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023) - 조선통신사가 경탄한 시모가마가리와 도모노우라
- 제9차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 기행록 28
4월 27일(목), 아침 일찍 일어나 참밖을 살피니 전날에 이어 화창한 날씨다. 6시 반에 14층의 식당에서 아침식사, 일식과 양식을 두루 갖춘 메뉴가 다양하다. 입맛대로 골라 맛있게 들고 나니 출발시간이 가깝다. 오전 8시에 대기 중인 버스로 히로시마의 숙소를 출발하여 구레(吳)시의 시모가마가리로 향하였다. 세토 내해와 연결된 항구의 모습이 웅장하고 고속도로변의 산세가 우뚝하다. 구레 시내를 거쳐 시모가마가리의 구레 시청 시모가마가리 지소에 이르니 9시가 지난다. 곧장 2층의 란도(蘭島)문화재단 회의실에서 간단한 환영행사를 가졌다. 란도문화재단 대표는 조선통신사와 인연이 깊은 시모가마가리에 오신 일행을 환영하며 도쿄까지 무사히 가시라는 인사와 함께 이곳 특산인 소금을 하나씩 선물하는 것으로 환영행사를 가름.
이어서 시모가마가리의 조선통신사 관련 대표적 문화재인 쇼토엔(松濤院)의 조선통신사 자료관(고치소 이치반관)과 도자기관 등을 둘러보았다. 쇼토엔의 각종 전시물들 중 눈길을 끈 것은 조선통신사 행렬도, 정성들여 만든 식단을 진열한 요리상, 조선통신사의 역할 정립에 큰 몫을 한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의 초상 등이다. 행렬도에는 길을 깨끗하게 한다는 청도(淸道) 깃발을 선두로 문관, 악사, 국서, 소통, 3사(정사, 부사, 종사관) 등 400여명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져 있고 통신사 일행 외에 천 여 명의 일본 수행 인원이 작은 포구에 북적인 것을 상상하면 당시로서는 엄청난 국가적 대행사였음을 짐작하겠다. 사신들의 요리상에는 세 가지의 국과 열다섯 가지의 반찬이 한 상 가득하여 이곳의 접대가 조선통신사 순로 중 가장 정중하였다는 기록을 뒷받침하고 있다.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는 18세에 대마도 역관에 근무하는 것을 계기로 조선통신사의 교류를 비롯한 무역과 외교의 실무를 익혀 훗날까지 이 분야의 선각자로 추앙받는 인물, 그의 신조는 ‘서로 속이지 않고 싸우지 않는’ 성신외교의 주창자다. 그 정신 이어야 하리라.
쇼토엔 탐사 후 기념촬영
도자기관에 진열된 도자기들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조선에서 건너간 예인들의 예술성도 뛰어나거니와 2층의 작은 방에서 창밖으로 바라보는 해안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송도엔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10시 반, 이곳에 거주하며 6차 때에도 일행을 안내하였던 미타이 씨가 조용한 한촌인 시모가마가리 고을의 이모저모를 상세하게 설명하며 잔디밭이 넓은 휴식처로 일행을 안내한다. 그곳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식사, 미타이 씨의 전송을 받으며 버스에 올라 12시 15분에 시모가마가리를 출발하여 다음 행선지로 향하였다. 그의 성심이 담긴 선물로 큼지막한 오랜지 하나씩 받아들고.
점심식사를 한 시모가마가리의 잔디공원
오카야마와 오사카로 연결되는 도로를 두 시간 여 달려 이른 곳은 히로시마현 후쿠야마(福山)시, 시가지를 거쳐 절경의 해안에 있는 도모노우라조(町)에 도착하니 오후 2시 반이다. 버스에서 내리자 이곳에 사는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분야의 전문가이자 역사연구가인 도다 가주요시 씨가 일행을 맞는다. 곧바로 안내한 곳은 7세기의 저명한 학자이자 시인이 후쿠오카 인근의 디자이후(太宰府)를 오가는 길목에 있는 ‘노간주나무에 새겨 놓은 노래비’ 앞이다. 1300년 전 일본 고전 만엽집에 실린 노래비의 사연은 디자이후 가는 길에 동행한 아내를 중도에 사별하고 몇 년 후 혼자서 돌아오며 함께 보던 나무 앞에서 읊은 시, 예나 지금이나 동고동락하던 배우자를 잃고 이를 간곡한 마음으로 달래는 사연이 애틋하다. 도다 씨의 비석에 새긴 한자에 대한 해설이 흥미롭다. 도모노우라의 도자 표기는 한국이나 중국 한자에 없는 일본식 한자라는 것, 일본 한자에는 이런 표기가 더러 있다는 설명과 함께.
역사와 문화, 삶을 일깨는 노관주나무 노래비를 바라보며
이어서 오키나와(유구) 사신들이 18차례나 일본을 찾을 때 묵었다는 사찰(萬年山 小松寺)을 안내하며 오키나와 사신의 인적규모가 100여명으로 조선통신사에 비하여 적은 것과 그 접대의 비중도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설명을 곁들인다. 도모노우라의 대표적인 조선통신사 관련 사적은 후쿠젠지 다이초로(福山寺 對潮樓), 1711년 제4차 조선통신사 일행이 묵었던 절간의 숙소인 다이초로는 그때 왕래한 통신사 일행이 일본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日東第一形勝)으로 뽑은 명승지다.(日東第一形勝이라는 명필은 제4차 조선통신사 일행 중 종사관을 맡았던 이방언의 필체) 조선통신사들이 찬탄한 경관을 배경으로 다이초로 대청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해안 건너의 섬과 멀리 바라보이는 세토 내해의 경관이 운치 있다. 이전에 찾을 때보다 감흥이 덜한 것은 이번에 처음 들른 가미노세키 등의 해안 절경이 강력한 인상으로 남아서일까?
조선통신사 일행이 감탄한 다이초로 앞의 경관
다이초로 탐방을 끝으로 도모노우라 일정을 마무리, 오후 4시 반에 버스에 올라 후쿠야마 시내에 있는 숙소에 여장을 푸니 오후 5시가 가깝다. 조선통신사들이 환대를 받고 경승에 감탄한 시모가마기리와 다이초로 거치는 길의 날씨가 화창하여 더욱 활기 넘치는 여정, 편히 쉬고 내일도 즐겁게 나서자.
* 한 가지 아쉬운 점, 시모가마가리에 올 때마다 들른 소학교가 폐교하였다는 소식이다. 그곳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함께 즐기며 뜻깊은 시간을 가졌는데 예상치 않은 상황을 접하며 마음이 아프다. 한일우정걷기 일행과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어린이들이여, 미래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