혹시 귀 간지럽지 않으셨어요? ㅋ 봉방가족들 모두 그러시지만요.. 아사비님 즐거운 날 되시길..^^
부모는 자식에 거울이라더니 참으로 휼륭한 모녀이십니다.늘~행복이 넘치고 충만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럭셔리걸님..
럽사옵니다. 함께 나누는 삶은 아름답지요
그 날 그 때 럭셔리걸님 덕분에 모두가 
거웠지요. 특히 우리 애니가 


고마워요.^^
따님의 얼굴이 눈에 선하네요~
송희님.. 더위에 간병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시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뵈어요.^^
삶의 체취가 묻어 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 ... 아름다운 것 같아요....^^*
회장님.. 더위는 잘 식히고 계시겠지요. 감사합니다. 다음 주말에 뵐께요.^^
'동명이인'인지는 모르지만 이젬마의 무슨 책을 서점에서 본 기억이 있어요 ㅎㅎ 글 감동 또 감동입니다
아~~~ 은혜준님.. 아마 그 분은 미술을 전공해서 '그림 읽어주는 여자' 인가(?)의 작가 한젬마일 거예요.. 아닌가욤? ㅋㅋ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