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본문의 시편 32편은 다윗을 통해 기록되고 고백되며 증거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상 하나님께 죄를 자복함과 함께 정말 사하심을 입을 수 있게 되고, 경건한 자들의 기도에 응답이 있게 되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고..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선 그러한 회개로 인한 사함이나 간구의 응답은 아무나 할 수 있거나 누릴 수는 없는 것으로 먼저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하는 것으로..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고, 본질적으로는 더 이상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와 진노와 음부와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가 아닌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됨이 모든 우선이자 전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을..
참으로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 다양한 모양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유월절 어린 양,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 뱀, 회막, 제사장, 선지자 등과 같은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것으로 새로워 질 수 있다는 것으로 그것이 바로 회개로 인한 사함이나 모든 간구의 응답에 있어서의 전적인 우선이자 필수적인 전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처음부터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분인 것이기에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모든 은혜와 역사들에 있어서, 또한 그에 있어서의 그 위치와 역할에 따른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들에 있어서, 무엇보다 믿음으로 인한 모든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에 있어서 단 하나,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하나하나 모두 다 반드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 어떻게든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더 나아가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상상을 초월하는 권능과 역사들이 아니고서는 실제와 경험들, 실질적인 누림과 성취들이 불가한 것이기에 따지고 보면 하나님으로 인한 크고 작은 모든 일들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사실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일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며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고 완전히 하나되어 한 뜻을 이룸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실상과 원리와 현실들 속에서 실제로 시대와 나라들,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 그렇게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가면서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과 인류 역사의 상황들 속에서 범하게 되는 크고 작은 죄악들에 있어서도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자복하고 돌이킬 수 있는 것이고, 실질적으로 그로 인한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도, 이 또한 일종의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어쨌든 강렬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이며, 정말 하나하나 생생하게 가능함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며 그 이름으로 기도드림과 함께 응답 한 번을 받게 됨에 있어서도 동일한 이치와 원리, 실제와 누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사실은 그러한 모든 은혜와 역사들, 실제와 누림들은 아래 본문이나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 뿐 아니라 오늘날 이 시대, 우리들에 있어서도 근본적으로는 다를 수 없다는 것이고, 어떤 면에서는 조금만 통찰해 봐도 이미 오신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아주 확실하고 명료하게 알고 믿으며 의지하고 있는 오늘 우리들은 실질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 그렇게 모형들이나 예표들, 그림자들이나 상징들 등을 통해, 또한 임시적이고 예비적이며 가려진 면이 있고 몽학 선생과 같은 이치와 원리 등으로 인해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던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이나 권속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고 충만하며 강렬하지 않을 수 없는 여건과 상황과 현실이라 할 수 있는 것인데..
어쨌든 본질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고, 구주 예수님께서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며,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것이고, 그렇듯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며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에 오늘날의 모든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과 신앙과 영성들에 있어, 또한 그로 인한 생생하고 강력하며 풍성한 실제와 누림과 열매들에 있어 더 이상 옛 사람과 같이 내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이 아닌 순간순간마다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얼마나 죄악들과 싸울 수 있는가, 또한 범한 죄악들에서는 즉시로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어느 정도로까지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치열하고 뜨거울 수 있는가가 모든 기준과 관건,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고 긴급한 방법과 통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시편32:5~6)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3월 19일(화)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